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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_논바이너리는 00하는 중입니다][회원 에세이] FROM NOWHERE, AND I AM NOW HE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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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 트랜스젠더퀴어인권팀)

매년 7월 14일은 국제 논바이너리 가시화의 날입니다.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트랜스젠더퀴어인권팀에서는 논바이너리 가시화의 날을 기념하며 올해 논바이너리의 트랜지션을 다룬 특집 웹진을 기획했습니다. 7월부터 10월까지 한 달에 한 편씩 총 4명의 필자가 메인 주제인 ‘논바이너리의 트랜지션’에 더하여 각자의 생각과 고민을 바탕으로 한 글을 연재합니다.

작년 TDoR 집회 때 개인 기수로 섰던 깃발.
적힌 문구는 ‘당신의 곁을 지나치는 논-바이너리 젠더리스가 여기 있다!’.

NOWHERE – 어디에도 없는 존재

회상해 보면 어릴 적부터 생각하는 방식이 남달랐다. 많은 사람들이 왜 다른 이의 이름이나 취미, 심지어 행동하는 모습을 보거나 알거나 듣고선 그것을 두고 ‘여성스럽다’, 혹은 ’남자답다’는 말들 따위로 구분하는 것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초등학생 시절 또래 아이들이 ‘너희 아빠 슈렉, 엄마는 하리수’로 시작하는 노래를 타인을 놀리는 용도로 부르고 다닐 때, 맘속으로 이렇게 따졌다.

‘야, 엄마가 트랜스젠더인 게 뭐가 어때서?

꼭 직접 낳은 아이여야만 행복을 누릴 수 있는 건 아니잖아?’

아예 성별을 구분하지 않는 세상이 있으면 참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 시절에는 지정 성별이라는 말도 쓰이지 않았고, 트랜스남성과 논바이너리라는 개념조차도 매우 희소했으니 현재 나의 성별 정체성인 젠더리스로 정체화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분명 남들과는 다르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지만, 내가 속할 수 있는 곳이 없었다.

TRAUMA – 상처입은 존재

그러던 중 청소년기 시절, 온라인 커뮤니티의 유행 덕분에(?) 내가 성소수자임을 자각하게 되었다. 청소년 성소수자들을 위한 한 온라인 카페에서 활동하다가 행성인의 과거 단체명이었던 동성애자인권연대(이하 ‘동인련’)를 접했고, 인권활동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더니, 싹수부터 새빨간 존재여서 지금도 이렇게 살고 있는 게 아닐까 싶다.(웃음) 그때의 마음가짐은 참 단순했다. ‘내가 가진 독특한 사고방식이라면 무언가 분명 조금이라도 바꿀 수 있지 않을까’라는 마음이었다.

스스로가 트랜스젠더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나서(당시에도 논바이너리는 거의 언급되지 않았기에 트랜스남성으로 정체화했었다) 자긍심을 좀더 가지고픈 마음에 블로그를 운영했었는데, 학급 내에서 누군가 블로그 주소를 알아내고 악의적인 소문을 퍼뜨려서 졸업 때까지 학교생활이 순탄치 않았다. 모든 것을 놓아버리고 싶었을 때 나의 첫사랑 상대가 이렇게 말해주었던 게 생각이 난다.

“네가 어떤 성별이었든지 상관없이 난 계속 너 자체를 사랑해왔고 앞으로도 그럴거야.

상처입었어도 난 얼마든지 괜찮아. 우리 천천히 함께 걸어나가자.”

그랬던 그 아이는 내가 성인이 된 해에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막 성인이 되었는데 정작 떠나버린 연인에 대해서 책임질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계속해서 스스로를 옭아매는 자기혐오와  죄책감 때문에 행성인(2015년에 단체명이 동인련에서 행성인으로 바뀌었다)에서 내가 계속 무언가를 해낼 자격조차도 없다고 느껴져서, 모든 활동을 그만두었다.

I AM NOW HERE – 나아가는 존재

고통스러운 시간을 딛고 다시 일어났을 때, 우연히 논바이너리라는 성별정체성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더 시간이 지난 뒤에 젠더리스로 새롭게 정체화한 내 모습을 마주하려 했을 때마다 가장 많이 스스로에게 던졌던 질문이자 고민은 ‘이 성별 정체성으로 살아간다면 사회에서 인정받기 더욱 힘들텐데, 그럼에도 내 스스로를 받아들일 수 있을까?’였다. 오랜 고민 끝에 내린 대답은 이랬다.

‘누가 뭐라고 해도 나는 결국 나니까 더 고민하는 건 시간 낭비야.

그리고 인정받지 못한다면, 인정받을 수 있는 사회를 내가 만들어나가면 되잖아?’

하지만 혼자서 무언가를 바꾼다는 것은 쉽지 않은 법이다. 꽤 오랜 기간동안 내 모습을 숨기지 않고 드러낼 수 있을만한 자리를 찾아서 방황했다. 그리고 마침내 그 방황을 끝내게 해준 존재가 행성인이었다. 작년 여름,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서울 퀴어퍼레이드에서 펄럭이던 행성인의 무지개 깃발이 역시 내 존재가 돌아갈 장소는 결국 행성인 뿐이라는 강렬한 인상을 주었다. 자리를 비운 사이에 많은 것이 바뀌어 있었지만, 따뜻함만큼은 변질되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더이상은 주변의 트랜스젠더들이 세상을 스스로 등지는 일이 없었으면 한다’라는 소망이 다시 이곳으로 돌아왔을 때의 마음가짐이었다.

트랜스젠더퀴어인권팀의 일원으로 함께하고 있는 지금의 모습을 나중에도 분명 후회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다. 또한 앞으로도 계속해서 나아가며 성별 정체성으로 인해 방황하는 이들에게 어둠 속 길잡이와 같이 빛나는 존재로 삶을 비추어 주고 싶다. 비록 나의 젠더는 존재하지 않지만, 나는 사라지지 않았고, 여전히 여기에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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