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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 및 논평
Solidarity for LGBT Human Rights of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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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 동성 배우자는 가족이다  - 성소수자 부부의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 박탈에 대한 선고에 부쳐


 

2022년 1월 7일 서울행정법원은 ‘동성부부 건강보험’ 부양관계 인정 소송에 원고의 청구를 기각했다. 재판부는 사회적 일반론을 운운하며  동성부부를 제도의 기준에서 배제했다. 

 

이번 재판은 배우자가 동성이라는 이유로 국민건강보험공단이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을 박탈한 데 대한 행정소송이었다. 건강보험직장가입자의 사실혼배우자로서 피부양자임을 요구하는 소송은 근본적으로 가족의 기준을 묻는 것이기도 했다. 

 

판결문에서 눈에 띄는 점은 일차적으로 원고가 서로를 반려 삼아 부부와 유사한 공동생활을 해왔음을 인정한다는 것이다. 법원의 인정은 의미 있지만 새로울 것도 없다. 이들은 몇 년 간 반려관계를 이어오고 경제공동체를 형성하며 하객들을 초대하여 결혼식을 했다. 사회에 대대적으로 부부관계를 선언한 이들을 부부로 인정하지 않을 이유는 없다. 

 

국민건강보험법과 공단의 업무규칙은 사실혼배우자도 혼인신고를 마친 배우자와 동일하게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한다. 하지만 판결문은 민법과 대법원, 헌법재판소 판례에 그치지 않고 사회의 ‘일반적 인식’까지 끌고 오면서 기어이 부부가 남녀로 구성된다는 근본주의적 논거를 들며 여지없이 사회적 수요와 합의를 언급한다. 언제부터 성원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국가의 책무가 사회적 수요에 따라 좌우되었나. 판결문은 지역가입자로서 최소한의 보험료납부의무를 지게한다는 점에 이들을 완전히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고 항변하지만, 이미 성원의 자격미달을 확언한 상황에서 동성부부는 제도에 안착할 수 없다.

 

국가는 성원들이 가족을 이루고 건강하게 살 수 있도록 책임을 다해야 한다. 하지만 사회적 일반론을 들먹이며 성원의 자격을 저울질 하는 태도는 국가가 정한 배우자의 기준 아래 다양한 가족모델을 줄세우며 사소한 서비스부터 삶과 죽음에 걸친 생애주기를 둘러싼 차별을 양산할 뿐이다. 무엇보다 사회적 수요가 적고 합의되지 않아 인정할 수 없다는 태도는 합의된 법을 만들어 오라는 입장을 반복하며 사법의 책무를 입법부에 떠넘기는 것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 이번 재판은 법원의 무책임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합의’라는 미명을 다시 한번 강조하는 가운데 성소수자 부부의 권리는 여지없이 폭탄돌리기 게임으로 반복한다. 하지만 가족의 근원성과 일반론을 운운하는 판결이야말로 성원을 차별하고 있지 않은가. 판결은 그 자체로 좁은 가족범주 바깥에서 관계를 만들어가는 이들의 존재를 부정한다. 나아가 패권적인 가족이데올로기를 다시 한번 강화한다. 사법부의 책임은 절대로 가볍지 않다. 

 

동성부부를 비롯한 성소수자 가족구성권에 대한 논의는 오래전부터 있어왔다. 소송이 있기 전부터 다양한 가족모델을 만들어왔고 주거와 경제, 사회복지와 죽음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삶을 영위하고 공동의 삶을 확보할 수 있기 위해 어떤 제도를 요구해야 하는가를 논의해왔다. 동성 배우자의 건강보험 피부양자 요구는 가족구성권에 대한 제도적 인정을 요구하는 가장 기본적인 항목이기도 하다. 

 

분노와 아쉬움이 뒤섞이는 하루였지만 오늘은 작은 변화 또한 예감할 수 있었다. 판결문은 동성혼을 인정한 핀란드, 프랑스, 독일 등 다수 국가뿐 아니라 이탈리아, 영국, 스페인 등 동성동반자제도를 두는 경우를 예로 들었다. 점진적인 추세를 인정하면서도 판결문은 기어이 제 몫을 입법의 문제로 전가하지만, 성원들이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며 필요한 권리를 요구하는 환경 속에 법은 더이상 제 역할을 회피할 수 없다. 이번 판결은 사법부에 놓인 책임이 얼마나 무거운 것인지 확인시켜준다. 지금의 회피를 더이상 반복하지 않기를 엄중하게 요구한다. 

 

오소리 소주 부부의 용기는 이 사회에 동성부부의 존재를 가시화했다. 사회가 그동안 상상하지 못했던 언어를 만들고 매끈한 일상에 개입하며 제도가 과연 모든 사람의 권리를 보장하는 방향으로 작동하는지 문제삼았다. 오소리와 소주 부부를 비롯한 많은 성소수자들은 지금껏 그래왔듯 일상을 나누고 서로를 돌보며 살아갈 것이다. 최선의 방식으로 이 삶을 지키며 나아갈 것이다. 이미 세상은 변해가고 있다. 제도의 규준에 얽매지 않은 삶의 방식과 관계를 보여주고 공동체의 문법을 세공하며 물음을 던지는 다양한 실천을 통해 느리지만 분명한 변화를 만들고 있다. 부부의 용기에 박수를 보내며 이들을 지지한 많은 성소수자들에게 연대의 마음을 보낸다.

 

여느 때나 마찬가지로 변화에 가장 둔감한 이들은 국가다. 부부는 항소를 예고했다. 부부의 행보에 기꺼이 함께 하며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는 제도 바깥에 있으나 분명 존재하는 우리 삶의 이야기를 듣고 보듬으며 이토록 낡은 제도에 균열을 내는 운동을 계속해 나갈 것이다. 



 

2022. 1. 8.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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