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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_이달의 투쟁사업장] 복숭아로 시작된 고민, 메가프로젝트를 넘어 기후정의행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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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행성인 성소수자노동권팀)

행성인 성소수자노동권팀은 올해 초부터 “이달의 투쟁사업장”을 정해 소소한 연대를 실천하고 있습니다. 매 달 투쟁하는 노동자들의 소식들을 찾고, 각 투쟁사업장들의 쟁점과 요구를 학습하며, 성소수자 노동자의 이름으로 이들에게 연대한다는 인증샷을 촬영해 행성인 SNS에 업로드 해왔습니다. 8월부터 남은 하반기동안 노동권팀은 투쟁사업장 인터뷰, 카드뉴스 제작 등 다양한 방식의 연대를 넓히며 행성인 웹진에 투쟁사업장 이야기를 연재합니다.

[노동권팀 주] 이번 달 노동권팀 “이달의 투쟁사업장” 연대는 특정 사업장에 한계를 두지 않고, 기후위기 시대에 현재에 당면한 과제를 고민하고자 했습니다. 기후정의행진에 참여하면서 최근 크게 화두가 되고 있는 3대 메가 프로젝트와 관련된 서로의 생각을 나누고 연대의 방향성을 모색했습니다.

올해 7월 생활협동조합 ‘한살림’의 소비자 조합원으로 가입했다. 일상에서 배달과 가공식품 소비를 줄이고, 제철 식자재를 활용해 건강한 밥상을 차려 그날의 한 끼를 챙기는 일이 곧 자신을 돌보는 소중한 행위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절기에 따라 생산된 식재료를 투명한 유통 과정과 공정한 가격으로 소비하고 싶다는 마음도 컸다. 하지만 막상 가입을 하고도 곧바로 실천에 옮기기는 쉽지 않았다. 바로 현재 나의 ‘지갑 사정’ 때문이었다.

올해 6월 복숭아가 제철을 맞았을 때도 한살림을 통해 구매해 보려 했다. 하지만 새벽배송이나 당일배송에 익숙해진 나에게 한살림에서 지향하는 배송 방법은 생소했고, 로켓배송으로 주문하는 복숭아가 조금 더 저렴했기에, 그리고 당장 시장에 가서 구매할 여유도 없었기에 결국 또다시 로켓배송을 선택하게 되었다. 그렇게 주문한 복숭아는 결제일로부터 약 이틀 뒤에 배송되었다. 그저 하루를 더 기다리지 못해 급한 마음에 주문한 복숭아는 맛은 있었지만, 복숭아잼을 만들기에는 알이 너무 작았다. 결국 나는 또 한 번 로켓배송으로 복숭아를 주문할 수밖에 없었다. 시간도 돈도 두 배로 버리고 나서야 비로소 잼을 만들 만한 퀄리티의 복숭아를 얻을 수 있었다.

만일 내가 조금만 더 참을성을 갖고 한살림에서 복숭아를 샀더라면, 혹은 조금만 더 시간을 할애해 발품을 팔았더라면 만족할만한 복숭아를 얻을 수 있었을까? 한살림과 로켓배송, 그리고 시장에서 본 복숭아의 가격은 천차만별이었다. 이것은 단순히 판매하는 사람들이 책정한 가격의 차이일까? 아니면 누군가의 고된 노동력을 갈아 넣고, 농장에서 소비자의 손으로 오기까지 여러 차례의 유통 과정을 거치며 가격이 후려쳐진 결과일까?

간편과 쾌적을 위한 갈아넣기

비단 복숭아만의 문제는 아니다. 올해 기후위기로 인한 이상기온으로 전국 농가에서는 한 해 농사를 망쳤다는 농부들의 곡소리가 언론을 통해 끊이지 않았다. 그나마 상품으로 내놓을 수 있는 농산물을 시장에 내놓는다 해도, 농부의 손을 떠난 농산물은 여러 유통 과정을 거치며 땀과 눈물로 수확한 제값을 기대하기조차 어렵다고 들었다. 이처럼 유통 과정이 비교적 짧은 곳에서 농산물을 소비하는 데 많은 비용과 결단이 요구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리고 지금 우리 식탁을 지탱하는 먹거리 속에는 농부뿐만 아니라 누군가의 고된 노동이 숨어 있었다.

캄보디아 이주노동자들과 함께한 1,500일을 기록한 우춘희 저자의 책 《깻잎 투쟁기》 머리말에는 2018년 5월 이주노동자 투쟁 투어버스 이야기가 나온다. 전국을 돌며 문제가 있는 사업장과 관할 고용센터에 가서 시위를 열었던 당시, 현장에서 이주노동자 노동조합 사무국장을 맡고 있던 오자씨는 이주노동자의 사업장 변경을 제한하는 법을 개탄하며 이렇게 외쳤다. “우리는 노예가 되기 위해서 한국에 온 것이 아닙니다. 노동자로서 자유롭게 일하기 위해서 한국에 왔습니다.”

지금 우리 식탁의 먹거리를 책임지는 이는 과연 누구인가. 선주민 농부뿐만 아니라, 비닐하우스와 컨테이너 박스에서 기본적인 노동권조차 보장받지 못한 채 밤낮없이 밭에서 일하는 수많은 이주노동자들의 땀과 눈물이 우리 식탁을 책임지고 있다. 지자체에서 최저임금보다 높은 금액을 지급하면 다른 농장주들의 원성을 살 수 있다며 자제를 권고하고, 사생활과 여가 활동을 제한하며, 혹여라도 고된 노동으로 인해 본국으로 도망갈까봐 여권을 압수당하면서까지 일하는 이들이 바로 그들이다.

그들의 노동 환경은 또 어떠한가. 2026년 7월 중순, 전남 해남에서 폭염주의보가 발효되었음에도 태국 출신 이주노동자는 온열질환으로 사망했다. 해당 이주노동자를 고용한 농장주는 그저 사망한 노동자가 더운 나라에서 왔기 때문에 괜찮은 줄 알았다는 무책임한 말을 남기기도 했다. 폭염주의보가 발효되면 야외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즉각 일을 멈추고 휴식을 취해야 한다. 하지만 노동이 중단될 경우 이주노동자를 비롯한 현장 노동자들은 그날 받아야 하는 임금을 받지 못하고 하루를 날리게 되기도 한다.

폭염이 찾아오면 우리는 각자의 방식으로 온열질환을 예방하려 노력한다. 나 역시 집에 있는 날에는 에어컨을 켜고 정수기의 차가운 물을 마시며, 회사에서 먹을 도시락을 싸기 위해 식재료를 모바일 앱으로 간편하게 주문하면서 폭염 더위를 예방한다. 그러나 일상 속에서 쾌적함과 간편함을 누리는 뒤편에는 나 역시 누군가의 고된 노동력을 갈아 넣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에어컨과 정수기는 정기적으로 전문가의 수리를 받아야 하지만, 폭염으로 온몸이 땀에 젖어 냄새가 난다는 이유로 수리 요청을 거부당한다는 소식들, 앱 주문 건을 도착 시간에 맞추기 위해 엘리베이터가 있음에도 타지 못하고 수십, 수백 번을 뛰어다니는 택배 노동자들, 그리고 택배를 포장하기 위해 냉난방기 하나 없는 열악한 노동 환경에서 휴게시간조차 보장받지 못하고 일하다 물류센터에서 탈진해 사망했다는 소식들.

쾌적한 사무실에서 더위를 피할 수 있는 노동자들과 달리, 야외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스스로 대비해오지 않으면 어떠한 예방적 조치도 없이 폭염에 노출되어 일해야 한다. 하지만 이것이 현장 노동자들만의 문제일까? 그렇지 않다. 잠시 더위를 피하거나 폭우에 젖은 몸을 말리기 위해 찾게 되는 카페에는 서비스 노동자들의 일을 줄이겠다고 도입된 키오스크 뒤에서 밀려드는 손님들의 주문을 처리하는 서비스 노동자들이 있고, 그리고 밖에 나가기 힘들어 배달 앱으로 음식을 주문하면 이를 배달해 주는 배달 노동자들까지. 내가 현재 누리고 있는 간편함과 쾌적함, 그리고 시간을 절약하는 한 번의 터치가 곧 누군가를 더욱 열악하고 위험한 노동 환경으로 매몰되도록 등 떠미는 것은 아닐까 하는 고민이 깊어진다.

재난과 개발

이처럼 기후위기로 인해 발생하는 재난은 특정 지역이나 직군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2026년 8월 말 네팔 일대 히말라야 산맥 상층의 거대 빙하가 붕괴하면서 네팔과 티베트 자치구 접경지에서 대규모 산사태와 홍수로 수많은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 일각에서는 기후위기로 인한 이상기온이 지구 온도를 올려 히말라야 산맥의 빙하가 녹았고, 이것이 재난으로 이어졌다는 보도를 내놓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번 네팔 참사 소식을 보면서 어딘가 이상함을 느꼈다. 전 세계가 지구 온도를 올리는 데 일조했는데, 그 피해는 왜 네팔 같은 국가에만 집중되는지 평등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소위 선진국이라 칭하는 국가들은 온실가스를 최대치로 배출하고 있고, 그로 인해 생기는 대가는 온실가스 배출량이 현저히 적은 개발도상국이 감당하고 있다. 이에 네팔 정부는 기후재난에 대한 배상을 국제사법재판소(ICJ)에 제기했다고 한다. 국가적으로 산업화를 도입하는 과정이 빠를수록 온실가스 배출량이 누적되고, 그 피해는 배출량이 현저히 적은 국가에서도 동일하게 책임져야 한다는 점에서 불평등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단순히 국가 간 갈등으로 번져 배상을 요구하기에는 외교적 문제로 이어질 수 있기에, 기후재난의 원인 제공 국가와 피해 국가를 나눠 책임 소재를 가리는 방법에 대해서도 깊은 논의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기후위기로 인하여 발생하는 재난적 참사는 국제사회뿐만 아니라 국내에서도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지난 2022년과 2023년부터 현재까지, 취약한 주거 환경에 거주하는 이들이 폭우로 침수되어 안타깝게 사망하거나 냉난방 기구를 설치하지 못해 폭염으로 사망했다는 언론 보도를 접할 때마다, 기후위기로 마주하는 재난은 사회적 약자와 제도권 밖으로 밀려난 이들의 삶부터 무참하고 참혹하게 앗아간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러한 와중에 이재명 정부는 AI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단지를 축으로 한 ‘대한민국 대도약 3대 메가 프로젝트’(이하 3대 메가 프로젝트)를 추진하며, 이 프로젝트야말로 수도권 중심 사회를 해체하고 지방 소멸을 막으며 상호 간의 차별과 배제를 없앨 수 있는 ‘모두의 성장을 여는 핵심 열쇠’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부의 추진 계획만 보면 모든 이의 근심 걱정을 덜어줄 만병통치약처럼 보이겠지만, 감히 묻지 않을 수 없다. 정부가 자랑스럽게 말한 ‘핵심 열쇠’는 도대체 누구의 미래를 열어주는 열쇠이며, 누구의 삶터를 내쫓는 열쇠인가? 기후위기로 지금도 전국이 골머리를 앓고 있는데, 대규모 인프라 개발을 정답이라 믿는 열쇠는 어쩌면 또 다른 기후재난을 앞당기는 열쇠가 될 것이다.

이미 많은 이들이 알고 있듯 3대 메가 프로젝트가 추진되려면 1,500조 원 이상의 자원이 먼저 투입되어야 한다. 또한 프로젝트를 실행하기 위해 막대한 전력과 용수가 필요한데, 이를 어디서 마련할지에 대해서도 수많은 논의와 설득, 숙의 과정이 필요하다. 1,500조 원 이상의 자원과 전력, 용수를 수배하는 과정, 그리고 프로젝트 추진을 위하여 사용될 토지를 개발하는 문제까지 각 지자체와 지역 주민 간에 충분한 논의와 숙의가 이루어지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짚어봐야 한다.

우리는 과거 김대중 정부 시절부터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밀양 송전탑 건설 갈등이나, 최근 서울시 마포구의 자원회수시설 이전 갈등을 지켜보았다. 중심지의 편의를 위해 지역을 그저 ‘에너지를 얻기 위한 식민지’로 만들거나, ‘누구도 반기지 않는 비선호 시설을 심어놓는 거점’으로 삼으면서 지역 소멸을 예방하자는 말을 되풀이하는 것은 아닌가. 물론 이번 3대 메가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수차례 대국민 토론회를 거치고 의견을 청취하는 과정은 있었다고는 하나, 지역 주민들과의 충분한 논의와 숙의 없이 국가의 이름으로 밀어붙이는 프로젝트는 결코 ‘국가 경제를 발전시키는 열쇠’가 될 수 없다. 오히려 기후위기를 더욱 앞당기고 지역 주민들의 삶을 재난으로 몰아넣게 될 것이다.

지구를 불태우는 ‘3대 메가프로젝트’ 폭주를 멈춰라

기후위기로 전 세계적인 재난과 참사 소식이 이어지는 가운데, 지난 9월 19일 전국에서는 “지구를 불태우는 ‘3대 메가프로젝트’ 폭주를 멈춰라”라는 슬로건을 걸고 기후정의행진이 열렸다. 서울에서는 시청과 숭례문 일대에서 정오부터 오후 5시까지 사전 부스 행사 및 집회가 열렸다. 

나는 12시 30분경 SK서린빌딩 근처에서 노동권팀 일부 팀원과 함께 메가프로젝트규탄공동행동(준), 체제전환운동조직위, 사회대전환연대회의, 반도체산업의 정의로운 전환을 위한 공동행동, 노동당, 녹색당, 정의당이 주최하는 사전 집회에 참여했다. 당일의 높은 기온 탓인지 사전 집회 풍경을 명확히 복기하긴 어렵지만, 많은 참가자들이 3대 메가 프로젝트의 심각성을 공유하고 각자의 자리에서 이를 막아낼 방법을 모색하기 위해 모여 있었다. 

이후 사전 집회에서 발생한 열기를 식히기 위해 팀원들과 근처 카페에 들렀다가 본집회에 참여했다. 현장에는 환경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천과 택배 박스에 참가자들의 바람을 담은 구호들이 적힌 피켓과 조형물들이 눈에 띄었다. 노동권팀에서도 “919 기후정의행진 성소수자 노동자가 함께합니다”라는 문장과 함께 “노동시간 연장, 지역공동체 파괴! 숙의없는 3대 메가프로젝트 졸속 추진 반대한다!”, “성과는 장담 못함, 삶의 파괴는 지금 당장! 3대 메가프로젝트 전면 재검토하라!”, “예측불가 반도체시장, 일자리 없애는 피지컬 AI, ‘혐오시설’로 전락한 데이터센터! 3대 메가프로젝트 전면 재검토하라!”, “기후와 생명을 파괴하는 전쟁과 집단학살을 반대한다 호르무즈 파병 절대 반대!”와 같은 메시지를 담아 피켓을 제작해 본집회에서는 피켓을 부채 삼아 더위를 식히고, 행진할 때는 이를 들고 함께 걸었다.

이번 기후정의행진은 유달리 기억에 강하게 남았다. 행진을 바라보는 일반 시민들에게도 기후위기가 자신의 문제로 다가갈 수 있다는 점에 공감하며 응원을 건네주기도 했고, 기후위기로 사라진 비인간 생명체들이 조형물로서 재탄생하여 함께 행진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당일 최고 기온이 30도에 달하는 가운데 광화문역 5번 출구에서 열린송현녹지광장까지 도보로 1시간에서 1시간 반 남짓 되는 거리를 걸었다. 행진 코스의 반을 넘어가는 시점에는 비지땀이 흘러 앞사람과 부딪힐 뻔도 했고, 누군가가 행진하는 순간이 흥에 겨워 불어대는 비눗방울이 자칫 눈에 들어가 사고가 날 뻔하기도 했다. 쓰레기를 줄이겠다는 다짐으로 일회용 컵을 쓰지 않다 보니 갈증이 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두가 모여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전국적으로 알리기 위해 각자의 방식으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생각에, 고된 발걸음에 지치기보다는 오히려 힘이 더해지는 시간이었다.

마지막 장소에서 다이인(Die-in) 퍼포먼스를 하며 바라본 하늘은 너무나 평화로웠다. 나에게는 이토록 평화로운 하늘이지만, 지금도 어느 국가에서는 푸른 하늘 대신 폭탄 터지는 소리와 잿가루가 흩날리는 풍경이 일상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스쳤다.

행사를 마치고 행성인 사람들과 뒤풀이를 가는 내내 인근 쓰레기 배출 구역에 버려진 집회의 흔적들을 보았다. 그리고 그날 밤 트위터에서 몇 년 안에 내가 일하는 직군이 AI로 대체될 수 있다는 테스트를 돌려보는 트친들의 모습을 보며 다시 한번 생각했다. 기후위기는 우리 곁에서 조용히, 그러나 다양한 모습으로 이미 찾아오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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