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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 후기] 본 연구의 의의는 무엇입니까? – 육우당의 죽음에 대한 애도문 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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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하(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2003년 추모의 밤 (사진: 동성애자인권연대)

1.

2022년 석사과정에 입학했을 때부터 2026년 졸업 논문1을 완성할 때까지, 나의 학위 논문 주제에는 ‘육우당’이라는 이름이 줄곧 핵심적인 지위를 차지해왔다. 청소년 성소수자 권리 의제에 관심이 있었고, 그 의제의 상징적 사건으로 이야기되어온 육우당을 둘러싼 여러 추모 실천들을 기술하고 싶은 욕심에서 비롯한 것이었다.

거칠고 단순했던 문제의식에 전환이 발생한 것은 2024년 봄, 육우당의 유골이 안치된 봉안당을 방문한 사건부터였다. 그의 유골이 무연고 상태로 놓여있다는 사실은 내게 예상치 못한 강렬한 슬픔을 가져다주었다. 그러나 그 감정의 원인을 어떻게 해명해야 하는가는 분명치가 않았다. 나는 육우당과 친밀한 관계를 맺은 적이 없고, 그에 대한 애착심을 가진 바도 크게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단순히 나를 그와 동일시했기에 슬퍼했다고 말하기도 어렵고, 무연고 상태라는 사실만으로 그리도 슬퍼했다는 건 어딘가 논리가 빈약했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그 슬픔의 원인은 충분히 나 스스로에게도 해명하기가 힘들다.2

어쩌면 나의 학위 논문은 바로 그 해명 되지 않는 슬픔에서 출발했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연구 질문을 구조화하는 데만 1년이 훌쩍 넘게 걸렸던 것도 그 때문이었을지 모른다. 자료를 모으고 분석하는 시간보다도 내가 무엇을 알고 싶은지, 왜 그것을 알고 싶은지의 욕망을 들여다보면서 질문을 만들고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시간이 훨씬 더 오래 걸렸던 것이었다. 특히 그 과정에서 나의 연구 질문의 전환에 있어 가장 강렬했던 계기 중 하나는 내가 참여 중이었던 어느 대학원생 모임에서 나의 거칠게 작성된 연구 계획서를 보고 한 참여자가 던진 질의였다.

“이 연구의 사회적 의의가 잘 보이지 않는 것 같다.”

질문을 듣는 순간 말문이 막혔었다. 육우당의 흔적과 기억을 연구하는 것의 의의가 어떻게 ‘사회적’이고 ‘비판적’이며 ‘학술적’인지, 정작 스스로 깊이 생각하고 설정해본 적이 없던 것이었다. 돌이켜보면, 당시의 연구 계획은 분명 정돈된 학술적 언어로 꾸려졌다기보다는, 내가 느꼈던 슬픔 감정에 기대고 있었다. 그러나 여전히 그 슬픔은 명확히 해명하기 어려운 감정이었기에, 나는 그 대학원생 참여자분이 던진 질의에 제대로 답하지 못했고, 결국 말을 더듬으며 다음과 같이 답할 수밖에 없었다.

“그냥 애도문을 하나 쓰고 싶어요.”

지금 생각해도 연구 의의에 관한 질의에 너무나도 터무니없는 답변을 한 것이었다. 그렇지만 당시의 내게는 그것이 나를 감기고 있던 슬픔을 표현할 수 있었던 최선의 문장이었다.

2

그 질문을 받은 이후로 다시금 문제의식 전환의 필요에 당면했었다. 나는 도대체 누구를, 혹은 무엇을 애도하고자 하는 것일까? 육우당을 애도하는 것일까? 내가 쓰고 싶은 애도문은 정말 육우당 한 사람에 관한 것이기는 한 걸까? 아울러 왜 나는 굳이 학술적 언어를 매개로 애도문을 쓰겠다고 나선 것일까?

이러한 질문을 보다 구체화 시킨 사건은 2025년 행성인이 진행한 어느 한 회원에 대한 추모식에 참여했던 경험이었다. 나의 주관적 감상이긴 하겠지만, 당시 추모식은 놀랄 만큼 ‘순조롭게’ 진행되었었다. 애도의 형식이 갖추어져 있었고, 한마디로 요약하기가 어려운 어떠한 질서가 자리잡혀 있는 것처럼 느껴졌었다. 누가 무엇을 준비하고 어떤 말을 해야 하는가와 같은 것들을 체화한 공간 같았다. 그렇게 해당 추모식이 끝난 후 귀가하는 길에 나는 연구 참여자로 예정되어있던 분에게 우연하게도 다음과 같은 질문을 카카오톡 메시지를 통해 전달받았다.

“세상을 떠난 성소수자들은 많은데, 왜 육우당에 포커스를 맞추었나요?”

문자 텍스트였기에 내가 그리 읽었던 걸 수 있지만, 세상을 떠난 성소수자들이 많다는 문장에서 나는 어딘가 초연한 기운을 느꼈었다.

그때부터 연구의 초점을 잡아가기 시작했다. ‘우리’의 애도와 기억은 어떻게 지금과 같은 형식과 질서를 갖추게 되었을까, 친구의 자살과 상실을 이야기하기 위한 (불)가능성은 무엇이었을까. 상실된 이를 잊지 않고 이야기하기 위해 애써온 사람들, 때로는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하려고 했고, 때로는 더는 말하지 않기를 결정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망각하지 않는 것의 중요성. 그것이 육우당의 유골의 무연고 상태를 마주하며 느낀 슬픔이 가져다준 욕망이었다.

물론 이러한 욕망은 분명 연구자라는 단일한 위치로만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행성인의 구성원이자, 나 역시 누군가를 자살로 상실한 사별자이기도 하다는 사실들이 교차하며 만들어진 욕망이었다. 육우당을 이야기해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살핀다는 건, 결국 내가 나의 상실을 이야기하는 방식에 대한 반성과 연결되는 작업이기도 한 것이었다.

3.

솔직히 고백하면, 명료하고 체계가 잡힌 연구 질문을 완성한 뒤 인터뷰를 시작한 게 아니었다. 무엇을 물어야 할지 또 들을 수 있을지에 대한 구체적 계획 없이, 사전 질문지도 없이 구술 면담에 돌입했다. 즉흥성과 애드리브로 가득했던 구술 면담 현장은 지금도 아찔했던 경험으로 남아있다. 지금에 와서야 밝히는 것이지만, 정신과에서 긴장 완화제를 처방받아서 진행한 사례도 있었다. 그러다 나는 문득 별도의 금전적 사례를 제공하지 않음에도 감사하게도 인터뷰 참여에 응한 참여자분들의 욕망이 궁금해졌다. 연구 질문에 포함된 내용은 아니기에 논문의 본문에 담지는 못했지만, 왜 연구 참여자들은 시간을 내어 인터뷰에 참여했을까, 반대로 인터뷰를 거절한 사람들은 왜 그러했을까, 참여와 거절 각각에는 어떤 상황과 욕망이 바탕이 되고 있을까, 하는 궁금증을 가졌다.

그러나 정확히 어떤 것인지 파악할 수 없을 정도로 인터뷰에 응해주신 연구 참여자분들의 욕망은 도통 하나로 모이지 않고 종잡을 수가 없었다. 육우당에 관한 질문이 연구 참여자 자신의 이야기로 미끄러지거나, 어느 순간 다른 죽음과 상실의 이야기로 넘어가기도 하고, 때로는 내게 나의 상실의 경험을 질문하는 사례도 있었다. 인터뷰는 여러 미끄러짐과 ‘잡음’들로 가득했고, 나는 그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 것인지를 매 순간 긴장해야만 했다.

좌충우돌 속에서 모인 인터뷰 기록 분석 단계에서도 긴장은 끊이지 않았다. 처음으로 마주한 관문은 연구 참여자들을 섭외하고 분류하기 위해 판단해야 했던 애도의 ‘당사자성’ 문제였다. 육우당을 기억하고 애도하는 당사자의 범주를 어떻게 잡고 분류해야 하는가. 생전의 그와 친밀한 관계를 맺었던 사람인가, 동인련 및 행성인 구성원 전체인가, 아니면 성소수자 운동에 참여한 불특정 다수인가, 또 이 서로 다른 위치를 지닌 주체들은 어떻게 구별되고 또 어떤 지점에서 교차하는가. 이와 관련하여 본문에서는 애도와 기억의 당사자성이 확장되었다는 점을 기술하면서도, 동시에 생전의 육우당을 알고 지낸 사별자 개개인의 경험은 환원될 수 없는 고유성과 타자성을 내재한다고 짤막하게 기술하였다. 지금 반성해보면 이 같은 분석의 한계는 명백했다. 서로 다른 위치의 사람들이 함께 애도에 참여할 때, 각자의 슬픔의 고유성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서로의 곁에 머물 수 있는가의 연대의 윤리와 정치까진 나아가지 못한 것이었다.

다음으로 마주한 두 번째 관문은 육우당의 자살을 다른 성소수자의 자살 사건과 어떤 연관 속에서 바라볼 것인가의 문제였다. 육우당의 자살은 분명 하나의 반복될 수 없는 고유한 사건이다. 그렇다면 그것을 다른 성소수자들의 자살과 나란히 두며 비교하는 건 사건의 고유성을 훼손하는 일일 수도 있다. 그러나 반대로 모든 죽음과 상실의 사건을 별개의 동떨어진 것들로만 바라본다면, 연구 참여자들이 반복해서 육우당의 자살과 다른 죽음 사건들을 상호 연결하며 이야기한 이유와 의미가 설명되지 않는다.

현시점에서 연구의 한계를 돌이켜봤을 때, 주목해야 했던 문제는 개별 죽음을 동일시할 수 있는가의 찬반이 아니라, 고유한 사건들의 흔적이 ‘우리’ 안에서 서로 미끄러지며 의미를 생성하고 부분적인 연결선들을 만들어내는 과정이 아니었을까 싶다. 한 사람의 죽음을 떠올리며 다른 사람의 죽음이 함께 떠오르고, 과거의 사건을 설명하는 언어가 이후의 죽음을 설명하기 위해 환기되고, 역으로 최근의 죽음이 더 이전의 죽음을 이해하기 위한 매개로 등장하며 서로의 서사적 이해를 변화시키는 복잡한 연결망을 바라볼 필요성 말이다. 어쩌면 인터뷰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났던 미끄러짐과 ‘잡음’이 바로 그러한 연결망이 표현된 일시적이고 우연적인 방식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두 번째 문제와 연결된 세 번째 갈등은 나의 연구가 의도와 무관하게 육우당의 죽음이 성소수자 운동의 애도 역사를 ‘대표’한다고 인식시키는 효과를 발생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실제 육우당의 죽음은 성소수자 운동사 속 상실의 경험을 대표하는 사건으로 현재화 되어온 경향이 있다. 그렇다면 내 연구가 몇몇 연구 참여자들이 보여준 우려와 같이 오세인이나 다른 고유한 개별 죽음과 상실을 육우당이란 상징의 ‘그림자들’로 만드는 일에 가담하는 건 아닌가의 문제에 당면하자 내 연구의 의의가 무엇인가의 질문을 다시 되새겨야만 했다.

그렇지만 동시에 육우당의 상징성은 청소년 보호법 투쟁이나 청소년 성소수자 인권 의제라는 정치적 지형 등의 상황적 조건들이 중첩되며 생산된 결과물이긴 할 테고, 따라서 육우당을 부른다는 건 그러한 활동 역사와 의제를 환기하는 효과를 지닌 것일 테다. 그렇기에 육우당이 지닌 대표성이 무작정 잘못된 결과라고 평가하는 건, 그가 대표성을 지니게 되는 맥락에 연루되었던 애도 주체들의 역사까지 무시하는 것일 수도 있기에 조심스러워야만 하는 일이었다.

이와 같은 양가성 속에서 나는 연구의 의의가 어떻게 전유될지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연구가 단순히 육우당의 죽음을 성소수자 운동에 누적된 상실의 역사를 대표하는 사건으로만 취급하는 것으로 독해되지 않으면서도, 그러한 대표성을 만들기까지 주체들의 애도 역사를 무시하지 않기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은 무엇일까. 논문을 쓰면서 당장에 내가 떠올릴 수 있었던 대안은 육우당에게 부여되는 대표성 자체가 선험적으로 주어진 것이 아님을 부분적으로나마 보여주려고 노력하는 것이었다. 독자들이 대표성 자체가 문제라기보다는, 대표성이 만들어졌던 과정과 그 의미에 주의를 기울여주길 바라며 말이다.

물론 그게 얼마나 기대처럼 효과적으로 작동할지는 자신이 없다. 여전히 육우당이란 상징 이면의 ‘그림자들’은 나를 긴장케 한다. 그러나 동시에 나는 육우당의 흔적이 그와 같은 복수의 ‘그림자들’의 이야기로 미끄러지는 순간들을, 나아가 바로 그 ‘그림자들’의 현존으로 인해 육우당의 흔적이 재차 새로운 의미를 획득하기도 하는 순간들을 연구 과정에서 볼 수 있었다. 비록 이번 연구가 거기까지 닿지는 못했지만, 지금 돌이켜볼 때 육우당에게 대표성을 부여하는 게 옳은가의 찬반을 넘어, ‘그림자들’과의 관계성은 무엇인가를 주목해볼 필요가 있지 않았을지 싶다. 나중에 내게 기회가 된다면 이와 관련한 후속 작업을 해보고 싶다.

마지막으로 당면했던 네 번째 문제는 육우당의 죽음 흔적을 어떻게 인용할 것인가의 갈등이었다. 육우당의 본명을 기술할 것인가, 그의 시와 일기 그리고 유서를 어느 정도로 인용할 것인가, 추모집 초판본에서 공개되고 새로 발간된 개정판에서는 생략된 내용을 현재 나의 연구에서 다시 유통하는 것이 윤리적으로 정당한가와 같은 문제들이 대표적이었다.

그 가운데 내가 가장 오래 고심했던 건 육우당의 일기와 유서를 직접 인용할 것인지의 문제였다. 이와 관련하여 주변 연구자 지인들은 내게 분석을 위해선 일부 인용이 불가피해 보인다고 조언해주거나, 특히 현재 행성인이 과거 육우당의 죽음 흔적을 ‘첨삭’하는 결정이 죽은 이에 대한 일종의 폭력이라고 해석할 여지는 없는지 질문하기도 하였다. 한편으론 오늘날 행성인이 추모집 개정판 발간 과정에서 일기와 유서의 내용을 생략한 이유가 자살을 강하게 암시하는 내용들이 포함된 해당 기록의 공개적 유통이 실제 자살을 고려하는 등의 취약한 상태에 놓인 개별 성소수자들의 정신 건강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으리라는 우려에서 비롯했다는 무시할 수 없는 사실이 나를 갈등케 하였다. 결국 나는 어떠한 선택도 순수성과 중립성이 보장된 것이라 자신할 수 없다는 문제에 직면해야만 했다.

결과적으로 육우당의 일기와 유서 내용을 구체적인 수준까지는 인용하지 않기를 선택했다. 따라서 논문은 분명 육우당의 흔적의 어느 한 부분을 의도적으로 생략했다는 점과 동시에 그 같은 선택의 바탕에는 현시점 취약한 성소수자 집단에 대한 고려가 담겨있다는 점에서 윤리적 한계를 내재하며, 따라서 관련된 비판에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그렇기에 중요한 건 내가 올바른 선택을 했다며 무죄를 주장하는 일이기보다는, 오히려 내가 내린 판단의 한계를 인정하고 어떻게 책임을 질 수 있을 것인가 고민하는 자세이지 아닐까 싶다.

4.

나는 지금도 누군가에게 내 석사논문을 설명해야 할 때면 매우 난감해한다. 예컨대, 대학원생들이 모이면 으레 “석사논문 주제가 뭐였어요?”라는 질문이 오가곤 하는데, 그때마다 나는 “혹시 육우당이라고 아세요?”라는 질문으로 설명을 이어간다. 마치 “도를 믿으세요?”라고 묻는 수상한 사람처럼 상대의 눈치를 살피며 말이다.

이러한 난감함은 예전 논문의 막바지 작업 중에 “이 연구는 누구에게 읽힐 것을 전제하는가?”란 질문을 받았던 것을 떠오르게 한다. 광의의 자살사별자 집단인지, 사회운동 활동가 집단인지, 질적 연구자 집단인지, 대상 독자의 유형이 불분명하다는 지적이었다. 그 질문을 받기 전까지 나는 내 논문이 향하게 될 독자 유형을 구체적으로 가정한 적이 없었다. 이와 관련하여 이미 논문이 내 손을 떠난 지금에 와서 말하자면 학술적 글쓰기의 규범에서는 적절하지 못하다는 평가를 받기야 하겠지만, 나의 ‘비학술적인’ 욕심으로는 이 연구가 여러 집단에 의해 전유 되고 의의가 재구성되기를 바라고 있다.

그렇지만 이 가운데 행성인이 나의 연구의 중요한 독자 중 하나일 것이란 사실은 내게 남다른 책임을 요구한다. 연구 계획 단계에서 원했든 아니든, 인지했든 아니든, 나는 육우당의 흔적과 기억을 중심으로 한 행성인의 역사적 현재를 기록하고 유통하는 역할을 자임한 것이 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논문은 ‘우리’를 이해하는 방식에 부분적으로 개입한 텍스트가 되며, 따라서 내게는 그에 맞는 책임들이 요구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책임의 수행을 막막하게 하는 것 중 하나는 오늘날 행성인 안의 ‘우리’가 동질적이지 않다는 현재 조건이다. 생전의 육우당을 알고 지낸 사람들이 있고, 그를 알고 지낸 사람에게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도 있으며, 그저 공식 추모 의례와 기록을 통해서만 육우당을 접한 사람들도 있다. 더불어 분명 누군가는 육우당이란 이름은 알고 있지만 거의 관심이 없을 수도 있고, 아예 이름을 들어본 적이 없을 수도 있다. 여기에 각자가 살아오며 겪은 서로 다른 사별의 경험까지 겹치며 ‘우리’의 구성요소는 복잡해진다.

그렇다면 복잡해져만 가는 ‘우리’ 안에서 내가 쓴 애도문은 어떤 의의를 지닐 수 있는 것일까. 무책임한 욕심으로 보일 수 있겠지만, 굳이 연구 의의를 내가 먼저 설정해두고 독자에게 수용케 하고 싶지는 않다. 나의 연구를 ‘우리’ 중 누군가는 받아들이고, 또는 거부하거나 판단을 유보할 것이다. 어쩌면 당연하게도 나의 연구를 아예 거들떠보지도 않을 수도 있다. 만약 그렇다면 내게 주어진 책임은 나의 연구 의의를 통제하는 게 아니라 적극적으로 논쟁 되고 전유 되고 재구성될 수 있는 순간들에 함께 하는 일이지 않을까.

따라서 나는 연구의 의의를 완결 짓기보다는 지속해 가꿔나가고 싶다는 욕심이 든다. 마치 나의 불충분한 애도문이 2013년 내가 처음 참여했던 육우당 추모 행사에서 시작하여 2024년 그의 유골이 무연고 상태에 놓여있다는 사실을 목격하고, 그리고 이후 만난 연구 참여자들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질문을 재구성했던, 우연성으로 채워졌던 좌충우돌 과정처럼 말이다. 물론 그 같은 의의를 만들어가는 일은 나 혼자만의 힘으로 만족스럽지 못할 것이다. 그건 또 다른 복수의 이야기들 사이의 미끄러짐과 ‘잡음’ 속에서만 가능한 작업일 것이기 때문이다. 의의를 균일하게 완결 짓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함께 만들어가는 것. 그것이 어쩌면 지금의 내가 나의 애도문에 부여할 수 있는 연구 의의 중 하나이지 않을까 조심스레 주장해본다.

5.

그러나 여전히 가장 어려운 질문은 남는다. 정작 이 애도문이 닿을 수 없는 곳으로 떠난 사람들을 ‘위한’ 애도문은 어떠해야 하는가. 애도문을 쓴다는 것은 언제나 살아 있는 사람의 실천일 뿐이다. 그렇다면 그의 죽음을 기억하고 애도 하겠다는 나의 의지가 오히려 그의 삶-죽음을 나의 언어 안에 가두는 일일지도 모른다. 그 때문에 그들을 ‘위해’ 애도한다고 말하기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조심스러워진다.

그러나 동시에 상실된 이들을 이야기하는 남겨진 ‘우리’의 역사를 망각할 수 없다는 것을 배웠다. 이번 연구 과정이 남긴 가장 큰 깨달음은 애도문을 쓰는 일은 죽은 이의 이야기를 담아내는 일이기도 하지만, 남겨진 이들이 자신의 욕망과 위치를 끊임없이 반성하며 상실된 이를 이야기하는 것이기도 하다는 사실이다. 아울러 애도문은 누군가의 상실을 상실로 인정하고 슬퍼할 수 있는 장소를 마련하는 일이기도 할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나는 ‘우리’의 상실된 이를 이야기하는 것의 (불)가능성을 성찰하고, 그것의 의미를 망각하지 않는 방법을 고민하는 것이 오늘날 성소수자 운동 공동체가 상실의 고통 속에서 떠안은 윤리적이고 정치적인 과제인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다면 여기서 나는 그 같은 ‘우리’의 과제에 어떻게 연대 할 수 있을까, 그리고 이러한 나의 욕망은 또 어디서 비롯한 것일까, 내게는 그러할 자격과 조건이 갖춰져 있을까. 내가 근래 빠져있는 막연하기만 한 고민과 긴장이 이 기고 글을 매개해 ‘당신’에게도 조금이나마 전염될 수 있었던 계기가 되었길 바라며, 이만 꽤 길었던 여담을 마친다.

  1. 편집자 주: 필자의 논문 「성소수자 운동 속 애도와 기억 : ‘육우당’의 죽음에 대한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의 이야기를 중심으로」는 아래 링크를 통해 원문을 읽을 수 있습니다. https://dcoll.jbnu.ac.kr/srch/srchDetail/000000064007 ↩︎
  2. 편집자 주: 관련하여 아래의 글을 참고하면 좋습니다. [4월 추모주간 기획][회원에세이] “당신의 ‘이름’은 무엇인가요?” – 닿지 않을 주저리 주저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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