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는 HIV감염인의 존엄한 삶에 연대한다.
어느 대학 소셜미디어를 통해 드러난 에이즈혐오 사건에 부쳐,
그 모든 비난과 욕설에 함께 맞서며,

3월 3일 오후 1시경, 한 소셜미디어에 다음과 같은 글이 ‘긴급’하다는 해시태그와 함께 게시되면서 한국 사회의 심각한 에이즈혐오가 다시 한 번 여실히 드러났다.

“(기숙사) 생활관에 에이즈 보유자가 병의 유무를 알리지 않고 생활관에 입사한다고 합니다. … 벌써 다 입사한 상태라 늦었다고 할 수 있지만 지금이라도 다같이 기숙사에 항의해서 피검사 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 짚고 넘어가는 게 안전할 것 같습니다.”

이 글이 게시되자, 수많은 혐오 발화의 댓글이 이어졌다. HIV감염인을 ‘미친 호모’, ‘문란한 걸레’ 등으로 표현하고 있는 ‘성생활-항문성교-성소수자혐오-여성혐오-더러움’으로 점철된 혐오의 댓글들 중에는 “기숙사를 안 가서 다행이다.”, “기숙사 들어간 사람 조심해라”는 댓글들도 많았다. 이렇게 드러난 대중의 무지와 공포, 에이즈혐오와 낙인을 부추기기라도 하듯, 해당 학교 측은 이 사안에 대해 ‘학생들이 불안해하고 있는 만큼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노력 중’이라며 ‘공식적으로 경찰 수사를 의뢰할 예정’이라고 한 언론사에 밝혔으며 실제로도 경찰 수사를 의뢰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는 ‘에이즈 걸려도 기숙사 입사되죠?’라는 글이 거짓으로 작성됐다는 것이 밝혀져, 하나의 해프닝으로 마무리되는 분위기다. 그러나 HIV감염인을 색출하려고 경찰 수사를 의뢰한 대학 당국의 HIV에 대한 의식 수준과, 이를 자극적인 소재로만 사용하였을 뿐 올바른 정보를 알리지 않은 언론과, 인터넷을 도배한 셀 수 없이 많은 욕설들은 그저 해프닝으로 끝날 수 없는 상처로 남았다.

사람들이 보여준 공포와 혐오는 의학적 사실에 기반하지 않았다. HIV는 일상생활을 통해 감염되지 않는다. HIV는 대표적인 혐기성 바이러스로 공기에 노출되면 죽는다. 열을 가하거나 체액이 건조되어도 사멸한다. 수돗물 정도의 염소 농도에서도 비활성화되어 감염력을 상실한다. 곤충매개성 바이러스가 아니기에 모기를 통해서도 감염되지 않는다. 성접촉 등의 감염경로를 통해 누구나 HIV에 감염될 수 있다. 작년 2월에는 에이즈 치료제 트루바다가 국내에서 예방 목적의 적응증 허가도 받아 병원에서 처방을 받아 복용할 수 있다. 또한 자신의 감염 사실을 알고 치료제를 복용하여 체내의 바이러스 수치를 낮추어 미검출 상태가 된 감염인은 타인에게 바이러스를 전파할 수 없다는 내용의 U=U(Undetectable=Untransmittable) 성명은 이미 의학계에서 상식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HIV가 조기검진을 통해 치료하고 관리하면 건강하게 살 수 있는 만성질환이 되었음에도 HIV감염인은 여전히 사회적 낙인과 비난에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당한다.

우리는 이 모든 과정에서 드러난, 심각한 혐오에 상처받았을 그 모든 사람들의 고통에 주목해야 한다. 단 하루 사이에 우리는 확인할 수 있었다. HIV감염인과 함께 기숙사에 머무르는 것을 사람들이 용납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HIV감염인이 기숙사에 가도 되느냐는 질문을 던졌을 때 학교가 경찰에 수사를 의뢰해 감염인이 누구인지 색출하려 한다는 사실을, HIV감염인을 향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비난의 언어를 사용하는지를. 우리는 다시 한 번 보았다. HIV감염인에게 심히 폭력적인 이 사회를. 얼마나 이 사회가 HIV감염인을 심각하게 배척하는지를.

HIV감염인도 얼마든지 기숙사에서 함께 머무를 수 있다. 어떤 질병을 가졌건 장애가 있건 소수자의 특성을 지녔건 인간이라면 원하는 어디에나 머무를 자유와 권리가 있다. 필요한 것은 그것을 보장하기 위한 학교당국의 고민과 구성원들의 노력이다. 사람들이 보여준 혐오는 HIV감염인에게는 인권이 없다라고 말하는 듯하다. 외국의 대학들은 HIV/AIDS 가이드라인을 학생들과 공유하며 함께 지내기 위한 노력을 한다. HIV감염인에 대한 사람들의 혐오는 무지로 인한 공포 때문에 발생하며 그것을 개선해나가는 것이 더 나은 공동체가 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사회적 낙인과 오해, 소수자에 대한 폭력에 대해 차별금지법 등을 제정하여 혐오와 차별표현과 그 실천들을 제재하지 않는 우리 사회에서 HIV감염사실을 밝히는 것은 즉시 폭력에 노출되는 결과로 이어진다. HIV감염사실은 전적으로 개인의 비밀보장의 영역에 속한다. 이는 법적으로도 보장된 권리이다.

해당 대학은 경찰 수사를 의뢰해 HIV감염인을 색출할 것이 아니라, HIV감염인이 안전하게 교육받을 수 있는 권리를 보장했어야 했다. 나아가 학생들의 HIV/AIDS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바로잡고 올바른 이해를 통해 공포감과 편견을 해소해줄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야 했다. 언론은 HIV/AIDS를 그저 조회수를 올리는 자극적인 ‘소재’로 취급할 것이 아니라, HIV/AIDS에 대한 혐오가 극심한 이 사회에서 살아가는 감염인들의 삶을 고려해 기사를 작성해야 했다. 사람들이 HIV에 대해 갖고 있는 구시대적인 편견을 해소할 수 있도록 과학적인 정보를 제공하는 ‘기사’를 내보냈어야 했다. 온‧오프라인 상에 들끓은 모든 비난의 언어들은 있어서는 안 됐을 ‘혐오범죄hate speech’다. 무지와 소수자에 대한 혐오가 빚어낸 비난과 욕설에 누군가가 삶을 포기하는 시도를 할 수도 있음을 우리는 생각해야 한다.

『HIV/AIDS에 대한 20~30대 HIV감염인의 인식조사』(2017) 연구 결과에 따르면 20~30대 남성 HIV감염인이 자살을 시도하는 비율이 동일한 연령층의 집단과 비교했을 때 무려 39배나 더 높다고 한다. 이렇게 심각한 수치의 까닭이 어디에 있겠는가. 이는 누군가 쉽게 생각 없이 남긴 댓글과, 그렇게 함부로 내뱉은 욕설, 교육기관의 무지한 대응, 사안에 대한 깊이 있는 분석과 접근 대신 조회수에 목을 맨 저급한 언론과, 함께 살아가야 할 누군가를 몰아내자고 위협하고 혐오와 공포를 조장하는 그 모든 혐오와 차별구조에 있다.

HIV감염인은 이 사회의 동등한 구성원으로서 함께 살아가고 있다. HIV감염인은 학교에도, 일터에도, 병원에도, 길거리에도, 광장에도 언제나 함께 존재한다. 같이 공부하고 일하고 밥을 먹고, 함께 울고 웃는다.

우리는 연대한다. HIV감염인이 기숙사에서 머무를 수 있는 권리에, HIV감염인이 안전하게 학교에 다닐 수 있는 권리에, HIV감염인이 욕설로 비난받지 않을 수 있는 권리에, HIV감염인이 그저 언론의 자극적인 소재가 되지 않을 권리에, 연대한다. 우리는 우리의 존재와 삶으로서, 모든 HIV감염인이 이 사회에서 존재하고 살아내는 것에 연대한다.

 

2019. 03. 06
한국청소년청년감염인커뮤니티알 
대학성소수자모임연대QUV

연명단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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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HIV/AIDS감염인연합회 KNP+ / HIV/AIDS인권연대 나누리+ / 러브포원 / 대학성소수자모임연대 QUV / 레드리본사회적협동조합 / 에이즈환자 건강권보장과 국립요양병원마련을 위한 대책위원회 / 성적소수문화인권연대 연분홍치마 / 장애여성공감 / 정의당 성소수자위원회 /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PL모임 ‘가진사람들’ / 한국청소년‧청년감염인 커뮤니티 ‘알’ /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