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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하며
Solidarity for LGBT Human Rights of Korea
이 공간은 2003년 고 육우당을 떠나 보낸 후 그를 추모하기 위해 처음 만들어졌습니다.
지금은 안타깝게 우리 곁을 떠난 모든 성소수자들을 추모하고 기억하기 위한 공간이 되었습니다.
2004.03.08 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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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수 2291 댓글 0
이제 남이 되버렸답니다. 사실 동인련에다가는 이런 저런 핑계를 대고 있지만 사실 동성애자 인권 운동이라는 그 막연한 삶의 목표를 접어버렸습니다. 핑계밖에 안되는 일이지만, 여러가지 일들이 나를 실망하게끔 만들었어요. 그리고 나도 그렇게 남들을 실망시키고 있답니다. 나는 그래, 여전히 뼛속까지 흠뻑 젖은 호모새끼입니다. 하지만 말이죠, 한때는 진심과 열정으로 변화된 세상을 바랬답니다. 그렇지만 이미, 난 그 한계를 내 속에서, 그리고 바로 옆에서 알아버렸죠. 그래서 이 곳에 들른다는게 너무나도 송구스럽네요. 난 애초에 겉멋으로 시작한 운동이었는지 몰라요. 그렇지만요, 난 적어도 나 자신의 삶을 외면한 운동은 하지 않았어요. 믿어주길 바래요. 나 이제 언제 또다시 동성애자 인권연대의 홈페이지를 찾아서 이 곳에 들를지 모르겠지만, 웃고 즐기는 가운데에서도 항상 고민해요. 지금 내 삶의 즐거움과, 지금 내 삶의 행복이란 무엇인지. 나는 어쩌면 동성애자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말도 안될 상상과 왜 이렇게 태어났을까 하는 수 만번도 더했을 법한 자책들. 웃는 얼굴이 좋아보인다는 사람들의 말에. 그냥 별 뜻없이 그렇게 또 오늘도 웃음을 흘리지만 지난 몇 년간 내 가슴은 닳고 닳았어요. 아무 것도 몰랐고, 아무 것도 없었던 그 때로 돌아가면 안될까. 앞 날이 막막하고, 세상이 더 큰 짐으로 다가와서. 날 괴롭혀요.. 아무도 보고싶지 않고. 아무도 만나고싶지 않고 그냥 그렇게 훌쩍 어딘가로 사라져 버리고 싶은데 난 그런 재주도, 그럴 용기도, 그럴 객기도 없죠. 회비를 내지도 않았고, 활동도 돕지도 않았어요. 그런데도 여전히 회원으로 살아남아있는 내 자신이 추하고 경멸스러웠답니다. 그럴 오기도 없었던 주제에 그렇게 설치고 돌아다녔던걸.. 큰 꿈과 희망으로 시작한 일들은 항상 꿈처럼 무너지게되더라구요. 난 실패는 더이상 보고싶지 않아요. 동인련의 운동은 꼭 성공하겠죠? 한 번밖에 본 적이 없는데 그냥 한 번 가볍게 웃으며 수다 떤 기억 뿐인데 당신의 죽음은 너무 큰 의미였어요. 내 정체성의 혼란. 내 존재 자체에의 혼란. 내 존재 의미에의 물음. 지금 다시 그 위태로운 벼랑 끝에서 한 번 들러봤어요..외롭고 서러운 이 곳에.. 난 어쩌면 다시 안 올지도 몰라요. 건강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