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론(행성인 HIV/AIDS인권팀)
“나는 오늘 밤 잠든 당신의 등 위로
달팽이들을 모두 풀어놓을 거예요”
(진은영 ‘당신의 고향집에 와서’ 중)
올해는 초복(初伏)도 멀었건만 청명(淸明)부터 유난히 더위가 들쑥날쑥 거리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매화나 목련이며 벚꽃이 미친 것처럼 때아니게 피는 것도 그러한 이유에서 인 듯 싶다. 한 달 전쯤 갑작스런 불볕더위에 집 근처 사우나에서 목욕을 마치고 냉면 한 그릇을 먹어야겠다 생각해 냉면 가게에 들렀다. 더위 만큼은 홀로 느끼는 것이 아닌지 오픈 시간 전부터 줄을 서있는 사람들을 보며 뭘 냉면 씩을 저만치 줄을 서가면서까지 사먹느냐고 비식댔다. 차례가 되어 가게에 들어가자 살얼음이 동동 띄워진 냉면 한 그릇을 받을 수 있었다. 냉면이 담긴 은빛 그릇을 두 손으로 감싸자 두 손바닥이 차가워졌고 두 손을 양 뺨에 가져다 부비었다. 열에 상기된 볼때기가 금세 누그러들었다.
위 시는 내가 애정하는 시인 진은영 시인의 시집 「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문학과지성사) 중 ‘당신의 고향집에 와서’의 첫 행을 인용한 것이다. 시를 읽고선 여름밤 열대야의 더위에 못 이겨 뒤척이는 등 위로 질척거리는 ‘사랑의 민달팽이들’을 풀어주는 뜨거운 상상을 멈출 수 없었다. 주파수가 일치하는 예술 작품을 보았을 때 몸을 가누지 못하는 버릇에 이 시를 처음 읽고서 몇 번이고 주먹을 방바닥에 내리쳤던 것 같다.
꿈틀대는 민달팽이의 상상을 주체할 수 없는 것처럼 우리는 제각기 다른 삶에서 다양한 감각을 경험하며 살아간다. 은빛 냉면 그릇의 시원함과 아름다운 문학을 흐뭇해하기도,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흥겨워 춤을 추기도 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치유를 상징하기도 하는 감각은 때때로 모진 상처로 다가오기도 하는데 그럴 때마다 이상하게도 너의 감각과 이야기가 더욱 필요해진다. 나랑 참 닮았지만 다른 너는 이따금 새로운 상처로 달려가 고개를 기웃거리며 상처들을 바라보곤 하는데 볼 위를 적시는 너의 차가운 눈물은 나의 희망이 되기 때문이다. 이번 아트선재의 전시에서도 위로와 희망은 힘에 강렬히 감응할 수 있었다.
따사로운 봄날의 일요일 정오 꽃구경이며 데이트며 제각기 목적을 가진 사람들이 안국역에서부터 아트선재까지 가는 길목에 붐볐고 옥시글거리는 사람 떼가 안그래도 좁은 소격동의 인도를 디딜 수 없게 했다. 친구와 함께 전시를 보기 위해 아트선재에 도착했을 때 인사태에서 벗어난 것 때문인지 전시의 주제 때문인지 급작스레 안도감이 들었다. 나는 우습게도 자기 작품의 전시에 온 것만큼 우쭐대기도 또 퀴어인 것이 어느 때보다 자랑스럽게 느껴저 어깨를 으스대며 전시를 둘러보았다. 여러 작품들과 회화나 조각, 영상 등 여러 매체를 이용한 작품들이 많았고 몇 작품은 너무 섬세해 눈을 떼지 못하기도 했다. 사람들이 가지는 감각이 이렇게 다양하고 층위가 심도가 다르다는 사실이 색다르게 느껴졌다. 하지만 전시를 다 본 후 이상하게도 찜찜한 마음이 가시질 않았고 그런 해소되지 않는 가려움증이 글을 쓰기 전까지 남아있었다. 집에 돌아와 전시기획을 살펴보고 어떻게 서로 다른 맥락을 가진 작품들이 2026년 봄날 소격동의 전시장에 모였을까하는 의문을 가질 수 밖에 없었다. 과연 퀴어작품이라고 하는 것이 무엇이며 그런 것이 있다면 하나로 묶일 수 있느냐는 근본적 질문을 가지고서 말이다.
너의 슬픔은 너무 소중해서
작년 말 나는 여러 사정으로 거의 죽음의 문턱을 밟았다. 시체처럼 덜덜 떨며 바닥을 기어다니기도 하며 쓰레기를 버릴 힘조차 없어 방에선 썩은내가 진동했다. 기쁨은 물론 슬픔조차 느낄 수 없었을 때 발에 우연히 차인 것은 작가 박완서의 소설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였다. 항상 삶이 지칠때마다 이야기 속으로 도망쳤던 관성에 또한번 사로잡혀 소설을 미친 듯이 읽어치웠다. 심지어 주인공 ‘오목이’를 외치며 낮잠에서 깨기도 했다. 곧 죽으려던 사람이 백주대낮 한낱 소설의 주인공을 외치며 깨다니 웃길 노릇이었다. 그 당시 나를 살렸던 것은 참 못됐게도 작가 박완서의 불행한 삶과 박완서의 아름다운 소설이었다. 불행한 삶 작가는 죽을 때까지 글을 써내려갔고 그녀의 소설이 아직도 즐겁게 읽힌다는 사실은 나에게 큰 위로가 되었다. 아픔의 예술이 결국 날 살린 것이다.
퀴어를 아주 거칠게 정의하자면 기존의 질서에서 벗어나거나 경계를 넘나드는 동적인 사람들과 상태라고 말할 수 있겠다. 기존의 질서에서 벗어나기에 모두가 웃어야만 하는 농담에 웃을 수 없기도 하며 주류의 삶에 융화되지 못하여 삶의 부분들이 파편처럼 자꾸 튀어 갈 때가 많다. 그러다 우연히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들을 만나면 허덕이던 외로움을 달래려고 애를 쓰고 터진 봇물처럼 말을 해댄다. 그렇게 사람들은 하나둘씩 나의 곁을 떠나갔다.
위 시를 읽다보면 왜 민달팽이들을 풀어주고 싶은지 그 이유에 다가갈 수 있다. ‘어린 시절 숨어있던 은유의 커다란 옷장에서 (중략) ’, ‘아버지의 술냄새로 문패를 달았던 파란 대문, 욕설에 떨어져 나간 문고리와 골목길’ ‘널, 죽일 거야 낙서로 가득했던 (중략)’ 등의 내용을 통해 당신의 고향집이 당신에겐 아픈 상처라는 점을 무릇 헤아려볼 수 있다. 당신의 과거의 상처일 수도 또는 이미 아물어버렸지만 보이지 않게 나의 몸에 자리잡은 상처일 수도 있다. 그런 몸 위로 ‘사랑의 민달팽이들’을 풀어주는 모습은 아니 사랑스럽고 다정할 수가 없다. 이번 전시가 다소 아쉽게 느껴진 것 비슷한 맥락에서였다.
작품의 일부는 내가 그랬었듯 아픔을 들어줄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것만 같았다. 생떼를 쓰는 어린아이처럼 말이다. 자신의 생각을 다양한 종류의 감각으로의 형상화는 멋지고 놀라웠지만 또 은유의 부족, 직접적인 설명으로 말을 건네는 방식은 다소 불완전한 인상을 남겼다. 논설문이 아닌 예술의 방식을 채택했다는 점에서 내용적이든 형식적으로든 형상화의 실패를 보완하기 위해 직접적 언어와 차연적 설명을 써야만해보이는 상황은 다소 테크닉의 부족으로 읽혔다. 또 레디메이드 작품의 방식을 차용한 작품들도 여럿 보였는데 예술사적으로 새롭지도 않았으며 조그맣게 붙여진 작품 설명이라는 또다른 언어에 다시 의존한다는 점에서 실망스러웠다. 그런 예술 앞에서 나는 말할 기회를 번번히 놓쳤고 수동적 존재로서 무기력해지까지 했다.
때때로 나의 걸음을 멈추게 한 작품들도 많았다. 나에게 몇 마디를 건네곤 그것들은 스스로의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특히 많은 회화작품들이 그러했다. 나는 작품들 앞에서 한 없이 외로워졌으며 작품들이 건네주는 외로움은 사실상 퀴어로서 우리 모두가 느끼는 외로움으로 다가왔고 거기서 나의 고향집을 떠올릴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좋은 작품이란 아픔을 전시만 하는 작품이 아니다. 위 진은영 시인의 시를 사랑하는 이유도 같은 이유에서 이다. 상처인 ‘당신의 고향집’을 화자인 ‘나’는 공감할 수 있는 사람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화자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당신의 고향집에 같이 눈물을 흘리고 사랑의 민달팽이들을 풀어주기 까지 한다. 작가 박완서가 토막난 아픔을 이겨내고 글을 써내려갈 때, ‘나’가 당신을 위해 사랑의 민달팽이들을 풀어줄 때 나는 우리 모두의 아픔과 연대 그리고 사랑을 느낀다. 그러한 작품들은 작품내부에서 하나의 완결성을 지니며 작품들끼리 보이지 않는 연대를 하고 있고 나는 그런 작품들을 볼 때마다 하나의 관객이 아닌 또다른 작품이 되어 언어를 뛰어넘는 사랑의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된다.
기획과 전시에 관한 의문
2026년 여름 이 전시를 기획한 의도가 심심치않게 궁금한 와중 다양성(스펙트럼-spectrum)이라고 할 지언정 한 데 묶일 수 있으리라는 시도(신테시스-synthesis)는 실패한 것처럼 보인다. ‘예술에서 시간과 공간, 제도의 경계를 넘나들며 전위적 실천에 앞장서 온 퀴어 작가들과 퀴어성을 탐구해 온 작업들을 다층적으로 조망하는 전시다. (중략) 지하부터 1층까지 이어지는 전시는 ‘트랜스(trans)’의 개념을 새로운 몸과의 접촉을 통해 발생하는 죽음과 변환의 계기로 해석하며, 작가들의 실험적인 신작 및 최근작을 보여 준다. 2층은 홍콩의 선프라이드재단(Sunpride Foundation)의 컬렉션 작가를 중심으로 국내외 퀴어 미술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는 주요 작품을 소개한다. 마지막으로 3층 전시는 ‘기억’, ‘장소’, ‘형식’이라는 세 축을 통해 한국의 퀴어 미술이 새롭게 발생하는 현재에 주목한다.’라 설명하지만 퀴어작가와 퀴어성에 대한 탐구와 인과관계가 꽤나 빈약해보인다.
위 설명해서부터 알 수 있듯 매우 다양한 주제를 모아놓은 이유도 희미해 보인다. ‘한국의 주요 정치, 사회, 기술적인 변화와 그 긴장 관계 속에서 형성되어 온 퀴어미술의 지형을 추적’한다면 왜 국내외의 작품을 모아두었는지 또 지하에서부터 3층까지 이토록 다른 주제와 맥락을 한 데 모아두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너무나 방대한 양의 맥락과 담론이 섞여있는 전시장에서 나는 어떤 맥락을 가지고 작품을 감상해야하는지 감을 잡을 수 없었고 심지어 산만하다고까지 생각했다.
작가가 퀴어라고 한들 작품이 모두 새롭고 퀴어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퀴어성을 탐구한 작가와 퀴어작가라고 한들 모든 작품이 퀴어성을 담고 있고 작품이 매번 퀴어하지도 않다. 또한 퀴어작가라고 한들 작가들이 각자 겪고 견디는 삶의 맥락이나 환경, 기억이 다르다. 이 전시는 퀴어인 작가들을 위한 전시인지, 전위적이고 실험적이고 퀴어한 작품들을 위한 전시인지,형식적으로 내용적으로 어떤 점에서 새로운 것을 갈구하는 전시인지, 퀴어의 삶을 위한 전시인지 도무지 파악하기가 힘들다. 또한 퀴어 작가들이 모두 퀴어성을 가진 퀴어한 작품들을 만든다고 생각하는 것은 퀴어작가들에 대한 무례이기도 하다. 전시설명을 보고 지금 이 글을 쓰는 나도 내가 지금 도대체가 무엇을 말하고 서술하는지 헷갈릴 지경이다.
우리는 모두 감수자이다
하지만 많은 삶과 아픔이 두루 모인 작품들의 개별적인 힘을 열렬히 느꼈기에 전시의 맥락과 의도를 부정하고 싶지는 않다. 당시 작가 박완서의 아픔과 소설에서 힘을 느꼈듯 예술에서의 타인의 아픔과 이야기는 하나의 위로가 되기도 한다. 또한 퀴어들의 아픔은 아직 실로 존재하며 하나둘씩 빛나야하기 때문이다. 퀴어이기에 겪어야만 하는 아픔과 그런 상황들에 매번 노출되기에 퀴어들의 목소리는 끊임없이 세상에게 들려야한다. 행성인 교육장에 친구를 따라 처음 발을 들인 날 내게 찾아온 안도감은 나와 똑같은 사람들을 찾아서가 아니었다. 나와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고 포용해줄 사람들이 내 곁에 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그건 분명 우리가 모두 다른 말을 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나는 안국역 앞에서 사랑하는 애인과 다정히 손을 잡고 걸어 전시장을 들어서고 싶다. 그렇기에 이번 전시와 같은 퀴어전시 그리고 퀴어 작가들의 작품, 퀴어의 아픔과 이야기를 담은 작품, 그 자체로 퀴어한 작품들을 더욱 많이 보고 싶다. 내가 감히 손을 뻗을 수 없는 모든 곳에서 말이다. 퀴어의 삶을 맹목적으로 미화하지도 퀴어라는 삶과 아픔에 일방적으로 함몰되지 않는 퀴어한 작품들을 살펴보고 싶다.
사회학자 김홍중은 페이션시(patiency)를 감수자(patient)의 실존, 체험, 힘을 지칭한다 말한다. (김홍중. (2024). 민중과 페이션시 — 오클로스에서 생태계급까지) 나는 이 말을 참 좋아한다. 민달팽이의 감촉을 좋아하는 나는 감수자로서 우리이기도 하며 고통과 치유의 언어를 속삭일 수 있는 사람이다. 우리는 모두 감수자이다. 사랑의 민달팽이들이 저 멀리까지 꿈틀거릴 수 있도록 퀴어의 이야기와 아픔 그리고 여러 맥락을 가다듬고 고려한 멋진 전시들이 기획되기를 진심으로 기대해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