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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_회원 르포] 우리는, 서로의 존재를 끝내 진짜라고 인정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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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마도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부정선거 재선거! 당일투표 수개표!”

잠이 오질 않는다. 잔향(殘響)처럼 남아 버린 구호가 머리에서 떠나질 않아서. 웅웅대는 소리를 애써 묻어두며 밤새 뒤척이다가 출근하기를 반복한 게 보름이 되어간다. 이제 그만 가고 싶다.

나는 거창하게 말하면 시대를 기록하는 일을 하지만, 쥐뿔도 없는 언론 노동자다. 자의적으로 할 수 있는 건 제한적이다. 지난 6·3 지방선거 이후에도 (회사의) 타의에 의해 잠실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으로 출근 도장을 찍은 게 세 번이다. 6월 11일, 6월 16일, 6월 20일.

고백하자면, 처음 그곳에 갈 때만 해도 호기심이 앞섰다. 훈훈한 인플루언서들이 인스타그램에 인증샷을 올리고, 마침 제철을 맞아 헐벗은 헬스 트레이너들이 모여드는 곳. 약간 게이 서킷 파티를 앞둔 것과 같은 배덕감 가득한 시각적 기대마저 묘하게 호기심을 자극했다. 그곳에서 각종 기상천외한 쌍욕을 얻어먹고 위협당하기 전까지는.

문을 닫은 사람들

6월 11일, 핸드볼 경기장 2-1번 출입구 앞에 체육 단체 관계자들이 모였다. 그들은 6·3 지방 선거의 개표소 중 하나로 이용된 경기장을 시위대가 일주일 째 봉쇄하고 있어 생존권이 위협 당하고 있다며 문을 열어 달라 호소했다. 경기 준비를 해야 하는 선수들과 그곳이 일터인 이들에게, 경기장의 봉쇄된 문은 정치 투쟁의 장이 아닌 생업과 일상을 가로막는 비참한 벽이었다.

체육단체답게(?) 기자회견은 2차 시기에 걸쳐 시도되었다. 체육인들과 그들의 발언을 듣고 기록하려는 언론인들을 향해 ‘일부’ 시위대의 고성과 욕설이 쏟아졌고, 특히 언론사 로고가 박힌 카메라를 든 영상기자들은 위협적으로 밀려나며 1차 시기는 고꾸라졌다. 체육인들은 도망치듯 다른 건물로 후퇴해 2차 시기만에 회견에 성공했다. 나 역시 매국노, 간첩, 빨갱이, 중국인 따위의 다양한 멸칭과 나도 모르고 있던 우리 부모님의 안부를 전해 들으며 갖은 위협을 당한 끝에 현장에서 쫓겨나다시피 철수했다.

시위대는 “좌우 상관없는 문제”임을 강조했다. 투표 용지 부족 사태로 인해 촉발된 참정권 침해를 둘러싼 문제 제기에 좌우가 어디 있느냐는 것이다. 하지만 그곳에서 그들의 방식에 의문을 표하거나 목소리 큰 참여자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 사람들은 좌파, 빨갱이, 대진연(한국대학생진보연합)의 프락치가 되었다. 현장 취재를 온 언론인들도, 문을 열어 달라 읍소하는 체육인들도, 선거 결과까지는 인정하나 재선거는 필요하다는 사람들도, 심지어 성조기는 내리고 태극기만 흔들자는 시위대의 또 다른 한 축마저도 언제든 그들이 말하는 국민의 반대편으로 쉽게 밀려났다.

좌우를 가리지 않는다면서도 누구보다 좌파를 색출하는 데에 진심인 공간. 국민의 참정권을 지키자면서도 자신과 다른 사람들은 국민 밖으로 밀어내는 공간. 뒷걸음질로 그곳에서 쫓겨나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들이 말하는 국민에 나는 없겠구나.’

물론 지난 6·3 지방선거 당시 투표용지가 부족했다는 소식을 접한 사람들의 분노를 이해하는 것이 그리 어렵지는 않았다. 지방자치가 보장되는 민주 국가에서 투표소에 갔지만 투표하지 못한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었다면, 가볍게 넘길 일이 아니다. 어쩌면 그 사람이 내가 되었을 수도 있다. 이미 내 삶에서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것이 하나둘 줄어드는 이 비참한 시대에, 유일하게 스스로 결정해 행사할 수 있다고 믿었던 한 표의 기회마저 사라졌을 수도 있다는 생각은 불안감과 상실감을 주기 충분하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누군가의 참정권이 침해됐다는 정당한 문제 제기는 어느 순간 선거 전체가 조작됐다는 확신으로 옮아가 유구한 부정선거론 확산의 착화탄이 되었다. 투표하지 못한 사람들의 권리를 회복하자는 요구는 자신들이 받아들일 수 없는 결과를 무효로 만들자는 요구와 어지럽게 교잡(交雜)했다. 확인되지 않은 의혹은 또 다른 의혹의 증거로 여겨졌다. 의심과 의심이 모이고, 누군가 그것에 반박할수록 그들의 ‘박해 받는’ 의심은 똘똘 뭉쳐 더 단단해졌다. 그곳에서 질문하는 사람은 의심스러운 사람이 되었고, 기록하는 사람은 감추는 사람이 되었다. 자신들의 표가 사라졌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어느새 다른 사람들의 표가 진짜인지 의심하고 있었다.

그럼 대체 누구의 표가 진짜인가.

렌즈를 막으며 진실을 지키겠다는 사람들

6월 16일, 또 다시 올림픽공원으로 향했다. 체육 단체 관계자들이 경찰의 도움을 받아 경기장 진입을 시도하기로 한 날이었다. 오전 9시 경, 2-1번 출입구를 통한 진입 시도가 시작되었다. 경찰들은 우르르 출입구 앞으로 걸어갔다가 시위대가 문을 열어주지 않으면 다시 우르르 후퇴하는 퍼포먼스를 몇 차례 반복했다. 실패를 거듭하던 오전 11시30분쯤 장동혁 대표를 비롯한 국민의힘 국회의원들이 현장에 도착했고, 그들이 대체 무슨 권한이 있는 것인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그들과 시위대 사이에 경기장 출입을 위한 합의(?)도 이루어졌다. 하지만 경기장 문은 끝내 열리지 못했다. KBS와 TV조선이 각각 1풀 방송사(KBS, MBC, SBS, YTN, OBS, MBN)와 2풀 방송사(TV조선, 채널A, JTBC, 연합뉴스TV)를 대표하여 라이브를 하며 함께 들어가는 문제를 두고 시위대 내부에서 이견이 생겼기 때문이다. 성조기를 치마처럼 두른 한 여성이 경기장 문을 붙잡고 버텼고, 그날의 진입 시도는 최종 불발되었다.

경찰이 진입을 시도한 핸드볼경기장 2-1번 출입구

진실을 밝히겠다는 사람들이 기록하는 사람들의 출입을 막았다. 투명한 검증을 요구하면서도 자신들이 통제할 수 없는 카메라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렌즈에 비친 모든 것을 편집 없이 실시간으로 보여주겠다는 조건도 받아들이지 못했다. 언론이 자신들을 보도하지 않는다며, 진실을 전하지 않는다며 원색적인 비난을 일삼던 그들이지만, 정작 보도를 하려 접근하니 막아섰다. 그들에게 언론은 현장을 확인하는 눈이기보다, 이미 결론을 정해둔 적(敵)이었다.

그 혼란 속에 나에게 한 중년 여성이 울부짖었다.

“대한민국 언론이 어떻게 하나님의 진리를 따르지 않을 수가 있어! 우리가 왜 시위대야! 우리는 그저 진리를 따르는 사람들일 뿐인데, 어떻게 감히 우리를 시위대라고 할 수가 있냐고!”

울먹임에 가까운 외침. 충격이었다. 이들이 시위대로 호명되기를 거부한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하나님의 진리”라는 표현이 날 것 그대로 귀에 꽂혔다. 그 울부짖음은 진심이었다. 그는 진심으로 자신의 의사를 주체적으로 표현하는 시위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신의 이름을 빌린 남에 의해 주어진 ‘진리’를 좇을 뿐이었던 것이다. 부정선거론은 그곳에서 검증의 대상이 아닌, 믿을 교리였다. 그것이 ‘하나님의 진리’로 선포되는 순간, 반대 의견은 진리에 등 돌린 거짓이 되고, 그것에 질문하며 의문을 표하는 현장의 언론인들은 대중을 진리로부터 소외시키는 거짓 선지자가 되었다.

내가 그 신앙의 순수성 여부를 판단할 수는 없다. 그가 특정 신앙을 가진 채 그곳에서 그의 ‘진리’를 외치는 사실 자체가 문제라 생각하고 싶지도 않다. 때로 종교는 억압 받는 이들의 곁에 서고, 세상이 당연하다고 여기는 부정의를 의심하게 하는 힘이 되기도 한다. 퀴어 운동의 역사에도 자신의 믿음을 버리지 않은 채 신앙 공동체와 사회의 배제에 맞서 온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신의 이름으로 자신의 정치적 확신을 절대화 하는 순간, 대화와 검증의 공간은 사라진다. 나와 다른 사람은 함께 진실을 찾아갈 시민이 아니라, 이미 진리를 거부한 사람으로 분류 폐기된다. 질문은 불신앙이 되고, 반론은 거짓이 되며, 기록은 모독이 된다.

6월 16일, 끝내 열리지 않은 것은 경기장 출입문만이 아니었다. 자신과 다른 의견이 자유로이 드나들 수 있는 문, 자신과 타인의 정치적 의견을 동등하게 받아들이는 문, 내가 틀렸을 수도 있다는 여유로운 마음가짐을 가지고 살짝 괴어놓은 문틈마저 굳게 닫혀 잠겼다.

진입 시도가 무산된 뒤 시위대의 경기장 봉쇄는 더 단단해졌다. 문 앞에는 사람이 늘었고, 시위대의 통제선은 촘촘해졌다. 그곳에서 ‘진실’은 누구나 접근해 확인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함께 검증해야 할 대상도 아니었다. 그곳은 이미 진실을 알고 있다고 스스로 믿는 사람들이 독점하고 지켜내야 하는 성소(聖所)로 변해가고 있었다.

진입이 무산된 후의 2-1번 출입구

같은 불안이 같은 정치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공교롭게도 첫 올림픽공원 방문과 두 번째 방문 사이, 나는 퀴어문화축제에 다녀왔다. 그곳에서 우리 역시 공간을 점유했다. 부스를 위해 도로를 막고, 음악을 크게 틀고, 행진을 하며 차량과 행인의 흐름을 잠시 방해하기도 했다. 이를 보고 누군가는 퀴어문화축제와 올림픽공원 봉쇄 시위를 똑같은 점거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가 두 공간에서 본 것은 서로 전혀 다른 방향의 점유였다.

퀴어문화축제에서 우리는 길을 열기 위해 잠시 공간을 점유했다. 일 년에 단 하루라도 우리가 맘편히 거리로 나올 수 있는 길, 서로의 얼굴을 확인할 수 있는 길, 매일같이 숨기던 나를 숨기지 않고도 당당히 도시를 통과할 수 있는 길을 만들기 위해 공간을 점유했다. 우리와 혐오세력 사이를 가로막은 울타리는 다른 사람을 내쫓기 위한 폐쇄가 아니라, 늘 쫓겨나있던 사람들이 그날만큼은 함께 광장을 사용할 권리를 확보하기 위한 열린 방어였다. 하지만 올림픽공원에서 나는 정반대의 일을 보았다. 문은 닫혔고, 길은 차단됐다. 자신들의 의혹이 자신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해소될 때까지 다른 사람들의 접근과 이용을 막았다. 안으로 들어가려는 사람의 사상은 검증됐고, 카메라를 든 사람은 의심받았으며, 자신들의 확신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은 비국민, 적으로 분류되었다.

6월 13일, 한 쪽에서는 보이지 않던 사람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위해 광장을 열어젖혔다. 6월 16일, 다른 한 쪽에서는 자신들의 믿음을 지키기 위해 문을 걸어 닫았다. 공간을, 광장을 점유한다는 물리적 행위만으로 두 정치가 같아지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그 점유가 누구의 길을 열고, 누구의 길을 막는가이다.

(뇌에 최대한 힘을 주고) 물론 그렇다고 올림픽공원에 모인 사람들의 불안 또는 분노를 모두 거짓으로 치부하고 싶지는 않다. 내가 결정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무엇 하나 제대로 없는 듯한 세상. 내 노동, 내 집, 내 노후 그 무엇도 내가 통제할 수 없다는 감각. 국가고 언론이고 제도고 내 목소리를 들어주지 않는 것 같다는 울분. 내가 살아온 방식, 내가 믿어온 상식이 더 이상 사회의 표준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상실감. 그 와중에 내가 행사한, 행사해야 할 표마저 제대로 집계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부추겨진 의심. 이 감정들이 낯설지만은 않다.

퀴어로서 나 역시 국가가, 제도가 나를 지켜주지 않을지 모른다는 불안에 익숙하다. 이미 그런지 오래니까. 내 가족과 내 학교, 내 직장이 나의 존재를 받아들이지 않을지 모른다는 두려움과 소외감을 안다. 나는 분명 여기에 있는데, 정치가 나를 온전한 시민으로 계수하지 않을 때의 상실감도 안다. 선거철마다 우리는 유권자이기보다는 찬반을 물어야 하는 의제로 등장하고, 정치적 주체이기보다는 다른 다수 유권자의 뜻을 확인해야만 존재가 보장되는 예외적 대상으로 취급되니까. 그래서 나는 자신의 표가 사라졌다고 느끼는 사람들의 어렴풋한 불안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같은 불안이 같은 정치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불안과 상실감을 자신과 타인의 권리를 함께 넓히는 연대로 바꾼다. 나에게 안전한 사회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안전해야 한다 말하고, 내가 배제되지 않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 역시 배제되어서는 안 된다 부르짖는다. 반면 어떤 사람은 타인의 존재를 부정하고 밀어냄으로써 자신의 불안을 해소한다(고 착각한다). 패배했다는 상실감을 느끼기보다는 선거 자체가 잘못된 것이고 나는 패배하지 않았다는 믿음을 택한다. 나와 다른 선택을 한 사람들은 속았거나 조종당한 것이며, 내가 믿는 국민의 뜻과 다른 결과는 진짜 민의일 수 없다고 믿어버린다.

우리 역시 오랫동안 익숙한 언어로 존재를 부정당해 왔다. 그런 사람은 실제로는 많지 않다는 말, 좌파 퀴어 교육의 세뇌가 퍼뜨린 취향이라는 말, 정상적인 ‘일반’ 국민의 상식에서 벗어난 변태 성욕이라는 말, 그건 진짜가 아니라는 말. 그래서 “국민의 진짜 뜻이 이럴 리 없다”는 올림픽공원의 외침과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그럴 수 없다”는 우리에게 익숙한 비난은 서로 다른 대상을 향하는 듯하지만, 결국 닮아있다. 둘 다 자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타인의 의견, 타인의 존재를 오류로 만든다. 내 세계관에 들어맞지 않는 의견, 사건, 사람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대신, 그 자체를 오류로 치부해버린다.

타인의 표를 믿지 않고, 자신의 의견을 방어하기 위해 봉쇄를 택해버리는 사회에서 퀴어로 산다는 것은, 어쩌면 우리 존재가 언제든, 언제까지고 ‘조작된 것’으로 취급될 수도 있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비에 젖은 결계를 넘어

6월 20일, 전국적으로 비가 내렸다. 다시 찾은 올림픽공원에도 비가 쏟아졌다.

언론인으로 의심 받아 쫓겨나지 않기 위해 함께 태극기를 흔들며 돌아다녔다.
비오는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 1-3번 출입구 앞. 시위대는 주로 이곳에 모여 태극기와 성조기를 흔들며 구호를 외친다.

나흘 전 경찰이 진입을 시도했던 2-1번 출입문 손잡이는 역신 쫓는 처용마냥 줄지어 붙은 트럼프 미국 대통령 사진으로 봉인되어 있었다. 결계라고 했다. 그 주변에는 곳곳에 진입 금지 경고문이 나붙었다. 시위대가 법률 조항을 짜깁기해 임의로 인쇄해 붙여 놓은 것이다. 어느새 그곳은 시위대 허가 없이는 접근할 수 없는 유치권 행사장으로 변해 있었다.

핸드볼경기장 주변 곳곳에 붙은 트럼프 포스터

그런 그들을 비웃는 듯 아침 빗발은 거셌다. 그래도 사람은 좀처럼 줄지 않았다. 주말 아침이라서인지 한 손에는 자녀들의 손을 잡고, 한 손에는 성조기와 태극기를 든 부모들도 보였다. 남녀노소 우산과 우의를 뒤집어 쓴 채 끊임없이 구호를 반복했다.

“부정선거 재선거! 당일투표 수개표!”

일정한 박자에 맞춰 끝 모르고 반복되는 구호는 일종의 염경기도였다. 서로의 불안과 분노를 확인하고, 자신들의 확신이 아직 무너지지 않았다고 서로에게 최면을 거는 기도. 기도 소리 한 편 바닥에는 시위 참여자들이 손수 쓰고 그린 손팻말과 태극기가 비에 젖어 난잡하게 떨어져 있었다. 빗물을 먹고 무거워진 종이는 바닥에 짓이겨져 달라붙었다. 꾹꾹 눌러 쓴 ‘부정선거’는 비와 함께 번졌고, 태극기는 찢겨져 오가는 사람들의 발자국 아래 종이죽처럼 문드러졌다. 갖은 ‘박해’에도 깨지지 않는 단단한 확신을 선언하던 그것들은 조롱 섞인 빗물을 머금고 형태를 잃어갔다.

올림픽공원 바닥에 붙은 손글씨 슬로건들
빗물에 짓이겨진 시위대의 슬로건

하지만 종이가 녹는다고 거기 모인 이들의 악까지 비에 녹지는 못했다. 그들을 그곳으로 불러 모은 그들만의 상실감도, 국가와 언론이 자신들을 버렸다는 초점 잃은 분노도, 자신의 세계가 무너지고 있다는 막연한 공포도 비에 씻겨 내려가지 않았다. 그곳에 모인 이들을 멍청한 음모론자라 조롱하는 것만으로는 그 감정의 방향을 바꿀 수 없었다.

그럼 우리는 그들의 불안을 혐오와 배제의 정서로 조직해내는 작금의 정치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그곳에 가는 개개인을 비난하는 것으로 충분할까. 그들을 이해해 보려는 순간 음모론을 용인해 버리는 걸까. 이해와 면책은 다르다. 그들의 불안을 이해하려는 일과, 그 불안이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도록 방치하는 일은 전혀 다르다. 문을 봉쇄하고, 다른 시민을 적으로 규정하고, 자신과 다른 표를 가짜로 모는 행위는 분명 비판받아야 한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는 그들이 왜 자신의 패배를 감당할 언어보다 음모론을 먼저 붙잡게 되었는지도 물어야만 한다.

민주주의는 이기지 않으면 지는 경쟁 체제가 아니다. 민주주의는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견뎌야만 하는 체제다. 내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의견이 존재하고, 내가 이해할 수 없는 후보에게도 표가 던져지며, 내 상식으로 설명할 수 없는 삶도 이 사회의 일부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나와 다른 표의 존재를 인정하는 일과 퀴어의 존재를 인정하는 일은 바로 거기에서 스친다.

비는 계속 내렸다. 바닥에 떨어진 구호들은 밟힐 때마다 조금씩 조금씩 찢어지고 녹아내렸다. 카메라를 들고 그 모습을 기록했다.

비에 녹고 짓밟힌 종이는 언젠가 치워질 것이다. 출입문에 나붙은 트럼프와 진입 금지 경고문도 결국은 떼어질 것이고, 봉쇄되었던 문도 언젠가는 다시 열릴 것이다. 하지만 그 문이 다시 열린다고 해서 우리의 망가진 민주주의가 절로 회복되지는 않을 것이다.

경찰이 진입을 시도했던 2-1번 출입구

그래도 민주주의는 문을 여는 것에서 시작한다. 나와 다른 사람들이 들어올 수 있도록,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삶과 목소리가 존재할 틈을 남겨두는 것에서 시작한다.

그날 비는 구호를 지웠지만, 여전히 내 안에 남는 찝찝한 질문까지 지워주지는 않았다.

이들이 말하는 국민 안에 나는 있을까.

그리고 우리는, 서로의 존재를 끝내 진짜라고 인정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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