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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코넛의 눈코입귀] 육만 원 정도 투자할 만 하다 하시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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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코넛 (행성인 HIV/AIDS인권팀)

안 그래도 흉흉한 소식이 많이 들려오는 심란한 나날을 보내고 있는데, 마음을 더 복잡하게 할 만한 뉴스가 최근에 새로 들려왔다. 어느 오후에 개인적으로 면식이 있는 모 민중언론의 기자에게 갑자기 전화가 걸려왔다. 기사를 내야 하는데 인터뷰를 따야 한다고, 그렇게 계획에 없던 인터뷰를 얼떨결에 진행했다. 무엇 때문에 기사를 내는지 들어 보니, 다름이 아니고 최근 미국 정부와 길리어드사이언스 사이에서 맺어진 물질연구개발협약 이야기였다. 해외 동향까지 팔로업 할 정신 머리가 요새 없던지라 아예 몰랐던 소식이었는데, 이런 경로로 알게 되었다.

기사 일부를 인용하면,

“미국 HIV 의약품 접근권 단체 프렙포올(PrEP4All)은 7월 14일 정보공개청구 소송을 통해 확보한 미국 정부와 길리어드 간 물질연구개발협약(M-CRADA) 전문을 공개했다. 그러나 협약 전문에는 길리어드가 공공 연구 성과를 무상으로 이용하는 대가로 약값을 낮추거나 저소득층과 중저소득국가에 의약품을 공급하도록 요구하는 조항이 없었다. 제네릭 생산 허용이나 연구 이익의 공공 환수에 관한 조건도 담기지 않았다.

협약에는 미국 국립보건원과 질병통제예방센터가 HIV 노출 전 예방요법인 PrEP 연구 과정에서 개발한 특허를 길리어드가 전 세계에서 사용료 없이 이용(실시권)할 수 있도록 한 내용이 담겼다. 길리어드는 이 권리를 다른 기업에 재허가하거나 이전할 수도 있다.

미국 정부가 민간기업으로부터 취득한 특허 실시권도 길리어드에 무상 제공된다. 공공기관이 연구 성과에 대한 독점적 실시권을 허가하려 할 경우에는 길리어드와 먼저 협상해야 한다. 계약 종료 조건도 길리어드에 유리하다. 길리어드는 60일 전에 서면으로 통보하면 협약을 일방적으로 끝낼 수 있지만, 미국 정부는 길리어드의 동의 없이 계약을 종료할 수 없다.“

(출처: 연구는 공공이, 독점이윤은 길리어드? 미 정부, HIV 예방기술 길리어드에 무상 제공…약값·공급 의무는 없어, 참세상)

해당 협약에 대한 의견, 그리고 한국에서 초국적 제약회사의 이윤 챙기기 및 핑크워싱에 대한 코멘트를 몇 마디 남기고 전화를 끊었는데 마음이 복잡했다. 초국적 제약회사가 이런 것으로 이윤을 챙기는 것도 하루이틀도 아니고, 그래서 시민운동 사회가 이를 지속적으로 규탄하고 있는 것이겠지만, 미국 정부가 이렇게 말도 안 되는 협약에 동의하게 된 과정이 궁금했다.

인터뷰 후 주변에 물어서 연유를 들어 보니, 자국에 투자하라는 트럼프 정권의 요구를 길리어드사이언스가 수용한 후, 내부 조정을 거쳐서 320억 달러에 달하는 투자에 합의했다고 한다. 길리어드가 길리어드 한 것이고, 트럼프가 트럼프 한 결과이다. 미국을 위한 투자금을 끌어 왔으니 미국을 위한 결정이라고 포장할 것이 안 봐도 비디오이다. 물론 진짜로 미국 시민들을 위한 결정이냐 하면, 그럴 리가 없다. 미국에 사는 HIV 감염인들은 미국 시민도 아니라는 건가. 도의와 도덕, 정치적 올바름 따위 안중에도 없는 자본가 출신 대통령과 비슷하게 운영되어 온 거대 초국적 제약 회사가 만나면 이렇게 되는 것이다. 바다 건너 열 몇 시간을 날아가야 도착하는 만리타국 이야기이지만, 한국에서 HIV/AIDS 감염인 인권 운동과 성소수자 인권 운동을 하는 우리와도 동떨어진 소식이 결코 아닌 것을 알고 있기에 힘이 쭉 빠졌다. 나쁜 놈 위에 나쁜 놈. 누가 더 위에 있는 나쁜 놈인지는 모르겠다. 한국에서 사회 운동을 하고 있는, 돈도 권력도 없는 우리가 거대 자본과 거대 권력의 결탁에 어떻게 맞서서 문제 제기 할 수 있을까.

미국 HIV 의약품 접근권 단체 프렙포올(PrEP4All)의 활동가가 프렙 접근성 보장 촉구 시위에 참여하고 있다. 프렙포올의 제러마이아 존슨 사무총장은 이번 트럼프 정권과 길리어드의 협약에 대해 성명을 내고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미국에서 체결된 험악한 협약을 잠시 뒤로 하고, 조금 더 가까이 있는 한국의 상황에 눈을 돌려 보자. 2025년 시작된 프렙 국비지원사업의 적용을 받는다면, 프렙 비용은 한 달에 6만 원 가량이다. 지원을 받지 못한다면 한국에서 ‘합법적인’ 경로로 개인이 프렙을 복용하기 위해 부담해야 하는 비용은 약 40만 원. 그래서 게이 커뮤니티에서는 알음알음 태국 등지의 제네릭 약품을 직구하는 사람들이 보이기도 했다. 직구 비용, 배송비, 약값 등이 아무리 비싸다고 해도, 한국에서 프렙을 처방 받는 비용보다는 저렴하다. 40만 원이나 6만 원이나, 한 달에 내기에는 너무 부담되는 금액이라는 말을 그동안 여러 번 해 왔다. 그리고 솔직히 말해서, 초국적 제약 회사가 후원하는 행사에서 (상대적으로 고소득층이라고 일반적으로 고려되는) 의사들이 한 달에 6만 원은 건강을 위해 충분히 투자할 수 있는 금액이라고 하면 아무리 의료 전문가들이라 해도 말에 충분한 신뢰가 가지 않는다. 우리에게는 적은 금액이 아니다. 일단 나부터도 그 만큼의 돈을 내고서 까지 프렙을 복용하라고 하면 망설여질 것 같다.

프렙의 가격이 이렇게 높은 데에도 길리어드와 같은 초국적 제약회사들이 약품에 대한 특허권을 유지하며 약품 가격을 낮추지 않는 것이 큰 요인으로 작용한다. 프렙 복용을 검토할 만한 사람들에게 한 달에 육만 원 가량이 충분히 투자 가능한 금액이라고 설득할 것이 아니라, 정부 차원에서 제약회사와 협상을 해 약품에 대한 가격을 낮출 수 있는 상황을 조성하거나, 그럴 수 없을 것 같으면 최소한 해외 제네릭 약품의 수입이라도 검토해야 한다. 건강을 위해 투자 가능한 금액인 육만 원이라는 메시지를 계속 내보내면, 그 육만 원을 내고 프렙을 복용하지 않는 사람들은 건강에 대해 투자하는 것을 후순위로 두는 무책임한 사람들이라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진짜 무책임하고 나쁜 것은 프렙 구매를 주저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공공 자금과 연구로 개발한 약품에 대한 특허권으로 경제적 이윤을 취하려 하는 제약회사들이다. 프렙 지원사업을 신청한 사람들의 숫자가 왜 그리 높지 않은지, 혹시 지원사업을 받은 후의 약값도 부담스러운 것은 아닌지, 지원사업을 신청하고 약을 받아 복용하는 것 체계에서 아웃팅에 대한 부담이 있지는 않을지, 그리고 왜 해외에서 제네릭 약품을 힘들게 직구해서 먹는 사람들이 보이는지, 이런 것들을 생각해야 한다.

트럼프 정권과 만족스러운 협약을 맺은 길리어드는 언제나 그랬듯이 순조롭게 운영되고 있는 것 같다. 당장 한국에서의 행보만 봐도 굳이 이름을 나열하지는 않을 각종 성소수자 관련 행사, HIV/AIDS 관련 행사 등에 후원사로 참여하고, 한 달에 육만 원은 충분히 투자 가능하고, 투자할 가치가 있다는 메시지를 퍼트리는 데 앞장서고 있다. 제약회사에 대한 규탄과 문제제기야 항상 해오던 것이기에 굳이 처음부터 하나하나 짚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이런 소식이 들려올 때마다 핑크워싱으로 돈 잘만 버는 이런 기업들에 대한 짜증이 몰려오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어찌 되었든 돈을 벌기 위해 만들어진 기업이 이윤을 추구하겠다고 해서 뭐가 문제냐고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공공 자금과 연구로 만들어진 기술이 정말 기업만의 것이 맞는지, 그리고 백 번 양보해서 기업 고유의 것이라고 해도, 수많은 사람들의 건강과 생명이 연관된 것인데 그에 대한 고려 없이 경제적 이윤만을 취하려 하는 것이 도의적으로 맞는지 의문을 제기할 수 있을 것이다. 기업에 대한 사람들의 신뢰를 진정성과 도덕이 아닌 위선과 핑크워싱으로 쌓으려 하는데, 성소수자 관련 행사와 각종 캠페인에 돈을 대고, HIV 감염인들이 복용하는 약품을 만든다고 해서 무슨 소용이 있을까.

제약회사가 해야 하는 것, 정부와 보건 당국이 해야 하는 것, 다 잘 알겠지만 현실은 그렇게 흘러가고 있지 않기 때문에 답답할 따름이다. 트럼프 정권과의, 말도 안 될 정도로 유리한 조건의 최근 협약을 등에 업은 길리어드가 감염인들의 건강과 생명을 담보로 이윤을 추구하고 핑크워싱으로 성소수자 친화적인 척, 좋은 기업인 척 하는 데에 얼마나 큰 추진력을 얻을지 궁금할 따름이다. 도덕성 따위 내다 버린, 구릴 대로 구린 두 주체가 손을 잡은 것이니 큰 실망을 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앞으로의 동향이 어떻게 흘러갈지 살펴볼 필요는 있겠다. 짜증을 내고 구리다고 말하는 것은 충분히 그럴 수 있지만, 너무 무력해지지 말자고 다짐해보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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