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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성평등위원회 읽기 세미나 (1) – 더듬더듬 성평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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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오(성평등위원회 오픈세미나)

 성평등위원회에서 지난 5월부터 《회복을 향해 더듬어 가기》 – 공동체 책임 촉진자를 위한 워크북 (원제 <Fumbling Towards Repair –  A Workbook for Community Accountability Facilitators>)를 함께 읽고 있습니다. 번역서가 없어서 AI의 도움을 받아 성평위에서 의견을 덧대어 가며 함께 읽고 있어요. 번역에 아쉬운 점도 있고 단체에 바로 적용하기 어려운 내용들도 있지만 책에 담긴 논의와 제안들은 공동체 문화에 대해 영감과 고민을 줍니다. 성평등위원회에서만 읽기보다 부족하나마 회원 여러분들과 나누고 싶어 웹진의 지면을 빌려 앞으로 5~6회차 남짓 연재합니다. 

 1회차에는 <AREA 1 – Key Frameworks That inform This Work> 부분의 내용을 다룹니다. 들어가는 말과 이 책의 주요한 용어와 개념, 워크북 사용에 있어 유의할 내용들이 담겨있습니다. 서론격이라 할 수 있겠죠. 보다 구체적인 내용들은 이후의 회차에서 세미나 구성원들의 고민과 함께 다뤄질 예정입니다. 많이 기대해주세요.  

성평등은 필요하지만 재미가 없다니…

올해부터 성평등위원회에서 세미나를 시작했다. 지난 4월, 함께 세미나를 할 참여자를 모집했는데 두 명이 들어왔고 지금은 한 명이 남았다. 내 그럴 줄 알았다. 성평등은 역시나 인기가 없다. 하루이틀 일도 아니다. 부아가 치밀 때도 있었다. 다들 성평등이 중요하다, 조직문화가 중요하다면서 말이야. 응? 응?

그러나 조금만 마음을 차분히 하고 생각해 보면 행성인에 평등문화가 어느 정도 자리 잡았다는 의미일 수도 있겠다. 개개인의 감수성도 대체로 높은 편이다. 성평등이라는 주제는 깊이 들어가면 예민하고 민감한 쟁점이 상당하지만, 조직문화와 연결해 일상적인 범위에서 이야기하다 보면 조금은 뻔한 이야기를 하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첨예한 쟁점들은 대체로 사건이 발생했을 때 비로소 구체적으로 짚어볼 기회가 생기기도 한다. 어쩌면 이 모든 것이 행성인의 조직문화가 꽤 준수한 편이라는 방증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너무 서러워하지 말자.

그러나 사실 조직문화와 평등에 대해 더 많이 이야기해야 하는 때는 바로 지금과 같은 시기다. 규약과 교육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고, 회원들 사이에서도 행성인의 지향이 널리 이해되고 있다고 생각되는 때. 새로운 사람들이 계속 들어오고, 별다른 문제 없이 공동체가 굴러가고 있다고 안심하게 되는 바로 이런 때 말이다. 익숙함 속에서 느슨해진 감각을 곧추세우고, 우리가 지향하는 평등이 무엇인지 좀 더 면밀하게 살피며 기본을 다져야 한다.

성평등위원회는 2019년 발족해 어느덧 7년의 시간을 보냈다. 그동안 조직문화 점검 워크북을 만들고, 성폭력 사건처리 규약을 다듬고, 성폭력 사건처리 매뉴얼도 마련했다. 각 팀과 소모임을 대상으로 조직문화 점검 모니터링을 진행하고 반성폭력 교육도 이어왔다. 행성인이 암묵적으로 공유해 온 가치와 기준을 구체적인 규범과 실천으로 만들어가기 위한 장치들이었다.

그 과정에서 성평등위원회 내부에서는 여러 쟁점을 가로지르는 깊이 있는 논의가 이루어졌다. 하나의 문제를 두고도 서로 다른 관점과 맥락을 살펴야 했고, 때로는 당연하다고 여겼던 판단을 다시 돌아보기도 했다. 그런데 이런 논의가 성평등위원회 안에서만 깊어지는 것은 아닌가 하는 문제의식도 있었다. 더 많은 회원이 함께 이야기하고 공동체의 기준을 함께 만들어갈 수 있는 자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성평등이라는 주제는 역설적이게도 실제 대응에 있어 때로 다분히 권위적이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에 대한 윤리적 판단이 앞서기 쉽고, 감정도 얽히기 마련이다. 여기에 판단과 대응에 따르는 책임의 무게까지 더해지다 보니 논의와 결정은 경험이 있는 일부 활동가들에게 기대기 쉽다. 이런 문제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역량의 분배가 필요하다. 깊이 있는 논의를 위해서는 여러 맥락과 관점에서 문제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다른 의견에 울컥하더라도 잠시 멈추어 생각해 보고, 하나의 사건을 단선적으로 판단하지 않는 연습도 필요하다. 이런 역량은 경험이 쌓여야 만들어지기 때문에 평소에 경험을 잘 나누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공동체가 평등을 실천하는 역량은 하루아침에 생겨나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그러니까 지금부터 회원들과 이런 이야기를 나누어야 하는데, 사람이 없다. 그렇다면 웹진으로나마 세미나에서 나눈 고민들을 기록해 두려 한다. 언젠가 필요할 때 다시 꺼내 볼 수 있도록. 혹은 이 글을 읽고 성평등한 조직문화를 만들어가는 여정에, 또 성평등위원회에 관심을 갖는 사람이 생기기를 바라면서.


《회복을 향해 더듬어 가기》 — 공동체 책임 촉진자를 위한 워크북 함께 읽기 (1) 

처벌은 답이 아니다

『회복을 향해 더듬어 가기』는 마리암 카바와 시라 하산이 오랜 시간 폭력에 대응하고 공동체 책임성(Community Accountability, CA) 과정을 진행하며 쌓아온 경험과 시행착오를 바탕으로 집필한 워크북이다. 저자들은 폭력에 대응하는 완벽한 해법이나 일률적인 절차를 제시하지 않는다. 대신 공동체가 폭력과 피해를 어떻게 이해하고 개입할 것인지, 그 과정에서 어떤 질문을 던지고 무엇을 실천해야 하는지 함께 탐색해 나간다.

이 책의 출발점에는 경찰과 사법체계가 모든 사람의 안전을 보장하지 않으며, 오히려 특정 집단에 대한 감시와 처벌, 폭력을 재생산하기도 한다는 문제의식이 있다. 저자들이 활동해 온 유색인종 여성, 트랜스젠더, 성노동자, 약물 사용자 등의 공동체에서 국가기관은 폭력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는 수단이기보다 또 다른 위험의 원천이기도 했다. 이들은 이러한 현실 속에서 국가의 처벌체계에 의존하지 않고 폭력에 대응할 방법을 모색해 왔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너무 급진적인 것 아닌가 싶을 수도 있겠다. 폭력이 발생했는데 처벌하지 않는다고? 그렇다면 어떻게 책임을 묻는다는 것일까? 그러나 처벌을 없애자는 주장으로만 받아들이기보다 처벌 중심의 대응을 넘어 폭력을 예방하고 공동체의 대응 역량을 기르는 훈련이 필요하다는 관점에서 접근하면 조금 더 이해하기 쉽다.

저자들은 공동체 책임성의 실천이 언제나 완벽한 성공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점도 강조한다. 폭력에 대응하는 과정은 예측하기 어렵고 실패와 갈등을 수반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러한 경험 역시 다음 실천을 위한 자원이 될 수 있다. 폭력의 피해가 인정되고, 생존자의 이야기를 믿고, 피해를 가한 사람이 자신의 행동을 인정하는 일은 작아 보일 수 있지만 중요한 변화다. 이러한 변화가 결국 공동체의 문화를 바꿔낼 수 있다. 

변혁적 정의와 공동체 책임성

이 책에서 가장 강조하고, 또 자주 등장하는 용어는 변혁적 정의(Transformative Justice, TJ)와 공동체 책임성(Community Accountability, CA)이다.

변혁적 정의는 네 가지 목표를 중심으로 한다. 첫째, 생존자의 안전과 치유, 자기결정권을 보장하는 것. 둘째, 피해를 가한 사람의 책임과 변화를 이끌어내는 것. 셋째, 공동체가 폭력에 대응하고 책임을 나누는 것. 넷째, 폭력을 만들어내고 재생산하는 억압과 착취, 지배의 사회적 조건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변혁적 정의는 회복적 정의(Restorative Justice)와 구별된다. 회복적 정의가 피해로 인해 훼손된 관계와 공동체의 회복에 초점을 맞춘다면, 변혁적 정의는 폭력을 가능하게 했던 조건 자체를 변화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국가의 형사처벌 체계에 의존하지 않고 폭력에 대응하는 정치적 실천이라는 특징을 갖는다.

이러한 변혁적 정의를 실천하는 중요한 방법 중 하나가 공동체 책임성이다.

공동체 책임성이란 친구, 가족, 직장, 이웃 등 공동체 구성원들이 함께 폭력과 피해에 대응하고, 생존자의 안전과 자기결정권을 지지하며, 피해를 가한 사람이 자신의 행동에 책임지도록 하는 과정이다. 동시에 폭력을 가능하게 한 공동체 내부의 문화와 권력관계, 사회적 조건을 변화시키는 일도 포함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공동체 책임성이 피해를 가한 사람을 무조건 용서하거나 책임을 면제하는 방식이 아니라는 점이다. 피해를 축소하거나 가해자의 책임을 회피하게 만드는 것은 공동체 책임성의 실천이라고 할 수 없다. 오히려 생존자의 필요를 중심에 두면서 피해를 가한 사람이 자신의 행동에 실질적인 책임을 지고 변화하도록 하는 데 목적이 있다.

그렇다고 공동체 책임성을 하나의 정해진 프로그램이나 절차로 이해해서도 곤란하다. 모든 갈등과 피해에 공식적인 공동체 책임성 과정이 필요한 것은 아니며, 공동체가 개입한다고 해서 그 실천이 언제나 변혁적이거나 비처벌적인 것도 아니다. 따라서 어떤 개입이 필요한지, 그 과정이 실제로 생존자의 상황을 개선할 수 있는지 끊임없이 질문해야 한다.

책임을 실천한다는 것

공동체 책임성의 핵심 가치에는 진실, 시간, 신뢰, 변화가 있다. – 자신과 타인에게 정직할 것, 변화에는 예상보다 긴 시간이 필요하다는 점을 인정할 것, 과정 속에서 신뢰를 형성할 것, 그리고 해로운 행동이 반복되지 않도록 실질적인 변화를 추구할 것. – 말로는 간단하지만 실제로 적용하려면 만만치 않은 일들이다.

무엇보다 무슨 일이 있었고 누가 영향을 받았는지, 생존자가 지금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어떤 권력관계가 작동하고 있는지, 공동체가 가진 자원과 역량은 무엇인지부터 살펴야 한다. 공동체 책임성 과정은 자발적이어야 하며, 촉진자 역시 자신이 해당 과정에 개입할 적절한 위치에 있는지, 충분한 역량과 지원체계를 갖추고 있는지 검토해야 한다. 이 과정은 길고 복잡하며 때로는 기대한 결과에 이르지 못한다. 실패는 예외적인 사건이 아니다. 오히려 시행착오를 통해 배우고, 새로운 방법을 시도하며, 필요할 때 방향을 바꾸는 것 역시 공동체 책임성 실천의 일부다.

결국 공동체 책임성이 던지는 질문은 폭력이 발생했을 때 누구를 처벌할 것인가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피해를 입은 사람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피해를 가한 사람은 어떻게 책임질 수 있는지, 공동체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나아가 이러한 폭력이 반복되지 않으려면 무엇이 달라져야 하는지를 함께 묻는다.

공동체 책임성은 폭력을 완전히 예방할 수 있다는 약속이 아니다. 폭력과 상처가 발생했을 때 피해를 외면하지 않고, 책임과 치유의 가능성을 함께 만들어가려는 실천이다.


함께 고민해보자

어찌 보면 흔한 이야기 같기도 하다. 생존자의 이야기를 듣고, 피해를 인정하고, 책임을 묻고, 공동체가 함께 변화해야 한다는 것. 누가 그 말에 반대하겠는가.

그런데 책에서 제시하는 사례와 질문들을 하나씩 대입해 생각하다 보면 머리가 복잡해진다. 실제로 이런 상황이 발생한다면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 생존자가 원하는 것과 공동체가 할 수 있는 일이 다르다면? 피해를 가한 사람이 자신의 행동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공동체가 개입할 역량이 충분하지 않다면? 그 과정에서 또 다른 피해가 발생한다면? 

특히 행성인에 대입해 보면 고민은 더 많아진다. 우리가 마련한 규약과 매뉴얼은 이런 상황에서 충분히 작동할 수 있을까. 지금까지 쌓아온 경험과 기준으로 대응할 수 있는 문제는 무엇이고, 여전히 더 논의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 속 시원한 답도 없이 점점 더 골치만 아파온다. 진정 성평등은 정답없는 과정의 연속인 것이다. 

행성인은 그동안 쟁점을 회피하지 않고 고민하고 논의하면서 공동체의 기준을 만들고 다듬어왔다. 그러나 이 작업은 결코 단번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오랜 시간 같은 문제를 여러 차원에서 들여다보고, 여러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나누며, 수정하는 과정을 여러 차례 반복해야 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부족한 것들이 있고 남아 있는 과제들이 한바닥이다.

완벽한 답은 없다. 성평등을 지향할 때 중요한 태도 중 하나는 이 불완전함을 받아들이는 일이다. 그런 가운데 문제가 발생했을 때 무엇을 질문해야 하는지 알고, 함께 판단할 수 있는 역량을 쌓아가는 것. 그리고 사건이 발생하기 전부터 공동체의 관계와 문화를 살피고, 폭력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을 바꾸어가는 것. 그렇게 조급해하지 않으면서 멈추지 않고 해나가는 것이 우리가 평등을 실천하는 방식이어야 하지 않을까.

책의 중간중간에는 독자가 직접 생각하고 답을 적어볼 수 있는 워크시트가 실려 있다. 그중 함께 생각해 봄직한 질문 몇 가지를 소개한다.

  • 치유 정의 — 당신의 정의는 무엇인가요?
  • 당신에게 ‘변화(Transformation)’는 어떤 느낌인가요? 그림으로 표현해 보세요. 또는 당신이 경험했던 중요한 변화의 과정을 떠올려 보고, 그 여정을 이곳에 기록해 보세요.
  • 공동체적 책임이란 무엇인가요? 그림을 그리거나 글을 써 답을 적어보세요.

여러분도 함께 답해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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