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G
공지사항
Solidarity for LGBT Human Rights of Korea

 

[논평]

또 다른 변희수들과 함께 살아갈 시간을 위해

故 변희수 하사의 전역처분 취소 판결 너머

 

2020 1 22, 트랜스젠더 군인 변희수 하사의 커밍아웃 이후로 한국 사회는 여성의 조건을 토론거리로 치부하며 트랜스 혐오를 일삼아 왔다. “중성화 했다고 여성 되냐”, “군대는 그런 곳이 아니다”, “이기심을 인권으로 포장하지마라는 말들은 트랜스젠더 당사자들의 스트레스를 가중시켰다. 용기 내어 권리를 주장한 이의 존엄을 산산조각내고 차별을 종용한 데 가장 막대한 책임을 갖는 집단이 국방부 및 육군본부라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전역처분 취소 소송을 이어가는 동안 육군본부측이 재판장에서 뱉은 발언들을 잊지 못한다. 이들은 고인의 정신질환 투병 여부를 문제시하거나, 헌법이 금지하는 성별이 아닌 성별 정체성에 의한 차별이라는 둥 해괴한 소리를 일삼았다. 인두겁을 썼다면 할 수 없을 말들은 국가가 행한 일방적 전역 처분이 부당했음을 스스로 시인하며 직접 바닥을 내보인 꼴이 되었다.

 

그리고 10 7, 대전지법은 전역처분 취소 소송에서 원고인 변희수 하사의 승소 판결을 내렸다. 너무도 당연한 판결이었고, 그만큼 늦게 찾아온 소식이었다.

 

물론 판결 내용에는 한계가 있다. 판결문은변 전 하사는 수술을 마친 후 청주지방법원에서 성별 정정을 허가받아 여성으로 봐야한다고 밝혔다. 군인사법상 심신장애 여부 판단을 여성 기준으로 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이는 다시 한 번 여성의 기준을 법적 성별과 수술 여부로 판단하는 젠더 규범의 보수적인 효과를 연장한다. 하지만 트랜스젠더 모두가 성인이거나, 수술을 원하거나,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거나, 성별이분법으로 자신을 규정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판결문은성소수자의 인권 및 사회적 눈높이를 고려하여 국가적 입법이 필요하다고 적는다. 이는 국가가 트랜스젠더의 생존 너머 권리를 보장해야 함을, 원하는 삶을 선택할 수 있는 제도적·사회적 환경을 만드는데 앞장 설 것을 요구하는 것이기도 하다.

 

전역 처분부터 1 9개월간 언론과 미디어는 사건 시점에 집중적으로 트랜스젠더 이슈를 알렸다. 하지만 당사자를 논쟁거리로만 부각하는데 집중하는 반면 트랜스젠더 인권보장을 위한 목소리를 내는 데는 소극적이었다. 이는 변 하사를 비롯한 많은 트랜스젠더의 부고를 맞은 지금도 여전하다. 여느 트랜스젠더의 부고가 그러하듯 당신의 공백은 시민사회와 성소수자 커뮤니티에 때늦은 부채감으로 다가왔다. 우리는 트랜스젠더로 커밍아웃한 변 하사에게는 관심이 있었지만 전역 당일 퇴직금조차 받지 못하고 어릴 적부터 꿈꿔오던 부사관직에서 쫓겨난 그녀의 일상을 얼마나 살펴왔는지는 다시 묻게 된다. 

 

이러한 부채감은 국가가 트랜스젠더를 시민으로 인정하지 않는 불평등에 바탕 한다. 국방부는 이번 판결을존중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판결을 앞둔 최근에도 병무청은 성별정정을 거친 트랜스젠더 여성에게신체검사를 받으러 오라고 다짜고짜 종용하는 작금의 현실은, 여전히 트랜스젠더에 대한 어떤 고려가 이루어지고 있는가를 의심하게 만든다. 군이 진정으로 이번 판결을 존중한다면, 제대로 된 반성과 사죄를 표하며 변화를 모색하는 의지를 보여야 한다.

 

그런 점에 이번 판결은 또 다른 시작을 알린다. 국방부와 육군 본부는 성소수자 군인 모두가 함께 공생할 수 있는 제도와 지원을 갖추어야 한다. 트랜지션과 성별 정정 사이에서 자신의 일상과 욕구를 조율하느라 고군분투하는 당사자들의 삶을 살피고, 공존을 위한 환경을 구축하는 것이 국가와 사회성원의 의무임은 두말할 여지가 없다.

 

그녀가 멈춘 자리에서, 우리는 또 다른 희수들과 함께 살아갈 삶을 갈망한다. 성별정체성을 좌우하는 배타적인 기준을 변화시키며, 차별 없는 평등한 사회를 만들어 나가는 발걸음을 멈추지 말자. 우리에 발걸음에 국가도 함께 할 것을 요구한다.

 

2021 10 7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공지사항 행성인 후원으로 함께 변화를 만들어요! file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2024.06.11 14
공지 공지사항 행성인 단체 안내서 - 평등한 행성으로의 초대 file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2024.05.17 122
공지 활동보고 행성인 2023 활동보고서 file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2024.03.27 179
공지 공지사항 2024년 행성인 정기 회원총회 자료집 (+2024 행성인 활동 연간계획표) file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2024.02.26 255
공지 활동보고 2023 행성인 활동영상 file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2024.01.02 247
공지 공지사항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정관 및 내규 file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2023.02.20 593
공지 공지사항 행성인 사무국 운영시간 안내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2019.03.21 6156
공지 공지사항 행성인 온라인 소통 창구 및 조정위원회 안내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2018.04.13 1989
공지 공지사항 평등한 공동체를 만들기 위한 약속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2015.01.06 50972
187 공지사항 6월 1일 홍대에서 하는 퀴어퍼레이드에서 만나요~ file 덕현 2013.05.28 13069
186 활동보고 동인련 15주년 기념 사무실 이전을 위한 후원의 밤 '오늘은 후원이夜!'에 보내주신 성원에 감사드립니다. file 동인련 2012.09.23 13101
185 공지사항 7월 20일~21일 울산가는 현대차 희망버스에 함께 가요 file 덕현 2013.07.17 13108
184 공지사항 사무실 이전으로 1월 18일 부터 21일까지 사무실 업무가 지연되는 점 이해 부탁드립니다. file 동인련 2013.01.14 13134
183 공지사항 봄을 알리는 동인련 웹진 '랑' 3월호가 나왔습니다! file 모리 2013.03.19 13143
182 공지사항 121주년 세계 노동절 성소수자 참가단에 함께해요! file 동인련 2011.04.26 13157
181 활동보고 3월1일~2일 진행된 청소년 성소수자 또래상담가 양성교육이 잘 마무리되었습니다. file 정욜 2013.03.04 13190
180 공지사항 5월1일,마포구청에서 야유회~노동절 참여하러 시청으로 고고씽~ 이경 2013.04.29 13260
179 공지사항 이래놓고 인권조례? 청소년 성소수자 인권을 지키는 온라인 서명에 참여해주세요!(1월 18일까지) file 덕현 2014.01.10 13453
178 공지사항 동성애자인권연대 회원, 후원회원이 되어주세요! 무지개 텃밭에 성소수자 인권이 잘 자랄 수 있도록 후원을 부탁드립니다! file 병권 2013.12.16 13479
177 공지사항 회원여러분, 2013년 동인련 송년회에 초대합니다. file 덕현 2013.11.27 13486
176 공지사항 차별금지법과 노동 토론회 노동, 차별금지법을 말하다. 1 file 동인련 2013.07.22 13491
175 공지사항 7월27일 에이즈, 다르게 생각하기 <살롱 드 에이즈> 마지막시간 <이별파티> 영화를 함께보고 이야기를 나눕니다. 정욜 2013.07.16 13517
174 살롱 드 에이즈, - 에이즈에 대해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누는 브레이크타임 - 인권교육을 시작합니다. file 정욜 2012.07.26 13522
173 공지사항 사랑하며 살아가는 동성애자들의 노동이야기.. 워크샵에 초대합니다~! 3 file 동인련 2010.02.09 13535
172 공지사항 12월 14일 동인련 신입회원 모임 "디딤돌"에 신청해주세요~ file 덕현 2013.11.27 13628
171 공지사항 2012년 2월11일 동성애자인권연대 정기총회를 개최합니다. file 정욜 2012.02.02 13654
170 공지사항 2009 겨울 동인련 청소년 세미나 “청소년 이반, 인권활동을 위한 첫 걸음” 시작합니다. file 동인련 2009.01.15 13667
169 공지사항 [긴급] 지금 교육감이 서울시학생인권조례 속 성소수자 차별금지, 권리보장 조항들을 삭제하려고 합니다! 청소년 성소수자들의 반대 선언에 함께해주세요! file 덕현 2014.01.09 13692
168 공지사항 <살롱드에이즈 7월> 7월13일, 27일 캠페인영상과 에이즈 이슈를 다룬 영화를 함께보며 나누는 시간, 편견과 차별을 뛰어넘을 색다른 인권교육 자리에 함께해요! 정욜 2013.06.26 13764
Board Pagination Prev 1 ... 93 94 95 96 97 98 99 100 101 102 ... 107 Next
/ 1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