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솔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젠더로 살기도 고달픈데: 트랜스/논바의 연애, 섹스와 사랑 이야기
행성인 성적권리 프로젝트중 하나로 TF팀과 트랜스젠더퀴어 당사자들이 모여 진행하는 프로그램이다. 트랜스젠더이지만 동시에 에이로(무로맨틱) 에이스(무성애)인 나로서는 그다지 나눌만한 이야기가 없을 것 같아 신청하지 않았다가 친구의 부탁으로 참여하게 되었다. 부끄럽게도 나는 퀴어 커뮤니티에서 그다지 활발하게 활동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행성인에 들어오기 전에도 퀴어 친구들은 있었지만, 보통 나와 비슷한 트랜스젠더이면서 무성애 스팩트럼에 있는 친구들이 대부분이었다. 사실 친구가 무성애 스팩트럼이 아니더라도 제드적인 이야기할 일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심지어 어떤이는 내가 에이엄이라는 이유로 본인의 로맨틱, 섹슈얼적인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실례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래서 나에겐 이 주제가 조금은 낯선 주제이기도 했다.
그런 걱정과는 무색하게도 모임 속 이야기는 흥미로웠다. 새롭게 알게 되는 이야기도 있었지만 오히려 공감이 가는 이야기가 더 많았다. 의료적 트랜지션이라는 특수성에서 기인한 몸의 변화는 수행 욕구를 변화시키기도 한다는 점, 어떤 젠더로 패싱되느냐에 따라서 나라는 사람은 그대로인데 주변의 기대는 변화된다는 이야기, 친밀한 관계 속에서의 미스젠더링 등 트랜스젠더퀴어이기 때문에 나눌 수 있는 경험과 이야기였다. 그리고 대화하면서 나는 아주 뜻밖의 가능성과 마주했다.

사진작가-하진
“나는 트랜스젠더인 게 자랑스럽다.”
이것은 예전에 카이트(kite-한국 성소수자 의료 연구회)에서 진행한 연구 목적 설문조사의 한 문항이다. ‘매우 그렇다’와 ‘전혀 그렇지 않다’ 까지 1~5로 나누어 선택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나는 트랜스젠더인 점이 자랑스러운가? 그전까지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문제였다. 이제까지 들었던 수많은 트랜스젠더 관련 질문은 내 삶에서 트랜스젠더인 점이 얼마나 나를 힘들게 하는가에 관한 것이었고 자신도 그 이상의 생각을 하지 못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트랜스젠더인 부분은 반드시 나의 족쇄처럼 작용하진 않았다. 오히려 트랜스젠더이기 때문에 갑갑한 성 이분법적 정상성에서 탈피할 수 있었다. 위 사진은 호르몬을 시작하기 직전에 촬영한 사진이다. 내 소중한 친구인 사진작가 하진님이 촬영해 주었다. 내가 만약 시스젠더라면 저런 촬영을 기획할 수 있었을까? 모임에서 성기 디스포리아와 관련된 대화 중 이런 이야기가 나왔다. “그래도 있는데 안 써볼 거야?” 참가자 중 한 분이 파트너에게 들었던 질문이었다. 생식기는 누군가에겐 디스포리아로만 남을 수도 혹은 그저 그런 신체 기관 중 하나일 수도 있지만 어떤 이에겐 그것조차 하나의 가능성이 된다. 나는 무성애자 성향자(BDSMer)라 바닐라의 섹슈얼리티에 대해선 아는 게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성감을 자극하지 않고도 재밌는 놀이를 할 수 있다. 나는 폴리아모리라서 독점 관계에 대해선 잘 알지 못하고 어쩌면 누군가에게 쉽게 상처를 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건 반대로 독점 관계를 넘어 무한한 관계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최근 누나의 상견례를 다녀왔다. 그곳은 정상성 수행의 집합체였다. 논바이너리 트랜스남성인 나는 평범한 시스남성으로 보여야 했기 때문에 화장도 할 수 없었고 누나에게 여성으로 있든 남성으로 있든 하나만 선택하라는 말을 들었다. 어머니는 그 하루를 위해 평소라면 절대 입지 않을, 비싸고 불편한 옷을 구매했다. 우리 모두가 누나의 축복을 위해 장단을 맞춰주었다. 상견례 자리에서는 정말 대화를 위한 대화가 오갔고, 식당음식은 차라리 일반 식당에 가고 싶을 정도로 비싸고 번거로웠다. 그 자리에서 유일하게 편안해 보였던 건 예비 사돈 어르신인 누나의 예비 시아버지뿐이었다. 이처럼 정상성은 정말 불편하다. 거기서 편안한 사람은 기득권에 있는 사람들뿐이다. 정상성의 관점에선 트랜스젠더, 에이엄브렐라, 성향자, 폴리아모리 하나같이 빨리 숨겨야 할 엽기적인 모습일 것이다. 하지만 그 갑갑하고 불편한 정상성에서 한 발짝 걸어 나온다면 우리는 모두 끝도 없는 자유와 무한한 가능성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