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지 (행성인 HIV/AIDS인권팀)
| 편집자 주: 6월 28일 일요일, 2026 노 프라이드데모 기획단의 공동주최로 〈2026 노 프라이드 데모 제안 집담회: 낙인 너머의 연대〉가 열렸습니다. 행사 1부에서는 노 프라이드 데모를 제안하는 배경을 나누고, 2부에서는 패널들을 섭외하여 서로에게 노 프라이드의 의미는 무엇인지 나눴습니다. 이어서 깃발을 만들며 행사를 마무리했습니다. 2부 행사에 행성인 HIV/AIDS 인권팀이 초대 받아 김민지 활동가가 집담회에 참여했습니다. 추후 집담회 자료집을 발행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그 전에 본 지면에서는 주어진 질문에 민지 활동가가 정리한 문장을 여러분과 먼저 나누고자 합니다. |

Q: 노 프라이드에 대해 어떻게 정의하거나 설명할 수 있을가요? 또한 본인이 주로 하는 활동과 어떻게 연결된다고 생각하시는지 나누어주세요.
A: ‘노 프라이드’는 프라이드라는 단어 속에서 의도적으로 호명되지 않거나, 더 이상 불리지 않게 되어버린 여러 취약성을 호명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처음 프라이드를 외칠 때부터 우리 곁에는 성노동자, 약물 사용자, HIV/AIDS 감염인, 비주류 인종과 소수 민족 등 취약한 사람들이 늘 있었으나, 이런 취약성은 쉽게 잊혀집니다. 누군가는 자신에 대해 쉽게 자긍심을 가질 수 있지만 어떤 사람들은 자긍심을 가지기 어렵습니다. 마찬가지로 어떤 관계와 섹스에는 자긍심이 쉽게 승인되지만 어떤 관계와 섹스는 이야기조차 어려운 것이 현실입니다. 이렇게 자긍심, 프라이드로 쉽게 이어지기 어려운 취약함을 돌아보는 것이 노 프라이드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활동하는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HIV/AIDS인권팀에서는 일차적으로 퀴어 커뮤니티와 운동 내에서 HIV/AIDS 감염인의 인권을 이야기합니다. 여기에는 감염인이 누릴 수 있는 성적 권리, 즉 다른 사람과 성관계하고 그 안에서 즐거움을 추구할 권리 등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성적 권리는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데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쉽게 이야기하기 어렵습니다. 감염인은 누군가를 만날 때 가장 먼저 감염 사실을 공개할지, 숨길지부터 고민하고, 여기서부터 계속되는 긴장과 고민들은 친밀한 관계에서 위계를 만들어냅니다. 이런 고민에서 나아가 감염인, 트랜스젠더, 약물사용자 등 취약한 계층의 여러 관계, 특히 성적으로 친밀한 관계에서의 위계와 낙인을 고민하는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Q: 행성인의 HIV/AIDS인권팀은 꾸준히 성적 낙인, 퀴어커뮤니티의 주변부, 쾌락과 욕망, 위험과 취약성에 대한 고민을 이어왔고 활동으로 풀어내고 계십니다. 이런 주제들을 붙잡는 것이 성소수자 운동과 커뮤니티에서 주변화 되거나 밀려나는 존재들을 돌보고, 옹호하는 활동과 연결된다는 감각을 공유한다고 느낍니다. 이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A: 퀴어 커뮤니티에 분명히 존재하고, 그 존재를 알고 있지만 공론장에는 잘 올라오지 않는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약물사용, 성노동, 페티시와 BDSM, HIV 감염인의 성적 욕구 등의 이야기입니다. 과거에는 남성 성소수자가 HIV/AIDS에 취약하다는 사실마저도 혐오에 오용 된다는 이유로 쉽게 이야기하지 못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최근에는 HIV/AIDS 감염과 연관된 약물 사용에 대해서 마찬가지로 이야기하기 어렵습니다. HIV/AIDS인권팀은 이러한 것들에 옳다, 그르다는 가치 판단을 일단 유보하고, 취약점에 놓인 사람들의 입장과 권리를 중심으로 생각하고 언어를 만들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것이 의무적인 중단과 금지의 방향으로 수렴하는 것을 경계하고요. 이런 취약한 사람들이 충분한 언어를 가지기 어려운 것 중 하나가 성적 권리이고, 팀에서 가장 관심을 가지고 있는 내용이기도 합니다.
섹스에 대해 이야기하기는 쉽지 않고, 특히 즐거움과 쾌락이 아니라 나와 타인 사이의 긴장감이나, 허락/거부/협상이 연속되는 과정으로서의 섹스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드뭅니다. 이러한 선택의 과정에서 사회적으로 흔히 ‘올바르지 않은’, ‘실수한’ 선택으로 여겨지는 선택을 했던 경험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아주 어렵고, 후회나 반성하기 위해서가 아닌데도 이런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정말 귀중한 경험입니다. 팀에서는 이러한 이야기를 바탕으로 자신을 중심으로 한 여러 관계에서 나이, 사회 경제적 자원, 소위 말하는 매력 자원 등의 불균형으로부터 나오는 위계를 이야기합니다. 이로 인해 상대방에게 어떤 말을 하기 어려웠고 내키지 않는데 했던 행동은 무엇이 있었는지, 그러한 의식적이고 무의식적인 협상 과정에서 어떤 생각이 들었는지, 내키지 않지만 했거나 기꺼이 했던 행동이 어떤 예상치 못한 결과를 낳았는지 등을 이야기하며 취약점을 가진 사람들이 어떻게 스스로를 지켜야 할지 생각합니다.
이런 활동의 일환으로 최근에는 퀴어 업소에 장소 협조를 구해 성소수자 남성을 위한 성교육을 진행하였는데요, ‘성적 욕망을 판단하거나 죄악시하지 말라’ 라는 교육의 기조에 팀원들보다 외부에서 오신 분들이 더욱 놀라워하며 긍정적으로 평가해 주시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퀴어 커뮤니티 속에서도 주변화 되거나, ‘활동과 운동의 언어는 우리 것이 아니고 우리를 대변하지 못한다’고 느끼는 사람들을 위한 언어를 만들고 그들을 대변하는 자리를 계속해서 공론장에 마련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실감했습니다. 활동과 커뮤니티 사이에 더 많은 교류와 연결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고, 그 가교가 되기 위해 행성인 HIV/AIDS인권팀은 항상 노력하겠습니다.

참여 후기
사회가 딱히 보고 싶어하지 않는 사람들이 모여 딱히 듣고 싶어하지 않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사회가 정해 놓은 금기 바깥에도 사람들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며 연결되는 기분이었고, 심지어 금기 밖에 있는 사람들이 ‘노 프라이드’를 말하며 ‘프라이드’, 즉 스스로에 대해 자긍심을 내보일 때 고양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저 역시 사회적 금기로 인해 자신에 대해 자괴감, 수치심을 깊게 느꼈던 사람이었던 만큼 이번 노프라이드 데모가 자긍심을 가지지 못하고 괴로워하는 사람들에게 지금 이대로도 당신의 편이 있고, 당신과 함께 할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널리 외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