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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후기] 장밋빛 섹스는 아닐지라도 – HIV/AIDS 인권팀 성교육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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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론 (행성인 HIV/AIDS인권팀)

기억을 거슬러

초등학교 5학년 이불을 덮어 삽입섹스를 하는 부부의 성기가 교접하는 그림을 본 적이 있다. 보건교과서에 실린 그 그림을 설명하며 선생님은 모두가 그렇게 태어났다고 강조했지만  그림과 그렇게 모두가 태어났다는 사실이 너무나 충격적이어서 그 뒤로 선생님이 뭐라고 말하며 수업을 마쳤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하굣길 휴대전화를 받자마자 엄마한테 급히 전화를 걸어 나도 섹스로 태어났느냐고 물었다. 당시에는 그 행위가 섹스인지도 몰라 남성기의 삽입에 대해 직접적으로 물었던 것 같다. 엄마는 그런 것을 알기에 너무 이르지 않냐며 아연해했지만 질문의 순수성은 이길 수 없었는지 너는 시험관으로 태어났다고 대답해주었다.

그 후 일년 뒤 6학년 때 어떤 이유에서인지 국수를 조사하던 중 noodle을 검색하려 하다 연관 검색어의 nude를 궁금증에 클릭해보았다. 교미를 하는 남녀의 성기를 확대한 사진의 더미를 보게 되었다. 부끄럼 없게 활짝 웃으며 행위를 즐기는 남녀를 보며 궁금증이 생기다가도 성기의 교접을 자세히 보고 또 삽입섹스를 사진으로 직접 본 것은 처음이라 의도치 않은 추체험에 인상이 찡그려졌다. 그날 밤 그 사진들은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고 남성들이 단순 자신만의 쾌락을 위해서 여성들을 괴롭히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며 남성이라는 성을 맹렬히 혐오했다.

다 큰 성인이 된 지금은 성행위나 섹스에 황홀한 환상을 가지거나 두려움을 가지진 않는다. 섹스를 직접 해보고 나서 그렇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나의 성정체성을 깨닫던 중학교 시절에는 섹스에 대한 무한한 환상과 정열에 빠져있었는데 그건 분명 일본이나 프랑스 소설을 탐독하고 프랑스 영화를 많이 보았기 때문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또 학교를 다니며 무용담처럼 펼치는 동기들의 소위 섹스썰은 당시 듣기에 자극적이기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나는 많은 것을 알고 있었지만

코로나 시절 게이 클럽을 둘러싼 풍문과 낭설이 와전되며 퀴어를 향한 혐오와 모함으로 이어지자 고교생 시절부터 게이섹스나 센조이 그리고 에이즈와 성병을 살펴보기 시작했고 수전 손택의 책과 에이즈 관련 서적을 읽으며 잘못된 지식과 은유를 하나씩 천착했다. 3학년 때에는 과학탐구실험 주제를 섹스와 에이즈에 관해 여러 서적과 논문을 읽고 보고서를 썼다 담당 선생에게 퇴짜를 맞은 적이 있는데 선생은 다른 주제로 써오라고 강력히 권유했었다.

프랑스 소설과 영화의 영향 아래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나는 섹스를 어서 해야한다는 조급함과 비대한 환상 끝에 입시를 마치자마자 어플로 성교를 할 상대를 구했고 구강성교를 목적으로 상대를 만나게 되었다. 구강성교만이 만남의 목적이었지만 어째서인지 상대는 이미 센조이를 마친 상태였고 그의 손에 이끌려 어영부영 첫 섹스를 마치게 되었다. 합의 하에 이룬 섹스였지만 당황스러운 첫 섹스에 자책감과 긴장감에 몸을 가만 둘 수 없어 좁은 원룸을 벗어나 거리를 이리저리 돌아다녔던 기억이 난다.  또래에 비해 에이즈와 성병에 대한 충분한 지식이 있었건만 예고없이 끝내버린 첫 섹스의 충격은 지식의 힘을 제치고 커다란 두려움과 불안감을 안겨주었고 친구에게 전화해 사실을 알렸다. 섹스하는 삶이 일상화되었던 그 친구는 전화로 별 거 아니라며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안심시켜주었다.

우리가 혐오하고 두려워하는 대상에 대해서 잘 아는 경우가 있을까? 이 지점은 중요해 보인다. 만약 자동차나 비행기를 타는 것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자동차와 비행기에 대해 얼마나 많은 것을 알고 있을까? 가끔 내가 혐오하고 두려워하는 대상들을 멈추어 톺아보면 그 대상들에 대해 사실 알고 있는 것이 별로 없을 때가 많다. 특히 우리 앞에 나타난 것들 중 다수는 과정이 보이지 않는 결과일 뿐이기 때문이다.

행성인 HIV/AIDS인권팀에 처음 들어오게 되었을 때 퀴어인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보고 싶다는 일말의 기대감과 함께 HIV/AIDS에 대한 정확한 지식을 통해 불안감을 해소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방대하고도 정확한 지식만이 HIV/AIDS를 둘러싼 낙인과 은유를 해소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실로 나의 긴장감을 해소해준 것은 다른 것이었다. 한 회원분께서 자신이 감염자임을 밝혀주셨고 심지어 그 사실을 말할 때 덤덤하기까지 했다. 또 그 분의 이전의 삶에 대해 알 수 없지만 그렇게 인생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음을 얼추 짐작해볼 수 있었다. 그 분의 솔직함 덕분에 나의 어설픈 불안감이 눈 녹듯 사라졌고 오늘날 행성인으로서 언더바 성병 강의에 참여하고 지금 이 글을 쓸 수 있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

대학에 들어와 처음 사귀려고 한 사람은 연애를 시작하기 전부터 성병 검사지를 요구했고 나는 그 모습이 너무 사위스럽고 께름칙해 연락을 끊었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성병 검사지의 음성(negative)이 깨끗한 몸을 상징한다고 생각하며 심지어 자랑스럽게 여기기까지 한다. 마치 동정인 상태의 몸이 깨끗하다는 케케묵은 인식처럼 말이다.

나는 한국 공교육의 미숙함 탓에 성병의 종류나 섹스에 대해서 자세하고도 올바른 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다. 심지어 퀴어라면 그 중 트랜스남성이라면 더더욱 말할 것도 없었다. 그러다 이따금 듣는 소리는 콘돔을 껴야한다거나 이러면 안 된다 임신한다 등 이성애 중심의 성교육이었고 그마저도 충분치 않았다. 항문성교는 곧장 에이즈의 위험성과 죽음으로 이어지기 십상이었고 트랜스 남성의 섹스 따위는 그들의 안중에도 없어 보였다. 아마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의 대부분은 타인의 경험을 토대로 한 풍월이 압도적일 것이다.

강의 중 민지님이 강조하신 몇가지 말들이 기억에 남는다. 섹스에서 하지말아야하는 것은 없으며 어떠한 행위든 할 수 있지만 그에 따른 결과를 충분히 숙지해야하며 우리가 흔히 깨끗하다고 말하는 말의 모순에 대해서도 언급하셨다. 대학에 들어오고 나서 처음 만난 그 사람도 안전한 상태와 깨끗한 몸을 필요로 했던 것이겠지만 무엇이 깨끗한 몸이 어떠한 상태가 안전한 상태인지 물었을 때 그는 대답할 수 없었을 것이다. 정확하고 올바른 지식이 널리 퍼져야하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우리는 만나야 한다

하지만 그 뿐만이 아니었다. 이번 언더바에서 진행한 강의는 개인적으로 감회가 새로웠는데 그건 행성인 교육장을 벗어나 신림의 언더바에서 진행했다는 점이다. 행성인 교육장에서 벗어나 서로다른 맥락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을 얼굴을 마주보며 만날 수 있었고 궁금한 점에 대해 질문하고 지식을 말로 전달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그러했다. 중, 고교생 시절 스스로가 게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나를 둘러싼 여러 은유와 낙인들을 해부하고 제거하기 위해 노력했다. 여러 지식들을 숙지하고 습득했지만 섹스의 상황을 직면했을 때 지식의 확고함은 온데간데 없어지고 무너졌다. 첫 섹스를 하기 전 나에게 ‘무엇이든 하지 말아야한다’ 성교육 대신 ‘할 수 있는’ 성교육을 해주었다면 그렇게 헛된 기대감과 낙담, 막연한 불안함은 없었을 것이다.

이번 언더바에서 만난 다양한 커뮤니티의 사람들도 정확한 지식은 물론 얼굴을 마주보는 만남을 계기로 새롭게 자신의 삶에서 섹스와 인생을 꾸려갈 수 있을 거라 믿는다. 앞서 언급했듯 첫 섹스 이후 나는 더 이상 섹스에 대한 막연한 기대와 장밋빛 환상을 가지지 않는다. 하지만 행성인 HIV/AIDS인권팀원분들의 노력, 성교육을 준비해주신 민지님 그리고 멋진 우리 HIV/AIDS인권팀 팀장님들의 노고 덕분에 더욱 낙인과 은유로부터 멀어지게 되었다. 이번 성교육에 참여한 참가자분들 그리고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 모두 제각기 다르고도 색다른 섹스라이프를 멋지게 즐기시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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