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모와 결의의 글]

당신의 마침표 위에서 우리는 변화를 써나갈 것이다. 

 

3월 8일은 세계 여성의 날이다. 여성들이 자기 존엄을 행사하며 권리를 요구해온 투쟁의 역사를 기념하는 이 날에는 성소수자 또한 연대와 결의를 다진다. 하지만 지금 우리에겐 우울과 무력함이, 슬픔과 분노의 감정이 일상을 짓누른다. 트랜스젠더 동료들을 연이어 떠나보낸 후에도 국가는 침묵하며 냉소하고 있다. 보궐선거를 앞두고 성소수자 안 볼 권리 운운하는 정치인들의 한편에는 트랜스젠더의 존재를 부정하며 조롱과 혐오를 쏟아내는 이들이 있다. 하여 분노한 성소수자들이 광장에 나왔다.

 

떠나간 동료들은 생전 공론장에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왔다. 스스로를 정체화하는 동안 앞으로 펼쳐질 변화의 시간들에 기대와 우려를 안으면서도 몸의 변화를 겪어내고 세상에 부대끼며 자신의 당연한 권리를 되새겨 사회 변화를 이끌어내고자 했다. 사회적 소수자를 조롱하고 차별하는 사회에 불편함을 말하고 더러는 그 사이 울음과 웃음을 터뜨렸다. 정상성에 어긋나는 이들을 조롱하고 지우는 세상에 맞서 농담 같은 문장을 희곡으로 남겼고, 어떻게든 그 속에서  음악선생님이 되고 싶어했다. 더러는 자신의 꿈을 가로막는 세상의 기준을 바꾸기 위해 정치인의 길을 택했으며, 트랜스젠더라는 이유로 강제 전역시킨 국가를 향해 복무할 권리를 주장했다. 날을 세워 단호하게 맞서야하는 일상에서도 당신들은 상큼하게 살고 싶었고, 농담처럼 즐겁고 싶었다. 적어도 이들은 성소수자로서, 트랜스젠더로서 세상에 부끄러울 이유가 없었다. 정작 부끄러워하고 사죄해야 할 장본인은 성별이 다르다는 이유로, 틀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일터의 노동권을 박탈하고 공공장소에서 타인을 배제해온 이들이다.

 

용기 있는 걸음마다 우리는 위안을 얻었고 함께 싸워나갈 힘을 얻었다. 권리를 외치는 당신은 사람들에게 무엇이 변해야 하는지 확실히 각인시켰고, 변화를 갈망하는 많은 이들에게 동기부여가 되었다. 하지만 우리는 좀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살 수 있기 위한 고민을 이어나가야 했다. 당신들의 일방적인 부재는 지금 여기 남은 이들에게 부채와 죄책감을 남겼다. 갑작스런 빈자리는 그동안 희망을 이야기하고 감히 행복을 꿈꿔온 시간들이 얼마나 취약했고 그만큼 절박했는가를 새삼 알려줬다. 함께 싸우고 살아낸 이들에게 갑작스런 부고는 서로를 지키지 못했다는 부끄러움으로 돌아왔다. 트랜스젠더의 죽음 위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조롱과 혐오는 언제고 그들의 오만함을 벌하리라는 복수심을 남겼고, 죽음 이후에도 침묵으로 일관하거나 차별을 공공연히 전시하며 제도에서 배제하는 국가와 정치인들을 향한 분노가 되었다. 수습하지 못한 감정을 추스르며 우리는 당신들의 이름을, 이은용 작가와 김기홍 활동가, 그리고 변희수 하사를 광장에서 부른다. 

 

이 계절은 애도의 시간으로 다시 쓰일 것이다. 역사는 재난 같은 오늘을 조용한 투쟁의 시간으로 기록할 것이다. 당신들과 동고동락한 시간을 기억하지만, 끝내 다가서지 못한 당신의 고립과 불안을 곱씹을 것이다. 이후에도 계속될 평등의 실천은 당신의 이름과 함께 한다. 당신 뿐 아니라 혐오와 차별 속에 부당하게 세상을 등져야 했던 이들을 필사적으로 기억할 것이다. 차별금지법 제정은 이제 당신의 무게까지 짊어지게 되었다. 2021년의 보궐선거를 혐오와 조롱으로 점철시키지만은 않을 것이다. 어느 것도 허투루 양보하지 않겠다. 당신이 남긴 삶의 마침표 위에서, 우리는 끝없이 변화를 써내려갈 것이다. 당신의 이름으로 다시 결속하는 우리는 당신을 농담으로 만들어버리는 세상을 농담처럼 부숴버릴 것이다. 하염없이 봄을 기다리지만은 않겠다. 흔들리더라도 끝까지 살아내자. 그리고 훗날 이 글을 다시 쓰자. 웃으며 다시 만날 그 날을 기다리며, 이제 ‘모든 것이 잘 될 것이다.’*

 

 

2021. 3. 8. 

광장에서 분노를 외치는 성소수자들

 

 

*‘모든 것이 잘 될 것이다(Everything will be OK)’ 지난 3월 3일 미얀마 군부에 맞서 투쟁하다 총격에 세상을 떠난 19살 여성이 입었던 티셔츠 문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