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의 비상체제를 마무리합니다

- 행성인 비상대책위원회 및 비상조정위원회 해산에 부쳐 -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이하 행성인) 12 8일 임시총회를 기점으로 비상체제를 종료하고 활동 재개를 알립니다.

 

행성인은 지난 3월 비상체제로 전환하였습니다. 단체에 제기되고 공론화된 성폭력을 둘러싼 문제들은 사건 심층에 누적되고 방관해온 성평등 감수성과 조직문화에 대한 반성과 성찰을 요구했습니다. 운동의 외연을 확장하는 데 집중하면서 지나쳤던 가치들을 다시 돌아보는 그간의 시간은, 행성인이 지향하는 바를 다시 정의하고 점검하며 바로 세우는 과정이기도 했습니다.

 

비상체제로 전환하며 행성인은 무엇보다 회원들의 자발적인 참여와 공동의 노력을 통해 자성과 변화를 도모해야 한다는데 중지를 모았습니다. 이에 비상대책위원회(이하 비대위)는 공동체 안팎의 문제제기를 비롯한 의견들을 수렴하는 차원에서 온라인 소통창구를 마련하고, 회원들과 함께 조직문화를 보다 긴밀하게 살피고자 회원 심층인터뷰와 회원 집담회를 가졌습니다. 심층인터뷰와 집담회 결과는사회복지연구소 물결의 외주 연구를 통해 조직 바깥의 관점으로 평가를 남길 수 있었습니다. 더불어 평등 감수성 향상 프로그램과 반성폭력 교육을 진행하여 사건에서 불거진 단체의 문제를 심층적으로 바라보고자 했습니다. 비대위원과 각 팀·소모임장 등 책임 있는 역할을 가지고 있는 단체 활동가들을 대상으로 성평등 감수성 고양과 민주적인 의사결정 역량 강화를 위한 워크샵을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조정위원회의 경우 외부위원 두 명을 선임, 4인 체제의 비상조정위원회를 구성하여 사건 해결과 조직문화점검에 집중하였습니다. 더불어 다양한 관점에서 문제를 짚어보기 위해 외부 자문위원회를 구성하여 방향과 관점을 점검했습니다.  

 

하반기 사건 결정문들이 나온 이후 행성인은 단체 내 성평등 규약 마련과 조직구조개편 논의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비대위는 상반기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회원들의 자원을 받아 TF를 구성했습니다. TF는 성평등 규약 제정을 준비하고, 조직구조 개편을 논의 중에 있습니다. TF는 향후 행성인이 활동을 재개함에 있어 비상체제에 얻은 과제를 현실화하기 위한 공동의 테이블이기도 합니다.

 

비상체제는 행성인이 문제를 직면하고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가는 과정이었습니다. 운동의 성장이 성소수자 당사자들에게 힘이 되고 사회를 바꾸는 목소리를 높인다 할지라도 비판과 반성 없는 성장은 미명일 뿐입니다. 우리는 방만하게 운영되어온 단체를 직시해야 했습니다. 부족한 성평등 감수성과 불명확한 구조, 성과에 대한 집착은 조직 내 비민주적인 문제를 배태할 뿐 아니라 위계에 의한 성폭력을 방관하게 만들고 사건 발생을 조장하도록 합니다. 무엇보다 성과와 조직 확장에 급급한 활동의 관성은 회원들로 하여금 소외와 고립을 유발함은 물론, 책임 있는 활동가에게도 과중된 역할과 피로를 유발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 속에서 위력에 대한 반성과 성평등 가치에 대한 성찰은 주변으로 밀려나기 쉽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비상체제를 결정케 했던 특정 문제제기 이전에도 변화의 시도가 존재했음을 알고 있습니다. 회원들의 문제제기와 변화의 노력들은 이미 활동 저변에 존재해왔습니다. 비상체제 기간은 오랜 시간 무시하거나 지나쳐온 목소리들에 다시금 귀 기울이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행성인은 미진하게나마 이들의 노력을 바탕으로 조직문화의 문제를 인지하고 변화를 모색해왔지만, 결과적으로 활동은 관성으로 굳어졌고 과정을 두루 살피지 못했습니다. 비상체제동안 단체에 실망하여 떠나고 침묵해야 했던 회원들의 역사를 상기했습니다. 이는 곧 단체 내 변화를 시도하고자 했던 역사의 재발굴이 활동의 가치를 세우는데 중요한 작업임을 시사합니다.

 

문제를 확인하고 직시하는 것은 방향을 내는 노력과 다르지 않습니다. 비상체제의 경험은 행성인 뿐 아니라 성소수자 운동이 뿌리를 내리고 바라볼 곳을 가리킵니다. 과정을 되새겨 길을 만드는 작업은 향후 행성인에 주어진 과업입니다.

 

행성인은 12 8일 임시총회를 기점으로 지난 8개월 동안 숙고하고 성찰하며 변화의 요구를 받아 안았던 비상체제를 종료하고 활동 재개를 알립니다. 이에 비상대책위원회와 비상조정위원회는 임시총회를 끝으로 해산을 선언합니다. 비상체제의 종료가 모든 것이 해결되었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오히려 시작은 종료와 함께 옵니다. 출발지는 이미 오래 전 변화를 모색했던 작은 시도들 속에, 지나온 길의 끝에 있습니다. 변화는 한 번에 올 수 없습니다. 행성인은 비상체제의 경험들을 양분삼아 공동체 내에서 계속 기억하고 성찰할 것입니다. 행성인은 새로운 시작이 과거로부터의 단절이 아님을 이해하고, 비상체제 활동이 성소수자 운동이 나아갈 방향의 토대와 발판이 될 수 있도록 힘쓰겠습니다. 비상체제는 마무리하지만, 비대위와 조정위는 임시총회 이후 마련될 새로운 단체 운영조직과 함께 성평등한 문화를 실천해나가는 과정에 참여하며 새 길을 만들어 가는데 책임과 역할을 다할 것입니다. 조직의 관성을 쇄신하고 성평등한 운동문화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온 과정과 부침과 고민들을 성소수자 운동과 시민사회에 두루 나눌 것입니다.

 

행성인 비상체제는 단체에 비판과 애착을 아끼지 않으며 성찰과 고민 나눔에 참여하고 기다려준 회원 여러분들과 함께 역할을 분담하고 무게를 나눠 안음으로써 가능했습니다. 비상체제동안 우리는 회원들과 연대단체, 활동가 및 시민사회의 많은 이들이 단체에 대한 애정과 신뢰를 보이며 비판과 응원을 아끼지 않았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사건 해결과 조직문화 개선을 요구하고 지켜본 사건 피해자 여러분들에게 사과 드리며, 향후 단체 운동에 있어 회원 개인의 소외와 배제를 방관하지 않고 성평등 감수성을 높여나갈 수 있는 공동체를 만들겠다는 약속을 감히 드리고자 합니다. 행성인은 비상체제의 교훈을 활동에 새기며 서로의 삶을 지지하고 힘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2018. 12. 8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