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G
성명 및 논평
Solidarity for LGBT Human Rights of Korea

 

[논평] 군형법 제92조의6 위헌의견의 평등권 주장, 성소수자 커뮤니티의 성과입니다

 

10월 26일, 헌법재판소가 군형법 제92조의6 추행죄에 대해 4번째 합헌 판결을 내렸습니다. 합헌의견은 2022년에 있었던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단을 인용해 이 법이 ‘사적 공간이 아닌 군 공간에서 이뤄진 동성 간 성행위’를 처벌하는 법이라고 처벌 범위를 한정 지으며 이 법의 처벌 대상이 불명확하지 않다고 판단했습니다. 또한 기존에 그밖의 추행이 무엇인지 예시로 제시되었던 용어 ‘계간’이 애매하게 ‘항문성교’로 바뀌었지만, 기존의 계간이 동성 성행위를 의미하기 때문에 개정취지를 생각하면 이 법은 ‘군인 간 동성 성행위를 처벌하는 법’이라는 게 명확하다고 못 박았습니다.

 

합헌의견은 정말 변한 게 없습니다. 합헌의견의 핵심은 줄곧 군대가 여전히 압도적으로 남성이 많고 혈기왕성하기 때문에 동성 간 성적교섭이 빈번히 일어날 것이기에 비정상적 성적 양태를 처벌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행정적 징계로는 불충분하고, 형사처벌로 다뤄야만 효과적으로 방지할 수 있다는 게 4번의 합헌의견의 공통점입니다.

 

나아가 이번 합헌의견은 우리나라 군인들이 성적 대상화를 당할 우려를 부담해서는 안 되기 때문에 이 법이 존치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 주장에 의하면 동성애자의 존재만으로 국방력에 심대한 위협이 됩니다. 동성 간 성적 행위를 비정상적이라고 규정하는데서 나아가, 이제는 욕구 자체를 문제시한 것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생각해보면 이번 합헌의견은 이 법이 폐지되어야 할 이유를 참 잘 설명해주었습니다. 이 법의 존재로 성소수자들이 위축되고, 스스로를 자책하거나 숨기게 되는 차별과 낙인의 효과가 있다는 것을 헌법재판소가 주장한 꼴입니다. 단순 동성 성행위 뿐 아니라 동성애라는 성적지향 자체를 문제 삼고 있다는 것을 명시한 대목인 것입니다.

 

진전된 위헌의견에 주목합니다. 군형법 제92조의6 위헌의견에서는 단 한 번도 평등권 위배 의견이 나온 적이 없습니다. 이번 위헌의견에서는 동성 군인 간의 합의된 성관계를 이성 간 성관계가 다르게 단순 징계가 아니라 최후 수단이 되어야 할 형사처벌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동성 간의 성적 행위가 비정상적인 성적 교섭행위임을 전제로 한 것”이지만, “동성 간의 성적 행위가 일반인에게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일으키게 하고 선량한 도덕관념에 반하는 행위라는 종래의 평가를 이 시대 보편타당한 규범으로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판시했습니다.

 

그러면서 동성 성행위가 사적 공간 이외에서 이뤄지더라도 해당 행위가 공연성을 수반해 군 생활과 군기에 악영향을 줬는지는 구체적인 사례에 따라 판단할 수 있는 것이지 단순히 동성 성행위가 발생했다고 그게 악영향을 줬다고 단언할 수 없다고도 했습니다. 즉 실제 영향에 대해 판단하지 않고, 동성 성행위를 필연적으로 군 생활과 군기에 유해하다고 연결되는 것 자체가 차별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법의 존재로 “‘아직 체포되지 않은 범죄자’라는 인식 하에 본인의 성적 지향에 대한 모멸감이나 적발의 두려움 속에 군 복무를 하게 된다”는 것이죠.

 

이런 합리적 판결이 나올 수 있었던 것은 성소수자 커뮤니티가 계속 사회에 모습을 드러내고, 권리를 주장해왔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또 다시 합헌 판결이 나왔지만, 판결의 내용은 확실하게 변화하고 있습니다. 이제 더 이상 성소수자를 낙인하고 차별해서는 안 된다는 인식이 일반화되고 있습니다. 기존에 아예 다뤄지지 않던 평등권이 전면적으로 주장된 것은 온전히 우리 모두의 성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세상이 변화한다는 것을 확인했으니, 우리는 또 다시 이 법의 폐지를 향해 나아가면 됩니다. 보이지 않던 것을 보이게 만들고, 들리지 않던 것을 들리게 만들며 계속 성소수자의 권리와 존엄을 주장하면 됩니다. 우리가 용기 내어 나서면 세상은 변합니다. 오늘 판결에 굴하지 않습니다. 시대착오적인 판결을 넘어, 성소수자 커뮤니티와 인권 지지자들과 함께 우리의 평등을 위해 나아갑시다.

 

2023년 10월 26일

군관련성소수자인권침해차별신고및지원을위한네트워크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공지] 상담 및 인터뷰 요청 전 꼭 읽어주세요! 동인련 2010.05.12 85403
583 [성명서] 대법원의 반인권적 군형법상 추행죄 판단 판결을 규탄한다! 동인련 2008.06.16 6367
582 [성명서] 대법원의 반인권적 군형법상 추행죄 판단 판결을 규탄한다! 동인련 2008.06.16 6345
581 [성명서]정부의 대국민 전면전 선포를 규탄한다 - 정부의 대국민담화문에 대한 인권단체 입장 및 경찰폭력 규탄 동인련 2008.06.30 7472
580 [성명] 제성호를 인권대사로 임명하는 정부에 인권은 없다. 동인련 2008.07.25 6415
579 [긴급성명] 백골단의 부활, 경찰기동대 창설을 규탄한다! 동인련 2008.07.30 6262
578 [기자회견문]홍준표 한나라당 원내대표를 포함한 국회는 죽음을 각오한 노동자들을 외면하지 마라 동인련 2008.08.04 6315
577 [인권단체연석회의]<기자회견문> 경찰기동대 및 전․의경은 시민의 기본권 억압도구인가 & 덧붙임>경찰청의 경찰관의 인권 준수 이행에 대한 질의서 동인련 2008.08.07 7394
576 [기자회견문] 누리꾼의 표현의 자유와 언론소비자 운동을 지지한다! 동인련 2008.08.07 8015
575 <인권단체 공동성명서> 인권침해 감시까지 진압하는 초법적이고 오만한 경찰을 규탄한다. 동인련 2008.08.18 8208
574 < 공동 규탄 성명> 마포서, 여성연행자 속옷까지 벗겨가는 모욕행위 일삼아 연행자에 대한 반인권적이고 불법적인 처우를 사과하고 재발 방지책을 마련하라. 동인련 2008.08.18 9083
573 [인권단체연석회의 성명] 촛불시위 네티즌 구속은 민주주의를 구속하는 것이다 동인련 2008.09.03 6901
572 [인권단체연석회의 성명]국가인권위원회 최윤희·김양원 위원 사퇴하고, 이명박 정부는 공개적인 인사추천 검증 시스템을 도입하라! 동인련 2008.09.11 6990
571 [기자회견문] 건강보험 파탄내는 거품약가 인하하라! 동인련 2008.09.19 5539
570 비정규직 철폐를 위한 만인 선언문 동인련 2008.09.23 5904
569 [기자회견문]보건복지가족부는 괜한 자격심사 운운말고 조속히 글리벡·스프라이셀 약가인하를 진행하라!! 동인련 2008.09.26 6047
568 [인권단체연석회의] 기륭전자 앞 집단폭행을 묵인, 방조하고 시민들을 연행한 경찰을 규탄한다!! 동인련 2008.10.21 5743
567 [인권단체연석회의 성명] 반인권적 국가인권위원 김양원은 즉각 퇴진하라! 동인련 2008.10.27 6232
566 [인권단체연석회의] 행안부는 인권에 대한 ‘사회적 물의’를 중단하라 동인련 2008.11.21 6026
565 헌법재판소는 군사법원의 군형법 92조 위헌법률심판 제청을 수용하라! file 동인련 2008.12.09 6544
564 서울시교육청은 '굴종의 교육'을 강요하지 말라 - 교사 7인의 무더기 해직 사태를 바라보며 동인련 2008.12.12 7563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 31 Next
/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