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성소수자 외면하고 탄압하는 소치 올림픽, ‘모두의 올림픽’ 아니다

러시아 정부는 성소수자 탄압을 중단하라!



 

오늘 2월 7일(현지시간), 러시아 소치에서 올림픽의 막이 오른다. 제22회 동계 올림픽은 2월 7일부터 23일까지, 제11회 동계 패럴림픽은 3월 7일부터 16일까지 진행된다. 2014 소치 올림픽이 공식 슬로건으로 내건 ‘뜨거움. 차가움. 그대의 것’은 올림픽이 선수들만의 경기가 아니라 모두가 함께 즐기는 대회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표현하고 있다.

 

그런데 과연 올림픽 개최국인 러시아 정부는 진정으로 모두가 함께 즐기는 대회를 준비했을까? 소치 올림픽 개최 준비 과정은 러시아 국내외에서 많은 비판을 받아 왔다. 러시아 야권 인사들은 각종 보고서를 통해 올림픽 준비 비용 중 250~300억 달러가 횡령됐다고 주장했고, 건설 현장의 노동자들은 급여 미지급이나 지급 연기, 과도한 노동, 학대, 그리고 항의 시 가혹행위와 보복에 시달려야 했다. 뿐만 아니라 소치 시는 건설 현장 주변을 떠도는 유기견들을 도살하기로 결정했다. 러시아 정부의 계속되는 언론 및 정치 탄압, 특히 성소수자 탄압은 러시아가 과연 세계인의 축제인 올림픽을 개최할 자격이 있는가를 의심하게 한다.

 

올림픽 이념의 기본 원리는 어떤 종류의 차별 없이, 우정과 연대 그리고 페어플레이 정신에 기반한 상호 이해를 요하며, 인종, 종교, 정치, 성별 등을 이유로 국가나 사람에 대해 행해지는 어떠한 형태의 차별도 허용하지 않는다. 그러나 러시아의 푸틴 정권은 러시아 국민들의 불만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해 성소수자들을 희생양으로 삼고 있다. 2013년 여름 러시아는 반(反)동성애법을 두 개나 제정했다. ‘미성년자 대상 비전통적 성관계(동성애) 선전 금지법’과 ‘해외 동성 커플의 러시아 고아 입양 금지법’이 그것이다. 미성년자에게 동성애를 ‘선전’하면 동성애자가 된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이 반동성애법은 성소수자들에 대한 낙인과 차별을 강화하는 데 이미 꽤 성공한 것처럼 보인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러시아의 성소수자들이 어떠한 차별도 받지 않고 있으며, 모든 소치 방문자들이 성적 지향, 성별 정체성과 관계 없이 환영받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반동성애법들에 직접 서명한 그의 이러한 발언들은 완전히 허구이며 대외 홍보용임이 명백하다. 푸틴 정권의 비호를 받고 있는 러시아 정교회는 사실상 성소수자들에 대한 ‘전쟁’을 선포했고, 정치인, 연예인, 운동 선수들도 이런 분위기에 힘입어 혐오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 일례로, 러시아 배우 이반 오흘로비스틴은 “모든 동성애자들을 산 채로 난로에 쑤셔 넣어야 한다”고 발언하여 언론의 주목을 받았고, 푸틴 대통령에게 국민 투표를 통해 아예 동성애 처벌법을 부활시키자고 제안하기까지 했으며, 러시아 정교회는 이러한 제안을 지지하고 나섰다. 지난 12월,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심지어 ‘리아노보스티’ 통신사를 폐쇄하고, 그 기반 위에 유명한 동성애 혐오자 드미트리 키셀료프가 이끄는 새로운 통신사를 설립하는 내용의 대통령령을 공표했다. “동성애자들의 심장은 땅에 묻어 버리거나 태워 버려야 한다”고 공공연하게 주장한 그를 새로운 국영 통신사 사장으로 임명한 이유를 푸틴은 “국영 언론 기관의 효율성을 제고하기 위하여”라고 설명했다.

 

‘동성애 선전 금지법’ 위반 혐의로 처벌받는 이들도 늘어나고 있다. 지난 12월 초, 인권활동가 니콜라이 알렉세예프와 야로슬라프 옙투셴코가 아르한겔스크의 어린이 도서관 앞에서 “동성애 선전은 존재하지 않는다. 동성애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동성애자로 태어나는 것이다!”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1인 시위를 벌였다는 이유로 유죄 선고를 받았다. 드미트리 이사코프 역시 LGBT 커뮤니티를 지지하는 1인 시위를 벌였다는 이유로 12월 말에 유죄 선고를 받았고, 하바롭스크 주간지 편집장 알렉산드르 수투린은 동성애자 교사의 발언을 인용했다는 이유로 5만 루블(한화 약 154만원)의 벌금형을 받았다. 1월 말, 성소수자 청소년들을 돕는 LGBT 그룹 ‘데티-404(Children-404)’의 대표 옐레나 클리모바도 ‘동성애 선전 금지법’ 위반 혐의로 고소를 당했고, 2월 초에는 학교 친구들에게 커밍아웃한 브랸스크 주의 한 여중생이 청소년들에게 동성애를 ‘선전’했다며 청소년 문제 위원회에 회부됐다.

 

가장 심각하고 끔찍한 것은 일상에서 반복되는 성소수자 차별과 폭력이다. 지난해 ‘러시아 LGBT 네트워크’가 2000명 이상의 성소수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 조사 결과에 따르면 러시아 성소수자 시민들이 차별을 받지 않는 삶의 분야는 하나도 없었다. 한 해 동안 응답자의 53%가 심리적 폭력을 당했고, 15%는 신체적 폭력까지 당했다. 38%는 고용 상의 문제를 겪은 것으로 드러났다. ‘소아성애 점령’이라는 조직은 사실상 ‘동성애 퇴치’를 목표로 하는 스킨헤드 자경단이라 할 수 있는데, 청소년 동성애자를 구타하고 괴롭히며, 그 장면을 영상으로 촬영해 인터넷에 유포하는 짓을 일삼고 있다. 이들은 극악무도한 범죄를 저지르면서도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고 있으며, 러시아의 어린이들이 동성애자들의 존재 때문에 위협을 받고 있다는 푸틴 대통령의 주장을 방패로 삼으며 뻔뻔하게 30개 이상 도시에서 활동하고 있다. 가스 공격, 총기 난사, 살해 사건도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다.

 

국제 사회는 다양한 방식으로 러시아의 인권 유린에 반응해 왔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 요아힘 가우크 독일 대통령, 스티븐 하퍼 캐나다 총리, 달리아 그리바우스카이테 리투아니아 대통령, 엘리오 디 뤼포 벨기에 총리, 비비안 레딩 EU 집행위원 등이 소치 올림픽 개막식에 참석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안 맥켈런과 역대 노벨상 수상자 27명은 푸틴에게 성소수자 탄압을 중지하라는 서한을 전달했고, 역대 올림픽 챔피언들과 올림픽 출전 선수 52명은 러시아 정부와 IOC(국제 올림픽 위원회)를 비판하는 서한에 서명했다. 이들은 러시아 반동성애법의 철폐를 요구하면서,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고 있는 IOC에 실망감을 드러냈다.

 

IOC와 올림픽 공식 후원사들은 러시아의 상황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하며, 올림픽으로 인한 이윤 확대에만 열을 올리고 있다. 러시아에서 많은 시민들이 탄압을 받고 있고, 동성애자, 양성애자, 트랜스젠더 외국인들이 ‘비전통적 성관계를 선전할 경우’ 추방당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삼성전자는 “소치, 모두의 올림픽”이라는 광고 카피를 내보내고 있다. 일부 성소수자들과 인권 운동가들이 ‘모두를 위한 축제’가 아닌 소치 올림픽의 보이콧을 주장했으나 자본과 권력의 힘을 뛰어넘을 수는 없었다.

 

2014년 소치 올림픽을 둘러싼 논쟁은 1936년 나치 독일이 개최한 올림픽 대회들을 연상시킨다. 사실상 히틀러 정권의 선전 도구로 전락해 버리고 만 베를린 올림픽도 나치 독일의 유대인 탄압, 인종 차별로 인해 보이콧 논쟁을 불러일으켰지만, 개최국 독일은 ‘유대인 출입 금지’라는 푯말을 모두 내리는 등 가식적인 모습과 언론 통제로 대응했다. 그러나 올림픽 이후 히틀러 정권이 소수자 집단을 어떻게 대했는지 우리는 역사를 통해 너무나 잘 알고 있다. 21세기 초의 푸틴 정권은 유대인 대신 성소수자들을 희생양으로 삼은 것과 다름없다.

 

1940년, 1944년에는 올림픽이 개최되지 않았다. 세계 각국의 청년들은 올림픽 스타디움에서 경쟁하는 대신, 서로에게 총구를 겨누며 목숨을 걸고 싸웠다. 소수자 탄압, 그리고 그에 대한 침묵과 묵인은 마녀사냥의 희생양이 된 소수자 집단은 물론이요, 인류 전체에게도 재앙이 될 수 있다. 올림픽 개최국인 러시아 정부는 즉시 반동성애법들을 철폐하고 성소수자 탄압을 중단해야 한다. IOC는 차별 없는 올림픽을 보장하고, 올림픽 이념에 따라 인류 평화와 인권 증진에 이바지해야 한다. 한국 사회도 소치 올림픽 이면의 인권 유린과 부당한 탄압에 눈을 감지 말아야 한다. 폭력과 탄압에 굴하지 않고 싸우고 있는 전세계와 러시아 성소수자들에게 연대와 지지를 보낸다.

 

 

2014년 2월 7일

동성애자인권연대


russiagays182way-0ec628d43ac52935a90cb46db3449b7795527700-s6-c30 (1).jpg


사진 설명: 2013년 9월, "호모포비아는 러시아의 수치이다!"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시위를 벌였다는 이유로 경찰에 연행되고 있는 성소수자 인권 운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