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오
7월에 사회복지현장실습을 나갑니다. 3년에 한 번 돌아오는 안식월을 활용해 한 달 동안 실습을 다녀올 예정이에요.
퀴어 돌봄에 대해 고민하면서 지난해 방송통신대학교 사회복지학과 3학년에 편입했습니다. 언제 졸업을 할까 싶었는데 어느새 현장실습을 앞두고 있네요. 시간이 참 빠릅니다.
실습처는 노인 데이케어센터로 정했습니다. 면접도 무사히 마쳤고 일정도 확정했어요. 새로운 환경에 들어가는 일이 너무 오랜만이라 조금 떨립니다. 행성인의 환경과는 사뭇 달라질 것이라서 여러모로 좀 두근두근하네요. 데이케어센터에서 만나게 될 어르신들과 동료들은 어떤 이들일지, 분위기는 어떨지 그안에서 나는 어떻게 지내게 될지 궁금해집니다. 또 퀴어 돌봄을 이야기할 때마다 마주했던 노년, 관계, 지역사회, 돌봄의 공공성 같은 질문들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연결해보는 시간이 되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습니다.
한 달 동안 실습 잘 마치고 돌아오겠습니다. 다음 달에는 사회복지 실습생의 하루를 전해드릴게요. 어쩌면 생존일지가 될지도 모르겠지만요😅
오소리
나의 가치 여정 테스트라는게 있더군요. 수백 개의 가치 단어 중 원하는 것과 원하지 않는 것을 단계적으로 선택 소거하며, 최종적으로 본인의 핵심 가치 5가지를 남기는 심리 탐색형 테스트인데, 테스트가 끝나면 AI 분석용 프롬프트를 제공해 AI가 결과 해석을 더해주는 방식입니다. (라고 AI가 브리핑 해주었습니다) 어디 티는 잘 안 내지만 유행하는 테스트는 다 해봅니다. 이것도 역시 해봤습니다.
인상 깊은 구절 몇 가지를 가져와봅니다.
“당신은 원래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인데, 최근의 삶에서는 “좋은 관계” 자체보다 “관계를 다시 믿는 것”이 더 중요한 과제가 되어 있는 듯합니다.”
“당신은 실패 자체보다 신뢰가 깨지는 일을 더 힘들어합니다. 일을 망치는 것보다 사람을 잃는 것을 더 두려워합니다.”
“당신의 가장 큰 강점은 사람을 깊게 대한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그 강점은 동시에 가장 큰 약점이 되기도 합니다. 당신은 관계를 소중하게 여기기 때문에 때때로 관계에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합니다.”
최근에는 드라마 <나의 아저씨> 정주행을 마쳤습니다. 관계에 대한 드라마였습니다.
관계에 대한 고민이 많은 요즘입니다. AI의 결과 해석 말미, 건네준 말을 곱씹어봅니다.
“용서는 감정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고, 믿음은 경계를 없애는 것이 아닙니다. 누군가를 이해하면서도 거리를 둘 수 있고, 사랑하면서도 떠나보낼 수 있습니다. 당신은 더 강해지기 위해 마음을 단단하게 만들 필요가 없습니다. 오히려 이미 충분히 따뜻한 사람이기 때문에, 이제는 그 따뜻함의 일부를 자기 자신에게도 돌려줄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니 앞으로도 당신이 가진 다정함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다만 한 가지는 기억했으면 합니다. 당신이 세상에 주고 싶은 사랑, 믿음, 용서의 일부는 반드시 당신 자신에게도 향해야 합니다. 당신은 누군가를 구하기 위해 존재하는 사람이 아니라, 당신 자신의 삶을 살아갈 자격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어쩌면 당신의 꿈은 무엇인가를 이루는 일이 아니라, 끝까지 당신다운 마음을 잃지 않는 일일지도 모릅니다.”
이안
6월이 자긍심의 달이라 그런가 정말 퀴어 행사도 많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그만큼 할 일도 많았습니다. 뜨거운 햇볕만큼이나 우리 퀴어들의 자긍심도, 열정도 뜨거운 한 달이었는데요. 그 중에서도 서울퀴어퍼레이드 준비가 가장 엄청났죠.
행성인 충전부스를 오픈하기 직전까지, 저는 오전에 청계천 옆에서 올해 행진 9호차였던 모두의 결혼 트럭을 꾸미러, 아니 고치러(…) 다녀왔습니다. 무대를 사랑하는 만큼 행진은 퀴어문화축제의 하이라이트인지라 차량 꾸미는 걸 참 좋아합니다. 지난 번 행성인이 행진할 때 ‘퀴어한 몸들의 수상한 행진’을 디자인하기도 했고요. 근데 이번에는 뭔가 이상하게, 크고 작은 어려움을 많이 마주했습니다. 전통혼례 꽃가마 컨셉으로 호기롭고 화려하게 스케치도 하고, 미팅도 다녀올 때까지만 해도 파이팅 넘쳤는데, 날짜가 다가오고 재료와 도구들이 도착하면서부터 멘붕이 시작됐습니다. ‘아, 이렇게 해야겠다’ 보다 ‘아, 이거 어떻게 하지?’ 하는 생각을 정확히 다섯 배 더 많이 한 것 같습니다.
중간에 열심히 만든 것들이 망가지고, 어렵게 걸어둔 것이 찢어지고, 힘들게 마련한 건 안 맞아떨어지고, 그런 작은 사건사고들이 하나둘 쌓여서 이미 지친 순간에조차 머릿속에선 우당탕탕 소리가 끊이지 않았어요. 그러니까, 행진 당일 아침까지도 말이죠.
땡볕에 오래 서고, 무거운 걸 들고, 반복작업 하는 건 아무것도 아니었죠. 함께 고생해준 모두에게 그저 미안하기만 하고, 어쩔 줄 모르겠는 그 순간이 정말 제일 힘든 것 같아요. 많은 사람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걸 좋아하는 것과 별개로, 저는 여러 사람들이랑 일하는 게 아직은 자신 없어요. 특히 제가 뭔가 결정하거나 이끌어야 할 때 더 잘하고 싶어서 그런가 부담감이 정말…. (이래서 디자이너들이 혼자 일하는 걸 좋아하나봐요) 혼란한 상황에서 다른 분들께 어떤 걸 어떻게 요청해야 다같이 뿌듯하게 일을 잘 해낼 수 있을까, 그런 요령이 아직 없어서 그런가봐요.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답은 ‘아무에게도 말 안 하고 알아서 해치운다’가 아니라 ‘다 같이 고민하고 일단 해본다’ 였던 것 같아요. 결국 사전 준비도, 당일 현장도, 모두가 하나같이 적극적으로 잘 참여해주신 덕에 진짜 멋있게 준비했어요. 또 어렵고 힘들 수록 무사히 끝마치고 해냈을 때의 쾌감도 크잖아요.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뭐 그런 걸까요. 행성인 깃발 휘날리며 차량 따라가면서 예쁘게 흔들리는 천과 장식들을 보며 마음이 크게 울리는 걸 느꼈습니다. 아, 이래서 어쩔 수 없이 하게 되는 건가봐요.
그래서 결론은, 아마도 해피 엔딩… 입니다. 다들 수고 많았던 만큼 뿌듯했기만을 바랄 뿐이죠. 내년에도 할 거냐고 물어보면, 글쎄요. 그 고생을 하고도 재밌어보이면 일단 하지 않을까요. 그것이, 불나비이니까….

남웅
필드의 문법 같은 게 있다. 이건 꼭 운동권만 이야기하는 건 아니고 각자 속하거나 연결된 이해 집단과 공동체라면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이해할 수 있는 언어들, 자기들끼리 당연하게 공유하는 생각 회로가 있다는 얘기기도 하다. 업계와 회사, 학교와 같은 사회 집단이 있을 거고, 퀴어판이라고 해도 정체성과 성적지향마다 자기들끼리 쓰는 언어들이 있다. 문법이라고 분명하게 고립되어 있기보단 시간마다 바뀌고 다른 필드와 이리저리 섞인다. 내 경우엔 오랜 시간 미술과 퀴어운동 사이를 왔다갔다 하면서 평문 같은 성명이나 논평 같은 리뷰 같은 혼종의 문장을 썼던 거 같다. 간혹 팔려보고자 시류의 험한 단어들을 배워와 이따금 글에 섞기도 한다.
인권운동과 그리 접면이 넓지 않은 퀴어커뮤니티를 만날 때나, 퀴어를 잘 모르는 관객을 만날 때, 아무튼 필드가 다르다 싶은 사람들한테 이쪽 이야기를 해야 하는 상황에서 매번 하던 대로 이야기하는 건 듣는 입장이나 하는 입장이나 그리 효용 있는 소통은 아니다. 이번 상반기는 다른 때보다 그 필요를 많이 느꼈다. 행성인을 비롯한 성소수자 운동을 확장해야 한다는 공동의 문제 의식을 공유하면서, 미술판에서도 그저 미술의 형식적인 이야기만 할 수 없는 상황을 접하면서, 서로 비슷하고 같은 방향으로 운동한다고 생각하는 이들과 공감대를 확인하는 것이 힘이 되는 한편으로는 고립되는 건 아닌가 하는 작은 불안 거리가 도처에 있었다. 같은 울타리에 있어도 당신과 내가 지향하는 바가 다른 만큼 언어와 운동의 문법이 다른 걸 느꼈고, 지방 선거 직후 올림픽공원을 간 건너 건너의 사람들을 보면서도 느꼈다. 차제연의 외부 기금을 받는 일과 관련한 모종의 상황들을 건너오면서, 한화 퐁피두센터를 규탄하면서 사람들에게 설명을 해야 하는 순간이 그랬다. 최근 모두의 결혼 논평을 둘러싼 이야기나, QK48에서 ‘좆같은’ 현실을 붙인 데 대한 피드백을 받으면서도 비슷한 걸 느꼈다.
그러니까 운동의 확장을 위해 당신의 문법을 헤아리는 일은, 우리가 생각보다 다른 게 더 많다는 걸 인지하고 인정하는 일이다. 내가 지키려는 건 뭔지, 그래서 당신과 건널 수 없는 차이를 받아들이면서 어느 부분을 설득하고 관철하거나 양보할지, 협상하고 조율할 수 있을지 판단해야 한다. -> 여기까지는 평소에 이야기를 많이 하고 다닌 부분이다.
최근에 더해진 고민은 이걸 어느 톤과 단어를 써서 소통하느냐 하는 거다. 원칙과 신념이 있다면 말하는 방법과 문장의 형식 자체가 어떻든 상관 없겠지만, 같은 주장을 하면서도 상대의 마음을 헤아리는 문장을 볼 때면 그가 얼마나 마음을 쓰는데 자신의 에너지를 할애했는지 깨닫는다. 상냥함이 모든 걸 해결해주지는 않지만, 상냥함이 세상을 변화 시킨다는 문구에 전적으로 동의하지도 않지만, 적어도 상냥함도 노동이라는 점에는 이견이 없다. 운동의 언어로 다시 이야기한다면, 당신과 이념과 주장의 방향이 다르다면, 내 언어로 당신의 언어를 다시 설명하는 연습을 하면서 우리가 어디까지 접점을 확보할 수 있을지 살피는 일은 결국 마음의 품이 필요한 노동이다.
하여 요 근래는 제일 내 글에 동의 안 할 거 같은 사람을 독자로 두고 다시 읽는 연습을 한다. 말을 이렇게 하지만 잘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적어도 상대의 티 내지 않은 배려 같은 건 어떻게든 찾아서 기억해두기로 한다.(적어도 기억하는 훈련을 해보기로 한다) 반대로 상대의 불친절과 무례 같은 건 각 잡고 짚을게 아니면 거리를 둔다(잊지는 않는다). 그건 메타인지를 매 순간 발동하게 만든다. 대충 심적으로 피곤하단 얘긴데, 피곤하면 편한 자리만 찾는 버릇이 또 나온다. 이거까지 내가 단속하고 싶지는 않은데, 아유 모르겠다.
호림
매년 5-6월은 언제나 정신없지만, 올해는 그중에서도 유독 바빴던 시간으로 기억될 것 같습니다.
해외 출장이 1회, 영남권 혼인평등소송 심문기일로 인한 지역 출장이 3회 있었고, 주관 단체로 참여하는 집회가 1개, 실내 행사가 1개, 서울퀴어문화축제에서는 트럭 1대와 부스 2개를 운영했어요. 여기에만 집중해도 모자라지만, 사회적으로 성소수자 이슈에 관심이 모이는 시기라 각종 발표와 강연, 원고를 해내야 하기도 했습니다. 혼인평등 몸자보를, 스티커를 달고 달리기 대회도 두 번이나 나갔네요. 재미있어 보이는 커뮤니티 행사들도 많이 놓치며, 5-6월은 성소수자 활동가들의 성수기임을 온몸으로 체감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유독 바빴던 만큼 반가운 사람들도, 새로운 사람들도 많이 만나며 즐거운 기억을 많이 만들기도 했어요. 사람들 사이에서 에너지를 얻는 파워 E답게, 비현실적인 스케줄과 업무를 소화하면서도 지치지 않을 수 있었던 건 제가 하는 일이 고요한 방에 홀로 앉아서 하는 일이 아니라, 수 많은 사람들과 연결되고 뒤섞이며 해나가는 일이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한편으로는 너무 정신없는 나머지 반갑고 고마운 사람들에게 제대로 마음을 표현하지 못하는 일도 많고, 찾아갔어야 할 자리를 놓치기도 하고, 안부를 묻고 만났어야 하는 사람들을 지나치는 일도 많았던 시간이기도 했어요. 만나는 사람들과 깊은 대화를 나누기도 어려웠지요. 그래서 7-8월 동안은 찬찬히 안부를 전하고, 마주 앉아 이야기 나눌 기회를 의식적으로 많이 가져보려고 합니다. 다양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새로운 에너지를 채우는 여름을 보내고 싶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