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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 에세이/퀴어 팔레스타인] 질문과 경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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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윤(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가자를 지지하는 게이들’ 같은 경우가 있죠. 아마 제가 들어본 것 중에 제일가는 부조리일 거예요. 가자에 사는 게이라면 당신은 뒤통수에 총 맞을 게 뻔하니까요.”

이스라엘 총리 베냐민 네타냐후 2024년 7월에 펀치볼 뉴스와 인터뷰에서 한 발언이다. 이런 단어 조합을 접했을 때 반응은 제각각일 것이다. 누군가는 게이가 총살당하는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며 몸서리칠 것이고, 누군가는 가자를 지지하는 게이들이라니 오지랖이 넓어도 너무 넓다고 할 것이다. 누군가는 그걸로 끝일지 모른다. 가자에 사는 게이가 총 맞아 죽는 상상을 하는 데 지속적으로 시간과 마음을 쏟기에는 이미 현실에 닥친 문제가 급박하고 지난하다. 이런 소식은 대충 읽고 대충 기억하기조차 버거운 순간도 많을 것이다.

가자에서는 게이들을 쏴 죽인대. 이슬람 국가에서는 동성애자를 건물 옥상에서 밀어버린대. 돌로 쳐서 사형시킨대. 그렇다던데?

이 이야기를 주는 대로 받아먹기 어려운 경우도 있다. 누군가는 어렸을 때 팔레스타인의 역사에 대한 만화책을 읽은 기억이 나서. 누군가는 소셜 미디어 프로필에 작은 무지개 깃발 하나 걸고 자식 자랑하는 스토리를 열심히 올리는 팔레스타인 고양이 집사를 본 덕분에. 누군가는 1991년 이후 현재까지 이스라엘 점령군이 가자 지구를 봉쇄 및 통제하며 그곳 주민들을 학살하고 있음을 알기에. 누군가는 게이들이 식 되지 않는 남한테 딱히 관심이 없다는 걸 뼈저리게 경험하는 바람에. 또 누군가는 그저 태생적으로든, 후천적으로든 생각이 꼬여 있고 의심이 많기 때문에.

그런 누군가라면 결국 질문이 쌓이고야 만다. 나도 그렇다. ‘가자를 지지하는 게이들’은 팔레스타인과 연대하는 수많은 성소수자 단체 중 도대체 어느 집단을 말하는 걸까. 네타냐후가 70년 넘게 살아오면서 가자를 지지하는 게이보다 더 큰 부조리를 목격한 적 없다는 건 대체 어떻게 생겨먹은 인생일까. 주로 미국 상원/하원 소식을 전하는 온라인 매체를 통해 영어로 한 인터뷰에서 “가자에 사는 게이”를 언급하는 듯하다가 주어를 “당신”으로 돌리는 건 뭘까. “당신”이라면 지금 이 인터뷰 내용을 읽고 있는 나를 지목하는 건가. 게이에 가까운 삶을 살고 있고 가자의 해방을 기원하는 한국 국적 트랜스젠더 남자인 나는 가자에 가지 못하는데. 내가 가자에 가지 못하는 건 가자에 사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게이더러 죽고 싶지 않으면 썩 꺼지라고 했기 때문이 아닌데. 2024년 7월에도 지금처럼 가자로 들어가는 검문소 모두 출입이 거의 불가능할 정도로 이스라엘이 철저하게 봉쇄한 상태였으면서, 대체 가자에 사는 게이가 내가 될 수 있다는 듯이 말하는 건 무슨 헛소리인가. 아니, 그보다 먼저, 설령 게이인 내가 당장 가자에 간다고 해도, 그 안에서 나에게 쏠 총을 자유롭게 소지할 수 있고 실제로 발포할 권한을 무한대로 주장하는 주체는 누구일까. 겉으로는 게이를 위하는 척 말하지만 이미 그 말 자체로 내 뒤통수를 치고 있는 이스라엘 아닌가.

‘얼굴들’ 세미나 장면. 출처: QK48

최근 서울 연남동 ‘얼굴들’에서 열린 퀴어팔레스타인연대(QK48)의 <집단학살 종식과 팔레스타인 해방을 위한 퀴어한 질문들> 세미나를 통해 만난 이들은 이런 의구심을 품고 모인 사람들이었다. QK48 활동가들이 몸과 마음과 시간과 손재주를 고아 만든 자료집이 오고 갔고, 자료집에 담긴 내용이 익숙하기 때문에 깊어져 가는 고민과 아직은 익숙해지는 중이라 조심스레 꺼내는 고민을 진행자, 참석자 할 것 없이 주거니 받거니 했다. 퀴어의 팔레스타인 연대를 “그냥 너무 옳은 것”이라고 확신하게 된 목소리도 있었고 어떤 부분에서는 아직 머뭇거리는 목소리도 있었지만, 그 안에서 입장 차이야 어찌 됐든 네타냐후 같은 작자가 보기에 “제일가는 부조리”들끼리 한데 앉아 실제 부조리는 이스라엘이 80년에 달하는 세월에 걸쳐 자행하고 있는 팔레스타인 민족 집단학살이라는 공통지점에서 출발해 함께 할 수 있는 일과 각자 할 수 있는 일을 찾아가는 시간을 가졌다.

그 과정에서 ‘가자에 사는 게이’와 비슷한 이런저런 사례가 공유되었는데, 하나가 이스라엘 정부에서 공식 운영하는 각종 소셜 미디어 계정에 등장한 성소수자 당사자 사진이었다. ‘얼굴들’ 벽면에 띄워진 사진에는 요아브 아츠모니라는 이스라엘 점령군 군인이 탱크 두 대 앞에 서서 위아래로는 여섯 색깔 무지개가, 중앙부에는 하얀 바탕에 파란색 다윗의 별이 박힌 일종의 프라이드 에디션 이스라엘 국기를 펼쳐 보이고 있다. 이 사진과 짝을 이루는 또 한 장의 사진에서는 같은 군인이 영어, 히브리어, 그리고 아랍어로 삐뚤빼뚤하게 “사랑의 이름으로”라는 구호를 적은 여섯 색깔 무지개 깃발을 들고 이스라엘 점령군이 초토화한 가자의 폐허를 등진 채 웃고 있다. 그의 목표는 “평화와 자유를 촉구하기 위해 가자 지구의 첫 프라이드 깃발을 드는 것”이었다고 전해진다. 성소수자 인권 실태를 분홍빛으로 물들이기 위해 이스라엘의 현실을 세탁하는 ‘핑크워싱’의 전형이다.

물론 ‘가자에 사는 게이’ 이야기의 구성 방식이 증명하듯 이스라엘이 핑크워싱을 할 때 그리 정성스럽게 빠는 것은 아니다. 늘 어딘가 허술하고 늘 질문하는 순간 허점이 더 크게 드러난다. ‘가자 지구의 첫 프라이드 깃발’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해외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본인을 남자친구가 있는 게이 남성이라고 밝힌 아츠모니는 정작 이스라엘 정부에서 내놓은 홍보물 속에는 “LGBT 커뮤니티의 구성원”으로만 표기되어 있다. 네타냐후의 인터뷰에 동원됐던 ‘가자를 지지하는 게이’나 ‘가자에 사는 게이’가 차라리 더 구체적이다. 아츠모니는 “[하마스가] 나를 다시 벽장 속으로 끌어들이게 내버려두지 않겠다”면서 이스라엘 점령군의 소집 명령에 응했지만, 게이를 게이라고 불러주지도 않는 곳에서 남자와 연애하며 산다고 꼭 벽장 밖에 있는 것인지도 잘 모르겠다. 물론 이스라엘이 아츠모니를 “LGBT 커뮤니티의 구성원”이라고 호명하는 가장 큰 이유는 L도 B도 T도 딱히 신경 쓸 것 없이 LGBT를 끌어다 쓰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 이스라엘이 아무리 중동에서 유일하게 성소수자 인권을 수호하는 국가로 자기 포장을 시도한다고 해도, 텔-아비브 프라이드 축제에서 트랜스젠더와 논바이너리, 유색인종과 HIV/에이즈 감염인 당사자를 대표하는 상징이 추가된 프로그레스 프라이드 깃발을 사용하는 것조차 찾아보기 어렵다.

덕분에 핑크워싱에 대한 QK48 자료집의 입장도 명료하고 강력하다. “이스라엘의 핑크워싱이 내보이는 핑크빛 유토피아는 허울일 뿐입니다. 이스라엘은 그들이 홍보하고 있는 것만큼 자국 내 퀴어들의 실질적인 인권 증진을 위해 노력하기보다는 퀴어들이 싸워서 쟁취해 낸, 심지어 아직은 터무니없이 부족한 ‘안정적인 퀴어들의 삶’의 이미지만을 내세웁니다. (…) 이스라엘 사회가 설사 팔레스타인 사회보다 성소수자와 여성의 권리를 중시하고 그와 관련해 더 좋은 문화 상품을 생산한다고 하더라도 점령국의 위치에 있는 이스라엘은 피점령국인 팔레스타인 내부의 인권 실태를 비판할 자격이 없습니다. 이는 이스라엘이 자신들의 사회와 정치 현실을 스스로 논쟁하고 바꿔나갈 수 있는 팔레스타인 민중의 자기결정권을 박탈한 현실을 재차 정당화하는 수단이기 때문입니다” (26).

최근 QK48에서 발행한 FAQ 자료집 <집단학살 종식과 팔레스타인 해방을 위한 퀴어한 질문들>. 출처: QK48

 

이스라엘의 선전물에 대해 이런 방식으로 질문을 던지고 반박하는 건 그냥 옳은 말을 하기 위한 게 아니다. 질문에 대한 답이 나왔으니 그걸 믿고 안심하기 위한 것도 아니다. 이스라엘이 하는 이야기에 시간과 체력을 낭비하기보다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수십 년 동안 기록하고 지켜낸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기 위함이다. 이스라엘이 주도하는 혐오와 폭력의 말장난에 끌려다니기를 멈추고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가리키는 해방의 방향을 공유하기 위함이다. 무엇보다 빛 구린 개살구로 성소수자 옹호를 내미는 둥 마는 둥 하는 이스라엘 점령군의 노선 대신 제국주의와 인종차별, 가부장제를 해체하는 투쟁 속에서 주변부의 서사를 길어내고 엮는 팔레스타인 퀴어들의 여정에 동행하고자 함이다.

그렇게 팔레스타인 퀴어들과 도반이 되는 것은 QK48 세미나로 모였던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일인 동시에 가장 어려운 과제이기도 하다. 실제로 우리는 팔레스타인 퀴어들이 어디서 어떻게 만나서 무슨 관계를 꿈꾸고 가꿔가는지 그리기 어려울 때가 많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팔레스타인 퀴어에 대해 무지하다. 동시에 팔레스타인 퀴어를 아는데도 그 사실에 무지한 것일 수도 있다. 그저 어떤 퀴어만 퀴어로 알아보는 우리가 눈치채지 못했을 뿐, 팔레스타인의 퀴어들은 오래 전부터 우리에게 이야기를 전하고 있었을지 모른다.

요즘 <팔레스타인 시선집>에 이예원 번역으로 실린 라샤 압둘하디의 시 “승인되지 않은 팔레스타인 사람 명단 (미완)”을 자주 들여다보게 된다. 시는 제목 그대로 명단으로 구성되어 있다. 명단 내에는 “팔레스타인 언론인”과 “팔레스타인 구조대원과 의료 종사자,” “팔레스타인 깃발 제작자와 독립 투사”처럼 팔레스타인 관련 뉴스와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소셜 미디어 계정으로 어느 정도 접하는 이들도 있지만, “팔레스타인 드래그 퀸과 킹”이나 “하우스 마더”처럼 그 땅에 존재할 수 없다고 부정당하는 퀴어 중에도 들지 못하는 팔레스타인 사람 역시 등장한다. 또다시 스스로에게 질문하게 된다. 나는 “팔레스타인 출판인과 교열 편집자 / 팔레스타인 뜨개질, 퀼팅, 코바늘 취미인 / 팔레스타인 조각가 / 팔레스타인 음악가 / 팔레스타인 가수 / 팔레스타인 이발사 / 팔레스타인 가발 제작자와 수문학자 / 팔레스타인 환경 운동가와 메이크업 아티스트 / 팔레스타인 인어 / 팔레스타인 양봉인과 탐조인”과 같은 행을 읽어 나갈 때 이들 중 몇몇, 아니 어쩌면 이들 모두 팔레스타인 퀴어일 수도 있다는 걸 왜 의식적으로 떠올리려고 노력해야 하는가. 드랙 퀸/킹, 하우스 마더가 전업인 사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이 훨씬 더 많다는 걸 아는 이상, 낮에는 누군가의 아픈 반려동물을 치료하다가 밤에는 드랙 공연을 올리는 “팔레스타인 수의사,” 늘 누군가의 결혼식을 처음부터 끝까지 준비하고 진행하는 동시에 자신이 선택한 반려인과 아직 법적으로 혼인 신고를 할 수 없는 퀴어들에게 비빌 언덕이 되어주는 “팔레스타인 웨딩 플래너”도 상상 가능한 영역이어야 하지 않을까. 서툴게나마 그런 상상을 꾸준히 연습하는 퀴어가 되고 싶다. 그리고 나의 상상이 아무리 여기저기 뻗어나간다고 해도, 우리가 궁금해하고 경청하는 퀴어한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이야기가 훨씬 더 멀고 자유로운 곳에 가닿아 있으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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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댓글

  • 여름

    2026-05-148:29 오전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이 글에서 언급된 을 읽고 싶어 찾아보았는데, 인터넷 서점이나 도서관에서 검색을 해보아도 나오지 않아서요. 혹시 어디서 이 책을 구할 수 있을지 알려주시면 더욱 감사하겠습니다!

    답글
    • 퀴팔

      2026-05-1411:16 오전

      아래 링크에서 구매신청을 할 수 있어요.

      https://contact-surface.com/blog/poems

      1
      답글
      • 여름

        2026-05-204:23 오후

        시선집 구매링크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주변 지인들에게도 널리 알리도록 하겠습니다!

        답글
  • 카드깡업체

    2026-07-112:58 오후

    카드깡업체 관련 글 잘 읽었습니다. 카드깡업체

    답글
  • 카드깡업체

    2026-07-112:59 오후

    카드깡업체 관련해서 찾고 있었는데 여기서 보게 되네요. 카드깡업체

    답글
  • 카드깡업체

    2026-07-112:59 오후

    유용한 내용이네요. 카드깡업체 참고하겠습니다. 카드깡업체

    답글
  • 카드깡업체

    2026-07-112:59 오후

    유용한 내용이네요. 카드깡업체 참고하겠습니다. 카드깡업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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