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시 (말해보는 섹스 참여자)
3월 어느 날, 행성인 뉴스레터 활동 일정란에서 《말해보는 섹스: 퀴어여성섹슈얼리티 수다회》라는 프로그램을 발견했다. 섹스라니. 일단 제목부터 눈이 갔다. 거기에 ‘퀴어’, ‘여성’, ‘섹스’. 내 관심사 키워드가 세 개나 나란히 앉아 있는데, 이걸 어떻게 그냥 넘기나. 마음속으로는 이미 신청서를 쓰고 있었다. 나는 네 차례의 프로그램 전체에 참여했고, 파트너는 1회차와 3회차, 그리고 뒷풀이에 함께했다. 프로그램은 몸, 섹스와 욕망, 관계, 퀴어 커뮤니티라는 네 개의 주제로 구성되어 있었다.
처음에는 말 그대로 섹스에 대해 이야기하는 모임이라고 생각했다. 막상 참여해보니 이 자리는 단지 성적 경험이나 취향을 나누는 곳이 아니었다. 몸과 욕망, 관계와 커뮤니티를 함께 들여다보는 자리였고, 말할 수 없다고 여겨졌던 것들을 조금씩 말해보는 시간이기도 했다.

1회차에는 각자 자신의 몸을 그리고, 몸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이야기했다. 어떤 몸은 불화의 대상이었고, 어떤 몸은 애착의 대상이었으며, 숨기고 싶거나 드러내고 싶은 것이기도 했다. 나는 부치 퀴어 여성으로서 내 몸을 비교적 긍정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물론 내 몸과 늘 평화롭게 산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사회가 기대하는 여성성의 규범과 조금 다른 방식으로 내 몸을 감각하고, 그 어긋남 안에서 나름의 편안함과 긍지를 찾아왔다는 뜻에 가깝다. 그 자리에서 나는 내가 어떤 콘텐츠를 통해 욕망을 감각하는지에 대해서도 말했다. 사실 말하면서도 “이 얘기 해도 되나?” 싶었는데, 많은 참여자들이 공감해주었다. 누군가에게는 쉽게 말하기 어려운 이야기가 그 공간에서는 웃음과 고개 끄덕임 속에서 받아들여졌다. 내가 이상하거나 예외적인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방식으로 욕망을 감각하는 사람들이 함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2회차에는 나 혼자 참여했다. 파트너가 없었기 때문에 오히려 더 솔직하게 말할 수 있었다. 파트너와 함께 있을 때 우리의 관계를 의식했다면, 혼자 참여했을 때는 조금 더 개인적인 욕망을 말할 수 있었다. 우리가 누구와 함께 있느냐에 따라 말할 수 있는 방식과 나의 위치가 달라진다는 것을 알게 해준 경험이었다. 처음에는 이렇게까지 말해도 되는 걸까 싶었다. 속으로는 “지금 너무 주접 떠는 거 아닌가?” 생각도 살짝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은 그 공간이 안전하고 수용적이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의 말이 평가되거나 농담 거리로 소비되지 않았고, 각자의 경험은 다른 방식의 삶으로 받아 들여졌다. 2회차는 섹스에 대한 정보를 얻은 시간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내 욕망을 솔직하게 말해도 괜찮다는 감각을 경험한 시간이었다.

3회차는 ‘관계’를 주제로 진행했다. 앞선 회차가 몸과 욕망에 가까웠다면, 3회차는 그 욕망이 어떤 관계 안에 놓이고 구성되는지 생각하는 시간이었다. 우리는 B4 용지에 인쇄된 문장의 빈칸을 채우며 관계에 대해 차분히 생각해보았다. 관계의 시작과 끝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나에게 성적 실천은 어떤 의미인지, 파트너십을 어떻게 이해하는지에 관한 문장들이었다. 그런데 종이가 너무 컸다. 문장을 완성하는 동안 오랜만에 시험지를 받아 든 것처럼 살짝 긴장했다. 정답은 없었지만, 괜히 ‘관계 영역 서술형 문제’를 푸는 기분이었다. 완성된 기록지는 지금도 내 손에 있다. 우리 커플은 8년 차다. 비슷하게 완성한 문장도 있었지만, ‘아, 이걸 이렇게 생각했네?’ 싶은 서로의 다름도 발견했다. 오래 만났다고 해서 서로를 다 아는 것은 아니었다. 어떤 질문은 익숙한 관계 안에서도 아직 말해지지 않은 마음을 꺼내 놓게 했다. 우리는 어떤 관계를 꿈꾸는지, 어떤 관계를 필요로 하는지, 어떤 관계를 함께 만들어가고 싶은지 이야기했다. 욕망은 혼자 생겨나는 것 같지만, 결국 관계 속에서 더 크게 확장되고, 서로를 조금씩 닮아가며 모양을 바꾼다는 생각이 들었다.


4회차는 콘텐츠 추천대회와 커뮤니티 아카이빙 시간이었다. 각자 자신에게 의미 있었던 퀴어 콘텐츠를 소개했고, 그것을 통해 서로의 취향과 기억, 정체화의 과정을 나누었다. 몇몇 추천은 매우 알찬 정보였다. ‘이건 적어야 한다’ 싶은 순간도 있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좋았던 것은 누군가가 어떤 장면에 매혹 되었는지, 어떤 콘텐츠를 통해 자신을 알아보거나 위로 받았는지 듣는 일이었다. 이어진 커뮤니티 아카이빙 시간에는 1990년대부터 2030년까지, 우리가 몸담았던 곳과 앞으로 몸담고 싶은 곳들을 커다란 전지 위에 함께 그려나갔다. 각자 정체화한 시기와 방식은 달랐고, 돌봄을 받거나 관계를 맺어온 장소도 달랐다. 그런데 그 차이들이 한 장의 종이 위에 놓이자, 서로 다른 시간과 장소에서 자라온 퀴어 여성들의 삶이 하나의 느슨한 연대기처럼 보였다.
이 모임에서 나는 조금 다른 위치에 있었을지도 모른다. 참여자 중 나이가 가장 많은 편이었고, 어떤 회차에는 파트너와 함께 참여했으니까. 퀴어 여성이라는 점에서는 함께였지만, 나이와 관계의 상태에서는 조금 다른 자리에 서 있는 느낌도 있었다. 뒷풀이 때는 괜히 혼자 ‘이 말, 너무 옛날 사람 같나?’ 하고 세대 감각을 점검했다. 물론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았지만, 혼자 바빴다. 그런데 그 시간이 참 좋았다. 다른 나이와 정체성을 가진 퀴어 여성들과 조금 더 날 것의 이야기, 고민, 관심사를 나누는 뒷풀이는 프로그램에는 적혀 있지 않았던 보너스 회차 같았다. 기분 좋은 낯섦이 있었고, 그 낯섦은 불편함으로만 남지 않았다. 오히려 그 차이 덕분에 더 많이 들을 수 있었다. 서로 다른 세대의 퀴어 여성들이 몸과 욕망, 관계와 커뮤니티를 어떻게 말하는지 듣는 일은 내 경험을 다시 바라보게 했다.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다시 배웠고, 지나왔다고 생각했던 질문들 앞에 다시 서보게 되었다. 마지막 만남이라 그런지, 그 시간은 특히 오래 남았다. 처음에는 섹스에 대해 말하는 자리라고 생각했지만, 끝에 이르러 보니 그것은 우리가 어떤 장소에서 자라왔고, 어떤 관계 속에서 살아남았으며, 앞으로 어떤 커뮤니티를 만들고 싶은지 묻는 자리였다.
섹스에 대해 말한다는 것은 단지 자극적인 이야기를 나누는 일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어떤 관계에서 편안함을 느끼는지, 어떤 규범 앞에서 위축되거나 자유로워지는지 알아가는 일이었다. 욕망을 들여다보는 일은 자신을 알아가는 꽤 정직한 방법이다. 제목은 ‘섹스’였지만, 끝까지 가보니 결국 ‘삶’에 대한 이야기였다. 제목은 도발적이었고, 도착지는 꽤 다정했다.
더 많이 섹스에 대해 말하는 장소와 시간이 우리에게 있었으면 좋겠다. 웃으면서, 주접도 조금 떨면서, ‘아니 근데 진짜로’ 하고 말을 이어가는 시간 말이다. 이런 이야기는 너무 진지하기만 해도 어렵고, 너무 가볍기만 해도 허공에 흩어진다. 그런데 이 프로그램은 그 사이를 꽤 멋지게 걸어갔다. 말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고, 웃을 수 있는 틈을 열어두고, 각자의 경험이 함부로 소비되지 않도록 살피는 진행의 힘이 컸다.
이런 값진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진행한 호기, 초, 해리, 지오에게 감사하다. ‘섹스’라는 단어로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그 안에서 몸과 욕망, 관계와 커뮤니티를 차분히 이야기할 수 있게 만든 기획이 참 좋았다. 자극적으로 흐르지 않으면서도 너무 점잖아지지 않는 균형 덕분에 가능한 시간이었다. 내년에도 이 위험하고 귀하고 웃기고 다정한 판이 다시 벌어지기를 아주 적극적으로 기대해본다. 다음에는 더 많은 주접과 더 깊은 이야기를 들고 가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