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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동의 레인보우패밀리] 육아#51. 필리핀 마을건강사업: 가정방문간호와 정신건강간호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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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동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기획의 말
행성인의 오랜 회원인 여기동님이 필리핀에서 안부를 전합니다. 2015년 한국에서 결혼식을 하고 남편의 나라로 가서 살림을 꾸리는 여기동 님은 딸 ‘인보’를 입양하여 육아일기를 쓰고, 최근에는 성소수자 연구들을 리서치하며 공부에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가톨릭교회 입교와 간호학문을 공부하게 된 배경

고등학교 2학년 무렵 막내 누나의 안내로 성당에 가서 교리를 공부했습니다. 아씨시의 프란치스코(아씨시 성프란치스코)라는 세례명을 받고 가톨릭교회에 입교했어요. 성당에서 영등포 시립병원 행려병동으로 자원봉사를 다니면서 환자를 돌보는 일에 관심을 갖게 되었지요. 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증권회사를 다니며 입시 공부를 하였고 대학에서 간호학문을 공부하여 간호사가 되었습니다.

대학에 입학하면서 간호사가 되면 아프리카에 가톨릭 의료 선교를 가고 싶다는 꿈을 꾸었습니다(그래서 필리핀으로 이민을 오게 되었을까요?). 가톨릭학생회 (서울대교구 산하 가톨릭대학생연합회) 활동을 하면서 해방신학과 마르크스주의로 새로운 세계관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민주주의를 위해 군부독재는 물러나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자본의 병폐로부터 인간이 자유롭고 평등한 사회, 노동자 계급으로서 사회주의 사회를 지향하였습니다. 새로운 사회가 되면 저는 농어촌 보건을 담당하는 ‘보건진료원’이 되어 볼까나 아니면 학교보건 간호사가 될까나?’를 꿈꾸어 보았습니다(올해 제 나이가 63세인데, 대학 시절엔 젠더와 퀴어이론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었고 퀴어커뮤니티도 없다 보니 애인을 만나 사랑을 하고 결혼할 엄두도 못 내던 시절이었습니다).

학교를 마치고 졸업 후 산재 환자를 간호하는 병원에 입사하여 병원노동조합의 조합원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운명의 순간처럼, 병원에 취업한 지 몇 해 뒤 동인련(행성인의 전신 동성애자인권연대)에서 ‘동성애와 마르크스주의’를 주제로 세미나를 한다는 광고를 보고 참여하면서 동인련 회원이 되었어요.

석사와 박사 과정에서는 정신건강간호학을 공부했습니다. 정신건강간호학은 인간의 정신건강과 증진, 예방과 회복을 연구하는 간호학문 분야입니다. 더불어서 정신장애인을 간호하고 회복을 중재하는 수련과정을 마치고 정신보건간호사가 되었어요.

가정방문간호

필리핀으로 이주하여 모국에서처럼 대학교에서 간호학생들을 가르치는 자리를 찾아보았지만 여의치 않았어요. 그래서 남편의 고향(민다나오섬 북부 수리가오 지역)으로 이사를 갔습니다.

마을 간호사업으로 가정방문간호를 시작했습니다. 연로하셔서 병원 오가기가 쉽지 않은 노인 환자를 만났습니다. 저의 어머니가 앓으셨던 파킨슨증후군을 갖고 계신 할머니, 저희 옆집에서 혼자 독거하시는 할머니도 계셨지요. 마을에는 ‘최초의 숲 거주자’라는 의미를 가진 선주민 마만와족이 살고 있었어요. 임신 중인데 흡연을 하는 임산부를 찾아다니며 산전간호를 제공했습니다. 다행히 병원에서 순산을 했어요. 귀여운 녀석 이름은 봉고. 가장 기억에 남는 환자는 말기암 투병을 하던 여성입니다. 유방암 수술을 하였으나 이후 재발하였고 폐로 전이되어 있었어요. 가정을 방문하여 침상목욕, 헤어컷을 해주고 저의 짧은 필리핀어로 대화도 나누었습니다. 죽어가면서 엄마의 손길이 그리웠는지 저를 엄마(Mommy)라고 불러주었던 사라 님.

정신건강간호

2021년, 현재 살고 있는 (네그로스 오리엔탈 섬에 속한) 발렌시아로 이사를 왔습니다. 어느덧 딸내미 나이만큼 세월이 흘렀네요.

어느 날, 이웃 주민의 의뢰로 대학교 휴학 중인 여학생을 만났습니다. 여러 심리검사를 해보았더니 주요 증상이 망상으로 나타났습니다. 다행히 우리 마을 가까이 도립 정신병원이 있어 부모님을 대동하여 외래 진료를 받아 치료를 시작했습니다.

조현병은 약물치료와 재활치료를 꾸준히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저의 교육에도 불구하고 약을 끊어서 증상이 재발했습니다. 꾸준히 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설명을 듣고는 진료실에서 눈물을 흘렸습니다(사실 약을 끊은 가장 큰 이유는 약 부작용으로 체중이 늘어나는 것이었는데 20대 청년이 극복하기에는 너무 힘이 들지요, 아무리 좋은 보약일지라도).

또 한분은 우리 동네에 사시는 60대 조현병 아주머니입니다. 가끔 집 앞 도로변에 나와 혼잣말을 중얼거리셨지요. 약을 복용하기 어려워 한 달에 한번 정신과 외래를 찾아가 주사를 맞기 시작하였고 이후 증상이 많이 좋아지셨습니다. 가정방문을 가면 싫다 하지 않으시고 저보고 앉으라고 권하기도 하십니다. 미소가 예쁘신 까르멜라 님.

2026년 심리치료

해마다 해외이동학습을 위해 대안학교 학생들과 선생님들이 오십니다. 어느 날 선생님 한분이 심한 스트레스로 힘들다며 저의 진료실을 찾아오셨어요. 그리고 며칠 후 일하시다가 그만 쓰러져서 병원 응급실을 다녀왔습니다. 여러 검사 결과 특별한 문제는 없었어요.

그렇지만 불안, 우울, 스트레스 검사와 더불어 공황이 의심되어 공황장애 검사를 해보았더니 급성 공황장애가 의심되는 결과가 나와서 심리치료를 시작했습니다. 매일 공황 발작이 나타나 이 상태로는 아이들을 지도할 수 없는 상태였어요. 조기 귀국을 권고하여 귀국하였습니다. 한국의 지인이 추천해 주신 정신건강의학과도 소개드렸습니다.

올해는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를 가진 두 명의 청소년 친구들을 만났습니다. 이 친구들은 교우 관계가 어려웠고 자신의 문제는 인식하고 있지만 충동성을 스스로 조절하는 것이 부족하여 여러 사달이 나는 경우였습니다.

선생님을 통해 제공받은 것은 오로지 진단명뿐이어서 초기 면접이 쉽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ADHD, 불안, 우울 등의 검사를 수행하였습니다. 그리고 청소년에게 소중한 자존감 검사도 하였지요. 여러 검사를 종합하여 최종 진단을 내리고 학생에게 필요한 사항을 소견으로 담아 담임선생님과 부모님에게 전해드렸습니다.

2025년 심리치료

작년에 만났던 두 명의 친구들은 스스로 자해하는 행동을 가졌던 학생이었습니다. 담임 선생님으로부터 의뢰를 받아 초기 면접과 심리검사를 진행했습니다. 한 친구는 불안과 충동성으로 고통을 받고 있었지요. 또 다른 친구는 양성애자 성적지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사실 청소년 환자를 본 경우는 처음이었습니다. 저의 대부분의 환자는 성인이나 노인이었지요. 청소년 친구들 덕분에 청소년 정신 건강에 대해 많이 공부할 기회가 생긴 겁니다.

또 하나의 심적 변화는 제가 딸내미를 키우는 부모의 마음으로 아이들을 보게 된 것입니다. 어린 환자를 치료하면서 ‘만에 하나 우리 아이가 이렇게 아프다면? 새끼의 마음과 정신이 아프다면 그들의 부모님들은 마음이 얼나마 아프실까나?’ 이런 공감이 밀려오곤 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 아이가 건강한 것에 대해 안심하며 감사하게 되더라고요.

발달장애 아동의 부모교육

몇 해 전 지인의 의뢰로 (자폐스펙트럼장애 가운데 하나인) 아스퍼거증후군을 가진 초등학생의 부모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아이는 친구가 없었습니다. 코로나 이후로 교실에 들어가지 않고 엄마가 일하시는 학교 도서관에서 하루 종일 혼자 고립된 채 지내는 아이.

발달장애 아동의 부모들은 아이의 장애, 증상, 문제 행동에 관한 지식이 필요하지요 또한 아이의 생애 발달 주기 동안 무엇이 중요하고 어떻게 도와줄 것인지를 알아야만 합니다. 아이가 어려움에 처할수록 보다 더 지혜로운 부모가 필요한 법입니다. 

성소수자 청소년을 생각하며

학생들 이야기를 하다 보니 문득 모국의 퀴어 청소년들이 생각이 나네요. 대한민국 사회에서 소수자 청소년의 삶은 어떠합니까? 특히 LGBT 퀴어 청소년들은 안녕한가요? 꿈 많고 생기 발랄하게 살아도 힘든 세상에서 ‘별나다’라는 손가락질을 받지는 않나요? 국가와 사회가 숨도 못 쉴 정도로 꼭꼭 숨어들도록 고통을 주지 않나요? 차라리 죽고 싶을 정도로요. 가정에서는 어떠한가요? 사랑이 아니라 나쁜 환경에 물든 학습된 변태라고 매도당하지 않습니까?부모와 형제자매들이 너그럽게 품어주는 집이 있지요. 반대로 가족들이 혐오의 화살을 쏘아 가슴에 못을 박는 가정생활이 지옥처럼 느껴지지 않을까요? 즐거운 학창 시절을 보내야 하는 학교와 안전하게 일해야 하는 직장에서 위험한 환경에서 노출되지는 않나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퀴어 청소년들은 이런 위험에 직면하면서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지요. 한없이 약하지는 않습니다. 어떤 친구들은 스스로 자신과 같은 친구들을 찾아 퀴어 커뮤니티에 나옵니다. 인터넷과 SNS로 유익한 정보도 얻고 소통하지요.

자신들의 존재와 존엄 그리고 자유와 평등을 위해 저항할 것입니다. 이들의 저항이 한국 사회의 차별과 혐오를 박살내고 당당하게 드러낼 것입니다. 

간절히 희망합니다

자신의 정체성을 자랑스럽게 여겨 자긍심을 품고 어려움을 헤쳐나가기를,

더 오랜 세월이 가기 전에

바로 오늘, 지금, 당장,

차별금지법이 제정되기를.

결혼을 선택하고자 하는

동성 커플이 결혼할 수 있는 ‘모두의 결혼’이 법제화되어

자신과 파트너(배우자)가 법적, 공적 관계로 맺어질 수 있기를.

동성 커플이 자녀를 입양하면 부모 슬하의 호적에 사랑스러운 자녀들의 이름이 기록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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