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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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육우당 추모집] 내 혼은 꽃비 되어 개정판 발간사

 

올해는 육우당이 세상을 떠난지 20주기를 맞는 해입니다. 그를 기억하고 기리는 마음을 모아 육우당 추모집 ‘내 혼은 꽃비되어’ 개정판을 발간합니다. 

 

 2006년 3주기에 맞추어 발행한 추모집 ‘내 혼은 꽃비되어’에는 육우당의 생전 기록물들과 동료들의 글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그의 글에는 당시 청소년 성소수자였던 육우당의 고뇌와 바람, 세상을 향한 분노, 좌절이 가감없이 담겨 있습니다. 때문에 추모집은 당대 성소수자들이 처한 현실과 생의 문제들을 엿볼 수 있는 통로였고 육우당을 기억하는 사람들을 위한 유품이었으며 청소년 성소수자들의 권리 문제를 살피도록 하는 이정표였습니다. 많은 이들에게 회자되며 지금까지도 성소수자들의 목소리가 되어 온 것입니다. 

 

개정판 발간의 의미와 방향에 대한 긴 토론의 시간이 있었습니다. 20여년의 시간동안 우리 공동체의 모습도 많이 바뀌었기 때문에 초판을 그대로 싣는 것에 대한 우려가 깊었습니다. 그동안 우리 공동체는 자살이라는 죽음의 방식에 대해, 떠난 이에 대한 애도와 남겨진 이들의 상실에 대해 많은 고민과 성찰을 이어 왔습니다. ‘죽음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말을 지지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그런 선택을 할 수 밖에 없던 동료에 대한 존중과 애도의 방식은 어떠해야 하는가 고민해 왔습니다. 결코 그 죽음을 낱낱이 파헤치는 방식은 아니어야 한다는 점을 배웠습니다. 떠난 이를 기리는 마음만큼이나 남은 이들을 보살피는 일 역시 중요하다는 것 또한 알게 되었습니다. 

 

행성인 운영위원회에서는 초판을 검토하면서 육우당의 산문에 등장하는 죽음에 대한 암시가 자칫 세상을 구할 방도인 것처럼 오해되거나 영웅 시 될 것에 대한 우려를 지울 수 없었습니다. 그가 세상을 바라본 관점과 감수성, 생의 고뇌와 바람들은 시편만으로 충분히 전달할 수 있다는 점에도 다같이 동의하였습니다. 

 

한편 20년의 세월이 지나는 동안 육우당의 추모는 연대의 장으로 변화해 오기도 했습니다. 특히 2015년에 12주기를 맞아 진행한 <혐오와 차별에 희생된 이들을 기억하는 이상한(恨) 연대문화제>는 그 변화의 시작이었습니다. 성소수자, 장애인, 빈민 등 사회가 규정한 정상에서 비껴나 있는 존재들이 모여 혐오와 차별에 희생된 동료들을 추모하고 이상한 존재들인 우리가 세상을 바꿔나가자는 저항의 몸짓을 펼쳐내었습니다. 다양한 만남과 시도 속에서 추모는 애도와 투쟁을 이으며 서로 다른 몸들이 교차하고 부대끼는 연대의 장으로 확장해 왔습니다. 이러한 도전과 변화의 과정이 떠난 이가 남긴 유산이자, 지금 이 땅에 발딛고 살아가는 이들이 가진 힘이라는 점을 우리는 배우고 있습니다.   

 

변화의 흐름 안에서 긴 논의 끝에 이번 개정판에는 육우당의 시편만 싣습니다. 그의 자취를 잘 간직하고픈 동료들의 결정을 그 역시 이해하리라 믿습니다. 작품의 편집은 초판본의 구성을 그대로 따랐습니다. Part 1의 시들은 육우당의 일상생활과 세계관이 잘 드러나 있는 작품들을 골라 묶은 것입니다. Part 2는 고인이 남긴 사랑을 주제로 한 詩作들을 사랑의 과정 순으로 엮은 것이며 Part 3의 작품들은 시인이 사랑했던 자연을 주제로 한 것들입니다. 그의 작품들에 깃들어 있는 진솔한 매력을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이외 2015년에 단체명이 변경됨에 따라 초판본의 동성애자인권연대에서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로 단체명을 변경하여 발간합니다. 단, 육우당의 시에 실린 경우에는 수정하지 않았습니다. 

 

개정판 발간을 통해 육우당의 글들이, 글에 담긴 진심이 보다 많은 이들에게 전해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함께 기억하고 돌보고 투쟁하며 그의 바람과 같이 “덩실덩실 춤을 추며 기뻐할” 세상을 만들어 갑시다.

 

육우당을 비롯하여 우리 곁을 떠난 동료들을 기리며  

 

2023. 06. 26.

행성인 운영위원장 지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