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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 및 논평
Solidarity for LGBT Human Rights of Korea

 

[논평] HIV감염인이 ‘건강’을 온전히 누릴 수 있는 사회가 가장 건강하고 안전하다 
- 「제2차 후천성면역결핍증 예방관리대책(2024-2028)」발표에 부쳐

 

지난 3월 28일, 질병관리청은 “에이즈! 신규감염 제로, 사망 제로, 차별 제로를 향하여”라는 이름으로 제2차 후천성면역결핍증 예방관리대책을 발표했다. 질병관리청이 제시하고 있는 HIV감염인 건강권 보장 등의 5대 추진 전략 아래 15개 핵심과제와 45개 세부과제 중 차별 제로라는 슬로건처럼 고무적인 지점과 한켠 질병관리청이 놓치고 있는 문제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질병관리청은 신규감염 예방의 추진전략 아래 프렙(HIV 노출 전 예방요법, PrEP;Pre-exposure prophylaxis for HIV) 활용 확대를 과제로 삼았다. 기존 프렙의 처방을 감염인의 성관계 파트너에게만으로 한정하던 것을 ‘처방을 원하는 사람’으로 진척시키고자 하는 것은 꼭 필요한 일이며, 특히 프렙을 위한 복제약을 국내에 도입하려는 계획은 매우 괄목할만 하다. 이 계획이 실효성을 갖기 위해서는 성적으로 활발한 사람이 스스로 자신의 예방수단을 선택하고, 프렙에 접근할 수 있는 사회문화적 환경을 조성하는 것도 필요하다. 성적즐거움을 옹호하고, 포괄적 성교육을 비롯해 성적 즐거움을 얻을 수 있는 다양한 지식이 전생애에 걸쳐 낙인없이 제공되어야 프렙 요법이 성공을 거둘 수 있다. 프렙 활용이 전파매개행위죄 폐지 및 U=U 캠페인 활성화와 동시에 이루어져야 하는 이유는 반드시 철폐되어야 할 HIV/AIDS에 대한 성적낙인이 핵심적인 걸림돌이기 때문이다. 

 

한편 프렙 또한 의약품 접근권의 맥락에서 사고되어야 한다. 초국적 제약회사로 하여금 각종무역협정의 특허권을 획득하게 하여 시민의 건강권을 기업의 사적 이윤으로 팔아넘기는데 일조해온 과오를 정부는 철저히 반성하고 개선해야 한다. 공중보건을 위협해온 것은 HIV감염인이 아니라 시민의 건강권을 담보로 폭리를 취하며 의약품 접근권을 저해해온 초국적 제약회사와 그것이 가능하도록 시민의 건강권을 협상테이블에 올려놓고 타협한 정부다. 사람의 건강권은 사고 파는 상품이 아니어야 하고 타협의 대상은 더더욱 아니어야 한다. 따라서 거의 동일한 효능을 가지면서 가격이 매우 저렴한 복제약의 도입을 프렙에만 한정할 것이 아니라 전체 시민들의 건강권을 위해 점차 넓혀갈 것을 검토해야 한다. 돈이 없고 가난한 사람에게도 충분한 치료와 필요한 의약품에 대한 접근이 보장되어야 한다. 

 

‘적극적 환자 발견’의 전략 아래 HIV 확인 검사 기관을 민간 의료기관까지 확대하겠다는 계획에는 우려를 표한다. 발표한 계획을 자세히 살펴보면 감염인 상담사업에 대한 언급도 있지만, 이것이 검사기관으로서 확대하려는 민간 의료기관까지로 연결되지 않았을 때에는 오히려 상담 제공의 부족으로 매우 위험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지금까지 질병관리청의 정책은 신속진단키트 배포, 자가진단 등으로 진단과 확인에 그 초점이 맞춰져 왔고 HIV 확진을 받은 초기 감염인에 대한 상담 정책은 매우 부족했다. 충분한 정보제공과 검사 및 치료에 대한 동의과정, 상담제공의 부재는 초기 감염인으로 하여금 매우 큰 불안을 야기하여 때때로 자살위기를 겪게 한다. 질병관리청이 제시하는 ‘적극적 환자 발견’의 전략과 ‘신속하고 지속적 치료’ 전략이 실효를 가지려면, 반드시 진단과 상담이 매우 긴밀하고 유기적으로 연결될 수 있도록 설계하는 것이 먼저 필요하다. 

 

1차 계획(2019~2023)과 달리 이번 계획에 포함된 HIV감염인의 ‘건강권 보장’ 전략, 그리고 그 아래 감염인을 위한 요양과 돌봄 지원, 낙인과 차별 해소의 과제는 세밀한 논의와 구체적 실천을 통해 반드시 달성하기를 바란다. 관리와 치료, 교육의 전략에만 머물지 않고 HIV감염인 건강권 보장으로 확장된 전략의 방향성을 환영한다. 켜켜이 쌓여온 의료기관으로부터의 거부가 하루빨리 종결되어야 하며, 정부는 의료차별을 방지할 수 있는 법제도적 장치를 보완하는 방안도 제시해야 할 책임이 있다. 다만 특정 요양시설을 HIV감염인 요양시설로 전환하려는 계획은 임시적 방편으로서 사용할 수 있겠으나, 종국에는 모든 의료기관의 서비스를 HIV 감염여부와 관계없이 누구나 차별없이 안전하게 이용할 수 있는 보건의료체계를 마련할 것을 목표로 삼아야 할 것이다. 

 

한편 낙인과 차별의 문제는 비단 의료환경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도 짚는다. HIV감염인의 노동권 보장을 위한 과제와 중첩된 성적낙인의 피해를 가지는 여성 HIV감염인의 현실, 구금시설의 HIV감염인 인권침해, 그리고 미등록 이주 HIV감염인에 대한 치료의 문제와 HIV감염인을 범죄화하는 전파매개행위죄 폐지 등도 당면과제로 삼아야 한다. 

 

2024년 HIV/AIDS인권활동가네트워크는 미등록 이주 HIV감염인의 치료, 보편적 의약품/치료 접근권, HIV감염인의 노동권, 구금시설의 HIV감염인 인권, 약물 사용자가 직면한 현재, 여성 HIV감염인의 인권 등 산재해 있는 에이즈 인권운동의 과제에 대해 깊이있는 공부와 연구를 시작했다. 축적된 자료와 공부의 시간은 HIV감염인에 대한 범죄화와 성적낙인, ‘의료관광’이라는 이름의 이주민 혐오, 몇겹으로 더해지는 여성 혐오, 건강권을 담보로 이윤을 창출하는 초국적 제약회사의 횡포, HIV/AIDS에 대한 무지와 편견, 차별과 낙인에 맞서 싸우기 위한 이행계획이자 도구가 된다. 2006년 에이즈인권운동이 만든 ‘HIV감염인의 인권증진이 예방의 지름길이다’는 슬로건은 여전히 유효하고 강력하며 중요하다. 더 나아가 HIV감염인이 ‘건강’을 온전히 누리는 사회가 그야말로 가장 건강하고 안전한 사회라는 것을 온 세상이 알게될 때까지 우리의 저항과 싸움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 

 

2024. 4. 2
HIV/AIDS인권활동가네트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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