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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에세이] 남자만 좋아하고 싶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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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예주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2015년 초, 그러니까 갓 고등학교에 들어가던 시절이었다. 10대, 즉 사춘기라면 모름지기 질풍노도의 시기! 아이 같기만 하던 사람이 점차 스스로의 정체성을 찾는 시기! 그 시기에 자신의 성별 정체성을 고민하면서 스스로를 여성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물론 정말 내가 여성인 것이 맞는지 의문을 품기도 했고 가끔 논바이너리인가 싶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나는 여성이라는 확신을 갖게 됐다.

그러나 이것은 그저 하나의 관문이었을 뿐이다. 당시에는 동성애자와 트랜스젠더를 엄밀히 구분하지는 못 했다. 그래서 여성에게도 끌리는 이 마음을 어찌 받아들여야 할지 고민이었다. “세상에, 남성의 신체를 갖고 여성도 좋아하는데 여성으로서 나설 생각을 하다니. 내가 미쳤나? 이 놈의 남자 몸은 눈에 뵈는 게 없나 보군!” 당시에는 그저 이 수준에서 고민할 뿐이었다. 털어놓을 창구도 상담실 선생님 한 분뿐이었다. 그 외에는 그저 함구하고 “남자답게” 행동하려 했다.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절연당하거나 학대받았다는 이야기들을 들었기 때문이다. 나도 다른 곳에 털어놓았다가는 비슷한 곤욕을 치를 것 같았다.

사실 성소수자에 익숙하지 않으면 동성애자와 트랜스젠더를 구분하지 못 하는 것이 이상하지는 않다. “남자와 여자가 결혼하는 것이 정상적인 관계인데, 가끔 남자 역할을 하는 여자나 여자 역할을 하는 남자가 있다.” 이것이 성소수자에 대한 이해의 한계인 경우도 흔하지 않은가? 아무리 성소수자를 설명하는 개념이 정교해졌다 한들 성소수자에 대한 정보가 적은 사람이 이런 혼란의 단계를 지나는 것은 드물지 않다. 하물며 본인이 성소수자라면 그 혼란스러움은 배가(倍加)된다. 나 또한 이런 혼란을 건너뛰어 바로 자기 자신을 이해하지는 못 했다. “남성의 신체로 여자라 하고 다니면서 여자를 좋아할 수는 없어. 그렇게 파렴치한 인간이 될 수 없어!”

게다가 그런 혼란이 더 심화한 계기가 있다. 바로 TERF들이다. TERF란 Trans-Exclusionary Radical Feminist, 즉 트랜스 배제적 급진 페미니스트를 뜻한다. 이들은 대체로 트랜스 여성을 여성으로 인정하지 않으며 ‘MTF 트랜스젠더’들이 여성의 공간을 침범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성별 정체성을 깨닫고 동시에 페미니즘에도 발을 들이면서 마주한 최대의 난제였다.

물론 그들의 주장에 동의했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다. 트랜스 여성을 여성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 자체가 문제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나 저러나 아쉬운 쪽은 나였다. 한 명이라도 더 나를 여성으로 인정해주기를 바랐다. 그만큼 절박했다. 지금이야 TERF들에게 신경을 끄고 살고 있지만 그때는 그들의 인정이라도 받아야 속이 후련할 것 같았다. 남자만 좋아한다면 적어도 여성의 공간을 침범하려는 사람이라는 의심은 덜 받지 않을까 싶었다.

그래서 나는 여성에게 끌리는 마음을 억누르려 했다. 남자를 볼 때마다 매력적인 점을 찾고, 이른바 “남미새”들의 행동 양상까지 참고하려 했다. 동시에 여성에게 매력을 느낄 때마다 “안 되지, 안 돼” 하며 스스로를 옥죄었다. 사회에서 여성으로서 수용(受容)되기 전까지 절대로 여성에게 매력을 느껴서는 안 됐다. 절대로! 그렇게 스스로에게 못을 박았다.

하지만 결국 이런 행동에 회의감이 들기 시작했다. “내가 여자인지 아닌지가 왜 내가 좋아하는 사람의 성별에 달려 있어야 하지? 남자만 좋아해야 비로소 여성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말인가?” 헛웃음이 났다. “젠장, 못 해먹겠어! 내가 여성에게 끌린다는 이유로 여자가 아닌 것이 되는 것도 아닌데, 왜 그런 감정을 억지로 부정해야 한단 말인가? 남들이 만들어 놓은 감옥에 왜 나까지 제 발로 걸어 들어가야 하는가?” 나의 자기부정 시대는 그렇게 끝이 났다.

지금은 나 자신을 양성애자 트랜스 여성으로 정체화하고 그럭저럭 지내고 있다. 남자를 좋아할 수도 있고 여자를 좋아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더는 잘못으로 여기지 않는다.

다른 퀴어들을 만나보니 나와 달리 트랜스 레즈비언으로 정체화한 이들도 적지 않았고, 트랜스 게이로 정체화한 이들도 가끔 있었다. 적어도 내 눈에는 자신의 정체성과 성적 지향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과 자유롭게 관계를 맺는 것처럼 보였다. 그들에게도 나름의 어려움이 있겠지만 그런 모습을 볼 때면 으레 그 시절이 떠오른다. “그땐 그랬지. 남자만 좋아해야 한다고 스스로를 그토록 옥죄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대체 왜 그랬을까?” 요즘은 연애 감정이 있든 없든 예전보다 적극적으로 언니들에게 다가가는 편이다.

그렇다고 모든 두려움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가끔 “여성 전용” 서비스나 플랫폼이 눈에 띌 때마다 아직도 공포를 느낀다. 아직은 남성으로 패싱되는지라 다른 여성들과 친해지는 것조차 조심스러울 때가 있다. 자칫 흑심이 있는 것으로 비칠까 두렵기 때문이다. 이처럼 스스로를 받아들이는 것과 사회에서 받아들여지는 것은 다른 문제이다.

하지만 그런들 어떠한가? 그렇다고 다시 예전처럼 나 자신을 부정할 생각은 없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바라보든, 내가 누구를 좋아하든 내가 여성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나는 여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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