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이 검색 창 닫기

search

[기획_논바이너리는 00하는 중입니다][회원 에세이] ‘성별없음이’의 삶을 상상해도 된다면

Post details:

0

Share

라스(행성인 트랜스젠더인권팀)

매년 7월 14일은 국제 논바이너리 가시화의 날입니다.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트랜스젠더퀴어인권팀에서는 논바이너리 가시화의 날을 기념하며 올해 논바이너리의 트랜지션을 다룬 특집 웹진을 기획했습니다. 7월부터 10월까지 한 달에 한 편씩 총 4명의 필자가 메인 주제인 ‘논바이너리의 트랜지션’에 더하여 각자의 생각과 고민을 바탕으로 한 글을 연재합니다.

논바이너리의 트랜지션을 상상하기

트랜스젠더 당사자의 삶에 있어서 트랜지션은 빼놓을 수 없는 이야기 중 하나다. 자신의 성별 정체성대로 살아가는 것. 그에 따라 필요한 사회적, 의료적, 법적 트랜지션을 하거나 하지 않거나, 그 방향은 각자가 생각하는 바가 모두 다르다. 하지만 여전히 사회에서 ‘트랜스젠더’라 함은 전형적인 성별 이분법에 맞춘 트랜지션 (특히 의료적 트랜지션) 과정을 겪은 사람을 주로 상상하는 것 같다. 트랜스젠더에 대한 흔한 오해다. 여성도 남성도 아닌 논바이너리 트랜스젠더는 특히나 더 사회가 납작하게 바라보는 트랜스젠더의 모습과 다르다. 애초에 여성과 남성으로 나뉘지 않는 존재를 상상할 수 없는 사회에서는 논바이너리의 존재 자체가 이질적이기 때문이다.

여성, 남성, 그리고 ‘성별이 모호해 보이는’ 사람은 있을지언정 논바이너리로 패싱된다는 것은 없다. 논바이너리로 법적 성별 정정을 한다는 선택지도 없다. 사회에서 이상적으로 여겨지는 여성상, 남성상은 있을지언정 이상적인 논바이너리의 상이란 없다. 여성, 남성, ‘기타’에서 기타라는 큰 집합 안에 속한 사람들 개개인이 느끼는 젠더의 감각과 원하는 젠더 표현, 신체는 그만큼 천차만별이다.

트랜지션(에 대해서 상상하는 것)은 끊임없이 ‘나’를 알아가는 과정 중 하나다. 어떤 것을 하는 것도, 하지 않는 것도 나의 고민과 선택이 담긴 결과물이다. 트랜지션은 커스터마이징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커스터마이징을 하기 위해서는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원하지 않는지, 또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어떻게 할 수 있을지 알아야 한다. 누구나 처음부터 알고 있지는 않으니 알 수 있어야 한다.

정보가 있어야 상상하고 선택할 수 있다. 지정성별에 순응하며 살 필요 없다고, 내가 되고 싶은 나대로 살아도 된다고, ‘정상’사회 어디에서도 이런 삶이 있어도 된다고 말해주지 않았다. 길을 찾아가는 것은 오롯이 당사자의 몫이 된다. 모르는 길을 어디부터 발을 내디뎌야 할지, 애초에 가도 되는지조차 확신할 수 없다.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던 길

많은 트랜스젠더가 이런 시간을 겪어오지 않았을까. 나는 길이 있는 것을 몰랐던 사람이다. 어린 시절 정체화를 하기 전부터 여성과 남성으로 나뉜 세상이 불편했다. 어느 성별로도 여겨지지 않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다. 설명할 언어를 몰랐던 이질감이 사춘기가 시작될 즈음부터 증폭되고, 디스포리아는 커져만 갔다. 그때쯤부터 원하던 것은 이미 명확했던 것 같다. 아무도 나를 특정 성별로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 성별화된 단어를 나에게 쓰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상적인 신체를 상상할 때 그것은 항상 소위 말하는 중성 혹은 무성적인, 겉으로 드러나는 성별 특징이 없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직접 보고 자란 사회에서, 현실은 그럴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되고 싶다”라고 상상할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SNS를 통해 트랜스젠더에 대한 설명이 담겨있는 이미지를 접하면서 논바이너리의 존재를 알았다. 내가 잘못된 게 아니라고, 나 같은 사람들이 있다고 처음으로 알게 되면서 한동안은 매일같이 뛸 듯이 기뻤다. 내가 바로 논바이너리라는 걸 아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내가 꿈꿨던 것처럼 여자, 남자 아닌 논바이너리의 삶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당연히 그렇게 살고 싶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을 두 가지 성별로 나누려 하는 사회에서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까? 어디부터 시작해야 할지 감이 잘 잡히지 않았고, 틀을 깨고 나가는 것이 무서웠다. 하지만 정체화 후 시간이 점차 지날수록 갈망은 점점 강해져만 갔다. 이대로는 못 살겠다. 감당해야 할 일이 많았지만 그렇게 하지 않고서는 내가 나로서 살아갈 수 없었다. 나를 숨기고 사는 것은 삶을 온전히 살아가는 것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나’를 드러내는 과정

어떻게 하면 논바이너리로서 나를 드러내고 살 수 있을지, 트랜스젠더 당사자들의 이야기를 찾아보고 이야기를 들었다. ‘사회적 트랜지션’이라는 선택지를 알게 되었다. 의료적 트랜지션에 대해서는 들어봤을지 몰라도 사회적 트랜지션은 다소 생소한 단어였다. 사회적 트랜지션은 자신의 성별 정체성에 맞게끔 사회에서 일상생활과 관계 속 변화를 만드는 것이었다. 내가 원하는 젠더 표현을 하고, 커밍아웃하고, 세상과 소통하는 것이다.

작은 것부터 시작해 보기로 했다. 막 정체화를 한 이후로부터 한동안은 아주 소소하게 퀴퍼에 가서 젠더퀴어 팔찌를 차고 다니고 온라인 설문조사나 웹사이트 정보란에서 성별 기타에 체크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만족감을 느꼈다.

2019년 즈음 서울퀴퍼에서 찍은 사진 중 유일하게 남은 사진. 당시 어느 부스에 있던 누군가가 내가 찬 젠더퀴어 팔찌를 보고 “저도 젠더퀴어예요!”라고 반갑게 인사했다. 그 한마디가 어찌나 기뻤는지 집에 돌아가서도 한동안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그 이후로는 더 적극적으로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았다. 퀴어 커뮤니티를 찾아다니며 퀴어 지인을 만들었다. 지인들에게 커밍아웃하며 나는 논바이너리이고, 성별 호칭을 사용하지 말아 달라고 이야기했다. 그 과정에서 상처를 입는 일도 여럿 있었다. 커밍아웃 후 어색하게 멀어진 사람도 있었고, 나의 성별 정체성을 존중하지 않는 모습을 보고 내가 먼저 거리를 둔 경우도 있었다. 쉽지 않았지만 나를 숨기며 살아가는 것보다는 나았다. 어느 순간 주변엔 커밍아웃하지 않은 사람보다 한 사람이 훨씬 많아졌다. 평생을 불편한 꼬리표처럼 따라왔던 이름도 중성적인 이름으로 개명했다.

물론 이것은 나의 경우이고, 사람마다 밟아가는 사회적 트랜지션의 과정은 다를 것이라는 점을 다시 한번 언급하고 싶다. 만약 의료적 트랜지션을 원치 않았다면 이 시점에서 충분히 만족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사회적 트랜지션만으로 상당히 많은 디스포리아를 해소할 수 있었다.

내 몸과 화해할 수 있을까

사회적 트랜지션 과정을 밟아가던 도중 한창 퀴어 커뮤니티에 있으면서 의료적 트랜지션에 대해서 더 깊게 알게 되었다. 당연히 의료적 트랜지션을 몰랐을리는 없다.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게, 바이너리 트랜스젠더에게만 해당하는 줄 알았다. 그래서 깊게 생각해 보지 못했다. 내가 원하는 신체상은 있지만 가지 않은 길을 가는 게 무서웠다. 같은 호르몬이나 수술에 대한 후기도 바이너리 트랜스젠더의 후기는 많아도 논바이너리의 후기는 찾기 어려웠다. 의료진도 논바이너리가 무엇인지 몰라 정신과 진단을 못 받았다거나 호르몬 치료를 하지 못했다는 등 이야기도 들었다. 걱정이 앞섰고 정보는 부족했다.

영어로도 정보를 찾기 시작했다. 해외 커뮤니티에서는 논바이너리의 의료적 트랜지션 고민과 후기를 꽤 찾아볼 수 있었다. 그 많은 사람 중에서 누군가는 나와 비슷하기도 다르기도 했지만 무엇이 되었든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이 무척이나 반가웠다. 한국의 상황과 달라 일대일로 적용하기 어렵기도 했지만 그를 통해서 성별 이분법에 얽매이지 않은 다양한 의료적 트랜지션의 옵션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국내외에서 하나둘씩 이야기를 접하면서 어두컴컴했던 길에 가로등이 하나씩 켜지는 것 같았다. 내가 바랐던 것을 구체적으로 상상해 봤다. 평평한 가슴과 월경을 하지 않는 몸, 조금 더 낮은 목소리, 그런 것들. 무얼 할 수 있는지 알게 되니까 용기가 생겼다.

조금씩 계획을 세웠다. 한국의 상황에 맞춘 한국어 자료는 LGBTQ+센터와 한국성소수자의료연구회 등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당사자들의 이야기를 접하는 것도 큰 의미가 있었지만, 전문적이고 신빙성 있는 자료를 접할 수 있는 것 또한 너무나 중요했다. 천천히 탐색하며 우려했던 점에 대해서 질문도 하고 답을 얻었다.

세상과의 불일치를 안고 살아가기

2025년 광주퀴퍼에서 에이젠더 망토를 매고 행진했던 때의 사진. “ERROR 404 : GENDER NOT FOUND”라는 문구가 나름 반응이 좋았어서 내심 기분이 좋았다.

‘성별없음이’인 나를 상상해도 된다는 걸 알았을 때, 내가 뭘 할 수 있는지 알게 되었을 때 해방감이 아직도 생생하다. 하지만 그 해방감만큼이나 어찌 보면 너무나도 당연한 권리인 ‘내가 나로 살아가는 것’을 위해 많은 장벽을 마주해야 한다는 것이 무겁게 느껴졌다. 지금도 여전히 그렇다. 오픈리로 살고자 하지만 안전하게 느끼는 작은 울타리를 조금만 벗어나도 두려워진다. 어떤 방식의 트랜지션을 하거나 하지 않거나, 상상하고 실천했다고 해서 소수자 스트레스나 디스포리아가 마법처럼 사라지지는 않는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의 한계는 명확하게 존재하기 때문이다. 사회는 여전히 성별 이분법적으로 구성되어 있고, 논바이너리의 존재는 가시화되지 않는다. 성별 정체성과 관계없이 여성 혹은 남성으로 멋대로 구별받고 판단당한다. 한국에서 법적으로 논바이너리임을 인정받을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차별로부터 안전하지도 않고, 억지로 나를 숨겨야 하는 경우도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덜 괴롭게 관리할 수는 있지 않을까. 정보가 많을수록 상상하고 선택할 수 있는 범위가 넓어진다. 내가 바라는 것은 무엇인지, 어떻게 다룰 수 있을지 탐색할 수 있다. 주변에 공유하고 말할 수 있다. 필요할 때 도움받을 수 있는 곳이 있다. 내가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안다. 그러면 어떻게든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트랜스젠더, 논바이너리, 젠더퀴어, 퀘스쳐너리, 젠더아픔이, 젠더횡단자, 어떤 이름으로 불리든 성별 다양성을 가진 이들이 몰라서 넘어가고, 어쩔 수 없어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알고서 선택할 수 있기를 바란다. 논바이너리의 이야기도 트랜지션에 관한 이야기도 얼마든지 접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내가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고 그래도 된다고 상상할 수 있게 해준 것은 온라인상의 여러 곳에서 올라온 누군가의 짧은 후기, 몇 마디의 질문, 답변, 잡담, 생각들이었다. 그 작은 정보의 파편이 모여 지금의 내가 될 수 있지 않았나 싶다. 이 글도 누군가에게 그 파편 중 하나가 될 수 있다면 좋겠다.

😀
0
😍
0
😢
0
😡
0
👍
0
👎
0

Have any thoughts?

350 Reactions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Solidarity for LGBT Human Rights of Korea

lgbtpride.or.kr I E·mail : [email protected] I tel : 02-715-9984 I fax : 02-334-9984 I 주소 : (03978) 서울시 마포구 월드컵북로 12길 20-5 1층

신한은행 140-010-905331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이호림)

별도의 표시가 없는 한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저작물은 정보라이센스2.0 : 영리금지를 따릅니다. 저작물 인용시 저작자를 표시하기 바랍니다.

Copyright ⓒ Solidarity for LGBT Human Rights of Korea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