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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 에세이] 논바가 레즈비언 바에 간다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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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옹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처음 레즈비언 바를 간 것은 레즈비언 연인을 만났을 때였다. 당시에 나는 스스로 여자임을 한 번도 의심하지 않은 시스젠더 여성이었고, 한 번도 동성과 사랑을 나눠본 적이 없었다. 연인을 만나자마자 바로 나 자신을 바이로 정체화했다. 정체화와 만남, 모든 것이 순조롭게 흘러갔다.

여자들끼리 팔짱을 끼고, 손깍지 끼는 정도는 사람들이 우정이라고 생각할 거라 믿어서 신경 쓰지 않았다. 그리고 동성과의 연애가 처음이라 뭔지도 모르고, 하고 싶은 대로 하고 다녔다. 누구도 의심한다고 생각하지 않으리라. 하지만 연인의 생각은 달랐다. 팔짱을 끼면 빼고, 손깍지를 풀었다. 과거에 차별 경험을 당했던 연인에게 나의 행동은 위험한 것이었다. 그때 처음 벽이라는 걸 경험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포기할 수 없었다. 연애는 소중하니까. 그럼 더 안전한 곳을 찾자. 처음 레즈비언 바를 간 이유였다.

사진 촬영과 취재를 금지합니다.

첫 바는 우연한 계기로 찾았다. 홍대 놀이터에서 담배를 피우다가 발견한 곳이었다. 음기가 느껴져 찾아가 보니 문 앞에 “사진 촬영과 취재 요청을 금지합니다. 여성만 입장 가능”이라고 써있었다. 아, 여기가 그 말로만 듣던 레즈비언 바라는 곳이구나. 당장 애인과 방문했다. 모두가 여성으로 보이는 사람들이었고, 화장실도 하나만 있었다. 각 자리가 나눠져 프라이빗하게 앉을 수 있었고, 자리 입구마다 술이 달려 있었다. 보일 듯 말 듯한 자리. 당시 지갑 사정은 시원치 않았지만 연인과 줄기차게 다녔던 것 같다. 거기선 팔짱도, 손깍지도, 볼 뽀뽀도 모두 자유였으니까. 그리고 전혀 위험한 공간이 아니었으니까.

술을 마시지 않아도 괜찮아!

연인과 사귀면서 다녔던 바는 특이하게 “이쪽”만 알아볼 수 있는 표식 같은 것이 있었다. 그건 바로 무지개였다. 이쪽 문화에 대해 하나도 모른채로 바만 다녔던 내게 무지개는 흥미로운 암호같은 것이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지도에도 없고, 따로 알아본 적도 없는데 어떻게 표식만 보고 갈 수 있었을까 싶다. 두 번째로 찾았던 바가 그런 곳이었다. 댄스 플로어가 있고, 파티션으로 자리가 나눠져 있는 곳. 사람들이 잘 보이지 않는 자리니까, 레즈비언 바에만 가면 술을 마시고 연인에게 마구 사랑을 표현했다. 그때는 철없게도 레즈비언 바니까, 안전하니까 당연히 그래도 되는 줄 알았다.

이후에 지인을 통해 알게 된 곳이 있었는데, 그곳도 이쪽의 표식이 있었다. 그동안 다녔던 퀴어 업소와 다르게 술을 파는 곳이 아니었다. 카페인데 대형견이 있고, 퀴어라면 누구나 갈 수 있는 곳이었다. 술을 잘 마시지 못하는 내게 그곳은 천국이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건대, 아마 그 시절의 퀴어 프렌들리 까페가 아니었을까 싶다. 이곳은 여성들만 들어오는 곳이 아니라서, 당시 트랜스 남성인 친구와도 함께 편하게 어울릴 수 있었다. 그러나 얼마 가지 않아 차례로 문을 닫았다.

레즈비언 업소를 찾는 것은 내게 사랑할 자유를 찾는 것과 같았다. 연인과 나의 안전한 만남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찾아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우리의 관계는 오래지 않아 정리되었다.

퀴어 프렌들리와 미스 젠더링

많은 시간이 흘렀다. 그 사이 나는 논바이너리로 정체화했다. 애석하게도 레즈비언 연인과 헤어진 후, 한 번도 여자에게 팔리지 못하여(…) 레즈비언 업소를 가지 못했다. 그리고 사회에는 나를 이성애자로 속이며 살았다. 그렇게 십 년쯤 되었을까. 나 같은 퀴어가 있는 업소에 가고 싶었다. 해방감을 느끼고 싶었다. 퀴어 친구들을 다시 사귀며 퀴어 프렌들리 업소에 가기 시작했다. 일부 업소에서는 일행과 헤테로 커플로 오해 받고, 헤테로 여성으로 미스 젠더링을 당했다. 그래서 “퀴어입니다!” 라고 외쳐야만 했다. 무사히 입장을 했지만, 가끔씩 느껴지는 불편감이 가시지 않았다. 나뿐만 아니라 내 일행이 어떤 젠더여도 상관없이 갈 수 있는 곳을 가고 싶었다. 그런 곳이 많지 않았다.

다시 찾은 레즈비언 바

나에게 안정감과 해방감을 처음으로 안겨주었던 레즈비언 바. 그 당시엔 남성이 없다는 것만으로도 불편감을 해소할 수 있었다. 시간이 아주 지나서 다시 레즈비언 바를 찾았다. 괜찮을 수 있을까?

그에 대한 답은 “No”였다. 나는 법적 성별이 여성이라 입장엔 문제가 없었다. 입장과 동시에 다른 테이블에 앉아 있는 이들에게 스캔 같은 걸 당한 것 같았다. 자리에 앉으니 조금 이상한 기분이었다. 퀴어 업소라는 점에선 안전하게 느껴졌지만, 왠지 나와 어울리지 않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잠복근무를 하는 느낌이었달까. 나이 많은 논바가 과잠을 입은 어린 친구들 사이에서 쩔쩔맸다. 이미 내가 시스젠더 여성이 아님을 알고, 레즈비언 연인이 없는 상황에서 이곳은 나와 더 이상 어떤 접점도 갖고 있지 않은 공간이 된 것이다. 레즈비언 커뮤니티에 대한 정보나 문법을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앉아 있던 나는 그저 이방인이 된 것 같다고 생각했다. 곧장 일행과 집으로 돌아갔다.

트랜스젠더퀴어 커뮤니티를 찾아서

본 이미지는 필자가 가수 채연의 이미지와 문구를 참조하여 AI로 생성하고 포토샵으로 제작했다.

시스젠더 여성 성소수자로서의 정체성이 없는 내게 시스젠더 성소수자 업소는 더 이상 안전하지도, 즐겁지도 않은 공간이 되었다. 그건 공간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나라는 사람의 정체성이 변한 것이 크다. 하지만 논바이너리를 위한 논바이너리만의 공간이 존재하지도 않고, 커뮤니티도 없다. 그래서 그나마 편안한 퀴어 프렌들리 업소를 찾는다. 하지만 그 안에서도 미스 젠더링을 당하고, 또 업소의 특성상 여성으로 패싱되는 사람이 가기 힘든 곳이 있기도 하다. 이제는 논바이너리로서 안전한 커뮤니티와 언제든 열려있는 곳에 가고 싶다. 꼭 술을 마시지 않아도, 여성으로 보이더라도, 헤테로로 보이더라도 아무 신경이 쓰이지 않을 수 있는 곳에 가고 싶다. 사실 제일 간절한 것은 트랜스젠더퀴어 중심의 퀴어 업소가 생기는 것이다. 그곳에서 누구도 배척하지 않고 자유롭게 놀고 싶다. 노는 거 정도는 트랜스젠더퀴어답게! 그럴 순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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