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헌에게...
우선 너를 원망하고 싶다
남겨진 우리는 어찌하라고 그렇게 훌쩍 왔다가, 가슴에 피멍만 남긴 채 가버리고 말았느냐.
어린 니가 그 마지막 순간에 어떤 심정이었을까 생각만 해도 몸서리가 쳐진다.
한없이 순수하고 해맑았던 너..
이 땅에서 소외받고 억압받는 동성애자의 처지에 같이 슬퍼하고 분노하고 부대끼면서,
풋풋하게 때로는 조금은 어설프고 수줍게.. 자신이 해야할 역할을 찾으면서 우리에게 힘이되었던 너...
그런 너를 우리에게 빼앗은 이 땅의 현실이 저주스럽다.
동성애자의 인권을 지지하는 것이 청소년에게 해롭다고 떠들면서, 정작 너같은 어린 동성애자의 생명에는 무관심한 인간들이 저주스럽다.
또 무슨 큰 구경거리나 생긴 것 마냥 여기저기 들쑤시면서, 모든 이의 생채기를 지 멋대로 재단하는 인간들도 저주스럽다.
언젠가 니가 첨에 동인련에 편지를 보내면서, 동성애자의 인권을 위해 써 달라면서 편지에 만 오천원 인가를 같이 보냈다는 기억이 떠 오르면서, 새삼 너의 그 순수하고 애틋한 마음에 복받쳐 오르는구나
너의 죽음으로도 해결될 수 없는 동성애자의 인권이지만, 그렇다고 너의 죽음을 결코 헛되이 만들지는 않겠다.
하늘나라에서 우리의 노력과 투쟁에 평소와 같이 해맑은 미소로 지켜봐 주기를 바란다
너의 이름은 동성애자의 인권투쟁과 영원히 할 것임을 약속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