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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오의 한 페이지] #1. 할머니의 빨간 손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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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오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돌봄이 이 사회의 주요한 키워드가 된 지는 꽤 되었다. 성소수자 운동 안에서도 퀴어의 나이 듦과 돌봄을 이야기하는 자리가 조금씩 생겨나고 있다. 나 역시 최근 몇 달 동안 몇 번의 모임에 참여하고 관련된 책을 읽었다.
여기저기 아프다는 푸념과 그러니까 우리도 모여야 해!라는 바람 사이를 오가다 이 이야기들이 휘발되기 전에 그동안의 생각과 감상을 좀 남겨보려 한다. 쓰다 보면 조금은 정리된 이야기들이 다음 문을 열어주지 않을까.

돌봄이라는 단어는 오래전 할머니 손톱에 칠해져 있던 빨간 매니큐어를 떠올리게 한다.

나의 할머니는 요양시설에서 생을 마감했다. 12년을 함께 살았던 할머니는 내가 서울로 올라올 무렵 막내 삼촌이 있는 김해로 이사했다. 그리고 몇 년 뒤 치매 증상이 심해지면서 요양원에 입소했다.

할머니가 입소한 요양원에 처음 방문했을 때 할머니 손톱에는 빨간 매니큐어가 칠해져 있었다. 요양보호사께 왜 매니큐어를 칠했는지 물었다. 지난 주에 미용사가 와서 할머니들 손톱을 모두 예쁘게 칠해드렸다고 했다. 자랑스레 말하던 요양보호사의 표정이 지금도 생생하다.

할머니는 상추장수였다. 농산물 시장에서 도·소매를 겸해 상추를 비롯한 각종 채소를 팔았다. 푸른 잎들은 어디 하나 버릴 것이 없다던 할머니는 종일 그 자리에 앉아 채소를 다듬었다. 손을 쓰는 일이라 할머니는 늘 손을 깔끔하게 관리했다. 손톱을 기르지도 않았고 매니큐어를 바르지도 않았다. 일 때문만은 아니었다. 당신의 취향이 그러했다. 손톱이 길면 지저분하다고 했고 매니큐어는 요란하다고 싫어했다. 대신 할머니의 멋내기는 머리에 있었다. 항상 양귀비 염색약으로 새까맣게 염색한 뒤 뽀글뽀글 파마로 말아 올린 짧은 머리를 고수했다. 그리고 귀밑으로 살짝 내려온 구레나룻에 포인트를 주었었다.

빨간 매니큐어가 칠해진 손톱에 파마가 풀려 곧게 내려온 하이얀 장단발의 할머니는 낯설었다. 나는 꽤 많이 당황했지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따라야할 규칙과 시간표와 패턴이 있는 곳에서 내가 책임질 수 있는 것은 없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빨간 손톱물이 든 손으로 커스터드 빵을 먹고 있는 할머니의 표정은 유순했다. 손톱색이 어떻든 머리색이 어떻든 개의치 않아 보였다. 할머니는 빵이 참 맛있다고 했다.

이제 할머니는 빨간 손톱이 좋아진 것일까.

그건 내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혹여 묻는다 해도 내가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답해주기는 어려워 보였다. 그렇다고 내가 알고 있다고 말할 수도 없었다. 내가 기억하는 할머니 역시 과거의 할머니였으니까. 매니큐어를 요란하다고 싫어했던 할머니를 기억하는 사람은 나였고 그 기억으로 지금의 할머니를 판단하고 있는 사람도 나였다. 한 사람의 정체성은 관계 속에서 만들어지고 기억되기도 한다. 내가 기억하는 할머니의 모습 역시 할머니를 설명하는 하나의 언어일 것이다. 하지만 그 기억이 지금의 할머니보다 언제나 옳다고 할 수는 없다.

할머니가 사랑한 양귀비 염색약 – 출처: 동성제약 블로그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생각했다. 어떤 일이 있어도 나는 내 손톱을 빨갛게 칠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거야! 그러나 가만 생각해보면 그것도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지금의 나는 그렇지만 나이 든 나는 달라질 수도 있다. 예전에는 입지 않았을 빨간 스웨터를 지금은 입는 것처럼.

사람은 달라진다. 취향도 달라지고 관계도 달라진다. 나이가 들면서 이전과 다른 사람이 될 수도 있다. 그렇다면 기억이 희미해지고 스스로 판단하거나 표현하기 어려워졌을 때 그 사람을 설명하는 것은 무엇일까. 무엇을 기준으로 그 사람을 돌볼 수 있을까. 지금까지 살아온 모습을 따라야 할까. 지금 눈앞에 있는 사람의 반응을 따라야 할까. 아니면 기관이 제공할 수 있는 서비스에 맞춰야 할까.

어쩌면 좋은 돌봄은 이 질문을 귀찮아하지 않는 일에서 시작되는지도 모른다. 기억하지 못해도 자신의 의사를 분명하게 표현하지 못해도 그 사람이 어떤 사람으로 살아왔고 지금은 어떤 모습으로 살고 싶은지를 계속해서 묻는 것. 그리고 그 답을 대신 결정하지 않는 것. 이것이 우리가 가져야 할 돌봄의 자세가 아닐까.

돌이켜보면 그 기차 안에서 나는 퀴어로 나이 든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처음 느꼈던 것 같다. 단지 가난하거나 외로울 것에 대한 불안이 아니었다. 언젠가 내가 나로 살아온 시간을 나 자신이 설명할 수 없게 되었을 때, 누가 어떻게 기억해줄 것인가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나는 나이가 들어서도 원하는 이름으로 불리고, 원하는 옷을 입고, 원하는 모습으로 나이 들 수 있을까. 내 파트너가 누구였는지, 어떤 일을 했고 무엇을 좋아했는지, 어떤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왔는지 설명할 수 있을까. 혹은 내가 직접 설명할 수 없는 순간이 오더라도 그 삶은 기억되고 존중받을 수 있을까. 나는 나의 부모를 어떻게 떠나보내게 될까. 우리의 삶은 어떻게 이어져야 할까.

오래전 할머니의 빨간 손톱에서 시작된 질문은 그렇게 아직 내게 남아 있다. 그때의 나는 무엇을 물어야 하는지, 무엇을 알아야 하는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알지 못했다. 지금도 여전히 많은 것을 알지 못한다. 다만 누군가를 돌본다는 것은 질문하기를 포기하지 않는 일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볼 뿐이다. 한 사람이 어떤 삶을 살아왔고 누구와 관계를 맺어왔으며 지금은 무엇을 원하는지 계속해서 묻는 일. 그러나 이 질문을 개인의 노력과 선의에만 맡길 수는 없을 것이다. 가족이 돌봄을 감당하기 어려울 때, 누군가를 돌보는 일이 정해진 시간과 비용 안에서 이루어질 때,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를 넘나드는 관계 속에서 우리가 서로의 삶을 묻고 기억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나는 여기에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보려고 한다. 우리가 어떤 모습으로 늙고 서로를 돌보며 살아갈 수 있을지에 대한 정답 없는 이야기들을. 우리가 서로에게, 또 이 사회에 건네야 할 질문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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