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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 및 논평
Solidarity for LGBT Human Rights of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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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성소수자 혐오 반대의 날 기념 성명] 
곁을 모으고 함께 외치는 힘으로 변화는 계속된다.
 

 

1990년 5월 17일, 세계보건기구(WHO)는 ‘성적지향만으로 정신장애로 간주하지 않는다’고 선언하며 국제질병분류 정신장애 부문에 포함되어 있던 동성애를 삭제했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진 날이 바로 ‘아이다호 데이'(IDHAOBIT-International Day Against Homophobia, Biphobia and Inter & Transphobia-국제 성소수자 혐오 반대의 날)이다.  

 

한국에서도 2013년부터 아이다호 캠페인을 열고 차별과 혐오에 대한 반대를 넘어 성소수자의 존엄과 평등한 권리를 외치는 날로 그 의미를 확장해 왔다. 오늘 아이다호 데이를 맞아, 지금 한국사회에서 더욱 심각한 혐오와 차별의 현실을 드러내고 그에 맞선 성소수자들의 마땅한 권리를 외친다.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지 1년, 성소수자 인권 뿐만 아니라 모든 영역에서 우리 삶은 총체적으로 후퇴하는 중이다. 그러나 우리는 기대할 것 없는 현실에 주저 앉지 않고 더 큰 외침으로 이 사회를 울리는 일만이 우리의 존재와 권리를 빛내는 길임을 믿는다. 

 

- 트랜스젠더, 나답게 살 권리
동성애 질병 분류 삭제로부터 약 28년 후인 2018년, 세계보건기구는 트랜스젠더 정체성에 부여되었던 ‘성주체성 장애’ 또한 정신장애 항목에서 삭제하기에 이른다. 성별 정체성은 치료받아야 할 질병이 아니며, 다만 트랜지션과 관련한 의료 서비스가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성 건강과 관련한 상태로 ‘성별불일치’를 포함하는 변화였다. 하지만 한국에서 여전히 트랜스젠더의 삶은 투쟁의 연속이다. 나의 필요가 아니라 법적 성별 정정의 요건으로 강제되는 외과적 수술과 배우고 일할 권리를 앗아가는 성별규범과 혐오, 사회로부터 꼭 필요한 도움과 서비스를 받을 때조차 요구되는 불필요한 성별 정보는 트랜스젠더가 온전히 나답게 살아갈 수 없게 한다. 동등한 이 사회의 구성원인 트랜스젠더들을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정부와 국회가 그곳에 있을 이유가 어디 있는가.

 

- 질병 예방, 성적 낙인과 혐오는 그만
엠폭스 국내 확진자가 늘어나자 언론과 여론의 성소수자를 향한 비난이 이어졌다. 특히 질병을 이유로 게이 남성의 성문화에 도덕적 잣대를 들이밀고 성적 보수주의를 준동하며 한낱 가십거리로 비난하는 언론의 태도는 여전히 개선되지 않고 있다. 성소수자와 HIV/AIDS인권운동이  누차 이야기 해왔듯 감염에 취약한 이들의 성문화를 비난하고 개인정보를 알리는 것은 이들을 낙인찍고 음지화할뿐 질병 예방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지금 많은 성소수자들이 엠폭스 백신 접종에 참여하고 있다. 이는 방역주체들이 인권운동단체들과 협력하며 감염취약집단을 상대로 낙인을 최소화하고 예방에 최선을 다하는 노력이 있기에 가능한 성과다. 질병과 질병에 취약한 집단에 도덕적 잣대와 편견을 들이대지 않으며, 질병에 취약한 이들이 스스로 예방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는 것은 언론과 방역주체가 해야 할 기본적인 책무다.  

 

- 학생/청소년을 동등한 권리의 주체로
2011년 서울시의회 농성 끝에 어렵사리 만들어 낸 서울학생인권조례가 오늘날, 다시금 폐지될 위기에 처해있다. 비단 서울시뿐만아니라 전국적으로 학생인권조례를 폐지, 개악하려는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다. 성소수자 혐오, 학생/청소년을 동등한 권리의 주체로 보지 않는 반인권적 시각에서 비롯된 시도들이다. 그러나 우리는 지난 투쟁의 역사를 통해 이미 알고 있다. 혐오는 학교의 진정한 주체들, 현장에서 생생히 살아 숨쉬고 있는 학생/청소년 성소수자들의 존재와 목소리를 지울 수 없다.   

 

- 평등한 사랑, 평등한 권리
지난 2월 21일, 동성 배우자의 건강보험 피부양자 지위 사건 항소심에서 재판부는 최초로 동성 부부의 법적 지위와 권리를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으며, 지난 4월 26일, 국회에서는 혼인이나 혈연관계가 아니더라도 함께 생활하는 다양한 형태의 가족공동체를 법적으로 보호하는 ‘생활동반자법’이 최초로 발의되었다. 가부장적, 이성애중심적인 가족과 혼인제도에 균열을 내는 변화들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성소수자가 평등하게 혼인과 가족생활의 권리를 누리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현재의 혼인제도 그 자체를 변화시켜야 한다. 누구든 배우자의 성별과 무관하게 결혼제도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의 개선, 동성혼 법제화가 필요하다. 우리는 혼인평등이 실현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다양한 성소수자의 삶을 모습을 드러내며 제도를 바꾸는 운동을 해나갈 것이다. 이는 성소수자도 결혼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을 넘어, 이 사회의 혼인과 가족제도 자체를 평등의 방향으로 이끌 수 있는 길이다. 

 

- 평등하고 존엄한 일터를 위해
이미 한국 노동자들의 노동 시간은 세계에서 손꼽힐 정도로 길다. 그러나 지금 한국 정부는 노동 시간을 줄일 고민을 하기는 커녕 MZ 노동자, 노동 유연화라는 단어를 오남용하며 노동 시간을 늘리기 위해 혈안이 되어있다. 노동 시간은 단지 숫자가 아니다. 노동자들의 일상을 결정한다. 일어나서 잠들 때까지의 하루가 노동으로만 채워진다면 노동자들의 일상은 무너진다. 법은 단지 글자가 아니다. 최저의 생계를 보장하는 최저임금이 많은 노동자의 평균임금이 된 지금이다. 법에서 규정하는 최대 노동 시간이 많은 노동자의 평균 노동시간이 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우리는 노동을 더욱 열악하게 만들려는 정부의 논리에 현혹되지 않고 성소수자를 포함한 모든 노동자들이 평등하고 존엄하게 일 할 수 있는 사회를 위해 싸워 나갈 것이다.

 

더불어, 아직도 이 사회에서는 장애, 인종, 출신국가, 성적지향, 성별, 피부색, 언어, 학력, 종교, 사회적 신분 등의 이유로 다양한 소수자들의 삶이 위협당하고 있다.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성소수자를 넘어 이 사회의 평등과 안전, 존엄과 인권을 위해 가장 시급한 법으로서 당면해 있다. 

 

올해는 성소수자 운동이 30년을 맞는 해이다. 우리의 외침은 무엇 하나 변하지 않은 것만 같아도, 권리를 외치며 나아온 풍경은 분명 변화해 왔다. 더는 성소수자란 표현이 낯설지 않고 많은 이들이 다양한 정체성을 향유하고 있다. 성소수자가 모이기 위한 광장조차 허용하지 않는 현실에 분노한 수많은 시민들이 우리 곁에 있는 것과 같이 제각기 빛나는 다양한 얼굴과 몸과 이름들이 성소수자로 한데 모여 광장을 누빈다. 나를 드러내고 곁을 모으며 함께 외치는 힘들이 쌓이는 이 과정이야말로 우리 투쟁의 성취다. 그렇게 세상은 조금씩 더 열릴 것이다. ‘열정을 잇는 우리, 변화는 멈추지 않는다.’

 

2023년 5월 17일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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