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수 (한국HIV/AIDS감염인인권연합 KNP+)
| 연재의 말 게이들은 외계에서 온 것 같다. 그래서 지구에 여행 온 외계인의 삶을 기록하는 심정으로 이 글을 쓴다. |
신내림
무속 굿은 씻김굿 재수굿 천도굿 액막이굿 내림굿 등 여러 가지가 있다. 신내림굿은 조상줄이 있어야 가능하다고 했다. 자신의 조상님 중 하나가 신줄이 있었다는 이야기다. 나는 내림 굿을 정식으로 두 번 했다. 한번은 사는 곳 인근 터주산이 있는 굿당에서고, 한번은 지리산 중산골 깊은 곳에 있는 굿당에서다. 처음 내림굿 할 때 ㅇ법사는 제물을 구하러 장을 볼 때 우리집 조상이 욕심이 많다고 과일이고 뭐고 전부 고급으로만 원한다고 혼자 중얼거리곤 했다.
굿은 앉은거리, 선거리가 있다. 앉아서 풍악과 경을 읽는 무속인이 있고, 서서 신을 맞이하는 무속인이 그들이다. 먼저 굿을 하기 위해 산신당, 용왕당, 터주신당을 다니며 인사를 드리며 예를 치른다. 그리고 굿당으로 돌아와 경을 읽기 시작한다. ‘모년 모일 누가 신의 제자가 되기로 하였으니 부디 굽어 살펴 주옵소서…’
신녀가 한참 신이 내려 방방 뛰고 난 뒤 내가 대나무를 잡고 중앙에 섰다. 꽹과리와 장구, 북소리가 장단을 맞추기 시작한다. 한참을 대나무만 잡고 빙글빙글 돌든 내게 갑자기 신이 실렸다. 그곳 지방 산신이었다. 입에서 말이 튀어 나왔다. ‘네 이놈들 내가 누군지 아느냐?’ 곧장 법사가 말했다. ‘아이구 산신대왕님 어찌모르겠습니까? 부디 굽어 살펴 주옵소서.’ 그러자 갑자기 신이 몸에서 나가 버렸다. 이후 계속해서 내림굿을 했다. 하늘에서 다섯 살 가량 되어 보이는 동자가 기와집 난간에서 내려올 듯 말 듯 애를 태웠다. 그러다 새벽녘에 조상 할아버지 가 몸에 내렸고 별다른 말은 없었다.
굿을 하고 바로 다음날, 나를 비롯해 신아버지와 아는 게이 일행은 고향 선산 깊은 계곡 할머니가 혼자 계시는 암자로 기도하러 갔다. 아주 깊은 시골이라 차를 산 입구에 두고 걸어서 두 시간은 올라야 하는 곳이었다. 산신각 옆에 폭포가 있고 산세가 좋은 곳이다. 일행은 모두 산신각에서 대나무를 잡고 신맞이를 해보고는 전부 내려가고, 깊은 산에 홀로 남아 기도했다.
기도를 하고 내려와 부산 근교에 신당을 차렸다. 신당을 차리면 전국 각지에 기도를 다니며 정기를 받아야 한다고 하여 주왕산에서 선녀 기운을 받아왔다. 보통 처음 신내림을 받은 애동제자는 신발이 세다고 한다. 그 당시 신당을 모시고 부산에 있는 아는 형들 가게에 가면 사람들이 말하지 않아도 귀신처럼 맞추곤 했다. 하지만 정작 신당엔 손님이 없었다. 90년대 중후반 처음으로 동성 포르노 영상을 접하고 거기에 빠져 법당과 산 기도를 소홀히 했던 것이다.
이후 부산에서 주점을 운영하는 형이 부산으로 오라고 제안했다. 잘 아는 박수무당에게 가서 다시 한번 내림굿을 해보자는 이야기였다. 그를 찾아가 신아버지로 모시고 2차 내림굿을 했다. (얼마 후 주점 형도 술집을 넘기고 내림굿을 받았다.) 두 번째 내림굿은 지리산 깊은 산속 굿당에서 진행했다. 한겨울이었는데 얼어있는 계곡물에 몸을 담그며 정갈히 하고 굿을 진행했다. 그때 지리산 산신이 여산신인 걸 알게 되었다. 굿을 하면서 신아버지는 그곳에서 가장 크고 높은 대나무를 가져왔다. 너무 커서 1톤 트럭에 싣고 온 것이다. 그 대나무를 두 손으로 잡고 굿당 마당에서 펄짝펄쩍 뛰었다. 굿 중에 추레하게 낡은 옷을 입은 젊은 남자가 들어왔다. 도무지 누구인지 알 수가 없었는데 나중에 어머니에게 물어보니 6.25 전쟁에 돌아가신 어머니 동생, 외삼촌이었다.
박수 무당

박수, 그러니까 남자 무당은 대부분 게이가 많았다. 내가 만난 세 명의 박수들도 전부 게이였다. 첫 신아버지도, 유부남이던 두 번째도 모두 내 몸을 탐하였다. 그와 함께 굿을 하러 다니는 남자 법사도 게이였다.
신당을 차리고 손님 점괘도 봐줬지만, 그 당시엔 굿을 하러 따라다니는 경우가 많았다. 두 번째 신아버지는 굿을 전문으로 하는 법사였다. 부부가 모두 굿 전문이었고, 작두신도 모시고 있었다.
큰 굿을 하면 작두를 타고 굿을 한다. 앞서 주점을 운영하던 형과 나는 작두굿을 할 때면 작둣날을 하나씩 숯돌에 갈았다. 부정 탄다고 하얀 돈봉투를 입에 물고 작둣날을 숯돌에 시퍼렇게 날이 서도록 갈았다. 작두굿을 하는 날에는 사람들이 소문을 듣고 몰려왔다. 작두 위에서 공수는 칼날같이 날카롭게 미래를 맞추곤 하기 때문이다. 작두굿에는 커다란 돼지를 통째로 삼지창에 꽂고 땅 위에 손잡이를 그대로 세운다. 돼지가 삼지창 위에 그대로 서야 굿을 진행할 수 있다.
굿선생은 굿 이외에 집안 문제와 길흉, 개업 기도 등 다양하게 일을 다니곤 했다. 하루는 서울에서 이사 온 대학 교수 집에 방문했다. 서울에서 이사 온 이후에 교수가 시름시름 아프기 시작했는데, 온갖 병원에 다 가봐도 원인을 알수가 없어 애태우다 박수 선생의 소문을 듣고 집으로 모셔온 거였다. 법사 선생을 따라 들어간 집은 입구에서부터 분위기가 좋지 않았다. 터가 나쁜 집이었다. 집주인인 교수는 안방 침대에 누워있고 부인이 나와서 맞이했다. 법사 선생은 집안에 있는 칼을 가져오라고 하더니 칼을 들고 집안 구석구석을 살펴보기 시작하했다. 대장군 방위를 침범해서 사단이 났다는 얘길 한다. 그리고 접시에 쌀을 한 줌 담아 오라고 하더니 칼 끝으로 접시 위에 칼을 똑바로 세웠다. 대장군 방위란 길흉을 관장하는 여러 신 가운데 가장 대장이다. 그래서 그곳 방위는 이사나 증축, 이장, 신축 등 흙을 다루는 일이나 행사라면 어떤 경우든 침범해서는 안된다. (참고로 올해 병오년 대장군 방위는 동쪽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