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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 및 논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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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

성소수자와 HIV 감염인을 범죄화하고 낙인찍는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규탄한다

 

2023년 10월 26일, 오늘 헌법재판소는 군형법 제92조의6 추행죄와 후천성면역결핍증예방법 19조 전파매개행위금지조항에 관한 위헌심판사건에서 시대착오적인 합헌 결정을 내렸다.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는 성소수자의 섹슈얼리티와 HIV/AIDS라는 질병에 대한 비과학적인 낙인과 편견에 기반한 부정의한 판단을 내리며, 성소수자와 HIV감염인의 평등한 권리 실현을 지연시킨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강력하게 규탄한다. 

 

군형법 제92조의6은 ‘국내 유일 동성애 처벌법’ 으로 불리며 오랜 시간 군대 내 동성애자를 검열하고 처벌하는데 활용되어 왔다. 평등의 원칙을 위반하고, 성적자기결정권과 사생활의 자유를 침해하는 이 법의 존재로 인해 많은 성소수자 군인이 부당한 처벌의 대상이 되어왔다. 휴가 나온 군인이 군 부대 밖에서 합의 된 성관계를 해도 처벌의 대상이 되었고, 심지어 성폭력 피해자까지도 동성애자라는 이유만으로 처벌의 대상이 되어야만 했다. 지난 2017년에는 이 법을 명목으로 육군이 동성애자 군인 수십명을 색출 수사하는 사건까지 벌어졌다. 

 

동성 간 성행위를 처벌하는 명목으로 군 기강을 들지만 군형법 제92조의6은 그 의도부터 결과까지 본질적으로 성소수자를 범죄화하고 동성애에 낙인을 씌우는 법이다. 성인의 합의에 따른 성행위를 처벌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그 어떤 명목을 들어도 정당화 할 수 없는 헌법상 기본권의 과도한 침해다.

 

이 법의 적용과 관련한 변화와 진전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지난 2022년 4월 대법원은 전원합의체 판결을 통해 2017년 색출수사 사건 당시 군형법 제92조의6 위반 혐의로 기소된 군인들에 대해 무죄 취지의 파기환송 결정을 내린 바 있다. 당사자가 동성의 군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영외의 사적 공간에서 자발적 의사 합치에 따라” 이루어진 성관계를 처벌할 수 없다는 것이 판결의 요지였다. 유엔 자유권위원회, 사회권위원회, 고문방지위원회, 국가별 정례인권검토(UPR) 등 국제 인권기구들에서도 한국 정부에 대해 해당 조항을 폐지할 것을 반복적으로 권고해왔다.    

 

그러나 오늘 헌법재판소는 과거 세 차례의 합헌 판결과 마찬가지로 군형법 제92조의6이 헌법에 위반되지 않는다고 판단하며, 지난 과오를 되풀이 했다. 군대의 상명하복 위계질서를 운운하며 해당 법이 동성 간 성적행위에만 적용하여 명확성의 원칙에 위반되지 않는다는 논리가 구태의연하게 반복되었다. 동성 간 성적행위만을 처벌하는 불합리한 차별을 군의 전투력 보존으로 정당화했다.

 

후천성면역결핍증예방법상 19조 전파매개행위금지조항은 어떠한가. 전파매개행위죄는 1980년대 HIV/AIDS가 처음 발견되었던 당시 질병에 대한 과도한 공포를 바탕으로 ‘동성애는 에이즈의 원흉’이라 낙인찍어온 오랜 역사 위에 놓인다. 치료제가 개발되지 못해 질병의 전파를 범죄화하고 규율하기 급급했던, 하지만 예방효과는 커녕 낙인만 짙어졌던 구태의 악조항이다. 커뮤니티 안에서도 질병을 이유로 동료를 배제하고 삭제해온 법이다. 감염되어도 온전한 삶을 누릴 수 있는 상황에도 낙인은 질병에 대한 언급조차 꺼리게 만들었다. 이는 결과적으로 질병 예방에 해가 되었을 뿐이다.

 

최근에는 감염을 예방할 수 있는 요법들이 보급되고, 감염인 스스로도 치료를 꾸준히 하면 바이러스가 발견되지 않아 전파할 수 없다는 과학적 사실이 국제사회에 공인되기도 했다. 감염인과 비감염인이 스스로를 돌보고 예방 주체로 참여할 수 있는 상황에서도 해당 법조항은 질병 여부로 위계를 세우고 질병을 범죄화한다. 공중보건에도 해악인 조항은 커뮤니티의 내부에도 질병의 낙인과 성적 보수주의를 바탕으로 불신을 강화해온 것이다.

 

질병의 예방과 치료에 도움이 되는 것은 낙인도 범죄화도 아닌 감염인의 인권보장과 이에 기반한 의료접근성 확장이라는 점을 우리 모두는 알고 있다. 감염인의 인권을 제한하는 것은 결국 질병에 낙인을 강화하는 것이며, 이는 곧 질병을 음지화하여 예방과 치료에 저해가 될 뿐이다. 지금 대다수의 감염인들은 치료를 받으며 HIV/AIDS예방에 앞장서고 있다. 지금 당장 필요한 건 질병을 범죄의 낙인으로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누구라도 예방의 주체로서 공동체의 안녕을 돌보는 일이다. HIV 감염인을 범죄화 하는 위헌적 조항의 존재 이유로 ‘국민의 건강보호’를 드는 헌법재판소의 판결이 설 자리가 없는 이유다.  

 

하지만 이번 헌법재판소의 두 개의 합헌 판결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두 법의 위헌성을 다시 한 번 명확히 확인할 수 있었다. 군형법 제92조의6과 관련하여 헌법재판소는 지난 2016년 합헌 판결 때와 달리 이번 판결 때는 동성 군인 간의 합의된 성적 행위를 처벌하는 것은 평등원칙 위반이라는 위헌 의견을 밝혔다. 해당 조항을 비판하며 지속적으로 폐지를 주장해온 성소수자 운동과 커뮤니티의 성과라고 할 수 있다. 

 

전파매개행위금지조항과 관련해서는 “바이러스가 억제된 상태의 감염인에게 전파가능성이 없다”는 과학적 사실을 부정하지 못했다. 이는 2022년 11월 공개변론을 비롯하여, 그동안 보건의료 전문가 등 각계의 전문가와 HIV/AIDS 인권활동가들이 질병에 대한 과학적 사실을 꾸준히 설명하고 해당 조항의 위헌성을 알려 온 노력에 기반한 성과이기도 할 것이다. 바이러스가 억제된 상태의 감염인은 전파가능성이 없다는 사실을 인정한 헌법재판소의 판결은 그 자체로 해당 조항의 위법성을 드러낸다. 

 

비록 오늘 헌법재판소는 군형법 92조의6 추행죄와 후천성면역결핍증예방법 19조 전파매개행위금지조항을 합헌이라고 판단했지만, 이미 시민사회와 성소수자 인권운동은 오랜 시간 해당 법조항의 위헌성과 이들 법조항이 성소수자와 HIV/AIDS 감염인의 삶과 우리 사회에 미치는 해악을 문제삼으며 지속적으로 폐지를 요구해왔으며, 이번 판결에서도 두 법의 위헌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성소수자의 평등권을 부정하는 반인권적인 이들 조항에 대한 비판과 폐지를 위한 투쟁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2023. 10. 26.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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