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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코넛의 눈코입귀] 2026년 서울 종태원에게, 1980년대 런던 소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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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코넛 (행성인 HIV/AIDS인권팀)

게이들이 클럽에 가는 이유

글을 쓰는 시점에 개막을 불과 나흘 앞두고 있는 연극 <크루즈>는, 2010년대 성소수자 전화상담센터인 ‘스위치보드’에서 자원활동을 하는 젊은 게이 ‘잭’이 중년의 게이 ‘마이클’의 전화를 받으며 시작한다. 마이클은 자신이 청년기를 보낸 1980년대 런던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그 시대를 강타하는 HIV/AIDS 위기로 인해 경험한 상실의 기억을 공유한다.

마이클이 들려주는 그 시대 이야기는 비극으로 점철되지 않는다. 화려하게 삶을 축하하고 커뮤니티에서 유흥을 즐기는, 먹고 마시고 섹스하고 춤추고 연대하고 애도하는 1980년대 런던 게이 커뮤니티의 모습은 찬란하고 짜릿하게 묘사된다. 마이클이 소속된 게이 커뮤니티에서, 게이 당사자들이 편하게 모여 놀고 즐길 수 있는 바와 클럽을 비롯한 퀴어 업소들은 배경으로서 큰 비중을 차지한다.

연극 <크루즈>에서 클럽 ‘헤븐’을 배경으로 하는 장면들은 종교적인 메타포를 사용해 묘사된다. 디제잉을 하며 클럽에 모인 사람들의 분위기를 좌지우지하는 핑거스는 신자들의 손에 성체를 내려놓으며 예배/미사를 집전하는 사제에 비유되고, 1988년의 마지막 밤, 헤븐에서 춤을 추며 절정에 이르는 마이클의 시간은 ‘봉헌’, ‘성체성사’, ‘의식’ 등으로 묘사되며 연인 데이비드를 포함해 에이즈 합병증으로 세상을 떠난 게이 커뮤니티의 동료들을 향한 추모의례적 성격을 띈다. <크루즈>의 배경이 되는 1980년대 런던에서도, <크루즈>가 무대에 올라오는 2020년대 서울에서도, 게이 커뮤니티의 구성원들은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클럽과 술집에서의 유흥으로 더 큰 의미를 만들어낸다.

게이 커뮤니티가 모이는 업소는 차별과 검열의 위험이 항상 존재하는 사회에서 안전할 수 있는, 스스로의 ‘게이함’을 펼칠 수 있는 공간으로 기능한다. 이 공간에서의 연대와 애도를 경험한 마이클의 서사는 구술사의 형태로 잭에게 전해져 연속성을 가지게 된다. 살아 숨쉬는 역사가 있는 게이 커뮤니티의 공간은 단순한 건물이 아니라 퀴어 커뮤니티 그 자체인 것이다.

“우리의 여정을 이어나가요. 우리의 모험을. 우리의 탐험을. 우리의 크루즈를.”

연극의 제목 ‘크루즈’는 게이 커뮤니티의 구성원들이 익명성을 지닌 채 관계나 만남을 가질 상대방을 탐색하는 문화를 나타내는 은어이다. 그러나 ‘크루즈’라는 단어가 극본에서 지니는 의미는 게이 커뮤니티의 은어를 넘어서 확장된다. 연극에서 ‘크루즈’는 잭과 마이클이라는 청/중년 게이 당사자들의 여정을 뜻하기도 한다. 런던에 상경한 마이클이 소호의 게이 업소들과 친구들의 공간을 거니는 물리적 여정, 그리고 퀴어 커뮤니티에서 일어나는 삶의 여정은 연극의 주요 소재가 된다. 잭과 마이클이 여정 도중에 만나고 헤어지는 수많은 사람들은 잭과 마이클의 시선을 통해 묘사되고, 관객들에게 전달된다. 1980년대부터 이어져 온 마이클의 여정은 2010년대의 잭에게 이어지고, 뒤이어 극의 형태로 관객들에게 이어지며, ‘크루즈’는 계속된다. 그리고 게이 커뮤니티의 업소들은 이러한 ‘크루즈’가 이어지는 주 무대이다.

“근데 돌이켜보면, 눈을 감고 생각해보면, 기억나는 그 얼굴들이, 그 인파 속의 얼굴들이, 등장인물로, 악당이자 영웅으로, 러닝타임이 팔 년에 달하는 희비극을 만들어냈어.”

‘헤븐’을 포함해 <크루즈>의 배경이 되는 장소들은 고유한 의미와 역사를 지닌다. 잭과 마이클의 여정을 따라가는 극을 해석하고 만들기 위해서는 퀴어 커뮤니티의 특징과 역사, 그리고 1980년대 서구권에서 크게 가시화되었던 HIV/AIDS 위기에 대한 이해와 존중이 필수적이다. 극의 배경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고 접하는 일련의 과정은 <크루즈>를 보는 우리에게도 하나의 여정이자 ‘크루즈’를 선사할 수 있을 것이다.

런던 소호 게이 커뮤니티

런던에서 소호는 서울의 종로3가, 이태원, 신림과 같이 게이 업소가 밀집해 있고 커뮤니티의 구성원들이 모이는 공간으로 기능했다. 1885년 Labouchere Amendment로 인해 남성 간의 성관계가 범죄화되자, 게이 커뮤니티는 17~18세기경부터 극장과 예술인들의 모임 장소이기도 한 웨스트엔드의 소호에 모여 네트워킹과 크루징을 수행했다.

1940~50년대에 이르러 게이 커뮤니티 및 업소가 웨스트엔드/소호를 벗어나 생활비가 상대적으로 저렴한 런던의 변두리로 이동하며, 소호의 게이 커뮤니티에 침체가 찾아오기도 했다. 그리고 1967년, 1980년, 1982년에 각각 잉글랜드와 웨일스, 스코틀랜드, 북아일랜드에서 남성 간의 성행위가 (부분적으로) 비범죄화되었고, 스톤월 항쟁의 영향을 받아 1970년대 초반부터 영국에서도 성소수자 인권운동이 활발해지며 1970~80년대부터 소호의 부흥기가 다시 찾아오게 된다. 마이클은 소호의 게이 업소들이 안정적인 부흥기에 들어선 1980년, 게이 커뮤니티에 들어온 것이다.

“그땐 나도 몰랐어. 무대 중앙에 들어간 거야. 이 거리들은 무대 세트가 되었고, 바람에 삐걱거리며 흔들거리는 간판들은 다가올 장면들의 배경을 알려줬어.”


1896년 개업한 The Trocadero Long Bar, 1912년 개업한 The Cave of the Golden Calf, 1865년 개업한 Cafe Royal, 1934년 개업한 The Caravan Club, 1925년 개업한 Hotel de France, 1930년대 개업한 The Shim Sham Club, 1890년 개업한 The Swiss Hotel 등이 경찰의 급습이나 언론에서의 자극적인 보도 등 여러 난관에도 불구하고 초창기부터 소호 게이 커뮤니티를 꾸려 나가는 데에 기여했다. 이러한 초창기 업소들 중 대다수는 처음부터 퀴어/게이 대상 업소가 아닌, 남성 전용 업소거나 예술가들이 주로 모이는 업소에서 게이 커뮤니티가 자신들만의 네트워크를 형성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1980년대의 마이클과 그 친구들이 연대하며 삶을 이어나가고, 즐기고 추모하는 모습은 2026년 현재 한국 퀴어 커뮤니티의 모습과 놀랍도록 닮아 있다. 또한 그 시대의 비극이었던 HIV/AIDS 위기는 아직까지 감염인들에 대한 차별과 낙인으로 남아 있다. HIV/AIDS, 코로나19, 엠폭스 등의 감염병이 사회에 대두될 때마다 성소수자를 비롯한 약자들이 비난과 낙인의 대상이 되어 단죄당했다. <크루즈>에서 들려주는 삶의 이야기는 우리와 동떨어진 것이 아니며, 우리 자신, 혹은 우리의 친구와 연인, 가족의 이야기이다. 마이클과 잭이 들려주는 계속되는 ‘크루즈’의 이야기가 지금 여기 이곳, 우리 사이에서도 공명하면 좋겠다는 마음을, 연극의 개막을 앞둔 시점에 소박하게나마 품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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