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부끄럽게도 너의 의미있는 죽음을 슬퍼하고 애도할 자격도 없다.
언젠가부터 동인련 게시판을 들락거리며 시조를 읊조리기 시작하고
뭔가 얘기하려 했지만...
미련하게도 너를 눈치채지 못했다.
부음을 접하고 난 후 이제서야...
네가 남기고 갔다는 다듬어지지 않은 거친 싯귀들을 자꾸만 읽고 또 읽어 보며
눈알이 돌아 빠지는 느릿하고도 쓰린 고통으로
내 작은 가슴을 사정없이 내려 치고 또 내려친다...
너의 말 못했던 아픔이 내 어릴 적 아픔이었는데
기댈 곳 없었던 너의 마지막 선택은 내 지금의 갈등이기도 한데
너와 다를 것 하나도 없이
내 삶을 파고드는 모든 모난 것들은 지치도록 싫었고 지금도 미운데
난 이 나이 먹도록 아직도 지겹도록 살아 남아
저 어리고 여리디 여린 것의 처절하도록 외로운 죽음 하나 막지 못했다...
이제와서 네 죽음을 슬퍼한들
이제와서 네 고통을 함께 느껴 보려 한들...
추잡하고 더러운 본성들은 씻지 않고 가려둔 채
차마 보기에 역겹다 못해 토악질이 나는 가면들로
하늘을 빌고, 도덕을 빌어 꾸며낸 어설픈 모사로 설쳐대는
이 땅의 저 서글픈 가식들이 진절머리 난다.
목을 맨 너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며
더러운 것들의 그 꾸며진 위선들을 신경질적으로 벗겨버리고
그 태만한 관심과 고집과 무관심을 하나하나 잔인하게
집요하게 난도질 하고 싶다.
내가 아직까지 죽지 못하고 살아 온 일말의 불쌍한 희망은
너와 내가 그토록 바라는 그 무엇인가가 어딘가에 분명히 존재할 것 이라는 희미한 환상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그래서 난 아직도 초라하기만한 모습이지만 이렇게 살아 견디어 보고 있다는 것을
듣든 말든 너에게 조심스럽게나마 심어 줄 수 있었더라면...
그래서 죽음과 조금이라도 너를 떼어 놓을 수 있었더라면...
우리 모두가 충분히 그럴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네 작은 아픔 하나 너와 함께 나누지 못하고
그 차갑고 쓸쓸한 사무실안에서 혼자 쓰러져갔을
어린 너를 지켜주지 못해
나는 혼자 너에게 부끄럽고 미안하기만 하다.
마지 못해...
차마 이 곳에서는 견디기 힘에 겨워
조용히 찾아 가고자 한 곳이 그 곳 이라면
그래
이젠 동성애고 나발이고 아무것도 생각하지 말고
편히 쉬어라.
더는
슬퍼 하지도, 외로워 하지도, 괴로워 하지도 말고
엄마도, 아빠도...
그리고 살아 남은 친구들도 모두 잊어 버리고...
네 마지막 지독한 순간이 너 혼자였던 것 처럼...
너 혼자 술병을 옆에 놓고 가졌던 그 시간만큼은
죽음도 두렵지 않을 정도로 고요하고 편안한 순간이었던 것 처럼...
그냥 편히 쉬어라
이 다음에라도...
이 다음에라도...
네가 그토록 꿈꾸어 오던 밝은 무지개빛 세상에서
우리 만나 모두 함께 웃을 수 있기 위해
너를 눈물로 보내고 남아버린 친구들이 애써 줄 것이다.
마음들을 다잡고 있다...
꼭 그렇게 할 것이다...
그렇게 갈 수 밖에 없었던 너에게 부끄럽고 미안하기만하여
온 종일 쓰라린 눈물만 흘린다.
편히 쉬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