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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 및 논평
Solidarity for LGBT Human Rights of Korea

[공동성명] 전파매개행위죄는 위헌이다. 헌법재판소는 에이즈예방법 제19조에 위헌으로 답하라!

 

11월 10일인 오늘, 헌법재판소가 후천성면역결핍증예방법(이하 에이즈예방법) 제19조 전파매개행위 금지 조항의 위헌제청 건에 대해 공개변론을 진행한다. 이 공개변론은 지금으로부터 3년 전인 2019년 11월, 서울서부지방법원이 에이즈예방법 제19조와 벌칙조항 제25조의2에 대하여 위헌법률 심판 제청한 것에서 기인한다. 국내에 첫 HIV감염인이 보고된 1985년으로부터 37년이 지난 지금, 오늘 열리는 헌법재판소의 공개변론을 통해 HIV/AIDS에 대한 무지와 낙인, 차별로 인한 기본권 침해가 아직도 얼마나 심각한지 공개적으로 드러날 것이다. 그 역사적 현장을 고대하며 전파매개행위죄의 위헌성을 다음과 같이 밝히고자 한다.

 

에이즈예방법은 1988년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대회에 참가하는 외국인들에 의해 국내에 HIV전파가 늘어날 수 있다는 막연한 공포심에 기인하여 1987년 국회에서 별다른 심의없이 성급하게 입법되었다. 전파에 대한 처벌과 철저한 통제로 감염병 전파를 막을 수 있을 것이라 믿던 과거와 달리, 의학이 비약적으로 발전한 지금은 조기검진과 치료, HIV감염인의 인권증진이 곧 HIV예방의 지름길이라는 것이 과학적으로 입증되었다. 하루 한 알의 치료제 복용만으로 HIV바이러스를 억제하는 치료기술의 발전으로 HIV예방 전략은 진일보했다. 그리고 지금은 꾸준히 치료약을 복용하면 바이러스가 검출되지 않으며 전파할 수도 없다는 사실이 이미 수 년 간 국제적으로 진행된 대규모 연구에 의해 입증되었다. U=U (Undetectable =Untranmittable, 바이러스 미검출은 곧 전파불가) 캠페인은 무려 105개 국가 1,099개의 단체에서 연명하고 있는 전 지구적인 캠페인이다.

 

HIV감염을 조기에 발견하여 조기에 치료하는 것이 현시대 HIV예방 전략의 핵심이다. 감염인이 적절한 치료를 받고 있다면 콘돔의 사용여부 문제는 HIV예방에서 중요한 요소가 되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행 에이즈예방법 제19조는 감염인의 콘돔사용 여부만을 사실상 유일한 쟁점으로 판단한다.

 

에이즈예방법 제19조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후천성면역결핍증예방법」 제19조(전파매개행위의 금지)

“감염인은 혈액 또는 체액을 통하여 다른 사람에게 전파매개행위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

제25조(벌칙)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사람은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2. 제19조를 위반하여 전파매개행위를 한 사람

 

위 조항이 2022년 한국에서 갖는 의미와 그 효과를 조금만 살펴보면 왜 시대착오적 반인권법인지 쉽게 알 수 있다. 각계 시민사회의 목소리를 모아, 우리가 오늘 에이즈예방법 제19조의 위헌을 주장하는 이유이다. 전파매개행위죄라고 지칭하는 에이즈예방법 제19조의 문제점은 크게 다음과 같다.

 

첫째, 전파매개행위죄는 불합리한 기준으로 지나치도록 폭넓게 금지하여 HIV감염인 인권을 크게 침해한다는 점이다. 콘돔 사용여부와 관계없이 치료약을 꾸준히 복용하면 바이러스가 검출되지 않아 전파할 수 없다는 사실이 국제사회에서 과학적으로 입증되었고, HIV감염인의 성관계에서 콘돔 사용여부는 더 이상 HIV의 전파가능성을 판가름하는 척도가 아닌 상황임에도 제19조는 감염인의 콘돔 사용 여부만을 따지며 범죄의 낙인을 찍는다. 전파매개행위죄는 감염인의 기본권을 제한하여 예방의 목적을 달성한다고 하지만, 이미 근본적으로 부적합하다는 것이 자명하여 적절한 수단일 수 없다. 또한, 전파매개행위죄는 성관계 안에서 일어날 수 있는 우연적인 상황과 합의 과정 등 개별적이고 특수한 상황들을 배제한다. 체액의 범위와 접촉의 방식 등 구체적으로 따질 수 없는 상황에 지나치게 포괄적인 행위를 규제하는 방식으로 통제한다는 점에서 ‘침해의 최소성’ 역시 어긴다. 이렇듯 전파매개행위죄는 실질적으로 달성가능한 공익이 적은 데 비해 이를 통해 초래되는 감염인의 불이익이 막대하므로 ‘법익의 균형성’ 또한 어기고 있다. 그러므로 현행 에이즈예방법 제19조는 우리 헌법 제37조 제2항이 천명한 과잉금지의 원칙에 어긋나는 조항으로서, 위헌이다.

 

둘째, 전파매개행위죄는 낙인과 공포를 조장함으로써 에이즈예방에 역효과를 불러온다. 실상을 보자. 국내 대다수의 HIV감염인은 이미 치료받고 있는 상황이므로 앞서 언급했듯 전파능력이 없다. 결국 실제로 HIV가 전파되는 사례 중 대부분은 자신의 감염사실을 알지 못하는 경우이다. 그런데 제19조의 논리를 살펴보면 HIV감염인으로 하여금 자신의 감염사실을 모르는 상태, 모르기에 치료를 받지 않게 되는 상태를 유리하게 만든다. 치료를 꾸준히 잘 받아 바이러스를 억제하며 타인에게 전파할 수 없는 HIV감염인은 처벌하고, HIV감염상태에 대해 알지 못해서 HIV전파가 일어날 수 있는 상황에 대해서는 대책이 없기에 결과적으로 제19조는 HIV예방에 도움이 되기는 커녕 HIV예방을 저해하고 있는 것이다. 질병의 낙인에 기반한 이런 법조항은 HIV감염 사실을 드러내고, 치료를 잘 받으며, HIV조기검진을 독려하는 일련의 문턱 자체를 높일 뿐이다. 다시 말해 전파매개행위죄는 HIV/AIDS를 음지화할 뿐, 예방에는 해악으로 작용한다.

 

셋째, 전파매개행위죄는 HIV/AIDS와 감염인을 여느 감염병과 질병당사자들과 비교해도 지나치게 특수하고 차별적으로 취급한다. 해당 조항은 개인의 내밀한 영역인 성생활을 수사와 형벌의 대상으로 삼으며 감염인의 헌법적 권리인 사생활의 권리, 성적 자기결정권과 인격권을 박탈한다. HIV감염인 대다수가 꾸준한 치료와 관리로 바이러스를 억제하면서 예방에 기여하는 예방주체임에도 불구하고, 일단 감염인이 된 이상 평생 형사처벌의 가능성을 감수해야 하는 규율대상으로 남게 된다. 이렇게 과도한 조치는 모든 질병 중 HIV/AIDS에만 매우 특수하고 이례적으로 적용되고 있다. 이렇게 과도한 조치는 다른 감염병까지 마치 통제와 금지를 중심으로 규율하면 예방할 수 있다고 착각하게 만드는 나쁜 전례가 될 수 있다. 특히 근래 코로나19 상황에서도 국회에서 감염병예방법에 전파매개행위죄를 추가하려고 했던 시도들이 있었음을 고려하면, 에이즈예방법 상 전파매개행위죄는 질병에 엄벌주의를 강화함으로써 과도한 범죄의 낙인만을 강화한다. HIV/AIDS와 감염인에게 특수한 지위를 부여하여 감시하고 통제할 이유가 전혀 없는 지금 상황에서 해당 조항을 유지하는 것은 다른 질병들까지도 범죄로 규율하고 통제할 구실로 작용하는 점에 문제적이다.

 

결국 조기검진으로 질병을 초기에 발견하고, 꾸준히 약을 먹을 수 있도록 치료접근성을 보장하는 것이 예방의 측면에서 가장 실효적이고 사실상 유일한 해법이다. 무엇보다 예방을 위해 필요한 것은 성관계에 있어 HIV감염여부와 상관없이 상호 안전을 확보하고 위험에 대한 책임을 분담하는 노력이다. 이러한 성적권리의 실질적 보장에 국가의 역할과 책임은 막중하다. 엄벌주의와 낙인이 온존하는 한, 시민들은 HIV검진을 피하게 될 것이고 HIV감염인이 차별없이 안전하게 치료를 받을 권리와 그 환경은 침해될 것이다. HIV감염인에게 성적 낙인을 가하고 모든 책임을 전가하는 방식은 ‘에이즈의 예방ㆍ관리와 그 감염인의 보호ㆍ지원에 필요한 사항을 정함으로써 국민건강의 보호에 이바지하겠다’는 에이즈예방법의 목적과는 정반대의 결과를 초래할 수밖에 없다. 국가가 에이즈 혐오논리에 휩쓸려, 처벌과 통제로 질병을 예방할 수 있다고 착각하며 검열과 감시의 정책을 유지하는 것은 우리 사회의 안전과 평등을 위한 논의를 가로막는 결과만 낳는다. 전파매개행위죄가 질병예방은 커녕 우리 사회의 공동체적 가치를 깎아내리고 성평등을 위한 노력을 근본적으로 저해하고 있음을 이제는 알아차려야 한다.

 

유엔에이즈(UNAIDS)가 2010년 발표한 슬로건은 ‘신규감염 0, AIDS 관련 사망 0, 차별 0’이다. 이 목표 도달을 위해 중요한 사회적 과제로 HIV 감염인에 대한 낙인·차별 해소와 함께 HIV노출·전파와 관련된 형사적 처벌의 문제를 지적했다. 세계보건기구(WHO) 역시 HIV의 유행을 종식하려는 노력에 있어 가장 핵심적인 주요 장벽으로 HIV감염인에 대한 차별과 불평등을 지적하면서 HIV감염인 등 취약 계층의 성적 행동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조기검진과 치료에 대한 접근을 저해한다고 언급했다. 또한 HIV 관련 형사적 처벌 규정이 공중보건에 도움이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방해가 된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렇듯 HIV/AIDS의 종식은 의학기술의 발전과 함께 HIV감염인에 대한 사회적 제도가 개선될 때 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한국에는 전파매개행위죄라는 커다란 제도적 방해물이 여전히 남아 HIV감염인을 범죄화하고 있다.

 

HIV감염여부와 상관 없이 누구라도 인간으로서 존엄과 가치를 존중받고, 기본적 권리를 보호받아야 한다. 평범한 일상을 누릴 수 있어야 하고, 일하고, 사랑하고,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특별한 어려움을 겪지 않아야 한다. HIV감염인이 충분히 치료받고 차별과 혐오를 받지 않으며 사회적 활동에 참여하고 관계를 맺을 수 있는 환경이 보장되어야 에이즈예방법의 목적인 공중보건도 이룰 수있다. 과거 질병에 대한 정확한 정보가 없던 시절, 무지와 공포에 기인하여 만들어져 편견과 차별의 소산으로만 남은 전파매개행위죄를 이제는 폐지하자. 진작에 벗어 던졌어야 할 낡은 옷이다. 시대착오적이며 비과학적인 이 조항 때문에 많은 시민들이 낙인과 범죄화에 시름하고 있다. 이제는 바꿔야 한다. 의학적 성과와 HIV/AIDS 인권운동의 경험을 반영하여 질병에 대한 과도한 공포를 불식시키자. 우리는 낙인과 범죄화를 끝내고, 공동의 책임으로 질병 예방의 주체가 될 수 있는 합리적인 법과 제도를 원한다.

 

전파매개행위죄는 위헌이다. 헌법재판소는 에이즈예방법 제19조에 반드시 위헌으로 답하라.

 

 

2022년 11월 10일

HIV/AIDS인권활동가네트워크(HIV/AIDS인권연대 나누리+, 다양성을 향한 지속가능한 움직임 다움, 러브포원, 레드리본 사회적 협동조합, 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 SHARE, 성적소수문화인권연대 연분홍치마, 에이즈환자 건강권보장과 국립요양병원마련을 위한 대책위원회, 장애여성공감, 정의당 성소수자위원회, 한국HIV/AIDS감염인연합회 KNP+,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HIV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임 ‘가진사람들’, 한국청소년청년감염인커뮤니티알,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이상 14개 단체)

 

연명

(사)신나는센터, HIV 감염인단체 러브포원, 경동건설 고 정순규 유가족,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기본소득당 여성주의 의제기구 베이직페미, 노동당 사회운동위원회, 녹색당, 녹색당 소수자인권위원회, 다른세상을향한연대, 다양성을 향한 지속가능한 움직임 다움, 대한불교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 대한성공회 길찾는교회, 레주파, 모두의교회 P.U.B., 무지개예수, 무지개인권연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소수자인권위원회, 상상행동 장애여성 마실, 서울인권영화제, 성노동자해방행동 주홍빛연대 차차, 성별이분법에 저항하는 사람들의 모임 여행자, 성소수자부모모임,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 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 SHARE, 성적소수문화인권연대 연분홍치마, 여름교회, 예술행동 한뼘, 이화여대 성소수자인권운동모임 변태소녀하늘을날다, 인권교육센터 들, 인권운동공간 활,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인천성소수자인권모임, 인천인권영화제, 장애여성공감, 정의당 인천시당 성소수자위원회, 진보당 인권위원회, 천주교인권위원회, 트랜스해방전선,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한국농인LGBT 설립준비위원회, 한국성소수자의료연구회,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 한국여성민우회, 한국청소년청년감염인커뮤니티알,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이상 46개 단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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