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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가 연재] 상임활동가의 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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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오

4월 말부터 5월 초까지, 10여 명의 퀴어 여성들이 함께 모여 섹스와 관계, 몸과 욕망, 커뮤니티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총 4회차에 걸쳐 진행된 모임에서는 예상보다 훨씬 다양한 이야기들이 흘러나왔어요.

사실 이 모임을 시작하기 전에는 걱정이 많았습니다. 도대체 이 이야기들이 어디로 흘러갈지, 어떤 의미를 남기게 될지 잘 모르겠더라고요. 그런데 모임이 끝난 뒤 “이런 자리를 함께할 수 있어서 감사했다”는 후기가 많아서 알게 되었어요. 그동안 이런 자리가 너무 없었기 때문에 퀴어 여성들이 함께 모여 섹스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었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중요한 의미였다는 것을 말이죠.

4회차 모임을 다 끝낸 일주일 뒤에는 ‘너울’이라는 연극을 보았습니다. 중년 퀴어의 돌봄에 관한 이야기라고 들었는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퀴어 치정극이었어요. 돌봄과 관계에 대해 질문을 던지기는 하더라고요. 관계란 무엇을 바탕으로 이어지는 것인지, 나와 다른 한 사람을 이해한다는 건 어떻게 가능한 일인지, 우리는 서로에게 어떻게 존재하는지. 누구를 사랑하느냐보다 어떻게 사랑하느냐를 질문한 연극이었어요. 

연극을 보고 나니 퀴어여성 수다회에서 나누었던 이야기들이 더 많이 떠올랐습니다. 몸, 섹스, 욕망 같은 키워드들도 결국은 관계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졌고 내가 누구인가를 묻는 일 역시 관계 안에서 이루어진다는 걸 계속 확인했던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4회차 수다회 이야기는 이번 웹진에도 후기로 실립니다. 많이 읽어주세요^^

오소리

행사의 달 5월! 답게 여러 행사에 다닌 한 달이었습니다. 5월 1일 노동절을 시작으로 제26회 여성마라톤, 전주국제영화제, 성소수자 말하기대회, 517 성소수자 평등대회, 프라이드 갈라, 그리고 부처님오신날 봉축법요식 까지. 거의 매주 이벤트가 있어서 삶이 지루하지는 않네요. 조용한 걸 좋아하는 편이지만, 때로는 시끌벅적한 감각이 나쁘지만은 않은 것 같습니다. 물론 그러고 집에 돌아오면 방전되지만요…  

그리고 대망의 5월 25일은 저희 부부의 결혼 7주년 기념일이었습니다. 전날 봉축법요식에 초청 받아 다녀오는 큰 이벤트가 있어서 당일에는 영화보고 외식하며 소소하게 보냈네요. 벌써 7년. 국토부 기준(혼인 기간 7년 이내)으로는 신혼부부 자격 박탈인데요 😂 동성혼 법제화되면 다시 신혼부부 하렵니다 😁

이안

이번 26회 서울여성마라톤에 모두의 결혼이 부스를 차렸습니다. 혼인평등 러닝 캠페인으로 함께하는 러너들이 몸 앞뒤로 ‘동성결혼’을 크게 붙이고 달리기를 했습니다. 저는 작년과 동일하게 10km를 출전했는데요, 열심히 운동도 하고 준비도 했는데도 목표였던 59분은… 아쉽게도 쟁취하지 못했습니다(눈물). 심지어 작년과 귀신같이 똑같은 63분 기록이더랬죠. 4분 줄이는 게 그렇게 힘들어요…! 솔직히 쪼-금 속상하지만, 그만큼 내년에는 좀 더 철저히 준비해보기로 했습니다.

사실 달리기는 혼자하는 게 편합니다. 주위 상관 않고 나에게만 집중하기도 좋고, 때로는 아무 생각 안 하고 머리를 비우고 몸만 움직인다는 감각으로 뛰기도 좋고. 오래 달릴 수록 혼자인 게 여러모로 신경쓸 일 없고 좋습니다. 하지만 그와 다르게 다른 이들과 같은 방향으로 같은 곳을 보며 달리는 재미라는 게 있는 것 같습니다.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는 재미도 있습니다, 초반까지는… 

무엇보다 마라톤은 서로 응원하는 소리를 들으러 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지도 모르겠습니다. 10km 뛰다보면 ‘아, 그냥 하지 말까’ 싶은 순간이 딱 5km, 7.5km에서 두 번 찾아옵니다. (코스 3/4 넘어가면 아 모르겠다 쓰러져도 완주해야지, 하는 마음으로 뜁니다. 가오도 가오지만 그냥 아까워서 못 그만둡니다.) 절반, 또 반의 반쯤 하다가 주위에서 ‘잘 하고 있어요’, ‘다시 뛸 수 있어요’, ‘화이팅’ 하고 응원해줍니다. 또 1km도 채 남지 않은 곳에서는 ‘거의 다 왔다’며 박차를 가해줍니다. 이미 지칠 대로 지쳐서 못 뛸 것 같은데도 피니시 라인만 보면 가슴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은 심장을 삼키고 정신없이 발을 구르게 됩니다. 완주하고 들어오면 먼저 들어온 동료들이 웃으면서 반겨주는데, 그 기력을 다한 모습도 얼마나 멋져보이는지. 확실히 함께 하는 스포츠만이 주는 활기가 있는 것 같아요. 주위의 수많은 사람들이 몇 키로 달렸는 지, 얼마만에 들어오기를 목표로 삼았는 지는 모르겠지만 각자 원하는 만큼 잘 달렸기를 순수하게 바라봅니다. 여하튼 가슴팍과 등짝에 ‘동성결혼’을 크게 달고, 머리에는 트랜스 플래그 띠도 메고 달리면서 응원을 받으니 혼인평등 캠페인이 응원받는 듯한 기분도 들고… 이래저래 즐겁게 마무리했습니다. 

인권운동은 마라톤이라는 말도 있잖아요. 저는 아직 그만큼 해본 적 없는 신진활동가라서 ‘포기하지 말자’ 정도로 받아들인 말이긴 하지만, 반대로 마라톤 하면서 인권운동을 상상해봤습니다. 어느 구간에서 아, 그냥 하지 말까 싶을까. 어느 순간에 아 모르겠다 쓰러져도 끝까지 해야지 싶을까. 근데 이런 생각이 꼭 걱정이나 불안으로만 다가오지는 않고 오히려 하다보면 되겠지, 라는 결론으로 도달합니다. 정신없이 뛰다보면 피니시 라인이 보이듯이, 멈추지만 않는다면 어디라도 가듯이.

남웅

발행하기 직전에 이 글을 쓰지 않았다는 걸 알았다. 정신머리…

웹진 발행 직전에 가장 마지막으로 하는 작업은 ‘상임활동가의 사정’에 글을 남기는 일이다. 매월 마지막날 펑크 없이 발행을 했던지라 웹진 발행이 한 달을 마무리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마침 5월의 마지막 날이 일요일이다. 전날 숙취를 이겨내면서 아침에 일어나 밀린 집안일을 하고 커피 한잔을 내려 발행할 웹진을 살핀다. 오픈 직전에 편집부 선에서 해결하기 어려운 오류가 생겨 웹진 기술 활동가 소유님을 아침부터 불렀다. 작업 중에 소모임 일정을 등록했고, 필자들과 다음 달 웹진 원고 제안 관련한 대화를 나눴다. 일과 여가가 흐릿하지만 그리 나쁘진 않다.

다행히 아직 정오가 되지 않았고, 숨 좀 돌리고 나갈 거다. 활동가 미팅인데, 일요일에 어울리는 만남이 맞(을 거)다.

호림

성소수자 평등의날(aka IDAHOBIT)이 있는 5월과 성소수자 자긍심의 달인 6월에는 매년 정말 다양한 성소수자 행사들이 열립니다. 운동 단체에서 개최하는 행사만이 아니라, 전시와 파티 같은 행사부터 연대 단위에서 주최하는 행사까지 정말 다양한 행사 일정들로 바쁜 시간을 보내는 때죠. 그래서 반가운 얼굴들, 새로운 얼굴들을 많이 만날 수 있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오랜만에 이런저런 자리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나니, 한동안 너무 익숙한 공간에서 익숙한 사람들만 만나고 있었나 하는 생각이 스치기도 했어요. 사무실에서 함께 일하는 활동가들 속에서 보내는 시간의 비중이 너무 높으면 ‘활동가 버블’에 머무르게 되기도 하니까요. 전업으로 성소수자 인권 활동을 하지 않는 수많은 사람들의 일상적인 경험과 생각, 고민에서 멀어질 수도 있겠구나 하는 경각심이 들기도 했습니다. 좀 더 시간을 내서 친구도 만나고, 내가 주최 측이 아닌(!) 행사와 모임에도 자주 나가야지 하는 결심이기도 하고요. 그냥, 특별한 목적 없이, 만남만을 위해 사람들을 만나는 시간을 더 많이 만들어야지 내 일을 즐겁게 지속하는 에너지가 생기겠구나 하는 깨달음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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