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성소수자 인권은 찬반문제가 아니다.

교학사 ‘생활과 윤리’ 교과서 수정은 인권의 후퇴다.

 

작년 7월 보수기독교를 중심으로 구성된 ‘동성애조장 교과서문제 대책위원회’는 교과서가 동성애를 옹호한다면서 반대의견도 넣어달라고 교육부에 요구하기 시작했다. 7월 13일에는 바른성문화를위한국민연합이란 단체에서 네이버 도전 만화란에 ‘동성애 옹호 교과서의 문제점을 알아보자’라는 제목의 웹툰이 게재되었다. 8월 22일에는 새누리당 대표인 황우여 의원이 회장을 맡고 있는 국회조찬기도회를 중심으로 구성된 ‘한국교계 교과서 동성애·동성혼 특별대책위원회’가 현역 의원들과 함께 “동성애를 조장하는 고등학교 교과서를 즉각 수정하라”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의 주장에 따라 올해 교학사 ‘생활과 윤리’ 교과서는 성소수자 관련 내용이 대폭 수정되었다.

 

이전 교과서의 탐구하기가 성소수자가 받는 인권침해를 알아보기 위한 내용이었다면, 수정된 교과서는 이를 찬반문제로만 다루고 있다. 반대의견이라고 추가된 것들은 다음과 같다. “후천성 면역 결핍증 환자 중 남성 동성애자가 많고, 성적 지향은 선천적이지 않다”, “성적 소수자는 전염성 있는 질병을 옮길 수 있고, 성 문화를 문란하게 한다”, “만약 성적 소수자의 가족 구성권을 인정하면, 입양되는 자녀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가 성적 소수자의 성적 지향을 정상으로 여기고 따라할 위험이 있다” 또한 교학사의 교사지침서에서는 기독교 근본주의적 신앙에 기초하여 과학을 받아들이는 ‘창조과학회’의 주장을 세계보건기구(WHO)와 발표와 동등한 것처럼 서술하고 있기도 하다.

 

동성애혐오 세력이 끊임없이 주장하는 ‘동성애가 에이즈를 퍼트린다’는 거짓말은 에이즈에 대한 공포심을 부추길 뿐이다. HIV 바이러스는 동성애, 이성애 관계없이 혈액, 정액, 질분비액, 모유를 통해 감염될 수 있다. 동성애혐오세력은 HIV 감염인 중 남성 동성애자 비율이 높기 때문에 동성애를 반대한다지만, 그렇다면 감염 비율이 이성애자보다 더 낮은 여성 동성애는 장려할 것인가? 끊임없이 에이즈에 대한 공포를 키우는 이러한 방식의 주장은 질병예방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질병관리본부도 에이즈 예방을 위해 정확한 감염경로를 알리고, 감염인들에게 향한 사회적 차별과 편견을 해소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하는 판국에 “동성애자가 되면 에이즈에 걸린다”는 식으로 편견과 무지를 퍼트리는 주장이 교과서에 실려 있다는 것이 충격적이다. 에이즈에 대한 공포를 유발시켜 감염인들에 대한 편견을 가중시키고 성소수자 차별을 조장하는 이 같은 내용은 교과서에서 삭제되어야 한다.

 

수정된 교과서에서 동성애가 선천적이지 않다는 연구들을 소개하는 것에도 우려를 표할 수밖에 없다. 성적지향이 선천적이냐 후천적이냐는 아직까지도 많은 논란이 있고, 과학자들 사이에서는 단순히 하나의 요인으로 설명하기 어렵다는 정도가 합의되어 있는 수준이다. 성적지향의 선천성/후천성 논쟁이 문제적인 이유는 동성애는 ‘나쁜 짓’이란 전제를 깔고 논의가 진행되기 때문이다.

 

얼마 전 우간다에서 반동성애법이 제정되는 과정에서도 동성애가 후천적으로 습득된다는 주장이 위험한 이유가 드러났다. 이 법은 동성 간 성관계, 동성애 선전, 동성애자를 신고하지 않는 행위 모두 최대 종신형으로 처벌한다. 우간다의 대통령은 “동성애가 유전이 아니라 사회적 행동”이라는 보고서를 보고 이 법을 승인했다고 한다. 이렇게 동성애가 후천적으로 습득된다는 주장은 동성애자들을 ‘나쁜 짓’한 사람으로 보이게 하고, 그래서 그에 마땅한 처벌을 주장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다. 이미 심각한 차별에 놓여있는 성소수자들에게 책임을 돌림으로써 차별을 정당화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동성애가 정신병이 아니라는 세계보건기구의 발표에 대한 반대주장으로 창조과학회 연구들을 언급하고 있는 것도 심각한 문제다. 창조 과학회는 성경의 내용들을 과학적으로 증명하겠다고 만들어진 기독교 근본주의 단체이다. 교과서에서 이를 마치 하나의 과학적 입장인 것처럼 서술한 것은 왜곡을 넘어 사기에 가깝다.

 

우리는 편견과 오해를 불러일으키고, 성소수자 차별을 정당화하는 내용이 버젓이 교과서에 실렸다는 것에 경악할 수밖에 없다. 교육에서의 차별과 편견 해소는 소수자 인권보장을 위한 최소한의 조치이기 때문이다. 동성애혐오 세력과 교육부는 지난 수십 년 동안 인권운동이 쌓아온 성과를 무로 돌리려 하고 있다. 교과서는 사회적 약자들에 대해 찬반토론을 하는 곳이 아니다. 사회적 약자들이 겪는 차별을 드러내고 인권을 보장하기 위해 필요한 것들을 고민하도록 하여야 한다. 장애인, 여성, 이주민들에 대한 혐오와 반대 주장을 교과서에 실을 수 없듯이 성소수자 혐오 주장도 교과서에 실려서는 안 된다. 사회적 약자의 인권문제를 찬반 문제로 다룰 수 있다는 시각을 강화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이번에 수정된 교학사 교과서는 인권을 바라보는 인식 자체를 훼손시키고 있다.

 

교학사는 최근 역사교과서의 왜곡된 집필로 큰 물의를 일으킨 적이 있다. 생활과 윤리 교과서 수정에서도 혐오세력의 주장을 일방적으로 받아들인 것을 보면 과연 교학사가 교과서를 만들 자격이 있는 곳인지 의문이 든다. 교과부 또한 이런 혐오 조장 내용을 권고하고 승인한 데 책임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그동안 성소수자 청소년들은 사회적 차별과 편견으로 큰 고통을 겪어 왔다. 교학사의 생활과 윤리 교과서는 혐오와 차별 괴롭힘을 정당화함으로써 성소수자 청소년들을 더 큰 고통으로 내몰 것이다.

 

교육계는 편견과 무지를 바로잡고 차별과 혐오가 잘못된 일임을 교육해야 한다. 성소수자 인권운동은 역사의 시계를 거꾸로 돌리려는 혐오세력의 시도를 좌시하지 않을 것이다. 교학사는 동성애혐오와 편견을 강화하는 내용들을 교과서에서 삭제해야 한다. 그리고 이 같은 수정을 승인한 한국검인정교과서, 교육부 또한 이번 수정을 수습하고 다시는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조치를 취해야 할 것이다.

 

 

2014년 3월 19일

성소수자 차별반대 무지개행동 (직인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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