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세력에게는 불관용이 정답이다  

                                                     - 제 15회 퀴어퍼레이드에 부쳐




지난 토요일 우리는 한국 사회의 성소수자혐오세력의 민낯을 마주했다. 성소수자 자긍심과 인권의 축제인 퀴어 퍼레이드를 방해하기 위해 보수 기독교도들과 우익 단체 회원 수백 명이 연세로에 나타난 것이다. 혐오세력은 퀴어문화축제를 준비할 때부터 서대문구청과 경찰을 압박해 구청으로부터 행사 장소 승인 취소를 이끌어냈고, 세월호 참사마저 이용해 축제를 중상했다. 그럼에도 성소수자 커뮤니티가 위축되지 않고 오히려 시민사회의 지지를 받으며 축제를 진행하자 이들은 물리적인 행진 저지에 나섰다.


퍼레이드에는 예수재단, 에스더기도운동, 홀리라이프 등 앞장서서 반동성애 운동을 벌이던 이들과 이번 행사를 겨냥해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 신촌동성애반대청년연대, 심지어 보수우익단체인 대한민국어버이연합도 등장했다. 혐오세력은 축제 장소 곳곳에 집회신고를 내고 지속적으로 행사를 방해했다. 혐오문구가 적힌 펼침막과 팻말을 들고 노래를 부르며 행사장을 휘젓고 다니는가하면, 퍼레이드 참가자들을 모욕하고 위협하는 이들도 있었다. 급기야는 이들 수백 명이 축제의 핵심인 퍼레이드 행렬을 가로막아 4시간 가까이 퍼레이드가 지연됐다. 1만 명이 넘는 사람들은 집회시위의 자유를 침해당할 수 밖에 없었다.


혐오세력의 신경질적인 발광은 성소수자 인권과 평등이 되돌릴 수 없는 역사의 흐름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지난 15년 동안 수백 참가자에서 시작하여 수만 규모로 성장한 퍼레이드는 단적으로 성소수자의 사회적 위상과 인식변화를 보여준다.  이러한 변화에 혐오세력은 심각한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  혐오세력의 비방과 방해, 위협 속에서도 작년보다 훨씬 많은 성소수자와 지지자들이 퀴어문화축제에 참여했다. 다양한 시민사회 단체들과 아이와 함께 온 이성애자 부부들도 많이 보였다. 무엇보다 성소수자들 자신이 혐오에 위축되지 않고 연세로를 가득 메웠고 밤 늦은 시간까지도 수천 명이 퍼레이드를 포기하지 않고 당당하게 행진을 벌였다.


혐오세력은 인권을 부정하는 더러운 폭력을 정당화하기 위해 세월호 참사를 이용했다. 그러나 혐오세력의 일부인 보수기독인사들의 세월호 참사 관련 망언만 봐도 이는 너무도 역겨운 위선일 뿐이다. 혐오세력은 세월호 참사 해결에 조금도 관심이 없었다. 오히려 퀴어문화축제에서 부스를 진행한 많은 성소수자단체들은 세월호 참사 국민 대책회의의 천만인 서명운동을 함께 진행했다. 당일 축제 장소에서는 유가족도 함께한 대책회의 서명도 함께 열려 많은 참가자들이 서명에 동참했다. 이는 근본적으로 불의한 체제의 총체적 모순을 보여준 세월호 참사는 단지 애도로 끝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진실을 밝히고 부패한 권력과 이윤에 눈 먼 체제를 뜯어 고쳐야 할 문제라는 공론이 형성되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한편, 혐오세력의 퀴어문화축제 방해 과정은 한국의 기성 정치권과 국가기관이 혐오에 철저하게 물들어있음을 보여줬다. 서대문구청은 일찌감치 혐오세력의 압력에 굴복해 행사 승인을 취소했다. ‘동성결혼에 반대한다’고 보수 일간지에 직접 기고글까지 보내 동성애혐오를 인증한 문석진 서대문구청장은 재선에 성공하자마자 퀴어문화축제를 막을 것을 지시했다고 한다. 경찰은 신고제인 집회를 취소하지는 못했지만 불상사가 예견되는 혐오세력의 중복 집회신고를 무분별하게 받아줬다. 무엇보다 경찰은 퀴어퍼레이드 행진을 보장하려는 진지한 노력을 전혀 하지 않았다. 몇 시간 동안이나 혐오세력의 도로 점거를 방조하면서 경고방송만 반복하는 모습은 오늘 이시간 밀양에서 벌어지고 있는 엄정하고 폭력적인 법집행 모습과는 정반대였다.


성소수자 혐오는 이제 단순히 종교적 신념이나 개인적 의견으로 취급할 것이 아니다. 혐오세력의 활동이 이를 말해준다. 저들은 동성애혐오를 이용해 차별금지법, 학생인권조례, 국가인권위원회를 반대하고 박원순 시장을 비난한다. 저들은 동성애 때문에 가족, 사회, 국가가 무너진다고 말한다. 어떤 가족과 사회, 국가가 무너진다는 것인가? 여성이 애낳는 도구로 취급되는 불평등한 가족, 남자다움과 여자다움의 틀로 인간의 존엄과 자유를 제약하고 장애인, 이주민, 성소수자 같은 소수자들을 천대하는 사회, 생명과 인권보다 소수의 돈벌이를 위해 노동자를 짓밟고, 의료를 상품화하고, 밀양 주민들을 삶의 터전에서 쫓아내는 국가다.


보수 정치권과 보수 종교계, 극우적인 정치집단들은 성소수자 혐오세력과 연결돼 있을 뿐 아니라 그 자체가 혐오세력임을 자임한다. 황우여 같은 여권 실세부터 김진표 같은 야권 정치인, 보수적인 대형교회들이 혐오세력 활동을 지지, 지원하고 있다. 총리후보로 지명된 문창극이 퀴어퍼레이드를 비난하는 발언을 공공연히 떠벌리는 지경이다. 실제로 소수자와 약자에 대한 국가 폭력과 탄압이 증가하고 인권이나 다양성, 민주주의 따위는 겉치레조차 거추장스러워하는 우파 정부 아래에서 성소수자 혐오세력은 점점 더 자신감을 갖고 있다.


혐오 문제는 정치적인 문제이다. 우리는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부패한 기득권층이 점점 더 성소수자 혐오를 이용해 자신들을 정당화하는 상황을 마주할 것이다. 따라서 혐오세력에 맞서는 문제는 민주주의와 인권, 사회 진보를 바라는 모든 사회운동의 과제가 되어야 한다.


한국의 성소수자들은 뿌리 깊은 천대와 차별 속에서도 자긍심과 인권 의식의 진전을 이끌어왔다. 한국 사회의 성소수자에 대한 인식은 어느 국가보다도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소수 혐오세력의 폭력과 공격에 위축될 이유는 전혀 없다. 그러나 경각심을 잃지는 말아야 한다. 혐오에는 의연하되 단호해야 한다. 혐오는 어떤 상황에서도 용납될 수 없다. 우리는 혐오의 비극적 결론을 수 없이 목격했다. 너무나 많은 친구들이 죽음으로 내몰렸고 폭력과 차별이 정당화되는 상황들이 되풀이됐다. 더는 이런 세상을 참아낼 수 없다. 혐오에 물들고 혐오를 조장하는 사회에서 성소수자 인권보장은 불가능하다.


혐오에 맞서 함께 행동하자. 혐오에 대한 불관용은 민주주의를 위한 기본 자세다.





2014년 6월 7일

동성애자인권연대 운영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