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G
성명 및 논평
Solidarity for LGBT Human Rights of Korea

[기자회견문]
 

 

 

혐오를 넘어 사람을 보라!

 

 

 

 

12월1일 세계에이즈의 날은 에이즈 예방과 인권증진을 이루겠다고 하는 전 세계 약속을 다짐하며 제정되었다. 하지만 한국사회는 세계에이즈의 날 30주년의 의미를 말할 자격이 없다. 강산이 세 번 바뀌었다고 하지만 에이즈 혐오는 더욱 강화되었다. 문란함, 흑사병, 불치병, 죽음과 같이 에이즈에 덧씌워진 부정적인 이미지는 에이즈 발견 초기 80년대에 머물러 있다. 사람을 살리는 일은 하지 않고, 죽음을 방조하고 침묵해왔다. 하루하루 감염인이 몇 명 늘어나는지에만 관심 있지, 국가가 말하는 숫자에는 인권이 없다. 인권의 가치가 실현되어야 할 언론, 정치, 사회 할 것 없이 모든 영역에서 질병에 대한 공포를 부풀리기 바쁘다. HIV감염인은 사람으로서 당연히 누려야 할 존엄을 박탈당했고, 세금이나 축내는 구제불능의 존재로 그려지고 있다. 의학의 발달로 보다 건강하게 살 수 있는 삶의 조건이 마련되었다고 말하지 말라. 사회적으로 이미 사망선고를 받은 감염인들은 내재적 낙인으로 인해 마음이 새까맣게 타들어가고 있다.

 

2017년은 HIV감염인과 에이즈환자들에게 특히 잔인한 한 해였다. 촛불을 들었던 많은 시민들은 정권이 바뀌고 적폐를 청산할 수 있겠다는 기대를 품고 있었겠지만, 감염인은 질병을 전파할 수 있는 바이러스로 인식될 뿐 인권을 누릴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지난 10월 용인과 부산에서 일어난 여성 감염인 성매매 사건으로 인해 질병감염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는 더욱 커졌다. 언론은 ‘특종’ ‘단독’이라는 이름을 붙여가며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을 악용해 자극적인 보도를 앞 다투어 해댔다. 국정감사장에서는 어떠했나. 에이즈 관리에 구멍이 났다며 마치 감염인을 추적 감시해야 한다는 위험한 발상이 거리낌 없이 제기되었고, ‘귀족환자’ ‘세금도둑’ 운운하며 감염인 치료비 지원을 세금낭비로 포장하는 정치인들의 발언이 넘쳐났지만 이를 제지하거나 잘 못되었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었다. 10-20대 신규 감염인이 늘어나고 있다는 지적을 하면서도 에이즈 예방과 인권증진을 위해 필요한 정책과 예산에 대해 말하는 사람은 없었다. 동성애 혐오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에이즈의 부정적 이미지를 악용하는 사례는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지만, 그것이 에이즈 예방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말하는 사람은 없었다.

 

감염인이 경험하는 의료차별, 진료거부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못하고 있다. 아파도 아프다고 말하지 못하는 현실. 아파도 치료받지 못하는 현실. 아프면 그냥 아픈 대로 참고 견뎌내야 하는 현실이 반복되고 있다. 시각장애 편마비가 있던 감염인이 국립재활원 치료를 거부당했다. 국가인권위원회에는 이미 4건의 진료거부 사례가 접수되어 있다. 노인요양병원협회의 입원거부로 인해 중증에이즈환자가 갈 만한 요양병원은 거의 없다. 의료기술의 발달이 무색할 정도로 병원의 문턱은 여전히 높기만 하다. 차별을 받아들이고 모욕을 견뎌내야 살아갈 수 있는 끔찍한 현실이 반복되고 있다. 유엔에이즈(UNAIDS)는 2017년 세계에이즈의 날을 맞아 감염인 건강권의 중요성을 알리는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HIV감염인들도 달성 가능한 최고 수준의 신체적 정신적 건강을 누릴 권리가 있다고 선언하며 예방 및 치료, 자신의 건강에 대한 결정, 차별없는 대우를 받을 권리가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한국은 진료거부와 의료차별의 문제가 횡횡하고 있다. 기피하고 거부하고 구분하고 배제하는 진료환경에 대해 정부는 해결하기는커녕 소극적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치료를 방해하는 혐오와 차별의 구조는 너무도 견고해 개선할 수 있는 작은 실마리마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는 존재하고 살아갈 것이다. 날카로운 혐오의 칼날이 목 끝에 와 있지만, 12월1일 세계에이즈의 날을 맞아 존엄한 삶을 누릴 자격이 있는 사람임을 선언한다. 인간답게 살고자 하는 감염인들의 최소한의 요구에 정부는 응답해야 한다. 치료가 곧 예방이고, 차별이 존재하지 않을 때, 인권과 성평등이 가능한 사회를 만들 때 비로소 에이즈 예방을 이룰 수 있다는 국제사회의 권고는 한국사회에 던지는 경고와도 같다. 말로만 에이즈 예방이 필요하다고 말하지 말라. HIV감염인의 인권이 보장되는 사회야말로 에이즈 예방을 이룰 수 있다는 진리를 잊지 말아야 한다. 독버섯처럼 번져나가는 에이즈 혐오에 침묵한다면, 인권의 가치를 상실하는 끔찍한 결과를 얻게 될 것이다.

 

우리는 다음과 같이 요구한다. HIV감염인의 의료차별, 진료거부 문제가 재발되지 않도록 정부차원의 대책을 즉각 마련하라. 에이즈 혐오와 두려움을 강화시키는 언론보도는 에이즈 예방에 전혀 도움 되지 않는다. 지키지도 못할 언론보도지침이 아니라, 정부 차원의 실효성 있는 대책을 마련하라. 감염인 당사자 참여를 보장하는 국가 차원의 에이즈 대책위원회를 구성하라. 감염인 복지증진의 근거를 마련하고, 감염인을 잠재범죄자 취급하는 모든 정책과 제도를 폐지하라. 이 요구들을 수용하는 것이야 말로 세계에이즈의 날의 정신을 제대로 구현하는 것이다.

 

12월1일 반짝하는 하루 이벤트는 필요 없다. 365일 우리는 사람답게 살기 위해 더 큰 목소리로 외칠 것이다. 인권은 목숨이다.

 

 

 

 

2017년 11월30일


HIV/AIDS인권활동가네트워크 / 성소수자 차별반대 무지개행동 / 차별금지법제정연대 /
평등과 연대로! 인권운동 더하기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공지] 상담 및 인터뷰 요청 전 꼭 읽어주세요! 동인련 2010.05.12 84870
176 [논 평] 군대 내 동성애자 사병 자살, 한 사람의 죽음을 애도하며. 1 오리 2013.01.18 6080
175 [논 평] 우익은 더러운 네거티브 선거공세에 성소수자를 ‘이용’하지 말라! 1 동인련 2011.10.25 5188
174 [노바티스 패소, 특허독점에 맞선 전 세계 환자들의 승리] 인도대법원의 판결을 환영한다!! file 동인련 2013.04.02 4606
173 [노동절 기념 성명] 어제를 넘어 내일로 나아가자 - 2024 노동절에 부쳐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2024.04.30 30
172 [긴급성명] 쌍용 노동자와 가족을 죽음으로 몰아가는 사측과 정부를 규탄한다! 동인련 2009.07.20 6510
171 [긴급성명] 백골단의 부활, 경찰기동대 창설을 규탄한다! 동인련 2008.07.30 6262
170 [긴급성명] 박영선위원은 성소수자 차별선동을 멈춰라! 더불어민주당은 성소수자 유권자들에게 즉각 사과하라!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2016.02.29 4147
169 [긴급규탄성명] 성소수자 반대하고 불법연행 불사하는 문재인후보 규탄한다!! 오솔 2017.04.27 584
168 [긴급규탄성명] 성범죄 공모자 홍준표는 동성애 혐오 선동하는 그 입을 닥치고 사퇴하라! 홍준표와 맞장구치며 성소수자 혐오 조장하는 문재인은 사죄하라! 오솔 2017.04.27 612
167 [긴급 성명]육군 동성애자 군인 색출 수사 피해자 A대위 구속영장발부를 규탄한다! 부당한 성소수자 색출 수사로 구속된 A대위를 즉각 석방하라!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2017.04.17 3756
166 [긴급 성명] 이명박 정부의 아프가니스탄 재파병 시도 반대한다 동인련 2009.10.28 5249
165 [긴급 성명] 사람 목숨 위협하는 경찰 폭력, 이제는 끝내야 한다.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2015.11.16 651
164 [기자회견문]홍준표 한나라당 원내대표를 포함한 국회는 죽음을 각오한 노동자들을 외면하지 마라 동인련 2008.08.04 6315
163 [기자회견문]우리와 만나지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 대선 후보들은 응답하십시오!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2017.04.03 632
162 [기자회견문]보건복지가족부는 괜한 자격심사 운운말고 조속히 글리벡·스프라이셀 약가인하를 진행하라!! 동인련 2008.09.26 6047
161 [기자회견문]남대문경찰서는 졸속적 집회신고 절차를 철회하고 안전한 퀴어문화축제를 위한 대책을 마련하라!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2015.05.27 1260
160 [기자회견문]국립재활원의 HIV감염인 재활치료거부는 장애인차별금지법 위반이다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2017.11.06 154
159 [기자회견문]국가보안법을 폐지하지 않는 사회는 또 다른 박근혜 정권을 낳는 불행한 역사의 반복이다.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2016.12.01 655
158 [기자회견문]교육부의 차별조장 <학교성교육표준안> 도입을 즉각 중단하고 관련 내용을 전면 재검토하라! file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2015.04.13 1627
157 [기자회견문]“유승희 위원장은 성평등 정책 관련 신문에서 성소수자 관련 의제의 참고인들을 거부한 이유를 해명하고, 국회는 여성가족부 국정감사를 제대로 실시하라!"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2015.10.12 951
Board Pagination Prev 1 ...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 30 Next
/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