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성인 트랜스젠더인권팀)
| 매년 7월 14일은 국제 논바이너리 가시화의 날입니다.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트랜스젠더퀴어인권팀에서는 논바이너리 가시화의 날을 기념하며 올해 논바이너리의 트랜지션을 다룬 특집 웹진을 기획했습니다. 7월부터 10월까지 한 달에 한 편씩 총 4명의 필자가 메인 주제인 ‘논바이너리의 트랜지션’에 더하여 각자의 생각과 고민을 바탕으로 한 글을 연재합니다. |

디스포리아
나에겐 디스포리아가 있어. 그런데 사실 이게 주로 가슴 때문인지 자궁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어. 왜냐하면 매일 가슴을 떼고 싶을 때도 있지만, 월경할 때쯤 가슴이 너무 무겁고 아프면 그냥 이게 사라지면 좋겠다는 생각도 하거든. 그래서 매번 입장이 조금씩 달라져.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나는 꽤 확고했어. 돈을 모아서 수술하고, 비포 사진도 남겨놓고, 가슴을 떼자가 거의 주된 생각이었거든. 그런데 요즘은 이 가슴과 함께 평화롭게(?) 살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한번 화해를 해볼까 하는 생각이 조금씩 생겼어.
내 생각이 달라진 데에는 임신, 출산, 육아에 대한 생각이 달라진 것도 있는 것 같아. 예전에는 임신이나 출산, 육아를 내 미래로 거의 생각하지 않았는데, 요즘은 다양한 가족의 모습을 상상하게 됐어. 꼭 내가 임신을 하고 출산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는 아니고, 가족이라는 것도 생각보다 여러 가지 모습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거지. 그러다 보니까 내 몸에 있는 가능성을 굳이 지금 없애버려야 하나 싶은 생각도 들었어. 물론 그렇다고 갑자기 가슴이 너무 좋아졌다거나 수술 생각이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야. 여전히 가슴을 떼고 싶다는 생각은 들고, 월경할 때 가슴이 아프면 그냥 없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 그냥 예전처럼 하나의 답만 있는 건 아닌 것 같아.
자궁은 예전에는 나한테 쓸모없는 장기라는 생각을 많이 했어. 지금 나한테 그 기능이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했고, 수술 부작용이나 수술비용 같은 것도 많이 찾아봤어. 그래서 아예 제거할 생각은 없었지만, 기능을 지금 당장 쓰지 않을 거라면 조절하면서 살면 되지 않을까 싶어서 미레나를 넣었어. 그런데 넣은 지 1년 만에 미레나 부작용으로 크게 아팠고 결국 제거했어.
지금은 피임약을 먹으면서 호르몬과 타협을 보며 살고 있어. 그리고 지금은 자궁을 제거할 계획은 없어. 예전에는 자궁이든 가슴이든 나한테 필요 없는 건 없애버리면 되는 거 아닌가 싶었는데, 지금은 꼭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앞으로 내가 어떤 삶을 살게 될지 모르고, 어떤 가족을 만들고 싶어질지도 모르니까. 그래서 지금은 내 몸이랑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지 조금 더 생각해보는 중이야.
여성운동
여성운동 관련 집회에 처음 나간 건 2016년 검은 시위야. 임신중지(낙태) 합법화와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보장하라는 시위였지. 벌써 10년이 지났네. 그래도 내년에는 미프진을 먹을 수 있다니, 세상이 10년이 지나면 바뀌는 것도 생기긴 하는 것 같아.
대학교에 진학해서도 늘 여성복지에 관심이 있었어. 그러다 반성폭력, 반성매매 활동가로 일한 경험도 있고. 돌이켜보면 여성 관련 의제는 나한테 항상 중요했던 것 같아. 그냥 관심 있는 분야 중 하나라기보다는 거의 최우선 과제였고, 내가 계속해야 하는 운동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
어렸을 때 나한테는 엄마가 굉장히 큰 존재였어. 엄마가 유리천장 때문에 승진하지 못했던 경험담을 들었고, 나도 초등학생 때 차별과 배제를 경험하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됐어. 쌓이고 쌓여서 어느 순간에는 이런 생각을 했던 것 같아.
“여자도 사람인데 왜 안 되는 게 이렇게 많지?”
그게 시작이었던 것 같아. 왜 여자라는 이유로 할 수 없는 게 이렇게 많지? 왜 어떤 사람들은 당연하게 하는 일을 누군가는 성별 때문에 포기해야 하지?
그냥 모든 여자가 사람으로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고 싶었어. 그래서 여성복지를 공부했고, 여성운동을 했고, 반성폭력, 반성매매 활동도 하게 됐어. 그렇게 열심히 활동하다가 여기 행성인까지 도달한 것 같아.
논바이너리인데 여성운동을 한다는 것
그런데 나는 여성은 아니야. 비수술 논바이너리니까.
가끔은 여성운동을 하면서 어디에 있는 사람인지 생각하게 돼. 여성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아닌데 여성의 권리에 대해서 계속 이야기하고 있고, 여성운동을 해왔고, 지금도 여성운동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니까.
몸에 대해서도 계속 고민하고 있어. 가슴은 떼고 싶다가도 지금은 조금 더 같이 살아볼까 싶고, 자궁은 예전에는 필요 없는 장기라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남겨두고 싶고.
예전에는 이런 게 좀 모순처럼 느껴졌어. 그런데 요즘은 그냥 사람이 살면서 생각이 바뀔 수도 있는 거 아닌가 싶어. 논바이너리라고 해서 여성들이 겪는 차별이나 폭력에 관심을 가질 수 없는 것도 아니고, 여성운동을 해왔다고 해서 여성이라고 생각해야 하는 것도 아니니까.
아직 완전히 정리한 건 아니야. 수술을 할지 안 할지도 모르겠고, 앞으로 어떤 가족을 만들고 싶은지도 모르겠고, 여성운동 안에서 나는 어디에 있는 사람인지도 계속 생각하고 있어. 지금은 잘 모르겠는 것들을 잘 모르겠는 채로 조금 더 살아보려고 해.
어쩌면 내 몸도, 내 정체성도, 내가 하는 운동도 꼭 하나의 답으로 정리하지 않아도 되는 거 아닐까 싶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