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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동의 레인보우패밀리] 육아#49. 5살 생일: 아이의 존재와 자식농사의 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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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동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기획의 말
행성인의 오랜 회원인 여기동님이 필리핀에서 안부를 전합니다. 2015년 한국에서 결혼식을 하고 남편의 나라로 가서 살림을 꾸리는 여기동 님은 딸 ‘인보’를 입양하여 육아일기를 쓰고, 최근에는 성소수자 연구들을 리서치하며 공부에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행성인 여러분,

모국의 일교차가 매우 심하다고 들었습니다. 모두들 잘 지내고 계신가요?

올해 지방선거를 맞이하여 성소수자 해방 운동 진영의 이슈 파이팅은 무엇인지 궁금해집니다.

이곳 필리핀은 가장 더운 여름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3월부터 시작해서 4월과 5월이 가장 더워 여름방학이지요. 6월에 새 학년 신학기가 시작되는데 여전히 무덥긴 마찬가지입니다. 가끔 뉴스에서 42° C  가 넘는 폭염 지역이 있다고 합니다.

아기 돼지가 우리 집에

아이의 생일을 최대 명절로 여기시는(?) 찰스 아빠는 올해 특별한 계획을 세웠습니다.

약 두 달 전, 어느 날 새끼 돼지 한 마리를 몰고 집에 들어왔습니다. 사연인 즉, 아이 생일날 통돼지를 굽는 답니다. 키워서 잡는다는 게지요. 필리핀 잔칫상에 얹어 놓고 칼로 베어 먹는 바보이 레촌이 유명하거든요.

양돈장은 보통은 시멘트와 벽돌로 지어 물청소를 하는 방식이어야 하는데 우리 집 마당은 흙으로 되어 있어 어떡하냐고 물었지요. 남편 왈, 오히려 흙이 더 냄새 안 나고 좋다네요.

돼지를 나무 기둥에 묶어 키우기 시작했는데 신기하게도 정말 냄새가 별로 나지 않더라고요. 돼지 스스로 흙바닥에 뒹굴며 목욕을 해서 그런가 봅니다.

이렇게 찰스 아빠는 정성껏 돼지를 키워 생일날 통돼지구이를 생일잔치에 올렸습니다. 어디 이것뿐인가요? 해마다처럼, 초대장을 만들었고 대형 포스터도 맞춰 잔치상 뒤로 떡하니 걸었습니다.

드레스 코드가 중요한 찰스 아빠는 올해의 콘셉트로 하늘색 남방에 흰색 바지로 저희를 입혔습니다. 세부에 다녀오면서 조개 목걸이도 사 와서 걸었지요.

이번 생일에 특별히 초대한 커플이 있습니다. 해변 공원을 산책하다가 우연히 만난 레즈비언 커플 언니들을 알게 되었어요. 아이 생일에 초대했더니 마침 둘 다 쉬는 날이라며 오셔서 축하해 주셨지요.

이모들이 물놀이 풀장과 튜브를 선물로 안겨주어 마당에 풀장이 생겼습니다. 이  다음에 이 언니들의 사연(?)을 전해드리고 싶어요. 보통 원가족이 드러내는 문제처럼 한쪽 엄마가 이 둘의 관계를 수용하지 못하고 불편함을 보여서 속상해합니다.

이번 생일에 또 다른 특별한 팀은 지난 1년간 함께 유치원 다녔던 같은 반 친구들과 선생님 두 분이 오셨습니다. 동무들과 물놀이하면서 신나게 놀았습니다.

성장과 발달 체크

지난달 딸내미가 5살을 먹었습니다.

생일을 맞이하면 제가 제일 먼저 하는 일은 아이의 키와 몸무게를 측정하여 기록하는 일입니다. 이 녀석 아픈 곳 없이 쑥쑥 잘 컸습니다.

몸무게를 잴 때 이 녀석의 장난기가 발동합니다. 내가 체중계에 올라서면 몰래 뒤에 숨어서 자신의 발을 얹어 몸무게가 많이 나오도록 만듭니다.

키를 잴 때도 장난을 치지요. 새집으로 이사 와서 거실 벽에 도토리 키재기 줄자를 그렸습니다(인터넷 쇼핑몰에 구매할 수 있다는 것을 모르고). 이 녀석 조금 크자 벽에 기대고 서서는 몰래 발 뒤꿈치를 슬그머니 올려댑니다.

아이의 신체, 인지, 언어, 사회성 발달 5단계(대근육, 소근육, 언어, 인지, 사회성/자조) 영역에서도 무난하고 원만하게 잘 발달하고 있더라고요.

가끔 동네 어린이가 폐렴으로 병원에 입원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습니다.

그래서 저는 저의 손뿐 아니라 아이에게도 손을 잘 씻어야 병원 가서 주사 꾹 맞지 않는다고 설명해 줍니다. 사탕이나 아이스크림 같은 단 음식을 먹었을 때도 양치하라고 아이를 불러대지요. 어떤 때는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닦습니다.

손 씻기, 양치질 그리고 샤워를 열심히 시켜서 그런지 지난 한 해 동안 병원 외래나 입원 병동에 가지 않고 건강하게 보낸 듯합니다. 지금처럼, 앞으로도 아이가 몸도 마음도 가슴과 머리도 균형을 맞추며 커나가면 좋겠습니다.

자식 농사를 짓는 마음으로

아이는 태어나자마자 우리 집에서 함께 먹고 잤지요. 그리고 한 해, 두 해가 지나더니 어느덧 올해 다섯 해를 맞이했네요. 세월이 정말 유수와 같이 빠르게 흘러갑니다.

유치원 행사 동안 딸내미를 바라보고 있으면 저는 가장 흐뭇한 얼굴 표정을 짓게 됩니다. 아이를 바라보면서 ‘많이 컸네’라는 생각이 들며 가슴이 멍해지고 울먹거리게 됩니다. 부처님이 그러셨다네요. 사람을 대할 때 내 새끼 바라보듯이 하면 좋다고요. 아마도 제가 느낀 이런 마음 가짐이어서 이해가 빨리 되었습니다.

부모가 되면 아이 입으로 밥이 들어갈 때 가장 행복하다고 합니다. 아이가 아프면 가슴이 미어진다고 들었어요. 그래서 할 수만 있다면 부모가 대신 아파주고 싶다고들 합니다. 아이를 키워보니 이런 부모님들의 마음이 제 마음이 되었습니다.

올해도 키와 몸무게를 재면서 앞으로도 딸내미의 신체뿐만 아니라 마음도, 가슴과 머리도 성숙하고 성장하기를 바랍니다.

올해 저는 부자가 되었습니다. 한국계 학교 도서관에 소장된 책을 선물 받았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인문, 사회, 과학, 역사, 소설, 미술 등 여러 영역의 책들을 저희 집 거실과 연구실 책장에 잔뜩 쌓아 놓았습니다. 이렇게 저는 책부자가 되어 아마도 이승의 소풍을 마치고 하늘나라로 귀천(歸天)할 때까지 다 못 읽을 만큼 정말로 많습니다.

요즘 법정 스님과 스콧 니어링의 쓴 책을 읽고 있습니다.

법정 스님의 말씀하신 ‘친절’은 이곳 필리핀의 이민 생활에서 남편과 아이 그리고 이웃 친구들을 대할 때 저의 마음을 다스리는데 참으로 좋은 약이 됩니다.

첫 번째 책은 법정 스님의 ‘스스로 행복하라(샘터사, 2021)’입니다. 제목을 보면서 ‘우리 아이가 행복했으면, 즉 타자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기 스스로 삶의 주인이 되어 살았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두 번째 책은 미국의 사회주의자 학자이신 스콧 니어링의 자서전[1]입니다. 예전에 스콧 니어링의 부인 헬렌 니어링이 쓴 ‘조화로운 삶(보리출판사)’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그 책을 통해 ‘조화로운(good life) 퀴어의 삶’에 관해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스콧 니어링의 자서전 가운데 제 마음에 와닿는 문구를 발견했습니다. 새기고 싶어져 기록했습니다.

유익한 삶이란 에게, 타인에게, 사회에 그리고 내가 속해 있는 자연에게 이로운 삶이다.’

(스콧 니어링, 2000, p. 262)

이 글을 통해 저는 자식 농사를 짓는 부모의 마음으로, 우리 아이가 스스로에게 유익한 삶, 타인과 공동체에 이로운 삶을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더불어 인간을 위해 많은 것을 베풀어주는 하늘과 땅, 자연과 하느님에게 감사함을 깨닫고 실천하기를 소망합니다(일상생활에서, 아이에게 쓰레기를 길에 버리지 않고 쓰레기통에 버리기, 먹던 음식 남겨서 버리지 않기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하느님이 주신 맛있는 음식이라고요).

아이의 존재

‘우리 아이는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 존재일까?’ 어느 날 이 물음을 하나씩 헤아려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아이는 저에게 ‘사랑’한다는 말, 달콤한 ‘뽀뽀’, ‘안아’ 주세요, ‘선물’, ‘반항’을 선물하는 딸내미였습니다.

제가 아이에게 가장 많이 하는 말은 사랑한다는 말입니다. 아이를 입양하기 전, 그러니까 제가 태어나서 쉰일곱 살까지 했던 ‘사랑한다’라고 말한 횟수보다 아이를 키우기 시작한 지난 5년 동안 더 많이 한 것 같습니다. 아이의 존재는 사랑이라는 이름입니다.

아기 때는 너무 이뻐서 뽀뽀를 많이 했습니다. 아이 입과 볼에, 손과 발바닥에 뽀뽀를 날렸었지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다는 말이 이래서 나오나 봅니다.

아이는 제가 안아주는 것을 좋아합니다. 특히 아이가 울면서 저에게 “엄마 안아주세요”를 합니다. 부모에게 야단을 맞았거나, 무언가 화가 나고 속상할 때 안아 달라고 하지요. 안아주면 턱을 제 어깨에 받치고 포옥 안깁니다.

아이를 안고 저는 요람처럼 고요하게 몸을 흔들어주면서 노래를 불러줍니다. “우리 집 레인보우 귀염둥이 딸내미….” 동요의 곡에 제가 작사를 하여 만든 동요이지요. 가끔 녀석과 함께 불러대기도 한답니다. 이렇게 안아주면 아이가 울음을 그치고 편안해하는데 저 또한 마음이 안정되는 것을 느낍니다.

아이와 일심동체(一心同體), 아이에게 좋은 것이 부모에게도 좋습니다.

아이는 저에게 선물을 줍니다.

그제는 아이를 제 연구실로 데려왔는데 동네 언니들과 놀다가 흐드러지게 핀 연분홍꽃을 따왔습니다. 저 가지라고요.

도로에 지나가는 이바이크(e-bike)를 보고 제가 갖고 싶다고 했더니 이바이크를 사주겠다네요.

그리고 제가 사용하는 노트북을 보아서 그런지 노트북도 사준다고 합니다. 언제요? 엄마 생일에!. 이렇게 아이는 저에게 선물을 주는 딸내미이지요.

아이는 좋은 것만 주지 않고 제가 힘들어하는 ‘반항과 저항’의 선물도 주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뭐 좀 하라고 하면 ‘싫어요’ ‘안해요’라는 부정어를 거침없이 외쳐댑니다. 그 목소리 톤도 아주 세지요. 요 녀석 소리를 고래고래 지를 때도 있습니다.

인지행동을 좋아하는 저는 유리하게 해석하지요, ‘아 아이가 크면서 좋고 싫음을 분별하고 자기주장도 파워풀하게 하는구나’.

앞으로 열 살, 스무 살엔 우리 딸내미가 어떤 모습을 보여줄까요?

그때 부모의 마음은 지금과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또한 어떤 의미가 생길까요?

5월

행성인 동지 여러분,

5월엔 여러 행사들이 많지요? 부모님에게 ‘사랑해요’라는 말을 전해 보세요. 엄마와 아빠들이 행복해하실 겁니다. 보편적인 부모의 마음이라면 다르지 않습니다. 내 새끼 사랑하는 마음.

다음 달엔 아이의 새 학교, 새 유치원 소식을 전해드리겠습니다.


[1] 스콧 니어링 (2000). 스콧 니어링 자서전. 실천문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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