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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에세이] 물에 빠진 트랜스젠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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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윤(트랜스젠더퀴어인권팀)

쨍한 형광등 아래로 물보라가 줄지어 일어난다. 강습 레인에서 발차기 연습 중인가 보다. 발차기를 쿡쿡쿡쿡 하는 사람도 있고 쿠궁쿠궁 하는 사람도 있고 쿠과과광 쿠과과광 하는 사람도 있다. 강사가 시큰둥한 목소리로 “하나- 두울- 서이- 너이- 더 빨리이! 다스- 여스- 일고옵!” 하고 외친다. 바로 옆에 무리 지어 있는 분들은 매실청 담그는 이야기와 임장 다니는 이야기를 주거니 받거니 하느라 바쁘다. 나 혼자 정신 없어져서 눈을 꼭 감는다. 어쩐지 락스향이 더 알싸하게 풍기는 기분이다. 가만 집중해 보면 구석에 수납해 둔 킥판에서 은은한 고린내가 나는 것도 감지할 수 있다. 그 모든 게 무한한 습기와 어우러져서 특유의 시큼털털한 공기를 이룬다.

처음 와보는데도 불빛부터 소리, 냄새까지 전부 익숙한 이곳. 26년 만에, 다시 수영장이다.

마지막으로 수영장을 다녔을 때 나는 새벽 성인 강습반에 등록된 유일한 어린이였다. 강습반 동료들은 나를 귀여워하면서도 걱정했다. “아니, 어쩌다가”로 시작하는 질문을 자주 던졌다. 특히 탈의실을 같이 쓰는 분들이 심심할 때마다 말을 걸어왔다. 어쩌다가 10대가 새벽 수영은 꼬박꼬박 나오면서 학교는 가지 않게 됐는지, 어쩌다가 초등학생이 멀쩡한 의무교육 체계를 놔두고 홈스쿨링인지 뭔지 도통 이해할 수 없는 걸 하게 됐는지 등 신상과 관련된 질문도 많았지만, 역시 단골 주제는 신체였다.

“아니, 어쩌다가 이렇게 살이 찐 거야, 학생… 지난번에 보고 애 셋은 낳은 줄 알았더니만 나이 듣고 깜짝 놀랐잖아. 아직 시집가려면 멀었는데 지금부터 이러다가 큰일 나.”

“아니, 어쩌다가 가슴이 저기 뒷산만 해졌대, 그래? 나 이 나이 먹도록 이런 가슴은 처음 봐, 진짜. 나중에 애기 생겼을 땐 좋겠다, 잘 먹여서. 아이고 근데 너무 없는 것도 볼품없긴 한데 너무 커도 보기가 좀 그렇다…”

동료들이 마음 써주는 건지 무례한 건지 모를 노릇이었지만, 나도 비슷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내 가슴은 정말이지 거대했다. 큰일은 미래에 다가올 불상사가 아니라 이미 닥친 현실이었다. 그냥 좀 보기 그런 정도가 아니었다. 이런저런 흔하고 씩씩한 풀이 자라나는 공터로 남겨두어야 했을 곳을 뒤집어 엎고 삭막한 상업용 건물을 층층이 쌓아 올린 것처럼 숨이 턱 막혔다. 나는 내 가슴이 끔찍했다. 나에게 가슴이 있다는 게, 그것도 무려 다섯 근 짜리 가슴이 있다는 게 끔찍했다. 내 신체를 두고 그 누가 그 어떤 막말을 하든 나보다 진심으로 하지는 못할 정도로, 너무도 끔찍했다.

수영장을 다니기 전부터 그랬다. 수영장을 다니면서 끔찍한 게 더 선명하고 집요해졌을 뿐이다. 수영장 탈의실은 내가 태어나서 처음 겪어본 탈의실이었고, 거기서 나는 그저 몸에 불과했다. 집에서처럼 뚱뚱하지만 의외로 세심한 언니라든지, 교회에서처럼 가슴이 지나치게 빨리 발달했지만 다행히 정숙하게 행동하는 여성 신도라든지 하는 역할로 숨어들 여지가 없었다. 남은 건 벌거벗은 몸과 그 몸과 함께 까발려진 자기 혐오감이었다.

물론 수영장을 떠난 데는 여러 이유가 있었다. 원래 다니던 수영장에서 좋지 않은 일이 생겼고, 우리 집이 이사를 했고, 이사 간 집 앞에 새로 수영장은 곧장 망했다. 그래도 몇십 년간 수영장과 담쌓고 지낸 건 거기서 내 몸을 버텨내는 게 버거워진 탓이다. 사랑하는 식구들이 수영장에 같이 가보자고 하지 않았다면 영영 그럴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싶다.

26년이 지나도 바뀌지 않는 것들이 있기는 하다. 사람들이 탈의실에서 나를 보고 “아니, 어쩌다가” 하고 다가오는 것들 말이다.

“아니, 어쩌다가 가슴이 이 지경이 됐어… 수술해서 그렇다고? 돌팔이한테 간 거 아니야, 어떻게 젊은 여자 가슴을 이렇게 만들어 놔, 글쎄? 젖꼭지라도 제대로 해놔야지, 너무했네, 너무했어.”

“아니, 어쩌다가 젊은 나이에 벌써… 결혼은? 아직 처녀야? 아이고, 아이고 세상에…”

내 가슴에는 울퉁불퉁한 자국이 두 개 있다. 탑수술을 하고 나서 절개선을 따라서 진 흉터다. 구렁이가 꿈틀거리며 땅을 헤집고 다닌 흔적 같기도, 그 구렁이가 벗어던지고 간 벌겋고 거친 허물 같기도 하다. 그냥 체질상 큰 상처가 아물 때마다 생기는 거라 탑수술을 집도한 의사가 실력자임에도 어쩔 수 없는 영역이었다. 젖꼭지가 없는 건 내 나름대로 맞춤 설계했기 때문에 너무하기는커녕 가장 만족스러운 부분이다. “도윤 씨가 눈을 딱 감았어. 그런데 가슴이 지금 내 가슴이 아니라 나를 편안하게 해줄 수 있는 가슴이야. 그 가슴은 어떻게 생겼어요?” 하는 의사의 질문에 머릿속에서 두루뭉술하게 떠올랐던 모습이 이제는 다른 사람들도 볼 수 있는 또렷한 결과물이 됐다. 탈의실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내 몸에 간섭하는 방식은 변함이 없지만, 내가 살아내는 나의 몸은 드디어 견딜 만하게 바뀌었다.

견딜 만하게 바뀐 몸은 수영장에 대한 기억도 바꿔놓았다. 수영장 탈의실이 내가 그토록 싫어하는 나의 몸을 정면으로 마주하게 했다면, 수영장 그 자체는 내가 덜 싫어할 수 있는 몸을 비스듬히 보여줬다는 걸 최근에 다시 수영을 하면서 깨달았다. 탑수술을 하기 전 늘 나를 무겁게 끌어내리던 가슴은 물속에서만큼은 부력의 힘으로 조금 가볍게 느껴졌다. 평영까지 떼고 접영을 배우기 시작할 때쯤 산 탄탄하고 딱 달라붙는 선수용 수영복은 내 최초의 바인더이기도 했다. 가벼워지고 평평해진 가슴으로 하는 수영은 전에 시도해 본 그 어떤 움직임보다 자유로웠다. 더 정확히는 나의 평상시 몸이라는 굴곡과 덩어리 속에 갇히지 않는 움직임을 가능하게 했다. 수영복을 갖춰 입고 물속에 있으면 팔을 마구 저어도 거치적거리는 게 거의 없다시피 했다. 잠깐이기는 했지만 그 순간만큼은 가슴 달린 몸이나 여성으로 읽히는 몸이 아니라 아무 잡생각이 들지 않을 때까지 공간을 가로지르는 몸, 앞으로 쭉쭉 뻗어나가기 위해서 힘차게 부리는 상체와 하체일 뿐이었다. 물 밖에서도 어느 정도 가볍고 평평한 지금의 몸이 존재하는 건 아마도 물속에서 처음 만난 그때의 몸 덕분일 것이다.

그렇게 나는 다시 물에 빠진 트랜스젠더가 되어가고 있다. 탈의실이라는 관문을 무사통과하기 위해서는 여전히 용기가 필요하고, 내 수술 흉터를 보고 어린이의 눈을 가리며 “OO야, 무섭지?” 하는 양육자들 사이에서 할 일을 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무덤덤함이 필요하다. 그래도 버티는 마음보다는 즐기는 마음이 늘 선두를 달렸으면 한다. 내 몸도 달라졌고 내가 혼자가 아니라는 것도 달라졌으니 어떻게든 해냈으면 한다. 이번에는 물에 아주 흠뻑 빠져볼 수 있기를. 물에 빠져서 돌고 또 돌다 보면 나를 자유롭게 하는 움직임을 점점 넓혀갈 수 있기를. 그리고 그저 돌기만 하는 게 아니라, 나를 알고 아껴주는 존재들과 함께 움직이며 함께 자유로워지고 있음을 감각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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