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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동의 레인보우패밀리] 육아#52. 희망나무와 함께, 필리핀 마을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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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동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기획의 말
행성인의 오랜 회원인 여기동님이 필리핀에서 안부를 전합니다. 2015년 한국에서 결혼식을 하고 남편의 나라로 가서 살림을 꾸리는 여기동 님은 딸 ‘인보’를 입양하여 육아일기를 쓰고, 최근에는 성소수자 연구들을 리서치하며 공부에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지난여름 무더위 속에서도 행성인 동지들 무탈하게 잘 지내셨는지요?

이곳 필리핀은 우기를 앞두고 맹더위가 여전합니다.

이번 달엔 뎅기열에 걸려 1주일 간 고생을 했습니다. 뎅기열은 모기가 옮기는 병입니다. 온몸에 뼈가 으스러지는듯한 통증(Break-bone Pain)으로 쑤시고 아팠어요. 지난 해 처음으로 뎅기열에 걸렸을 때 고열을 동반한 통증을 경험하고 나서 이 병이 뎅기열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다행히 해열제를 복용하여 열이 떨어져서 병원에 가지 않았습니다. 집안에서 자가간호를 하여 회복했지요.

그런데 이번에 또 걸린 겁니다. 아마도 주방에서 설거지를 하는 동안 모기에 여러 번 물렸는데 그래서 걸린 듯합니다. ‘이러다가 뎅기에 걸리지는 않을까?’라는 염려도 들었지요. 이번엔 다행히 열이 없어 조금은 수월하게 넘겼습니다. 제 나이 60대인데 그래도 아직은 면역력이 잘 기능하나 봅니다.  

뎅기열이 어린이에게 너무도 위험하여 모기 퇴치에 신경을 쓰고 있습니다. 찰스 아빠는 마당에 모깃불을 피웁니다. 밤에는 아이에게 긴 파자마 바지를 입히고 있습니다. 모기향도 처음으로 구비하여 태워보았습니다.

희망나무 동지들

오늘은 저에게 가장 소중한 희망나무 벗들과 마을 활동에 대해 소개드리고 싶습니다. 먼저 희망나무 식구들은 대표 박연화 선생님(정신보건 사회복지사), 정신과 전문의 정여진 선생님, 그리고 네팔에서 한국으로 이주해 오셔서 인천에서 네팔-인도 음식점을 운영하시는  올리 사장님과 제가 함께하는 작은 공동체로 시작하였습니다. 정신건강 영역에서 여러 직업군이 함께 팀이 된 지도 벌써 15년이 되었습니다.

활동가들의 지인과 인맥을 엮어 CMS 후원금을 모금하여 네팔과 한국에서 마을사업을 위한 기금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올리 사장님의 사모님과 아들이 네팔을 맡고, 저는 필리핀 지부를 담당하고 있지요. 희망나무 기금으로 2017년부터 현재까지 마을 사업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희망나무 선생님들은 제가 모국을 방문할 때마다 MT를 마련해줍니다. 만나면 늘 반갑고 좋은 친구들과 여행을 가고 싶습니다.

여성위원회와 보육원

제가 사는 작은 발렌시아읍에는 여성위원회가 있습니다. 2024년부터 정신건강 분야의 자문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필리핀의 대가족 제도 안에서 여성들은 스트레스와 우울 등의 정신 건강이 취약할 수 있습니다.

정신건강의 중요성에 대한 강의를 의뢰받아 작은 별장으로 갔습니다.

참석한 한 어머니는 과거 미국 이민생활 중에 아들을 잃은 사연을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대학에 입학하며 먼 곳으로 유학을 갔던 아들이 학교 기숙사에서 하늘나라로 떠났답니다. 또 다른 어머니는 딸이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는 사연을 전해주었습니다. 약물을 복용하고 있답니다. 이들처럼 우리 주변에서 마음이 그리고 정신이 아픈 이들이 꽤 많습니다. 개인뿐 아니라 사회적으로 건강해야 정신이 건강한 법일 텐데요.

올해엔 특별한 여성 건강기금이 마련되었습니다. 박연화 대표님의 지인이신데, 유튜버로 활약 중인 모니카 님께서 큰 금액을 후원해 주셨습니다. 이 기금으로 마을에 거주하는 20대에서 50대 후반까지의 8명의 여성들이 생애 최초로 유방암 검진(유방촬영술/유방초음파)을 받았습니다. 검사를 마치고 식당에서 점심을 먹으면서 모임 이름을 (필리핀 말로 유방을 의미하는) ‘또또이 팀’ 이라고 지었습니다.

마을에 사는 이 분들은 단 한 번도 이런 검사를 받아보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 이유가 검진 비용이 너무 비싸기 때문에 가계 살림으로는 불가능하기 때문이지요. 가정에서는 아이들이 첫 번째 우선순위이고 그다음엔 자신보다 남편을 챙기다 보니 자신의 건강관리는 늘 뒷전으로 밀리기 십상이고요.

옆 마을에는 여아들을 위한 보육원(Family Home)이 있습니다. 영유아부터 고등학생의 연령대가 함께 생활하는 곳입니다. 우연히 한국 선생님들이 진행하는 손 씻기와 양치질을 가르치는 보건교육과 종이접기 프로그램에 따라갔다가 만나게 된 인연입니다.

설립자는 이탈리아-필리핀 커플이고 아주 오래 동안 패밀리홈을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교육의 질이 높은 사립학교에서 공부하고 있어서 인상 깊었습니다. 가끔 저희 가족들은 쌀 한 포대를 사서 방문하고 있어요. 다음에는 한국 학교에서 마련해 준 면생리대 재료를 가지고 방문하려고 합니다. 학생들이 손으로 직접 만들고 느껴보면 즐거운 시간이 될 듯합니다.

새 학년과 크리스마스

새 학년이 시작되는 6월과 가톨릭의 나라의 대명절 크리스마스에는 연중행사를 갖습니다.

필리핀의 가장 더운 여름은 4월부터 5월까지입니다. 그래서 3월이면 졸업을 하고 6월에는 새 학년 새 학기가 시작됩니다. 마을의 유치원, 초등학생, 고등학생(중등포함)들에게 학용품을 선물합니다.

크리스마스는 100일 전부터 카운트다운합니다. 거리의 캐럴송은 물론 성당과 교회마다 야단법석입니다. 모임이나 단체마다 크리스마스 파티를 갖습니다. 한국의 연말연시에 바쁘기 그지 없는 송년회 같습니다.  

필리핀에는 (보너스 같은 개념의) 13월 월급이 있습니다. 이 월급 덕에 크리스마스 선물을 사고 즐기는데 필요한 비용을 마련하여 요긴하게 쓰지요.

빈곤에 관한 질문

본래 이 칼럼의 기획은 저의 활동이야기로 구성했었습니다. 그러나 가난하기 그지 없는 마을 이야기를 쓰고 나니 국가와 빈곤에 관한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아프리카나 동남아시아 같이, 열대 기후에 사는 사람들은 게으르다는 편견을 갖습니다. 그러나 어느 경제학자가 조사해 보니 이 사람들은 북반부 소위 말해서 선진국의 노동자보다 보다 긴 시간을 노동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결코 게을러서 가난한 것이 아니지요.

실제로 필리핀의 노동자들은 주 6일을 근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학교와 관공서는 주 5일 근무). 이렇게 한 달에 25일을 일하고 손에 쥐는 월급은 약 30만원 정도입니다. 엄마가 아이들 양육을 돌보느라 직장 생활을 하지 못한다면, 아빠의 외벌이로 네 다섯 식구가 이 월급으로 생활해야 하지요. 온 가족이 (골고루 영양을 섭취할 수 있도록) 잘 먹고 아이들이 공부하는데 드는 비용은 턱없이 부족하기만 합니다.

왜 이렇게 빈곤에 허덕이며 살아야 하는가? 정말 국가 재정이 가난해서 민중의 가계 살림이 찢어지게 가난한 것인가? 자세히 들여다보면 여러 구조적인 원인들이 얽히고 설켜있습니다.

필리핀은 바다가 많아 어족이 풍부한 해양국가입니다. 열대기후 덕분에 바나나, 파인애플과 망고와 같은 열대 과일이 풍성하지요. 저희가 살았던 필리핀 남부의 가장 큰 섬은 텅스텐과 구리 같은 지하자원이 풍부합니다.

열대 과일의 생산과 수출은 (시작은 외국 기업으로 출발하여 현재는 필리핀 자본가와 일본이 주인으로 바뀐) 델몬트와 돌(dole) 같은 자본 기업에서 이윤을 먹고 있어요(다행히도 망고는 개인 농장에서 100% 생산한다고 합니다). 지하자원은 외국 자본이 100% 소유가 가능한 법에 의해 외국 자본이 장악하고 있다고 합니다.

필리핀 사람들에게 왜 나라가 가난하냐고 물으면 정치인과 관료들의 비리와 횡령 때문이라고 답합니다. 2025년 연말 즈음에 대형 비리사건이 터졌습니다. 필리핀 정부의 대규모 홍수 방지 스캔들에서 발생한 부패 및 횡령으로 인한 국가적 경제 손실 금액은 최소 423억 페소(약 1조 300억 원)에서 최대 1,185억 페소(약 2조 8,800억 원~3조 원)로 추산된다고 합니다. 정말 엄청난 금액이지요. 이 비리는 전형적인 유령시공, 부실시공 및 정경 유착 및 뇌물 사건입니다.

예전에 EBS 교육방송에서 장 지글러의 강연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장 지글러는 유엔 식량특별조사관으로 활동했습니다. 자신이 아들에게 들려주는 기아의 진실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라는 책이 있는데, 함께 읽어보고 싶습니다.

행성인 여러분

제가 필리핀에서 개인적으로 활동하는 이야기를 정신건강사업과 마을 활동으로 전해드렸네요

모국은 이제 가을이 오겠네요.

가을의 길목에서 무더위에 지쳤던 몸과 마음이 시원하면 좋겠어요.

책도 읽고, 음악도 듣고 그리고 천천히 걸어보기도 하는 가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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