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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_코코넛의 눈코입귀] 귀하의 자유(Freedom)는 공짜(Free)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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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코넛 (행성인 HIV/AIDS인권팀)

잠실 가는 사람들

정신없이 5월 말과 6월 초를 보냈다. 신변에 꽤 많은 변화가 몰아쳤고, 지방 선거를 필두로 사회적으로도 크고 작은 일들이 많았다. 당적을 두고 활동하는 진보 정당에서 창당 이래 처음으로 당선자가 탄생했고, 동시에 내가 사는 도시에서는 장애인과 성소수자를 비롯한 소수자 혐오에 앞장서는 시장이 재선에 성공했다. 여러 의미에서 이게 현실인가 믿기지 않고, 마치 낮잠 자다 꾸는 꿈 같은 선거였다.

선거일 당일 오후에는 몇몇 투표소에서 투표 용지가 부족해 선거에 참여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발생하는, 상상하기 어려운 상황이 발생했다. 곧바로 이 사태에 대한 선관위의 책임을 규탄하는 대규모 집회가 잠실 올림픽공원에서 시작되어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그렇다, 이 글은 일련의 이러한 사건들과 집회, 그리고 소위 우리끼리 말하는 ‘잠실 가는 사람들’에 대한 글이다.

올림픽공원에서 벌어지는 집회는 여러모로 흥미로운 양상을 띤다. 일단 집회에 참여하는 사람들을 전부 소위 말하는 보수 우파, 혹은 극우라고 보기 어려울 수 있을 것 같다. 정말로 순수하게 선관위의 부실 선거에 규탄하는 목소리에만 함께하고 싶어하는 사람들, 혹은 평소 정치적 의제에 크게 관심이 없던 사람들도 해당 사태에 문제 의식을 느끼고 집회에 함께한다. 모르긴 몰라도, 이들 중 지난 윤석열의 비상 계엄 선포 이후 이어진 탄핵 촉구 집회에 참여한 사람이 있다고 해도 놀랄 일은 아닐 것이다. 기존 보수 우파, 혹은 극우 스펙트럼이 이렇게 다양하고 많은가 싶다. 한편 부정 선거를 외치지 말고 재선거만 외치자는 원칙이 이 ‘광장’에 존재한다는 말을 들었지만(사실 여부는 정확히 파악하지 못했다) 각종 SNS에 올림픽공원 방문 인증샷을 올리는 사람들은 부정 선거도 함께 외친다. 이 공간에는 시간이 갈수록 기존의 극우 담론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 상황과 공간은 우파, 혹은 극우 성향을 지닌 사람들이 자신의 주장을 펼쳐내기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윤석열의 비상 계엄 선포 및 그 후 탄핵 촉구 집회 정국에서는 사회 전반적으로 어느 정도 일관되게 합의된 목소리가 있었다. 비상 계엄은 시민들의 안위를 위협한 내란 행위였으며, 윤석열이 탄핵되어야 한다는 의견 말이다. 계엄을 정당화하거나 부정 선거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내란을 옹호하는 극우가 아니냐는 질타를 감안해야 했다. 그러나 지금 올림픽공원에는 지난 탄핵 광장에서 몸을 사리거나 의견을 표출하지 않던 우파 스펙트럼 사람들이 선관위를 마음껏 비판하면서, 부정 선거와 이재명 하야, 중국인 혐오와 같은 말들을 은근슬쩍 끼워 넣는다. 이번 부실 선거는 선관위가 백번 비난 받아 마땅한 상황이지만, 극우 진영에게 매우 좋은 빌미를 제공해 준 셈이다.

갈라치기만 할 수 없는

온라인, 그리고 오프라인에서 알고 지내거나 계정을 팔로우했던 사람들 중 정말 예상치 못했던 사람들이 이번 사태에 대해 목소리를 냈다. 유명 TV 프로그램에 나가 이름을 알렸던 댄서, 프라이드 엑스포에서 바디프로필 화보집 부스를 내는 포토그래퍼, 그리고는 심지어 오랫동안 연남동 인근에서 매장을 운영한 유명 비건 베이커리 점장이 잠실의 시위에서 태극기를 흔든 사진을 올렸다. 매력적인 외모나 웃긴 컨텐츠로 많은 팔로워를 얻은 크리에이터와 공구를 활발히 진행하는 인스타그램 인플루언서들은 ‘자유가 공짜가 아니’라는 메시지를 갑자기 컨텐츠에 넣는다. 이들에게는 공통점이 하나 발견되는데, 지금이 ‘좌우 이념을 떠나’ 대한민국의 안위에 그 어느 때보다도 큰 위협이라고 열변을 토하면서, 정작 2024년 12월 윤석열의 비상계엄 당시에는 놀라울 만큼 조용히 있었다는 것이다.

인스타그램 등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게이 및 퀴어 당사자들, 그리고 우리가 알고 지내던 게이 커뮤니티의 구성원들이 잠실 시위에 참여한 사진을 올리며 우파 담론을 말한다. 나와 함께 행성인에서 활동하는 친구도 자신이 알고 지내던 사람들이 잠실 태극기 시위 사진을 올린다며 한동안 힘들어했다. 한동안 나와 주변의 친구들은 잠실 시위 인증샷을 기준으로 수많은 인플루언서와 크리에이터들, 그리고 실제 지인들의 SNS 계정 팔로우를 취소하느라 바쁜 시간을 보냈다.

물론 나와 생각이나 이념이 다르고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사람들을 굳이 가까이 지낼 필요가 없다. 하지만 쉽게 갈라 치기가 어려워진 것이 사실이다. 계엄 시국에 가만히 있다가 이번에 잠실에서 태극기를 흔드는 성소수자 지인들은 언제 어느 상황에서 어떠한 목소리를 낼지 모른다. 자신의 이익과 직결된다고 판단하면 퀴어 퍼레이드에서 동성 연인과 손을 잡고 동성혼 법제화를 외칠 수 있고, 동시에 소득세와 재산세를 높게 부과하지 않기 위해 기업 친화적인 보수 성향의 후보를 지지할 수도 있다. 만에 하나 이들 중 직장에서 아웃팅 되어서, 혹은 HIV 감염인인 연인을 만나거나 본인이 감염인 당사자가 되어서 행성인과 같은 단체의 문을 두드릴 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런 상황이 찾아오게 되면, 이미 단체에서 활동하고 있는 우리들은 우리의 메시지를 어떻게 이들에게 전달할 것인가. 잠실에서 태극기를 흔들며 부정선거를 외치는 행위와 동성혼 법제화 지지가 왜 양립할 수 없는 것인지를 어떻게 이해시킬 것인가. 성소수자 운동을 포함한 진보 진영 시민운동이 저변을 확대하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가 닿으려면 이러한 경우도 항상 고민하고 이야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물론, 소위 ‘인권 묻은’ 사람들만 곁에 두고 친하게 지내는 나부터 ‘빻은’ 사람들과 억지로 친하게 지내며 소진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이들이 나와 평생 볼 일이 없는 사람들은 아닐 수 있다는 것만큼은 마음 한구석에 둬야겠다는 이런저런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투어스가 최근 자컨에서 서로 스타일링 해주고 찍은 화보. 이런저런 생각으로 복잡한 머리를 식히고 싶을 때 덕질하는 아이돌을 보며 마음을 정리한다. 얘들아, 너희는 꼭 좋은 세상에서 살았으면 한다. (편집자 주: 해당 이미지는 필자의 제안으로 원고와 함께 게시한 것임을 밝힘.)

자유는 공짜가 아니라고 외치신다면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잠실에서 태극기를 흔드는 사람들이 말하는 ‘자유는 공짜가 아니’라는 문장이 틀린 말은 아니다. 자유는 공짜가 아니다. 여성 참정권을 위해 몸을 던져 싸운 사람들, 도심 한복판에서 무지개를 흔들며 행진할 자유를 위해 수십 년을 투쟁한 성소수자들, 그리고 혐오와 부패를 기반으로 권력을 쥐고, 이를 휘두르는 대통령이 비상 계엄을 선포했을 때 123일 동안 광장에 나선 사람들이 힘들게 얻어낸 귀중한 가치다. 우리가 지켜낸 ‘자유’라는 단어가 우파 담론에 사용되는 것이 여러모로 기분 좋은 일은 아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원하는 후보에게 투표할 자유도 지난 선거에서 투표 용지 부족 사태로 처음 침해된 것도 아니다. 이미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시민권과 참정권을 얻지 못해서, 혹은 장애를 가지고 있다는 이유 만으로 접근권을 보장 받지 못해서 투표할 자유를 침해 받고 있지 않은가. 용지 부족으로 인한 참정권 침해에 분노한다면, 잠실에서 태극기를 흔드는 데 쏟을 에너지로 이미 사회 곳곳에 만연한 참정권 침해에도 관심을 가지고, 이것저것 연대해 주면 참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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