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오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 편집자 주: 지난 5월 23일 퀴어팔레스타인연대QK48 에서《식민지배 군사점령 집단학살 부수는 퀴어팔레스타인연대》포럼을 진행했습니다. 세 개의 세션으로 구성된 행사의 두 번째 시간〈지금~여기~우리 퀴어 팔레스타인 연대의 동지들〉에서는 QK48 활동에 참여하는 단체들마다 미리 질문을 받고 이야기 나누는 시간이었습니다. 행성인에서는 지오 운영위원장이 답을 정리했는데요. 이를 웹진에서 나누고자 합니다. |


1) 우리의 조직 × 퀴어 팔레스타인 연대: 여러분의 조직에서 퀴어 팔레스타인 연대 활동을 결의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조직의 활동 방향이나 사업 계획과 퀴어팔레스타인연대 QK48 활동을 어떻게 연결해 나가고 있는지도 자세히 듣고 싶습니다. 퀴어 팔레스타인 연대를 주요-집중 사업 가운데 하나로 가져가면서 조직 내부적으로 경험한 변화가 있다면 그 또한 나누어주십시오.
행성인이 퀴어팔레스타인연대 활동을 결의했다고 표현하기는 조금 미묘한 지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행성인 안에는 오래전부터 전쟁, 제국주의, 국가폭력, 자본주의적 불평등과 성소수자 억압의 연결을 고민해온 활동가들과 회원들이 있었고 그러한 흐름이 일종의 ‘가풍’처럼 이어져왔다고 말하는 편이 더 가까울 것 같습니다.
1997년 노동법 개악 저지 투쟁에 나선 것이 행성인의 출발이 된 것처럼 이후 2003년 이라크 파병 반대 집회에 무지개 깃발을 들고 나갔던 경험, 노동자 투쟁과 철거민 투쟁, 강정마을과 희망버스, 홍콩과 미얀마 항쟁에 연대했던 시간들이 행성인에 쌓여 있습니다. 다른 의제에도 관심을 가진 성소수자들의 역사가 아니라 행성인이 성소수자 운동을 스스로 어떤 운동으로 이해해왔는지에 대한 역사이기도 합니다. 행성인은 오래전부터 성소수자 운동을 기존 질서가 누구를 정상으로 승인하고 누구를 배제하는지를 질문하는 운동으로 이해하려는 흐름이 있었습니다.
물론 한 단체의 역사는 늘 균일하지 않습니다. 어떤 시기에는 특정 활동가들의 문제의식과 실천이 두드러지기도 하고 또 어떤 시기에는 이런 활동들이 다소 뜸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러한 시도들이 완전히 끊기지 않고 여러 세대의 활동가와 회원들을 거치며 이어져왔다는 점입니다. 그렇게 축적된 경험들은 단체의 분위기와 정체성을 만들고 비슷한 문제의식을 가진 사람들을 다시 행성인으로 불러 모으기도 합니다. 그래서 행성인 안에서는 어떤 사안에 대해 거창한 결의를 하지 않더라도 ‘당연히 함께해야 하는 일’처럼 받아들여지는 흐름이 생기기도 합니다. 팔레스타인 연대 역시 그런 맥락이 있습니다.
동시에 기존에 해왔기 때문에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왜 지금도 중요한지 계속 질문하는 일 역시 중요합니다. 특히 행성인은 회원조직이기 때문에 새롭게 유입된 회원들과 이 문제의식을 어떻게 나눌 것인가를 꾸준히 고민해왔습니다. 그래서 정기회원모임에서 팔레스타인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거나 함께 집회에 참여하고, 웹진에 후기를 싣거나 연대 공연을 하는 방식으로 감각을 연결하려 노력해왔습니다. 이런 활동들은 행성인이 어떤 단체인지, 우리는 무엇에 연대하고 또 저항해왔는지를 다시 환기하는 계기가 되기도 합니다.
또 퀴어 팔레스타인 연대 활동은 행성인 내부에서 퀴어 운동의 방향에 대한 고민을 다시 확장시키는 계기가 되기도 합니다. 성소수자 운동이 단지 제도적 권리만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폭력과 전쟁, 식민주의, 정상성의 질서 자체를 질문하는 운동이어야 하지 않는가 하는 논의들입니다. 행성인 내부에는 여러 입장과 관점들이 혼재해 있고 서로 경합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퀴어 팔레스타인 연대 역시 모두가 동일한 언어와 방식으로 이야기되지는 않습니다. 다만 이러한 논의와 실천을 이어가는 과정 자체가 행성인에는 중요한 조직 경험이 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2) 한국 사회의 실로 다양한 투쟁 현장에 꾸준히 연대해 온 성소수자 단체로서, 팔레스타인 연대를 퀴어 운동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실천으로, 또는 퀴어 운동을 팔레스타인 연대에 필수적 주체로 상정하게 되는 이유에 대하여 조직 차원에서 어떻게 고민과 의지를 모아오셨는지 듣고 싶습니다. 반차별 기조와 계급의식에 기반하여 한국 사회를 발본적으로 변화시키고자 하는 노력의 일환으로 퀴어 팔레스타인 연대가 행성인 활동의 현재와 미래에 갖는 의미는 무엇일지 궁금합니다.
행성인에 팔레스타인 연대는 어떤 국가와 삶은 문명과 안보라는 이름으로 보호받고 어떤 사람들은 폭격과 봉쇄 속에서도 쉽게 지워질 수 있는 존재로 취급되는 질서 자체에 대한 질문과 연결됩니다. 이러한 질서는 성소수자들에게도 낯설지 않습니다. 성소수자들은 오래전부터 국가와 사회가 만들어온 정상성의 경계 바깥에 존재해왔고, 그렇기 때문에 배제와 혐오, 폭력의 논리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익숙하게 경험해 왔기 때문입니다.
행성인은 오래전부터 성소수자의 삶이 노동, 가족, 국가, 전쟁의 문제와 분리될 수 없다고 이야기해 왔습니다. 행성인 출범과 맞물려 있는 IMF 이후, 노동유연화와 정리해고 속에서 성소수자들은 가장 먼저 밀려날 수 있는 존재였고, 정상가족 중심의 사회 속에서 미래와 돌봄, 생존의 불안을 더욱 크게 감당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행성인은 성소수자 운동을 단지 성적 지향과 성별정체성에 대한 차별 반대로 축소하지 않고 누가 정상적인 시민으로 인정받고 누가 쉽게 버려지는가를 묻는 운동으로 이해해왔습니다. 그렇기에 노동자 투쟁, 반전 운동, 사회적 소수자들의 생존권 투쟁은 늘 연결된 문제였습니다.
10년 전, 중동의 퀴어 활동가들은 서구 국가들이 성소수자 인권을 내세워 전쟁과 군사 개입을 정당화하는 흐름에 비판적으로 맞서왔습니다. 레바논의 퀴어 단체 헬렘(HELEM)은 자신들의 운동이 반전 운동과 사회정의 운동의 일부라고 이야기하며 이스라엘이 LGBT 친화적 이미지를 통해 국가폭력을 세탁하려는 핑크워싱에 공개적으로 반대했습니다. 이들의 저항은 지금 팔레스타인 퀴어들의 목소리에 연결되어 있습니다.
특정 국가가 성소수자 친화적이라는 이미지를 내세워 다른 국가와 민중을 야만적 존재로 규정하고 폭력을 정당화하는 현실 속에서 팔레스타인 연대는 퀴어 운동의 방향과 감각을 구성하는 중요한 실천이 됩니다. 반차별은 단지 혐오 표현에 반대하는 데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삶을 위계화하고 차등적으로 보호하는 구조 자체를 바꾸려는 실천이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 과정에서 계급, 젠더, 섹슈얼리티, 장애, 국적과 인종의 문제는 서로 분리될 수 없습니다.
행성인은 앞으로도 팔레스타인 연대를 통해 퀴어 운동의 의미를 더욱 확장해나가고자 합니다. 억압받는 사람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확인하고 기존 질서가 불가능하다고 말해온 삶과 관계를 함께 상상하는 일은 지금까지 행성인이 해온 운동이었고 앞으로도 계속 만들어가고 싶은 퀴어 운동의 방향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