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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코넛의 눈코입귀] 뭣이 중헌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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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코넛(행성인 HIV/AIDS인권팀)

운동(매일매일 하는 헬스 같은 거 말고 ‘movement‘ 말이다)에 얼마나 오래, 그리고 얼마나 깊이 관여했겠냐만은, 짧은 식견과 경험으로 살필 때, 운동의 방향을 정하고 그대로 나아가는 과정은 복잡하고 다층적인 요소를 고려해야 한다.

그럼에도 굳이 중요하고 기초적인 요소를 꼽자면 운동이 삼는 목표가 있을 것이다. 성소수자 인권운동을 예로 들면,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 혼인평등 법제화와 가족구성권 보장, 성별정정법 제정, 혹은 전파매개행위죄 19조 폐지, 그리고 사회의 모든 영역에서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를 타파하는 것, HIV 감염인에 대한 낙인을 없애고 성적 권리를 위해 힘쓰는 것들 말이다.

다른 중요한 요소가 있다면 온전한 목소리로 운동을 이어나가기 위한 원칙, 혹은 대의명분이다. 예를 들어 HIV/AIDS 감염인 인권운동에서 초국적 제약회사의 자본과 핑크워싱을 규탄하고, 행성인을 포함한 여러 단체에서 활동의 자율성을 확보하기 위해 기업의 후원을 받지 않는 것,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민중 학살과 관련된 기업 및 자본에 결탁하지 않고 단호하게 선을 긋는 것 등이다. 이는 운동의 자율성뿐 아니라, 도의적인 측면들에도 연관된다. 사회를 더 좋은 방향으로 바꾸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운동이라면 응당 그래야하지 않느냐는 거다.

목표를 위해 여러 방법을 강구하고 활동하다 보면 좋은 기회나 방법을 마주할 때가 있고, 넘기 힘들어 보이는 장벽을 마주할 수도 있다. 오랜 시간 힘써 온 목표 지점에 가까워질 기회를 만나면 그것만으로 운동에 큰 동기와 동력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그 기회가 장벽을 넘을 수 있는 정말 확실한 방법인지, 혹은 타협할 수 없다고 여겨지는 원칙과 상충하게 되는지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과 관점 사이에 갑론을박이 벌어진다.

공론장에 여러 가지 의견이 존재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지극히 당연하고 건강한 일이다. 공동체는 다양한 논의를 통해 앞으로 나아가고 성장할 수 있다. 다양한 의견 차이를 건설적인 방향으로 끌고 가는 운동이 되려면, 상대방에 대한 존중과 소통이 전제되어야 한다. 사회를 바꾸는 운동은 대의를 위해 하는 일이지만 동시에 사람이 하는 일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사람에 대한 존중이 없다면 대의의 근본적인 취지와 의미도 희미해질 것이다. 오히려 논의 과정에서 상대가 지향하는 가치와 원칙을 비교하고 줄세우며 이를 재단하고 낙인 찍기 쉬워진다. 나쁘다 좋다, 옳다 그르다의 단순한 흑백논리로 투박하게 판단할 수 없는 일들이 비단 시민사회 뿐만 아니라 어디에든 존재하지 않은가.

운동의 대의명분과 원칙도 사람에 대한 존중에 바탕을 두고 있다. HIV/AIDS 감염인 인권운동에서 규탄하는 초국적 제약회사의 핑크워싱을 예로 들어 보자. 할 말이 많지만, 개인적으로 초국적 제약회사에 대해 가장 화나는 지점은 지원과 인식개선을 명분으로 자본을 투입하며 이미지를 세탁하려 한다는 점이다. 특허권을 고수하며 높은 약가를 책정하며 가난한 이들의 접근을 막는 제약회사는 감염인 인권운동의 핵심 의제 중 하나인 평등한 의료접근권과 대척점에 선다. 그들이 이러한 행보를 보이면 규탄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기에 외적으로 보이는 방식만큼 중요한 것은 그 취지와 의미다. 초국적 제약회사의 ‘기금’이라는 이유 이전에 제약회사의 가식과 핑크워싱 때문에 비판하는 것이다.

운동 주체가 신중하게 고민하고 판단하여 취지가 대의명분과 직접적으로 충돌하지 않으며 동시에 활동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판단하는 기금이라면 그것을 취하여 원하는 목적을 이루는 데에 사용할 결정을 내릴 수도 있다. 그리고 운동의 주체가 그렇게 외부의 기금이나 지원을 취하기로 결정했다면, 어떤 기준과 근거로, 어떠한 논의 과정을 통해 기금을 받기로 결정했는지를 운동의 동료들에게 설명할 자리가 있어야 할 것이다. 논의가 길어지거나 혹은 결국 모두의 의견이 일치하지 못하더라도 서로의 이견을 경청 합의를 좁혀가는 과정은 중요하다. 하지만 무엇인가를 결정하거나 의견을 교환하는 과정에서 활동과 원칙들 사이에 일방적인 기준으로 우선순위를 매기고 줄세운다면, 건강한 논의가 이어질 자리의 기회를 박탈하거나 맨 앞에 오는 가치에 매몰되어서 과정을 생략하며 오류에 빠질 수 있다. 절차상 문제의 여부와 상관없이 충분한 논의 이전에 대의명분만으로 여론을 조직하는 방식은 극단적인 표현과 흑백논리, 선동의 문법을 사용하기 쉽다. 그 과정에서 상대의 의도와 입장은 많은 경우 간과된다. 상대로서는 운동을 이어갈 힘이 빠질 수 있고, 모욕감이나 분노를 느껴 공동체에 균열이 일어나기도 한다.

소통과 존중이 부재할 때, 운동과 활동도, 커뮤니티도, 그 무엇도 건설적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없다. 원칙과 대의명분의 타당함을 의심하지 않는다. 하지만 운동 안팎의 주체가 존중과 소통 없이 대의명분에만 매몰되는 순간, 대의명분은 그 자체로 목적이 되어 상대를 판단하는 도덕적 잣대로밖에 쓰일 수밖에 없다. 존중 없이 나오는 담론과 제안은 다른 이들에게 공허하게 들리고, 설득력이 없다. 전후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대의명분을 고수하며 판단하기에는 복잡한 현실의 맥락이 존재한다. 어느 입장을 갖든 주위 사정을 후순위로 두는 일방적인 통보는 사람들 사이의 신의를 훼손한다. 대의명분을 지키는 우리는 도덕적 가치에 충실한 사람들, 그렇지 않은 나머지는 목표에만 집중하느라 중요한 것을 놓친 사람들로 가를 뿐이다.

원칙과 대의명분만 보지 말아야 한다면, 무엇을 또 중요하게 보아야 할까? 원칙과 활동 방향을 점검하고 앞으로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 살필 때 가장 중요하게 여겨야 하는 것은 그 운동의 당사자, 혹은 열과 성을 다해 운동에 몸담고 있는 자들에 대한 존중과 신뢰, 혹은 상호 소통이다. 방향을 설정하고 결정을 내리는 데에 있어서 절대적인 정답이 없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현실에 대한 고려와 상대에 대한 존중 없이 세심하지 못한 소통, 혹은 소통의 의지도 없이 대의명분에만 매몰된 담론이 설득력 없는 공허한 외침일 뿐이며, 그 어떤 것도 좋은 방향으로 이끌고 가지 못하리라는 것은 확실하다. 활동도 운동도 투쟁도 사람들이 하는 일이고, 사람들이 사는 사회에서 좀 더 잘 살아보자고, 다같이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자고 하는 일이다. 그렇다면 활동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부터 서로서로가 건강하게 소통할 수 있는 공동체의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아닌 건 아니고, 맞는 건 맞다는 말에 동의한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맞다, 틀리다가 무엇이고,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조금 더 겸허한 자세로 대화하는 것도 운동의 일환이다. 다양한 정도와 방식으로 사회를 더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 나가려 하는 모든 사람들이 서로의 이야기를 더 잘 들을 수 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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