펠릭스 (행성인 성소수자노동권팀)
노동권팀 성수기. 이 시기를 표현하기에 이렇게 적합한 표현이 없었습니다.
- 4월 20일 노동권팀 역사 나누기.
- 5월 1일 노동절 전국노동자대회.
- 5월 17일 성소수자 평등의날 평등대회.
- 5월 29일 퀴어동네와 함께한 퀴어 노동자를 위한 아주 유용한 노동법 강의
- 6월 5일 나의 노동 말하기 세션
- 6월 6일 공공운수사회서비스노조 사회복지지부 외부 강의
한달 반 가까운 시간동안 집회와 프로그램이 밀집되어 진행되었고, 5월 노동절을 전후로 일정을 촘촘히 짜다보니 흡사 한여름 냉면집 성수기 시즌처럼 노동권팀 활동도 성수기를 맞이했습니다. 작년에는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여러가지가 맞물리다 보니, 올해의 대목은 여느 때보다 촘촘하고 바쁘게 흘러갔습니다. 노동권팀 활동 성수기를 돌아보며 몇 가지 이야기를 조금 남겨보려고 합니다.
방향을 바꾸고, 길을 다듬고
노동권팀에 참여하여 거의 2년을 풀로 활동하다 보니 약간의 패턴이 보이는데요. 1~2월 즈음 팀 활동이 두드러지지 않은 시점에는 ‘5월 노동절 전후를 맞이하여~’라는 문장으로 팀 회의 때 많은 아이디어가 쏟아지고, 3~4월에 구체화가 되면서 실제로 5월에는 부하가 오는 것이 작년과 올해 반복됩니다. 두어 번 경험하고 나니까 같은 부하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미리 준비하거나 프로그램을 다소 조정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7~10월 즈음까지는 큰 의제가 없는 편이고, 11월도 전국노동자대회를 제외하면 하반기 전체에 구심점을 찾기에도 쉽지 않기 때문에 더 상반기에 활동을 다채롭게 채워 넣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이렇게까지 바쁠 일이었나? 라는 생각도 다시 들지만 우리 모두가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밀어붙여왔으니… 그리고 우리 모두 고통을 분담하며(ㅠㅠ) 해결해왔으니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사실 더 많은 활동들이 계획되어 있었으나 숨고르기 차원에서 조금 줄인 것이었습니다.)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해보자면, 본래 올해 하반기에는 성소수자 노동 관련 설문을 진행해 장기 의제를 발굴하는 포석을 마련하려 했는데요. 그 사이 큰 단위의 연구 조사 결과가 발표되었고,1 하반기의 방향성을 유지하는 것이 좋을지 모두 고민이 다소 있었던 것 같습니다. 시의적절하게도 노동권팀 역사나누기 세션에서 이와 관련된 이야기도 나누고, 앞으로의 방향성을 고민하고 나눌 수 있었습니다.
매번 동일하게 고민하는 노동권팀의 허들을 낮추는 것이 정말 정답일지, 노동권팀이 꾸준하게 해마다 진행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어떻게 발굴하면 좋을지, 다른 팀과의 협업을 어떤 포인트에서 고민하며 진행하면 좋을지, 외부 단위와는 어떻게 더 접점을 찾아가야 하는지 등등… 고민의 정답을 찾았다기보다는 고민의 방향성을 더 다듬어가는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여전히 성소수자 노동권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을 이어가는 시간이기도 했고요. 가끔 성소수자라는 바구니는 유독 층위가 분화되고 제각기 너무 다른 사람들이 ‘성소수자’라는 라벨 하나로 묶이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는데요. 성소수자 노동자 또한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중심을 잡고 메시지를 뾰족하게 하는 것이 좋을지 더 고민도 되고요. 이런 고민의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가는 시간이었습니다.
밀려난 노동자가 밀려난 노동자와 연대하기
한편 노동절에 맞춰 노동권팀을 주축으로 성명을 준비하고 발표했습니다. 준비하면서 팀원들과 입을 모아 한 말은 ”분명 나아지고 있는 것 같은데, 여전히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이 너무 많다” 였습니다. 예를 들자면 윤석열 정부는 모든 답안이 틀려서 채점이 쉬웠다면, 이재명 정부는 분명 풀이는 맞는 것 같은데 정답을 틀리는 기분이랄까요. 그것도 중간고사, 쪽지 시험, 기말고사 모두 틀리는 기분. 여전히 쌓여 있는 노동 이슈는 많은데 해결되지 않고 있고, 노동 운동을 하라는 대통령의 말은 더 공허하게 들렸습니다. 더구나 화물노동자 서광석 열사가 투쟁 도중 돌아가시는 일도 벌어졌고요.
성명을 준비할 즈음 다움이 주축이 되어 준비한 성소수자 노동 실태조사 결과가 발표되기도 했습니다. 근 10년 만에 양적 조사가 이루어진 부분이 고무적이었지만 여전히 성소수자들은 불안정한 일자리로 밀려나고, 일자리의 문턱을 넘기 전부터 차별 받고, 일터에서 스스로의 정체성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성명의 기틀이 잡힌 지점은 이 부분이었습니다. 밀려난 노동자인 당사자이자 다른 밀려난 노동자들의 연대자로 서는 것이 가장 시의 적절하고 우리의 가치와 맞닿아 있다고 결론을 냈습니다.
원래 준비했던 성명은 지금 게시된 성명의 거의 2배 분량이었는데요. 팀원들이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겠다고 빼던 것과 달리… 모두 한바닥 넘게 쓴 성명문을 고치고 줄이느라 고생해주신 지오님과 운영위 분들께 늦게나마 심심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노동절 당일 집회에서도 성명문의 문구를 현수막으로 만들어 행진을 진행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성소수자 당사자가 단순히 파이를 떼어 받는 수혜자가 아니라 당사자로 인정받는 분위기를 느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더 주체성을 가지고 움직여야 한다는 생각도 더 커졌고요. 성명문도 현수막도 반응이 좋았는데, 그렇다면 성소수자 노동자의 위치에서 어떤 목소리를 내고 활동을 이어가야 할까, 주체성을 어떻게 더 지키고 연대 단위에 닿을까 고민이 계속 깊어지기도 했습니다. 활동은, 끊임없는 질문을 주는 것 같습니다.

어떻게 소진되지 않고 오래 활동할 수 있을까?
찾아보니 처음 행성인을 가입한 것이 2023년 8월이고, 이제 곧 3년이 되는데요. 활동 기간에 비해서는 너무 감사하면서도 (개인적으로는) 다소 걱정스럽게도 올해부터 공동 팀장을 맡아 활동하고 있습니다. 여전히 직함 자체는 부담스럽고, 어딜 가서 팀장이라고 소개해야 할 일도 거의 없지만 어색해서 밝히기를 어려워하는 편인데요. 여전히 좀 더 열심히 일하는 팀원이라는 생각이 강해서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저는 활동이라는 범위 안으로 들어온 시점부터 친구와 예전에 나누었던 대화를 자주 돌이켜보고 있습니다. 친구는 오랜 시간 시민사회와 정당을 오가며 의미를 만들어내기 위해 노력했고 유의미한 활동들을 해왔지만, 에너지를 모두 소진해가며 활동을 이어가다 에너지를 모두 소진하고 현재는 다른 생업을 가지고 일하며 활동과 멀어진 상태인데요. 묘하게도 제가 활동으로 들어오던 시점과 친구가 떠난 시점이 일치해 바톤터치하는 기분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제가 가장 사회운동에 열의를 가지고 활동하고 싶었지만 정작 용기를 내지 못했던 그 시기를 친구는 견뎌왔고 투쟁해왔고, 그에 대한 부채의식이 계속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제서야 활동의 범위 안에 결심하고 들어온 당사자로서, 지속가능한 활동을 고민하고 너무 빠르게 소모되지 않으려고 스스로 거리감을 가지려고 하고 있습니다. 짧으면 10년, 길면 그 이상도 계속 이어갈 수 있도록, 나보다 먼저 힘 낸 사람의 바톤을 더 오래 쥐고 싶어서인 것 같습니다.
요즘의 고민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야 하는 것을 하자”의 마음이 앞서는 사람이라 일정을 최대한 소화하려고 하고, 그러다 보니 체력과 심적인 에너지의 부침이 실제로 느껴진다는 점이었는데요. 퀴어동네와 함께 진행한 정기모임, 노동권팀의 연간 세션인 나의 노동 말하기, 외부 강연까지 사실 몰아치듯 2주 동안 3개의 프로그램을 진행하다 보니 당연한 결과이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 에너지를 짜내듯 하다보니 프로그램에서 기능적으로만 메시지를 전달한 것은 아닌가 고민이 들기도 했고요.
진부하지만 저는 활동을 하면서는 최소한 저의 의견을 전할 때에 진솔하게, 진정성 있게 전하고 싶은 욕심이 있는 것 같습니다. 짧은 기간 안에 세션이 진행되다보니 내가 이 이야기를 정말 마음을 담아서 하고 있나 지금 돌이켜보면 조금은 회의감이 들었던 것 같기도 해요. 그래도 최선을 다했고, 충실하고 진정성있게(에너지 이슈로 덜 그래보였을 수는 있지만) 이야기하고자 했습니다. 잘 전해졌을까요?

그래도 퀴어동네와의 세션에서 많은 질문을 나누고, 각자의 노동 현장에서의 힘듦도 나눌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나의 노동 말하기 세션은 뚜렷한 결론은 없지만, 매번 다양한 노동 현장에서의 목소리를 모아보고 퀴어 노동자끼리 다른 퀴어 노동자의 삶을 상상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되어 좋은 것 같습니다. 외부 강의에서는 성소수자 당사자의 목소리를 전하고 동지들에게 성소수자 당사자들을 운동의 주체로 받아들이고 연대해달라고 부탁하기도 했습니다. 세션과 강의에 참여해주신 분들 모두 의미있는 시간이었기를 바랍니다.
셔터 내리고 잠시 활동 휴가 다녀오겠습니다
활동가로 살기 시작하며 주변 헤테로들에게 커밍아웃을 하고, 사람들에게 활동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고 싶은 말이 많은 사람인 줄 몰랐다”는 이야기도 종종 듣고 있습니다. 그만큼 억눌려있던 생각과 말하지 못한 것들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활동을 열심히 하면 할수록, 앨라이들과 퀴어의 간극을 좁히는 사람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그 과정이 매우 만족스럽고 활동가 정체성을 놓을 수 없는 계기가 되는 것 같고요. 여기서 조금 더 욕심을 내자면 앨라이가 되지 못한 사람들을 더 포섭할 수 있는 사람이 되면 좋겠는데, 잘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일단 그러려면 육체적, 정신적 기초체력을 키워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서울퀴퍼까지 모두 마무리된 이 시점에서 팀원들에게 말하지는 않았지만 저는 심리적으로 휴가를 다녀오려고 합니다. 대단히 어디를 떠나는 것은 아니고, 잠시 활동과 거리를 두고 숨고르기를 하려고 합니다. 당연히 집회가 있거나, 회의에 참석하거나, 도움이 필요한 것이 있다면 꼭 하겠지만 심리적 거리를 잠시 두는 것이 필요할 것 같아요.
꽤 많은 사람들이 요즘 너무 열심히다, 어떻게 그렇게 하느냐 라는 말을 종종 하는데요. 저는 사실 주어졌기 때문에 하고 있습니다. 시시한 말이지만, 저는 대단한 소명의식이 있어서 활동을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주어진 바톤을 놓지 않고, 나의 다음 사람이 올 때까지 현재를 잘 지키고, 정말 결실을 볼 때까지 과정을 잘 만들어보려고 하고 있습니다. 물론 활동하는 도중 결실을 맺는다면 너무 좋겠지만요. 그래서 저는 그냥 합니다. 할 수 있는 것을 하고 화낼 에너지가 남아있을 때에 화를 냅니다. 그러니 지금처럼 에너지가 적어진 상태라면 잠깐 충전하고 돌아오려고요. (그래봐야 가을이 되기 전 아닐까 싶습니다.) 그 사이의 적당한 공백은 다른 팀장님과 팀원 분들이 채워주실 거라 믿으며… 호호.. 우리 건강하게, 오래 활동합시다~

- (편집자 주) 2025년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젠더와노동건강권센터 & 퀴어노동법률지원네트워크가 진행한 「성소수자 노동자 노동실태 및 정신건강 연구」, 다양성을 향한 지속 가능한 움직임, 다움에서 진행한 「성소수자의 노동권 및 차별에 관한 연구」가 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