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운동과 보건의료운동
프랑스에서 1968년에 미국의 베트남공습에 항의해서 미국계 은행을 습격하다 구속된 학생 3명의 석방을 시위하던 일이 공권력에 의한 캠퍼스 점거로 이어진 사건이 시작인데요. 공권력 점거로 말미암아 '교육부로부터의 대학의 자율성'을 선언하게 되고, 이것이 노동운동으로도 번져 전세계에 영향을 줬다지요.
68혁명의 슬로건인 "상상력이 권력을 쟁취한다", "모든 금지를 금지하라", "불가능한 것을 요구하라" 에서보듯이, 거시적 권력을 미시적으로. 다양성을 중요시하며. 이러한 모습이 보건의료 분야에서는 기존의 "생의학적 의사-환자관계"가 갖는 전문주의의 문제와 개인을 객체화 시키는 의학의 시선에 대한 문제제기를 본격화 했다고 봅니다. 그리고 정신의약분야에서의 영향('가타리'라는 정신과 의사), 그리고 여성과 장애인, 동성애자를 보는 시각의 변화에 영향을 줬다고.
<<다음 두 단락은 직접인용>> 기존의 환자-의사의 모델을 미시적으로 분석해 보자면, 의사는 전문주의적 도덕성과 지식 및 기술을 통해
환자를 치료하고, 환자는 "환자역활"을 수행함으로써 사회적 일탈(질병)을 치유한다는 기능주의적 모델이다. 환자-의사의 기능주의적 모델은 의사의 전문주의를 너무 피상적으로 받아들인다는 것과 질병을 환자
외부의 것, 즉 생의학적 질병관을 전제하고 있다는 점에서 사회적 안정을 지향하는 보수주의적 경향을 가지고 있었다. 이에 대해 68혁명 이후의 철학을 대표한다할 미셀 푸코가 지적하는 것은 환자-의사 모델이 지니고 있는 권력의 측면, 지식으로서의 권력이 일상생활마저도 통제하고 있다는 것, 더 나아가 일상적 주체 의학의 전문주의가 가지는 권력은 노골적이며 이념적인 억압의 형식을 가지고 있지 않다. 푸코의 대안은 '대체의학의 발전'과 '예방 및 일차 처치를 강화하고 공중보건을 확대' 였지만, 알다시피 대체의학도 시장화 되서 전문가가 장악해 가는 형국이고 공중보건도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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