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인련사무실에서 짧은시간이지만 그동안 동인련의 활동을 정리하며, 평가를 하였고 그 평가를 바탕으로 4기활동계획에 대해 개괄적방향을 잡았습니다. 1. 3기활동 정리 1999-2001년초 국가인권위원회 구성을 위한 활동 2000 홍석천커밍아웃을 지지하는 모임 결성 및 활동 2001.3 제 1회대학인권캠프준비 2001.5 메이데이행사준비 및 참여 고 오세인회원 4주년추모식 2001.6 스톤월항쟁기념 대토론회개최(장소 : 연세대) 2001.9 동인련4주기 / 홍석천커밍아웃1주년기념일일호프개최 2001.9 동성애, 한국교회 어떻게볼것인가?(감신대학생회공동주최) 2001.10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전쟁반대집회참여 2002.2 겨울인권캠프 2002.5 트랜스젠더 호적정정소토론회 메이데이행사참여 고 오세인회원 5주년추모식 2002.8 여름인권캠프 그외 동성애자차별반대공동행동 활동 인터넷 공대위활동 KBS노조부위원장 성폭력공대위활동 3.8 여성대회참석 양심적병역거부연대회의활동 고승우활동가 석방을 위한 공대위활동 무지개2001 행사참여 등을 활동하였습니다. 내부적으로는 정기적인 전체회의/월레회의/사무국회의진행, 교육/세미나진행/신문발간(6호/7호) 등을 해왔습니다.지금 돌이켜보면 어떻게 해왔을까할 정도로 많은 행사를 준비해왔던 것 같습니다. 2. 평가의 의의 동인련의 시작은 대동인이라는 이름으로 97년부터 커뮤니티의 분리주의에 기반한 문화주의적 경향에 반기를 들고 노동자파업투쟁에 참여하면서(동성애자의 진정한 해방을 위한 진지한 고민을 하면서)부터였습니다. 그 이후 2기부터 98년 대학이라는 범주의 개방성과 진보성에 힘입어 명칭을 개침, 동성애자인권운동의 저변을 확대하고 연대의 폭을 조금씩 넓혀나가면서 시민단체 안에서 동인련의 입지를 굳힐 수 있도록 그리고 커뮤니티안에서 인권에 대한 담론이 일어날 수 있는 다양한 해아를 준비해왔다고 자부합니다. 하지만 5년이 지난 지금 동인련의 모습은 어떠합니까? 동인련을 꾸준히 지켜오면서 활동한 것이 아니기에 5년의 활동을 자신있게 평가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올바른 평가없이 앞으로 나갈 수 없기에 평가의 의의가 있다하겠습니다. 3. 평가의 기준 동성애자인권연대의 원칙입니다. 4. 3기 동성애자인권연대활동의 긍정적 측면 첫째. 가장 중요한 것은 동인련을 알려낸 것입니다. 동인련의 이름을 걸고 많은 시민단체들과 활동을 하며 연대를 배우고 우리의 활동을 그들에게서 지지를 얻어내었습니다. 둘째.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동인련은 몇명 중심활동가를 배출하였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동인련안에서 활동과 연대를 몸소체험하면서 많은 것을 배웠기에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예로 2001 메이데이집회참가에 있어 개인의 커밍아웃을 감수할 수도 있는 수위높은 투쟁에서도 사전준비를 하고 집회의의를 다시 새겨가며 했던 그런 연대의 운동이 활동가를 배출할 수 있었습니다. 5. 3기 동성애자인권연대활동의 반성할 면 첫째. 동성애자내부커뮤니티안과의 연대가 부족하였습니다. 둘째. 원칙없이 순간순간 급조되어 소모적으로(활동가들의 부족) 사업을 진행하였습니다. 이것은 동인련안에서 필요한 활동이었지만 활동가들의 질적성장을 가져오는데에는 많은 부족함이 있었습니다. 셋째. 행사후 동인련에 집중할 수 있는 활동가들을 배출할 수 있는 기회와 발판을 스스로 만들었지만, 동인련을 거쳐갔던 그들이 원하는 내용을 공유할 수 없었기에 더 많은 인원이 남지못하였습니다. 넷째. 서로에 대한 관심이 부재하였고 공적인 만남은 활동가들사이 원만한 인간관계를 유지하는데 한계점을 주었습니다. 다섯째. 결과물에 대한 냉철한 분석, 평가, 행동이 부족하였습니다. 여섯째. 정기적 프로그램에 대한 고민은 많았지만 활동가들이 부족한 상태에서 무리한 사업추진은 프로그램을 원할하게 운영되지 못하게 하였고, 그것은 회원들과 같이하고자 하는 모습을 잃게 만들었습니다. 등 많은 평가의 내용들이 있었습니다. 많은 활동을 해오면서 놓쳐왔던 부분을 재점검하는 자리였으며 이 내용을 바탕으로 원칙을 다시한번 재공유하였고 4기활동에 대한 계획으로 이어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